내가 앙코르 와트를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때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대한 꼬마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책에서 였다. 세계 몇 대 불가사의 어쩌고 하는 것들이 호사가들이 가져다 붙인 것들이라 딱히 정해져있지 않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기 때문에 밀림에 수백년 동안 감춰진 거대한 도시와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린 나에게 깊게 각인되었고 결국 그 호기심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앙코르 와트는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신비로운 사람들의 불가사의한 도시도 아니고, 몇 백년간 사람들에게 잊혀져 있다 갑자기 발견된 것도 아니다. 이 거대한 도시와 사원은 오랜 시간 버려진채 새로 그곳에 살기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옛 사람들이 살던 폐허로 밖에 인식되지 않았던 것이 서양에서 온 종교인들과 탐험가들에 의해 알려진 것이다.


이른 아침이지만 벌써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시엠립에서 미리 예약해둔 오토바이 삼륜차(태국의 '뚝뚝')를 타고 앙코르 와트로 향했다. 드디어 그 '앙코르 와트'에 간다는 기대감과 약간의 흥분감을 느낀 상태에서 뜻밖의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뚝뚝 앞으로 캄보디아 처녀의 자전거가 갑자기 유턴을 하는 바람에 뚝뚝과 뚝뚝 밖으로 약간 나와 있던 내 어깨에 동시에 부딫힌 것이다. 어깨의 묵직한 통증을 참고 내려보니 자전거는 엉망으로 쓰러지고 처녀는 도로 가운데 쓰러져 엎드려 있었다. 


뚝뚝 운전사는 처녀의 상태를 확인하지도 않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옆에 서있기만 하고 나도 경황이 없던 와중에 지나가던 서양 배낭여행자 아가씨가 처녀의 상태를 살폈다. 그녀는 처녀의 상태를 살펴보고 운전사에게 병원으로 데려가라고 했지만 운전자는 그럴 필요 없다는 듯, 오늘 재수가 없다는 듯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서양 아가씨는 더욱 높아진 음성으로 운전사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운전사에게 당신 뚝뚝은 타지 않을테니 빨리 처녀를 병원으로 데려가라고 했다. 돈을 받을 수 없게 된 운전사는 그제야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처녀를 태우고 떠났다.


여행중에 사고를 당할 수도, 불행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이것은 떠나기 전에 이미 각오했던 바이고, 여행중이 아니라 한국에 있었더라도 마찬가지다. 캄보디아 처녀의 상태를 살피고 병원으로 옮기라고 화를 내던 서양 아가씨는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자신은 여행자일뿐이며 주위에 그 나라 사람들이 많음에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즉시 행동하는 그 자세가 충격이었다. 나였다면 '어떡할까? 주위에 이 나라 사람들이 많으니까 누가 조치를 취하겠지? 어라, 아무조치도 안하네. 그럼 내가 해야하나?' 하고 생각하고 나서야 움직였을 것이다. 그 이후로 다른 사람의 사고나 어려움을 보면 그 아가씨 덕분에 어느 정도 짧게 생각하고 움직이게 된 것 같다. 이외에도 여행은 계속해서 나에게 생각지도 못한 가르침을 주었다.


[사고로 돌려보낸 그 뚝뚝... 자동차, 뚝뚝, 자전거, 오토바이 등등... 혼잡하니 언제나 사고 조심]


통증이 심하던 어깨를 돌려보니 움직이는데 이상이 없다. 뼈나 인대에 큰 손상은 없는 것이려니 싶어 안심이 되고 다시 앙코르 와트에 갈 생각에 다른 뚝뚝을 잡아 탓다.


앙코르 와트에 가는 길에 매표소에서 표를 끊었다. 표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거나 재탕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웹캠으로 사진을 찍고 표에 사진을 프린트해서 내어준다. 표는 1일권, 2일권, 3일권 등 여러 가지인데 앙코르 와트만 본다면 1일권, 앙코르 와트와 톰을 본다면 적어도 2일권 이상은 끊어야 된다. 나는 첫날은 앙코르 와트, 둘째날은 앙코르 톰을 다녔는데 유명한 사원이나 유적만 봐도 하루로는 그 넓은 앙코르 톰의 유적을 느긋하게 보는데 어림도 없었다.


[앙코르 와트를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해자]


앙코르 와트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해자 덕분에 밀림의 수목으로부터 사원이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 앙코르 톰의 유적이나 사원들 중에는 지붕이나 담에 뿌리내린 나무들이 거대하게 자라서 건축물을 무너뜨리고 있는 곳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앙코르 와트의 바깥문을 지키는 거대한 나가]


힌두교에는 수많은 신들과 그들이 모습을 바꾼 다른 신, 동물 모양의 신과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여러 개의 뱀 머리가 달린 '나가'도 자주 등장한다. 부처님 상의 후광이 원래는 나가였다고 하는데 힌두 문화권에서 점차 불교 문화로 바뀐 동남아의 오래전 불상에서는 부처님 뒤에서 머리를 펼치고 있는 나가를 볼 수 있다.



[드디어 멀리 보이는 앙코르 와트]


긴 해자를 건너고 외성(?)을 들어간 뒤에도 앙코르 와트는 멀기만 하다. 이 거대한 사원은 더욱 거대한 도시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다. 덥고 습한 캄보디아에서 앙코르 와트를 방문할 때는 물, 모자, 썬글라스, 간편한 복장과 신발은 필수다.


[앙코르 와트 벽면의 아름다운 부조]


[앙코르 와트의 부조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힌두의 창세신화 '우유바다 휘젓기']


[신들이 거대한 뱀의 몸통을 잡고 우유 바다를 휘젓고 있다]


[선한 신들의 대장]


[심판을 보고 있는...]


[악한 신들의 대장]


[앙코르 와트 부조의 아름다움]


[힌두문명에 사전 지식이 없다면 가이드가 안내하는 투어를 추천한다]


캄보디아는 옛날 프랑스 지배의 영향인지 프랑스어 관광객이 매우 많고 안내판, 게시판 등도 영어보다 프랑스어가 우선이다. 프랑스어로 투어를 진행하는 가이드들이 상당수였다.



아직 복구를 진행중인 곳도 있고, 무너져 내린 곳도 있지만 크메르인들이 이뤄놓은 힌두문명과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힌두교나 그 문명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 상세히 알지 못한게 아쉬웠다. 오디오 가이드가 없으니 가능하면 한국어 설명이 가능한 가이드 투어를 추천한다. 반드시 정식 가이드 자격증을 가진 사람에게 투어를 받는게 좋다.



앙코르 와트를 떠나며 이들이 천년도 훨씬 넘는 시간 전에 이룩한 문명이 놀랍기도 하면서 인류 역사에서 인간의 백년 남짓한 삶이 얼마나 한순간인지도 실감하게 되었다. 지금 다른 나라보다 조금 강한 힘으로 앞선 기술로 주변 나라들을 핍박하는 것이, 조금 더 많은 돈과 권력을 가지고 나보다 덜 가진 사람을 무시하는 행동이 얼마나 하찮은 삶인지도 깨닫게 된다. 절로 겸손한 마음을 갖게하는 여행지였다.

방콕에서 앙코르 와트가 있는 캄보디아의 시엠립으로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돈을 아껴야하는 배낭여행자들이 일반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은 방콕에서 카지노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타고 태국 국경까지 간 후, 태국 출국 검문소와 캄보디아 입국 검문소를 통화한 다음에 캄보디아 택시를 이용해서 시엠립까지 가는 것이다.


태국 국경에 있는 카지노에 가는 현지인들 틈에 섞여서 가는 것인데 아무리 배낭여행자들이 흔히들 이용하는 방법이라 하더라도 누가봐도 카지노에 가는게 아니라 처음에는 좀 멋적고 쑥스러웠는데 어차피 200밧 정도의 차비를 주고 가는거라 떳떳하게 가도 되는 것이었다.


캄보디아에 입국할 때는 비자를 받아야하는데 비자 받는걸 편하 해주겠다는 삐끼들이 웃돈을 요구하며 달라들지만 대꾸하지 않고 그냥 검문소에서 받으면 된다. 검문소를 통과해서 걸어나오면 자동차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시엠립 가자고 하면 가격을 불러대기 시작한다. 인터넷이나 여행책자에서 본 가격과 터무니 없다면 흥정을, 비슷하거나 조금 비싸다면 그냥 타면 된다.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동남아는 물가 변동이 심해서 본인이 찾은 정보가 며칠된 따끈한 정보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 차이는 인정해야 여행자 스스로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된다. 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구한 몇 년된 영문판 론리 플래닛을 가지고 다녔는데 최소한 돈에 대한 정보는 전혀 쓸모가 없었다.


[캄보디아 국경에서 시엠립으로 가는 택시안, 생각보다 택시가 멀쩡해서 다행]


태국에서도 방콕을 조금만 벗어나면 초라한 집들에 땟물과 먼지를 뒤집어 쓴 아이들을 보고 방콕의 휘황한 마천루와 비교되어 메우기 힘든 빈부의 격차가 마음을 불편하게 했는데 캄보디아로 넘어오니 흡사 태국은 선진국처럼 느껴진다. 이들의 아픈 역사와 중첩되어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도롯가 캄보디아의 들판과 마을]


시엠립은 캄보디아에서도 큰 도시는 아니지만 앙코르 와트 때문에 유지되는 도시이다. 크고 작은 호텔들과 배낭 여행자를 위한 저렴한 숙소가 넘쳐난다. 대부분 아랫층에 식당을 겸하고 있고, 속도는 조금 느릴지 몰라도 컴퓨터와 와이파이를 제공하는 숙도들이 많이 있다.


[내가 묵은 숙소의 1층 식당, 대부분의 여행자 숙소가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다]


동남아는 불편한 교통과 무더위와 벌레들로 힘들긴하지만 의외로 여행하기 편한 점도 몇 가지 있다. 저렴한 숙소와 음식은 앞에서 말했지만 또 한가지 중요한게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숙소에서 직접 혹은 숙소 근처에 빨래를 해주는 곳들이 많이 있다. 더운 동남아에서 며칠만 빨래를 하지 않으면 옷이 곧 짐이 되는 배낭 여행자에게 이것은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점이다. 아침에 빨래를 봉지에 잔뜩 담아서 가져다주면 저녁에는 잘 개어진 따끈하게 마른 옷뭉치를 돌려받을 수 있다. 가격이 무척 저렴하다는 것은 덤이다.


시엠립의 숙소에서는 웃돈을 붙여서 앙코르 와트를 보는 동안에 타고 다닐 뚝뚝을 소개해준다. 시엠립과 앙코르 와트는 꽤나 거리가 있고 앙코르 와트만 본다면 모르겠지만 앙코르 톰은 당시 지구상 최대의 도시라 불릴만큼 거대한 도시이기 때문에 걸어다니면서 볼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팔팔한 이십대 여행자들은 자전거를 빌려서 다니기도 하지만 삼십대도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여행자는 의욕만 있을뿐 실행에 옮길 용기는 없었다. 숙소에서 뚝뚝을 예약하고 동네 마실겸 돌아다니다 저녁을 먹고오니 벌써 날이 어두워졌다. 캄보디아 맥주 몇 캔과 달콤한 열대 과일로 내 배낭여행에서 첫번째 국경을 넘은 오늘을 자축했다.(육로로 걸어서 국경을 넘은 것도 처음)


[처음 걸어서 국경을 넘은 기념으로 그럴듯한 레스토랑에서 시킨 캄보디아 음식]


[왼쪽 세개는 캄보디아 맥주, 무난하게 마실만 하다]

2주간 방콕에서 뒹굴면서 동네 마실나가듯 다녔던 곳들 중에 여행자들에게 잘 알려진 곳으로 '왓 아룬'과 '짜뚜짝' 시장이 기억에 남는다. 


방콕시내에 있는 많은 사원들 중에 내가 제일 맘에 들었던 곳은 새벽 사원이라는 뜻의 '왓 아룬'이다. 짜오프라야 강 건너편에 있으므로 선착장에서 표를 사고, 입장료로 50밧 정도 내고 입장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왓 아룬이 맘에 들었던 이유는 다른 사원들보다 덜 북적거리는데다 사원 탑 위에 올라가서 볼 수 있는 강 건너편 방콕 시내 경치가 좋았기 때문이다. 방콕 야경이나 전경으로 유명한 '시로코' 같은 유명한 스카이라운지보다 비싼 음식을 시키지 않아도, 사진 찍기위해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여기가 나에게는 훨씬 좋다.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짜오프라야 강을 건너]


[왓 아룬에서 보는 태국 시내 전경]


다만,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나 신발이 불편한 여자들, 어린 아이들은 오르기 힘들 정도로 왓 아룬을 오르는 계단이 만만치가 않다.


[왓 아룬의 가파른 계단]



'짜뚜짝' 주말시장은 말 그대로 없는게 없는 태국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수공예품이라면 전세계에서 치앙마이의 주말시장이 빠지지 않는다면, 물건의 다양함과 점포수로 따지면 짜뚜짝이 빠지지 않을 것이다. 에어콘 바람이 나오는 곳에서 느긋하고 럭셔리한 쇼핑을 생각한다면 절대 비추천이지만, 달달한 동남아식 커피에 땀을 식혀가며 수많은 저렴한 물건들을 뒤지는데 재미를 느끼는 여행자라면 꼭 가봐야하는 곳이다. 미처 챙겨오지 못한 여행에 필요한 물품이 있다면 여기서 보충할 수 있는데 나는 지금까지 사용하는 가죽 허리띠와 동남아에서는 일상복으로, 다른 곳에서는 잠옷으로 입었던 꽃무늬 반바지를 샀었다.


[아쉽게도 짜뚜짝에서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어울리다보니 2주가 금방 지나고 여행을 떠나온 불안감도 옅어질 때쯤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같이 어울리던 동생들은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겠다고 푸켓으로 같이 가자고 했지만, 나는 동남아 두번째 목적지로 캄보디아의 그 유명한 유적 '앙코르 와트'를 선택했다.




방콕을 첫번째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는 2006년 휴가를 보내면서 낯익은 도시여서 그때보다 배낭여행자로 느긋하게 이 도시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은 생각이었다. 그런 결과로 너무 매력에 빠진 탓인지 난생 처음으로 2주간이나 무위도식하며 보내게 되었다.


첫 일주일 동안은 까오산의 저렴한 호텔에 머무르면서 혼자 방콕 시내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태사랑에서 추천하는 현지인들의 맛집을 찾아다니며 보냈다. 호텔비라고 해봐야 하루에 3만원 정도라 처음에는 크게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는 1밧에 40원이라 지금 환율(1밧에 32원)보다 훨씬 비쌌는데도... 대엿세 지나서 1년동안 숙소비용으로 하루 3만원씩 쓰다보면 천만원이 넘는 돈이 들게될거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여기는 물가가 싼 곳이고 유럽이나 다른 곳에서는 훨씬 큰 돈이 들텐데 말이다. 다음날 바로 까오산에 있는 한국인 게스트하우스 '홍익인간'으로 옮겼다.


[처음 며칠동안 머무른 까오산의 저렴한 호텔]


지금은 모르겠지만 2년전 '홍익인간'의 도미토리 숙박료는 8천원이었다. 잠자리나 세면은 조금 불편해도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여행 정보도 얻을 수 있고, 여행자들끼리 친해질 수 있어서 좋다. 그 뒤로 열흘정도 거기서 묵고 있던 여러 동생들하고 친해져서 밤에는 태국의 여러 훌륭한 맥주들을, 낮에는 맛있는 까오산의 길거리 음식들로 배를 채우고, 시원한 곳에서 동남아의 달달한 커피를 마시며 뒹굴거렸다. 그렇게 무위도식하며 지내더라도 숙박료와 식비, 맥주값을 합해 저렴한 호텔의 하루 숙박료도 들지 않았다.


방콕 근교의 가볼만한 곳으로는 불교 유적으로 유명한 아유타야와 영화 '콰이강의 다리'로 유명해진 깐짜나부리가 있고, 그 외에 근교 해변으로는 후아힌과 파타야가 있다. 파타야는 베트남 전쟁때 미군의 휴양지로 개발되었다고 하는데 맑은 바다와 아름다운 해변보다는 밤문화가 워낙 발달한 곳이라 밤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추천하고 싶지 않다.


2주간 방콕에 머무르면서 가본 곳은 아유타야 밖에 없다. 아유타야는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400년간 시암왕국의 수도였으나 버마의 침공으로 파괴된 도시이며, 복구되었거나 복구중인 수많은 유적들이 산재해있다. 방콕에서 현지 여행사나 게스트하우스를 통해서 점심식사가 포함된 당일치기 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아유타야의 불교유적들]


같은 불교국가이면서도 버마는 아유타야 침공시 불상과 사원들을 철저하게 파괴했다. 불상들은 대부분 머리가 잘려있고, 잘린 머리를 나무가 휘감아 줄기에 박혀버린 것은 섬뜩하면서도 처절하게 보인다. 과도한 민족주의와 이기심은 현재에도 어디선가 목잘린 불상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투어내내 이들이 만든 불교 문화와 유적에 감탄하는 마음보다는 씁쓸함과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다.


아유타야의 불교유적을 보고나서 오후에는 코끼리 쇼를 하는 곳과 태국 왕가의 여름별궁이라는 방파인까지 둘러보았다. 방파인을 보는 투어와 보지 않는 투어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방파인은 예쁘게 단장된 공원 이상의 느낌은 없으므로 오후의 무더운 더위를 이겨내며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코끼리 쇼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동물을 학대하는 볼거리는 제발 없어졌으면 좋겠다.


[방파인, 태국 왕가의 여름별궁... 그냥 예쁜 공원]


여행지로서 동남아는 장점과 단점이 극명한 곳이다. 저렴한 물가와 넘치는 길거리 음식, 극도의 단맛을 보여주는 열대과일, 친절하고 인간적인 사람들... 만족하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배낭여행지이겠지만, 끝임없는 벌레의 공격과 후텁지근한 더위, 불편한 교통편, 조금은 비위생적인 환경을 못참는 사람들에게는 최악의 여행지일 수도 있다.


나에게 동남아는 자유롭고(저렴한 물가 덕분에 잘 곳, 먹을 것, 할 것들에 대해 선택의 여지가 많다), 선량한 (라오스) 사람들, 느긋하고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기억에 남는 훌륭한 여행지였다. 비록 머문 두 달동안은 최소 20군데 이상 모기물린 자국을 달고 다녔지만...



동남아에 있었던 두 달 중에서 2주는 방콕에서 여행 계획을 세우며 한껏 게으름을 피웠고 실제로는 나머지 한달 반동안 여행했다. 계획한 시간이 두 달이라 라오스의 빡세나 씨판돈, 태국의 치앙라이나 빠이를 가보지 못한게 너무 아쉬웠다. 게다가 베트남은 무비자 입국이 15일이라는 점을 미리 파악하지 못해서 후에 위쪽으로는 가보지 못했다. 나처럼 느릿느릿 여행하는 여행자에게 동남아 4개국을 여행하기에 두 달은 터무니 없는 시간이었다.




[동남아 여행 경로]


태국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자본주의 관점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이며, 다른 나라들에게 미움과 시샘을 동시에 받는 나라이다. 침입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프랑스에 넘겼다고 하는데 태국 사람들은 서구열강의 침입을 받지 않았고, 유일하게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나라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예전에는 아름다운 미소의 나라라고 불렸으나 지금은 상업화와 유명 관광지로 정형화된 미소와 상술을 보여주는게 아쉽다. 그렇지만 여행지로서 태국의 매력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불교유적들, 아름다운 열대 바다, 송크란으로 대표되는 축제, 똠양, 팟타이, 쏨땀, 사테이 등등의 맛있는 요리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을 위한 화려한 밤문화...



[태국의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들]



캄보디아는 보고만 있어도 아픔이 느껴지는 곳이다. 앙코르 와트/톰이라는 당시 세계 최대 사원과 도시를 건설한 강대국이었지만 프랑스의 지배와 크메르 루즈 준동, 가뭄으로 인한 식량난으로 세계 최빈국중 하나가 되었다. 크메르 루즈의 킬링 필드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특히, 지식인층(교수, 의사, 엔지니어 등등)이 대부분 학살당했다. 그 때문에 세계에서 젊은 인구층이 매우 높은 국가지만 그들을 이끌어줄 지도층이 부족하다고 한다.


수도인 프놈펜에서 내가 느낀 분위기는 무기력함이었으나 앙코르 와트에서 얼음에 재워둔 콜라를 팔던, 한국말을 곧잘하던 소년에게서 그나마 캄보디아의 희망이 보였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꿈을 갖고 낮에는 콜라를 팔고 밤에는 호텔에서 일을 한다던 그 소년의 미래가 어떨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베트남은 활기차다. 호치민은 수많은 오토바이를 타고 일터를 오가는 사람들과 거리의 상인들로 온 도시가 시끌시끌하다. 불과 사십년 전에 큰 전쟁을 겪었던 곳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본주의에 충실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미 그 전쟁에서 증명된 이 사람들의 인내와 영리함은 이제 돈 버는데 집중되고 있는 듯하다.


다른 국가의 화폐와 차이가 심한 화폐 단위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에게 거스름돈을 속이는 일은 다반사였지만 태국보다 훨씬 저렴한 물가에 맛있고 훌륭한 요리와 커피, 볼거리를 가지고 있다.


라오스는 정겹다. 여기서는 만나는 현지인에게 수도 없이 듣는 말이 '싸바이 디'(안녕하세요)와 '꼽자이'(고맙습니다)다. 무뚝뚝한 표정이지만 며칠만 지나면 이 사람들의 인사가 예의상하는 겉치레가 아니며, 그 무뚝뚝해 보이는 표정뒤에 있는 순박함과 수줍음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는 동남아 어디건 해야했던 '흥정'이 여기서는 없다. 당연히 잡을거라 생각하며 돌아섰는데 아무 말도 없을 때의 당혹감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 사람들이 배가 풀렀구만...' 생각하고, 좀 더 열심히 물건을 팔지 않음을 게으르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들은 처음부터 자기가 생각한 적당한 가격을 이야기하고 고객이 돌아서면 잡지않는 것뿐이다. 다른 나라의 상인들처럼 일부러 비싸게 부르고 선심쓰듯 깎아주는 얄팍한 상술을 쓰지 않는 것이다.


친절을 받으면 수줍은 듯 고마움을 표하며 웃는 얼굴이, 그 친절에 보답하려는 그 마음이 따뜻하다. 라오스는 푸르고 멋진 해변도 없고,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밤문화도, 눈을 휘둥그레 만드는 멋진 자연도 없다. 하지만 라오스에는 무엇보다 따뜻한 사람들이 산다.




같은 곳들을 다녀왔더라도 시간이 다르고, 만난 사람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면 느끼는 감정도 다르다.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100% 훌륭한 여행지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도차이나 4개국은 저마다의 매력을 가진 훌륭한 여행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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