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앙짠에서 가장 먼저 찾게 되는 볼거리는 아무래도 탓 루앙이다. 위대한 불탑이라 불리는, 라오스 사람들이 가장 신성시 여기는 불교유적 중의 하나이다. 일요일이어서 더욱 그랬겠지만 오전부터 라오스 지방에서 온 듯한 단체 참배객부터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로 붐볐다.



어제 강변에 있던 거대한 동상과 동일인물인듯...



황금색으로 칠해져 눈이 부신 탓 루앙



어느 꼬마 참배객의 센스 




탓 루앙에서 빠뚜사이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지도에서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로 보였으나 실제 더위 속에서 걸어보니 만만치가 않았다. 가는 도중 한국에서 시내버스로 사용되다 중고로 팔려온 듯한 버스가 보였다. 자신이 쓰고 버리는 것들이 타인에게 얼마나 소중하게 사용될 수 있는지 다시 깨닫는 순간이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World Peace Gong이라는 징처럼 생긴 거대한 악기를 매달아 놓은 곳이 나왔고, 주위는 분수와 꽃들로 꾸며진 예쁘장한 공원이 나왔다.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Gong(라오스를 비롯한 동남아의 전통악기라고)이란다. 사진을 삐뚤어지게 찍은 것인지, Gong을 매달아 놓은 정자가 삐뚤어진 것인지... 상태는 이때부터 썩 좋지 않았다.


멀리 빠뚜사이가 보이는 공원에는 꽤 차려입은 듯한 라오스 사람들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휴일을 즐기고 있다.


빠뚜사이는 파리의 개선문을 본떠 만들었다고 하는데, 서방국가에서 도로였는지, 비행기 활주로였는지를 건설하라고 지원한 시멘트로 지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미고자 했던 것 같은데 비용을 마련하지 못했는지 외관의 칠도 일부만 되어 있고, 내부도 일부층만 꾸며져 있다. 계획대로 만들어졌으면 꽤 볼만했을 것 같은데 안타까웠다.


1층 입구에는 표를 받는 사람이 앉아있다.


아치 내부 장식도 파리 개선문과 꽤 흡사한 모양인데 완성을 하지 못했다.




현재의 라오스는 불교 국가인데 웬일인지 천정에 있는 신들의 모습을 보면 힌두신인듯하다.



빠뚜사이 꼭대기에서 보니 위앙짠 시내가 시원하게 보였다. 꽤 역사가 오래된 도시인데 구시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도로도 넓고 곧게 뻗어있다. 라오스는 산이 많은 국가인데 위앙짠은 평야지대라 지평선에 산이 보이지 않았다.



불상 모양을 한 난간 틀이 이색적이다.


전혀 정돈되지 않은 빠뚝사이 꼭대기로 통하는 계단 모습에서 이 나라의 경제상황이 썩 좋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일부 원래 계획대로 도색이된 천정부분은 꽤 아름답고 볼만하다.



라오스의 이색적인 우체통


빠뚝사이를 나와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배낭여행자 거리에 가서 방비엥으로 가는 버스를 예매하고 늦은 점심식사를 할만한 레스토랑을 찾았으나 일요일 오후라 휴무인 곳이 많았다. 찌는 듯한 더위에 반나절을 걷고 나니 체력도 완전히 방전이 되었고 어지러움까지 밀려오는 통에 숙소로 급히 들어가야했다. 


동남아 여행 한달동안 여러차례 야간버스를 타며 떨어진 체력에다 더운 날씨에 무리해서 걸은게 원인이었나보다. 이번 여행 중 첫번째 몸살에 걸려버렸고 다음날까지 꼼짝 못하고 누워있어야 했다.

저녁에 사반나켓에서 출발한 버스는 새벽 4시쯤 위앙짠에 도착했다. 터미널은 도시의 변두리에 있어서 터미널 내부를 제외하면 사방이 어두컴컴했다. 절로 움츠러들고 생각과 행동이 방어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적어둔 숙소 주소를 보여주고 라오스 사람들로 가득찬 뚝뚝에 커다란 배낭을 우겨넣고 올라탓다. 라오스 사람들도 장거리 여행에 지쳤는지 얼굴 표정도 밝지 않아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뚝뚝은 수차례 어두운 골목길을 통과해서 사람들을 하나하나 집 앞에까지 내려줬다. 사람들이 다 내리고 운전사와 나만 남게 되었을 때야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리고 괜히 긴장해서 사람들 표정을 살피고 위험에 처하면 어떻게 해야할지 혼자 궁리한 자신이 머쓱해졌다.


뚝뚝이 숙소 앞까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주위가 훤하게 밝아있었다. 숙소 마당에는 일찍 도착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사장님이 트렁크 팬츠 차림에 맨발로 나와 있었다. 영어가 능통하고 유쾌한 성격의 사장님이 안내해준 방은 시설이 좋지는 않았지만 넓직하고 에어컨까지 있어서 버스에 지친 몸은 금새 잠이 들었다.




터미널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어두컴컴하다.


한잠 자고 나온 시내는 뚝뚝과 자동차들로 붐비고 있었고, 우리나라의 동대문 같은 쇼핑센터까지 있어서 여기가 라오스의 가장 큰 도시라는게 실감이 났다.


라오스는 역사적으로 타이와 미얀마, 베트남이라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부침을 많이 겪은 나라였다. 근세에는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반도 침략시 타이로부터 프랑스로 넘겨졌다가 일본의 지배도 잠시 받았고, 미국까지 점령했었다. 겨우 1975년 미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면서 공산화된 국가로 독립한지 40년이 채 되지 않는 신생국가며 아직 농업중심의 국가로 공업화는 이제 시작이며 주요 수출품도 농산물이나 광물자원인 내륙국가이다.


이런 정보들을 구글에서 찾아보고 갔을 때는 세계 최빈국의 하나이며, 독립된지도 얼마안된 농업 중심의 국가라는 정보로 인해서 선입견을 잔뜩 갖게 되었다.


터미널에서 방비엥으로 가는 버스를 알아보고(버스가 너무 낡고 시간이 오래 걸려 비싸더라도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걷다보니 시원한 강변이 나왔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강변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모습과 비슷하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근육질에 긴 칼을 옆에 차고 있는 모습이 라오스의 독립영웅이 아닐까 싶다.

강변 놀이터에는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와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로 북적인다.


라오스의 주말 강변 모습은 우리네 주말 강변의 모습과 다를바가 하나도 없다. 자전거를 타는 청소년들, 손 잡고 강변을 걷는 연인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이 모두 평온한 주말 저녁을 즐기고 있었다. 공산주의 국가에 최빈국 중의 하나여서 조금은 어두운 분위기가 아닐까 했던 내 선입견이 또 한번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강 건너편은 태국으로 이쪽 국경을 넘으면 방콕까지 금새 닿을 수 있다고 한다. 라오스에서 보는 태국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잘 사는 국가로서 젊은이들은 태국으로 가서 돈을 벌고 문화를 즐기고 싶은 욕구가 있는 반면,  나이든 사람들은 식민지배하에 있던 자신들을 프랑스로 넘기고 자신들의 안전을 도모한 의리없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있다고 한다.



주말 강변에는 야시장까지 열려서 갖가지 의류나 장식품, 먹거리들을 판다. 구경할 것도 많고 가격도 무척 싸기 때문 여행중에 가볍게 입을 옷들을 사기에 좋았다. 하지만 다른 옷들이 온통 그 옷 색으로 물드는 경험을 하기 싫다면 꼭 몇 차례 따로 세탁한 후에 입어야 한다.






방콕 까오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먹거리다. 넓은 전병(?)에 바나나, 누텔라, 연유, 달걀 등등을 넣어 부쳐주는 음식인데 매우 달달한데 가격이 까오산보다 무지 싸다. 라오스에서 보기드문 꽃미남 청년의 손놀림이 매우 빨랐다.


내륙국가인 라오스에서 살아있는 해산물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아마 강에서 잡은 물고기인가 싶다.



스프링롤을 고소하고 짭짤한 소스에 찍어 먹으면 꽤 괜찮다. 다만 고수를 즐기는 사람만.


태국보다는 베트남과 비슷했던 쌀국수


길을 지나다 현지인들이 북적거리는 식당을 골라 들어가 먹는 현지 음식이 가장 실패할 가능성이 적다. 관광객을 위한 식당은 비싸고 음식맛은 세계 공통으로 표준화되어버린 맛이기 때문에 굳이 찾아갈 필요가 없다.


위앙짠에서 첫째날은 생각보다 밝은 도시 분위기였고 생각보다 서양 여행객이 많아서 놀랐다. 올해 '꽃보다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인해 우리나라 라오스 여행자들이 급격히 늘었고, 비행기 요금도 무척 비싸졌다고 들었지만 몇 년 전만해도 장기 배낭여행자나 동남아를 좋아하고 잘 아는 여행자가 아니면 찾지 않는 곳이었는데 이미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커다란 배낭을 둘러매고 멀고 불편한 이 나라를 찾고 있었다.


동남아에서 4번째 나라, 라오스 여행을 시작하며 기대와 설렘이 만발했다.








베트남의 무비자 입국 기간을 착각한 뒤로 급히 정한 일정이 후에에서 라오스 사반나켓으로 넘어가는 일정이었다. 원래 생각지 못한 경로였기에 걱정도 조금 있었지만 후에에서 사반나켓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정확히 언제 후에에서 버스에 탓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베트남에서 출국할 때 출국 도장을 찍어주는 공무원들이 웃돈(1달러)를 요구했고 나는 안주고 버텼다는 것이 생각난다. 공무원들은 내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지 않고 그 뒷 사람들의 여권부터 처리하기 시작했다. 물론 큰 돈이 아니었기에 줘버릴 수 있었지만 공무원들의 비리는 일반 상인들의 속임수와는 다르게 매우 기분이 상했다. 베트남에서 갖게 된 좋은 기억들마저 이 사람들로 인해 안좋아져버렸다.


될대로 되라 하고 서있으니 범법 행위가 아닌지라 여권을 안내주고 위협해봐야 필요없겠다 싶었는지 맨 마지막으로 도장을 찍고는 여권을 던져준다.


라오스와 베트남은 교류가 많은지 국경 근처에 트럭들이 제법 많이 다닌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먹은 점심식사. 가격도 저렴하고 음식을 가리지 않는 여행자라면 먹을만하다.


베트남 출국하며 기분이 나빠져서인지 더 찍은 사진도 없다. 저녁이 한참 지나서 도착한 사반나켓은 이미 어둠에 휩싸여 있었고, 더 이상 버스를 탈 체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체력이 좋은 여행자들은 사반나켓에서 바로 라오스의 수도 위앙짠(비엔티엔)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도 하지만 더 이상 버스를 탓다가는 몸살로 며칠 누울듯하다. 눈에 보이는 아무 식당에 들어가 저녁식사를 하고 터미널 근처 숙소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나반나켓에서 위앙짠으로 가는 버스는 밤에 출발하기 때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반나켓 구경에 나섰다. 오전에는 그나마 사람들이 다니는 것 같았던 이 자그마한 도시에 오후가 되니 길거리에 사람 소리조차 나지 않게 고요해졌다.


오전에는 그나마 다니는 사람들이 가끔보인다.


오후가 되면서 도시는 그야말로 적막...


아무리 인기척이 없는 도시라지만 문을 연 식당은 있겠지 싶어 찾은 레스토랑은 아이러니하게도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세계 맥주 품평회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는 그 유명한 라오 맥주를 드디어 마셨다. 라오스의 라오 맥주가 유명하다는걸 여행하려고 정보를 찾아보지 않았다면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맛은 좋은 것 같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밀맥주와 흑맥주를 좋아하는터라 아주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재미있게도 사반나켓이라는 여기에 오기 전에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라오스의 조그만 도시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먹은 클럽 샌드위치와 까르보나라가 우리나라의 웬만한 레스토랑의 그것보다 더 맛있었다. 특이한 환경탓인지, 저렴한 가격탓인지, 정말 요리가 훌륭한지 확실히 평가할 수는 없지만 기억에 남을만큼 맛있게 먹었다.


동남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마뱀. 너무 흔하게 보다보니 귀엽기까지하다. 숙소 방안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데 불을 끄고 조용히 있으면 '따따따..'하고 도마뱀이 내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인기척이 없는 도시의 폐허에 분위기가 더 이상하다.




불교의 나라, 수없이 많은 불교사원이 있는 라오스에 카톨릭 성당이 이색적이다. 역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반나켓에서 발견한 극장. 문은 닫혀 있고, 어떤 영화인지 알 수 없는 포스터들을 걸려있다. 예전 우리나라 지방 소도시에 있었던 극장 같아서 눈길이 갔다.




드디어 밤이 되어 버스에 올랐다. 둘러볼 것 없는 작은 도시지만 낮동안 사반나켓의 그 고요함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후에는 북쪽 하노이와 남쪽 호찌민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으며 1800년 초부터 1900년대 중반까지 응우엔 왕조의 수도였기 때문에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많기 때문에 여행자 거리에 있는 현지 여행사를 통해 이 건축물들을 돌아볼 수 있는 일일투어를 다녀올 수 있다.


먼저 여행사 버스를 타고 후에 외곽에 있는 응우엔 역대 왕조의 무덤들을 다녀오게 되는데, 가장 유명한 왕들인 민망, 뜨뜩, 카이딘 왕의 무덤을 간다.(황제라고 하지만 왕이나 황제나 자기들이 붙이기 나름이라서 그냥 왕이라고 통일) 다녀온지 2년이 훨씬 넘은데다 사진만 보고 판단하기 어려워 어디가 어느 왕의 무덤인지 모르겠다. 다만, 왕릉이라고 해서 봉분만 크게 만들어 놓은게 아니라 공원처럼 잘 꾸며져 있다.












아래 카이딘 황제의 시신이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카이딘 황제의 능에는 그의 동상과 당시 사진, 기념품 등이 전시되고 있었다. 이 능은 다른 황제의 능과는 다르게 돌로 만들어진 신하들의 상과 유럽의 건축양식과 혼합된 독특한 건축물이어서 가이드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건축물과 비교했었는데 억지이긴 했지만 자신들의 건축물에 대한 자부심이 그만큼 큰 것으로 이해한다.



잠시 베트남 전통 무술을 공연하는 곳도 들른다. 날렵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멋지지만 중국 쿵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특별히 구매를 강요받지 않기 때문에 느긋하게 즐기고 박수치고 나서 약간의 공연료를 보태주면 된다. 원래 투어 프로그램에 없더라도 더위에 수고한 출연자들을 위해 편안한 마음으로 내어주자. 생각해보면 큰 돈이 아니니까 너무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다.





주요 황제의 능을 돌아보고 잠시 기념품을 파는 가게에 들른다. 호이안에서도 그렇고 향을 만드는 곳이 많은데 색색의 향을 모아놓은 모양이 꽤 다채롭다. 향은 시나몬 가루를 섞어서 만드는지 냄새가 향긋한데 여기도 마찬가지로 꼭 사야하는 것은 아니니 즐겁게 돌아보면 그만이다.



다음으로 들르는 곳은 투어의 하이라이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황궁이다. 자금성을 모방해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정말 구조나 모양이 작은 자금성과 비슷하다. 위 사진의 넓게 파인 해자(자금성의 해자에 비하면 작은 편이지만)를 건너 황궁으로 들어간다.


작은 해자를 다시 건너 내성으로 들어간다. 내성으로 들어가는 성문까지 자금성과 비슷하다. 내성 앞에는 며칠 뒤에 있을 축제를 위해 공연장을 짓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다.




성 깊숙히 들어가면 역대 왕들의 위패가 모셔진, 우리나라의 종묘와 같은 곳이 나온다. 불과 150년 정도의 짧은 왕조였지만 13명이나 왕이 바뀐 것을 보면 몇몇 왕을 제외하면 왕권이 그리 강하진 못했던 것 같다. 재위 기간이 극히 짧았던 어린 왕의 위패를 보면 우리나라의 단종의 모습과 겹쳐졌다. 세계 어디나 비슷했던 권력지향적인 인간의 모습이 여기 베트남에서도 드러난다.




성의 절반은 아직 황폐한채 복구되지 않은 모습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 후에는 지리학상 중간에 위치한 관계로 심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고 미군의 폭격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때 파괴된 황궁은 봉건시대의 유산으로 복원에 관심을 두지 않아 한동안 방치되다가 최근에 복원작업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투어의 마지막은 후에에서 가장 큰 사원이라는 티엔무 사원이다. 사실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사원보다는 돌아오는 배 위에서 본 후에의 풍경과 하루종일 무더운 더위에 지친 몸을 식혀주던 바람이 더 기억에 남는다.





지금까지 봐왔던 동남아의 황톳빛 강물과는 다르게 후에의 강(흐엉 강이란다)은 우리가 봐 왔던 강물색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동남아의 강은 강수량이 많아서 그렇겠지만 강폭이 매우 넓고 수량이 많았다. 농작물이 잘 자라는 풍요로운 기후지만 이들의 삶은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다. 동남아를 여행한 두 달동안 쓴 돈을 많지 않았다. 그리 아껴가며 여행하진 않았지만 물가가 매우 싼 덕이었다. 동남아를 여행하면서 속지 않으려고 신경쓰고 스트레스 받으며 다니기 보다는 적은 돈이라면 팁이라 생각하고 속아주는 편이 여행하기에 편하다. 여기서 한두달 동안 머리 아프게 아껴봐야 유럽에서 한두번 실수한다면 그게 더 큰 손실이될테니.


후에에서 파는 맥주

여행자마다 여행의 즐거움 혹은 가치를 두는 기준이 조금씩 다른데 나는 그것의 상당한 부분을 음식에서 찾는다. 개인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내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을 찾는다면 극복할 힘이 생기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그 도시도, 사람도 마음에 들게 된다. 후에에서 딱 그랬다.



호이안에서 후에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현지인들이 가는 식당에 들어갔다. 아직 현지인들도 도착하지 않은 이른 점심시간에 커다란 배낭을 앞뒤로 매고 들어온 여행자를 보고 젊은 식당 아주머니는 적지 않게 놀라는 눈치였다. 숟가락으로 음식을 입에 떠넣는 시늉을 하니 놀람, 경계를 띈 얼굴에 약간 미소가 번졌다.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어차피 시도하는 영어는 안통할 거라는 걸 여행 1달이 넘어서니 잘 알게 되었다. 나도 그렇고 마주하는 현지인도 바디 랭귀지가 편했다. 세계 60억이 넘는 사람들 중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 편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현지인들 입장에서는 쓸데도 없는 영어를 뭐하러 배운단 말인가, 그 시간에 좀 더 행복할 궁리나 하는게 합리적이다.


조금 지저분한 테이블에 어둡고 좁은 식당이었지만 밥에 여러가지 반찬을 얹어서 따끈한 국까지 나왔다. 국은 마치 우리나라의 맑게 끓인 시금치 국하고 비슷하게 보였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밥 값은 천원이 채 안되었던 것 같다. 여행자가 저렴한 가격에 든든히 배를 채울 수 있는, 맛도 나쁘지 않은 훌륭한 음식이다.


기분이 좋아져서 달달한 베트남 커피도 한 잔 마셨다. 하긴 그때는 매일 마시다시피 해서 더운 날씨에 무거운 배낭을 매고 다녀도 생각보다 살이 빠지지 않았는데 이 커피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버스에 올라 다낭을 지난다. 다낭은 꽤나 현대적이고 계획적으로 개발된 도시인듯했다. 도시 근교 곳곳에서 건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베트남의 주요 무역항으로 우리나라에서 다낭으로 직항이 있다고 본 기억이 난다.



호이안과 후에는 거리상으로 멀지 않지만 산과 고원이 많은 베트남에서 편한 길은 드물다. 산 중턱 휴게소에 내리고 보니 야자나무만 제외하면 마치 강원도 어디쯤 휴게소에 온 듯한 모습이다.


도착한 후에는 춥고 축축했다. 예상치 못한 날씨에 으슬으슬 감기기운마저 돌았다. 터미널에서 예약한 숙소는 생각외로 너무 멀었고, 나쁘지 않은 시설이었지만 잠자리마저 차고 축축했다. 후에에 대한 첫인상이 나빠졌다. 첫인상이 나쁘건 말건 사진을 남길만한 마음의 여유마저도 없이 주린 배를 채울 식당을 찾아 길을 헤매고 다녔다.


여행이 길어지면서 관광객이 많은 식당에는 가지 않는고 현지인들이 많이 있으면 무조건 들어간다는 나름의 노하우로 어두운 길에 현지인들이 와글와글한 식당을 만났다. 게다가 고기 굽는 냄새가 기막혀서 안들어가고는 못배길 정도였다.




후에에서 처음 본 맥주 Festival과 훼의 전통 음식이라는 몇 가지를 시켜 놓고는 큰 기대없이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가 처음 나온 음식이 바로 위의 사진이다. '오~ 이게 뭐지?' 생각하다가 어떻게 먹는지 또 바디랭퀴지를 시도했다. 가운데 있는 소스(동남아에서 우리나라 간장처럼 쓰이는 피쉬소스 같은게 아닌가 싶다)를 숟가락으로 떠서 종지 위에 붓고 그걸 떠먹는단다.


먹어보니 소스의 짭짤한 맛과 종지 위에 놓인 것의 바삭하고 달콤한 맛에 흰색의 무언가의 쫄깃함까지... '우와, 이거 완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 올려진 것은 새우살을 말린 듯하고 아래 흰 것은 쌀을 갈아서 만든 죽같은 것을 굳힌 듯한데 독특하고 맛있었다.



다음에는 밥 위에 양념한 치킨 바베큐 한 덩어리가 올려져 나왔다. 양념치킨하고 밥을 먹는건데 이것도 먹을만하다. 소고기도 있고 돼지고기도 있지만 지역별로 가장 편차가 덜한 고기가 닭이라서 처음 시도하는 고기 음식은 대체로 닭을 시키는 편이다. 그리고, 고깃국물에 야채가 든 따끈한 갈비탕 맛의 요리가 나왔다. 오호, 이것 또한 별미다. 더구나 가격이 말할 수 없이 착하다. 얼마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렇게 잘 먹었는데 이렇게 적게 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춥고 습한 날씨에 움츠러든 여행자의 어깨가 펴지고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갑자기 후에가 좋아지려고 했다. 이래서 음식이 중요한가보다.


사진을 신경 써서 찍지 않는 내가, 더구나 다시 올 가능성도 별로 없는 식당 간판을 여러차례 찍었다. 비록 제대로 찍히진 않았지만 지금 다시 찾아가라고 해도 갈 수 있을만큼 이 식당에 대한 기억은 또렷하게 남아있다. 여행자의 도시에 대한 인상을 바꿔버린 훌륭한 음식을 내어주는 식당이었다.




세상에... 메뉴까지 찍어뒀다. 이건 경우는 여행을 통틀어서도 거의 없는 일이다. 처음 나왔던 음식은 반 베오(Bahn Beo)이고 예상대로 피쉬소스에 새우살이 올라간 후에의 전통 음식이다. 후에를 다시 가게 된다면 꼭 이 음식을 다시 먹어보고 싶다.


베트남에 무비자로 있을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후에에서는 길어야 2박 3일이었다. 그냥 숙소에서 쉬면서 보낼 수도 있지만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150여년간 응우엔 왕조의 수도였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후에를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았기에 현지 투어를 신청했다.(라오스로 넘어가는 버스까지 예약했다.) 이것은 후에의 맛있는 음식의 힘이다. 아마 제대로된 음식을 먹지 못했다면 춥고 쌀쌀한 첫인상만 가지고 라오스로 가버렸을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 음식의 힘은 생각외로 막강하다. 특히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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