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리에서 머물 수 있는 기간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이 하룻동안 얼하이 호수와 주변의 소수민족 마을을 돌아볼지, 창산 트레킹을 할지 고민하다가 어젯밤 트레킹을 하기로 결정했다. 여행 초반에 날씨가 좋지 않았기에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아침부터 쨍하게 파란하늘을 보여주었다.


따리에서 창산 트레킹을 하는 길은 크게 3가지 길이 있는 것 같았다. 첫번째는 북쪽의 중허시(中和寺, 중화사)까지 가서 트레킹하는 방법, 두번째는 중간 천룡팔부 세트장을 통해 트레킹 코스까지 가는 방법(이 길을 통해서는 케이블카로 3966미터 전망대까지 갈 수도 있는데 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지 인터넷에서 여행기를 찾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는 남쪽의 간통시(感通寺, 감통사)쪽으로 오르는 방법이다. 숙소가 북쪽 코스와 가까이 있어서 중화사까지 올라가서 트레킹을 한 다음에 감통사쪽으로 내려오기로 결정했다.



창산에서도 어김없이 중국 정부의 입장료 정책이 나를 짜증나게 했다. 숙소에서 나와 등산로 쪽으로 가니 입구(케이블카 매표소 한참 전에 따로 돈을 받고 있다.)에서 무조건 40위안을 받았다. 무슨 산에 가는데 7000원이 넘는 돈을 받는단 말인가? 


트레킹 코스로 가는 길은 모두 로프웨이가 있어서 편하게 갈 수 있지만 걸어서 오르기로 했기 때문에 로프웨이 매표소를 지나 등산로를 찾았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등산로 같은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다시 로프웨이 매표소로 가서 물어보니 매표소로 들어오기 전 입구에 작은 길이 있으니 올라가라고 했다. 겨우 길을 더듬어 올라가고 있으려니 저 앞에서 커다란 개들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등산로 표지판도 제대로 없고, 길가에는 큰 개들이 풀려 있으니 로프웨이를 타게 하려는 속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때 차라리 방향을 돌려서 얼하이 호수로 갔어야했는데 40위안이나 내고 들어온 입장료가 아까워서 그냥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 탑승료가 얼마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100위안은 가뿐히 넘었던 것 같다.



창산 트레킹 코스 안내도. 엉성하지만 미리 이걸 본다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등산로를 찾아 헤매는 사이에 단체 관광객들이 몰려버렸다. 로프웨이는 속도가 매우 느렸고, 로프웨이 간격이 멀어서 타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로프웨이를 타고 가면서 보니 산등성이에 무덤이 아주 많았다. 우리하고는 문묘 방식이 좀 달랐다.



로프웨이에서 보니 등산로를 찾을 수가 없었다. 분명 바이두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는데 제대로 된 등산로는 보이지 않고, 로프웨이를 관리하는 사람들이나 이용함직한 길만 보였다. 만약 로프웨이를 타지 않고 창산 트레킹 코스까지 가려면 중간에 있는 천룡팔부 세트장쪽으로 가는게 좋을 것 같다. 그쪽으로 갔다는 블로거는 여럿 보았는데 이쪽은 본적이 없다.


우여곡절 끝에 로프웨이를 타고 중화사에 도착했다. 그리고 도착해서야 중화사가 부처님을 모시는 불당이 아니라 도교사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중화사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따리 시내와 얼하이 호수를 구경하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아래는 하늘이 맑았는데 산중턱에 오르니 구름이 제법 끼어있어서 안타까웠다.



트레킹 코스는 듣던대로 아주 평탄했다. 잘 다져진 흙길이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블록이 깔린 길이라 아쉬웠다. 여기까지 오는데 이런저런 일들이 있어 짜증도 났지만 이제 경치를 구경하며 트레킹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 즈음, 창산은 다시 한번 뒤통수를 심하게 후려쳤다.


걷기 시작한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길이 막혀 있었고, 저 앞에서는 인부들이 길을 덮은 흙과 돌을 치우고 있었다. 며칠전에 내린 비로 작은 산사태가 나서 보수중인 것 같았다. 황당해하며 길을 치우는 인부들을 보고 있는데 나처럼 트레킹을 하러 온 서양 여행자 몇 명도 당황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중국에 온 뒤로 계속 느끼는 것이지만, 중국은 경제발전에 비해 아직은 서비스 문화나 여행자에 대한 배려가 너무나 부족했다. 트레킹 코스가 보수중이라 할 수 없는 상태라면 로프웨이나 창산 입장권 매표소에서 미리 알려줬어야 했다. 입장료는 입장료대로 다 받고 결국 이용하느냐 못하느냐는 개인의 문제라는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날씨나 여러가지 상황 때문에 목적지를 앞에 두고 돌아서야 했던적은 많지만 이렇게 무책임하게 관광지를 운영하는 나라는 처음이었다. 중국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뒤쳐진 동남아 국가들이나 남미의 국가들도 이렇게 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작은 예시일뿐이지만 다른 것들을 봐도 국가의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사람이 위주가 아니라는 느낌이다. 중국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진 않았지만 어째 여행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실망만 하게 되는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중화사가 아니라 감통사나 천룡팔부 세트장쪽으로 올라왔을 것이다. 그랬다면 적어도 절반 정도는 볼 수 있었을텐데 비싼 입장료와 로프웨이 비용을 들여 바로 내려가야하니 풀 곳도 없는 화가 나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다른 길이 있는지 바이두맵을 보니 중화사의 반대방향으로 길이 있었다. 그쪽으로 가면 한참 돌긴 하겠지만 어제 갔던 삼탑 근처 마을로 내려갈 수 있는 것 같았다. 길만 있다면 굳이 가려고 했던 곳이 아니라도 좋다는 생각으로 마음 편하게 먹고 계획하지 않은 트레킹을 시작했다.



원래 계획했던 중화사에서 감통사 방향이 아니라 반대방향었지만 길이 제법 훌륭하게 나 있었고, 산이 워낙 크니 깊은 골짜기와 수려한 산세도 볼 수 있어서 기분이 나아졌다. 아쉬움은 창산 꼭대기에 항상 구름이 걸려 있어서 산봉우리를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긴 스위스 마테호른에서도 사흘짼가 나흘째에 겨우 봉우리를 볼 수 있었는데 하루만에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것도 욕심이었다.






울창한 수풀이 내뿜는 기운을 받으며 잘 닦여진 길을 기분 좋게 걸었다. 깊은 골짜기를 구비구비 돌아 걷다보니 어느새 포장된 길은 끝나고 흙길이 나왔다. 원래 흙길을 더 좋아하는데다 상태도 나빠보이지 않아서 계속 가기로 했다. 결론적으로는 여기까지만 걷고 다시 돌아가는게 나을뻔 했지만...



절벽 바위를 파서 만든 이 길이 언제 생겼을까 궁금해졌다. 따리가 티벳과 미얀마를 잇는 교통의 요지였다더니 차마고도처럼 옛날 무역하던 사람들이 오가는 길이었을까? 적어도 트레킹을 위한 길은 아닐 것이다. 아직 중국 사람들에게 트레킹이나 캠핑은 여가를 보내는 방법으로 자리잡은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몇 년 뒤에 중국 사람들이 트레킹을 시작한다면 세계의 이름난 트레킹 코스는 이들로 메워질 것이다.


이 넓은 산에서 서양 여행자 둘, 중국 젊은이들 셋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었다.




여기까지가 흙길이어도 걷기에 좋았던 길이었다.


길이 갑자기 거친 돌길로 바뀌었다. 길은 넓어졌지만 대신에 그늘이 하나도 없이 햇빛을 그대로 받으며 걸어야했다. 게다가 양쪽으로 자란 수풀로 경치도 더 이상 볼 것이 없어졌다. 지도에서 보니 아직 길은 반이상 남아있었다.



나이가 많아보였던 흰 머리의 아르헨티나 아저씨는 혼자서 이 먼 곳을 여행하고 있다.



물은 떨어지고 햇볕에 얼굴도 뜨끈해질 무렵, 멀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착한 마을은 정확히 어제 삼탑을 보러 가느라 지나갔던 그 마을이었다. 숙소에 도착해 스마트폰으로 걸은 거리를 보니 25킬로미터가 넘어있었다. 중화사에서 감통사까지는 평탄하고 거리도 얼마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은 일로 배가 넘는 거리를 걸었다.



늦은 점심으로 프렌차이즈 식당에서 먹은 음식. 때깔은 좋았지만 맛은 없었다.


맛집을 찾아다닐 기력도, 의욕도 없었다. 푸드코드에서 만두와 양꼬치와 이것저것을 사서 들고 숙소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당시에는 여행자를 고려하지 못한 창산 관리직원들에 대한 분노와 준비도 없이 거친 돌길을 걷느라 힘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지만, 시간은 고생은 잊게 만들고 좋았던 생각만 남게 만든다. 호도협 트레킹을 하기전에 준비운동도 되었고, 걸으면서 본 창산의 풍경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기도 귀찮아서 어제 갔던 푸드코트에 다시 가니 날마다 양꼬치를 사러 오는 한국인을 이제 알아보고 웃어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잃는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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