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번 여행의 주요 목적지 중 하나인 리장으로 가는 날이 되었다. 늘상 그렇듯이 따리를 떠나는 날이 되자 머물렀던 며칠 중에 가장 좋은 날씨가 되었고, 창산은 구름을 얹지않은 꼭대기를 비로소 보여주었다. 리장으로 가는 버스를 점심시간이 지나서 탈 예정이라 꾸청 내에 있는 백족의 전통음식 파는 곳을 찾아갔다.
白家砂锅이라는 이 음식점은 여행자들에게 꽤나 알려진 곳인지 인터넷에서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었지만 정작 위치를 상세히 알려준 곳은 없어서 찾기가 힘들었다. 洋人街에서 동쪽(얼하이 호수쪽)으로 조금만 가다보면 오른편에 있었다. 이곳에서 파는 백족의 전통음식은 砂锅饭(shāguōfàn 돌솥 밥)과 砂锅米线 (shāguōmǐxiàn 돌솥 쌀국수)이다.
뚝배기 같은 그릇에 밥이나 국수를 내어주는 것도 재밌지만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이들이 기본찬으로 김치와 아주 유사한 것들을 준다는 점이다. 소금이나 고춧가루에 버무려 발효시켰다는 점에서도 김치와 거의 비슷하다. 이렇게 세상에는 음식문화가 비슷한 경우가 꽤나 많고, 음식이란건 누구나 만들어서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만든 김치만 김치이고, 일본인이 만든 '기무치'는 김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습다. 이탈리아 사람이 한국에서 만든 파스타는 파스타가 아니라고 하면 우습지 않을까?
다진고기와 고춧가루, 야채등이 뜨거운 뚝배기 밥위에 올려진 砂锅饭(shāguōfàn)
오늘도 거리에는 많은 간이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며칠동안 같이 놀았던 '따리', 오늘도 야무지게 물고 있다.
쿤밍에서 따리로 올때 탓던 버스보다 상태가 훨씬 양호했다. 다만, 맨 뒷좌석이라는게...
나중에 더친에서 샹그릴라로 돌아올 때도 그랬지만 어째서 버스를 타면 절반은 맨 뒷좌석에 걸리는지 이해가 안된다.
구글맵에서는 따리에서 리장까지 200km쯤 되고, 자동차로 3시간 걸린다고 나오지만 버스로 4시간 가까운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리장에서 묵을 숙소는 리장꾸청 안에 있는 '심우각'이라는 곳이다. 비수기여서 쉽게 숙소를 잡을 수 있을 줄 알고 리장으로 가기 전날에야 연락을 했더니 한국인이 운영하거나 한국어가 가능한 숙소는 이미 만실이라고 했다.
꾸청 밖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꾸청 가까운 곳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쿤밍과 따리에서는 2위안이었던 버스비가 리장으로 오니 1원으로 바뀌었다. (중국에서는 바이두앱을 이용하면 정말 편하게 여행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네이버나 다음앱과 제공하는 기능이 거의 비슷해서 지도뿐만 아니라,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시내버스와 노선도 제공한다.)
리장 시외버스터미널
시내버스 정류장에 서 있으니 멀리 옥룡설산이 보였다.
리장꾸청으로 들어가는 길은 여러 곳인데, 따리꾸청처럼 성벽이 높게 둘러쳐있어서 성문을 통해 드나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리장꾸청에 들어가려면 문화재보호비 명목으로 입장권을 사야한다. 보름동안 유효한 이 입장권은 자그마치 80위안이나 한다. 꾸청내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내야하는 비용이고, 숙소가 꾸청내에 있으면 들락날락 할때 마다 입장권을 확인하므로 반드시 가지고 다녀야 한다. 중국정부가 여행자들로부터 걷어들이는 입장료들이 너무 과하다보니 여행지로서의 매력이 상당히 반감되었다. (게다가 이 입장료들은 해마다 오르고 있다.)
리장꾸청 남서쪽으로 들어가는 입구
한국외대에서 중국어 강사를 하셨다는 조선족 아주머니와 나시족 아저씨가 운영하는 심우각
꾸청 외곽에 있어서 숙박료가 싸진 않지만 시설이 깨끗하고 주인내외가 친절했다.
젊은 배낭여행자보다는 나이대가 있는 분들이 주고객인 것 같다.
서둘러 짐을 풀고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리장꾸청 구경에 나섰다. 태국 까오산, 라오스 방비엥처럼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으로 꼽히는 곳, 옥룡설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흐르는 수로와 옛 가옥들이 골목골목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 오랫동안 그려왔던 그 리장에 왔으니 잠시라도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래된 돌길과 낡은 목조가옥은 생각했던 그대로지만 어째 식당과 숙소가 전부였다.
좀 더 당겨서 찍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이런 생각 때문에 자꾸 카메라에 돈을 들이게 되나보다.
맑은 물이 흐르는 오래된 수로... 하지만 주위는 모두 레스토랑
골목골목을 돌아 리장꾸청 중심가로 나오니 이건... 모두 기념품점, 상가뿐이다.
리장꾸청 전체가 거대한 쇼핑몰일뿐 내가 상상했던 리장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적잖게 당황스럽고 실망스러웠다. 상점들만 있는 거리가 보기싫어 윗부분만 찍었다.
오래전에 들었던 리장은 사람들의 노랫소리와 소탈한 웃음소리가 들리고, 친절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사는, 물가마저 저렴한 그런 곳이었는데 너무나 유명해진 나머지 살던 사람들은 이미 이곳에서 살 수 없게 되어버렸다. 엄청나게 올라버린 임대료와 많은 자본을 가지고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한 수단만 이곳에 남게 되었다.
꾸청내 건물의 임대료가 상상하기 어려울만큼 많이 오른데에는 중국내 타지방에서 들어온 거대자본들이 꾸청내에서 커다란 레스토랑이나 술집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였다고 한다. 리장꾸청 내 번화가인 스팡지에(四方街)에는 밤이면 커다란 클럽들에서 울려나오는 음악들로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나이트클럽이 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리장꾸청 안에 있어야 하는지, 어째서 그런 유흥시설들이 꾸청 안에서 허가를 받을 수 있는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리장꾸청을 보호하지도 못한 중국정부가 왜 여행자들에게는 문화재 보호명목의 비싼 입장료는 왜 받고 있는지 화가 났다. 이래저래 며칠동안 화만 내고 있었다.
실망감으로 어찌나 입맛이 씁쓸한지 길거리에서 산 커다란 만두에서도 쓴맛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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