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고대해왔던 리장이었기에 그려왔던 모습과 달랐다고 한순간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비록 사람이 살지않는 커다란 쇼핑몰처럼 변해버렸지만 옛모습의 한 단면이라도 볼 수 있을까 싶어서 날이 밝자마자 아직 정적에 잠긴 숙소를 살그머니 빠져나왔다.


하늘은 밝아졌지만 아직 골목 깊숙한 곳까지는 햇빛이 닫기 전 어두운 골목길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이들은 리장꾸청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장사를 준비하기 위해 출근하는 점원들로 보였다.


몇 년전까지만해도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인사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들렸을 골목길은 이제 어젯밤 늦게까지 영업을 하고 문을 닫은 상가들로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차나 수레가 다닐 수 없을만큼 좁은 골목길로 인부가 무거운 짐을 져서 나르고 있다. 리장꾸청의 골목길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수로들 사이로 난 골목들을 연상하게 했다. 방향을 대충 정하고 골목골목을 누비다보면 어느새 넓은 광장이 나오거나 아니면 길이 막혀 있었다. 뭔가를 반드시 봐야겠다는 목표나 급한 일정이 아니라면 이런 골목을 아무 생각없이 걸어보는 것이 이런 곳에서 느껴볼 수 있는 재미 중 하나다.


얼룩덜룩한 무늬의 고양이도 방금 하루를 시작했는지 밤새 차가워진 몸을 햇볕에 녹이고 있다. 약 2400미터의 고지대인 리장은 10월임에도 밤낮의 기온차이가 제법 심했다. 낮에는 고지대 특유의 자외선을 듬뿍 담은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이지만 밤에는 전기장판없이는 잠을 이루기 어려울 정도로 기온이 내려갔다.


리장꾸청의 스팡지에(四方街)다. 밤에는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수많은 사람들, 호객하는 점원들로 넘치던 곳이 아침에는 고색창연한 건물이 젊잖은 모습을 드러낸다. 이런 곳에 나이트클럽이라니 기가찬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느낌의 골목길이 아니다. 집들마다 닫혀있는 문이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는 의미다. 모두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상가일뿐이다. 아침을 먹기 위해 여행책자에서 강력하게 추천했던 국수집을 찾았다. 분명히 지도에 나와있는 길을 여러 번 왕복하고, 그러다못해 주위 다른 길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리장 제일'이라던 그 국수집을 찾지 못했다. 근처에 문을 연 가게라고는 하나도 없었기에 국수집이 없어지지 않았다면 찾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했던 간판도 없던 국수집은 주머니 가벼운 배낭 여행자들에게까지 소문이 났고, 고향으로 돌아간 배낭 여행자들이 퍼뜨린 리장의 아름다움은 이곳을 유명한 여행지로 만들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유명한 여행지가 되면서 올라버린 부동산 임대료는 이 곳을 유명하게 만든 여행지로서의 매력을 빼앗아가버렸다. 여행책자마다, 이곳을 다녀간 배낭여행자마다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간판도 없는 국수집은 이제 리장꾸청에 없다.(물론 다른 곳으로 옮겼거나, 내가 찾아간 이 날은 사정으로 문을 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맛보지 못한 국수에 울분이 쌓였는지 없어져버린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맑은 물이 흐르는 수로, 그 사이로 핀 알록달록한 꽃들과 오래되어 보이는 가옥들은 분명 아름다워 보인다. 사람들은 쉴새없이 자신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고, 드레스까지 차려입은 여자들은 마치 화보라도 찍는 듯 자세를 고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보기에는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매력적이진 않았다. 정말로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한 밀랍인형을 보는 듯했다.



날이 완전히 밝고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찾지못한 국수집의 대타를 찾아야 시간이 되었다. 골목을 돌아 발길가는대로 걷다보니 현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작은 국수집을 찾았다. 대충 적당한 가격의 국수를 아무거나 시켜서 받아들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청경채와 쇠고기가 올라간 국수는 생각보다 맛있었다. 자극적이지 않고 슴슴한 맛이 윈난에 온 이후로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나니 기분이 나아졌다.




이층으로는 아무도 오지 않아서 혼자 앉아 국수를 먹었다.


젊은 남녀가 하던 이 국수집을 돌아들어가면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식당이 몇 군데 더 있었다.


리장꾸청 정문


왜 소원을 쓰고, 자물쇠를 달고, 매달아 놓는지 이해는 안되지만 장사는 참 잘될 것 같아서 부럽다.


꾸청으로 들어가는 정문에는 리장꾸청이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리는 상징물이 한쪽 벽면에 커다랗게 세워져 있다. 리장꾸청이 세계문화유산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 돈을 버는 것보다 보존하고 유지하는데 신경을 써 주었으면 좋겠다.



리장꾸청으로 들어오는 이 물길을 따라 올라가면 흑룡담 공원으로 통한다. 이 날 오후에 흑룡담 공원에 갔다가 물길을 따라 걸어내려오니 꾸청 정문으로 통했다. 꾸청 안에서 볼 때는 옥룡설산에서 내려온다는 이 물이 참 깨끗해보였는데 흑룡담 공원에서 보니 지저분한 물이었다. 


새벽 리장의 정취는 고즈넉하고 아름다워서 좋아할 사람도 분명히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마음이 삐뚤어진데다 이미 잃어버린 옛모습에 마음이 삐친 사람들은 문을 열기 전 적막한 놀이동산 같은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헛헛한 마음을 안고 삐친 마음을 달래볼 욕심으로 수허구전(
束河古鎮, 속하고진)으로 가는 시내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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