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왕세자와 고 다이애나 비의 신혼여행지로 널리 알려진 카프리 섬은 유럽에서도 유명한 휴양지이다. 소렌토나 나폴리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기 때문에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했다. 며칠 머물면서 돌아보면 더욱 좋겠지만 산토리니에서 느낀 고급 휴양지에 대한 실망을 여기서도 느끼기 싫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풍광만 보고 오기로 했다.


카프리로 가는 배를 타기 전 소렌토 항구. 어제보다 파도가 높고 흰 물견이 더 많이 보이는 듯했다.


드디어 소렌토 항을 떠나고 있다. 다행히 물결이 잔잔하다.


얼마나 갔을까 카프리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다 가운데 갑자기 솟은 바위산이 이색적이다.

로마시대에 나폴리 근처 봄베이에서 인류 역사상 손에 꼽을 커다란 화산 폭발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카프리 섬도 화산 폭발로 인한 용암이 굳어져 형성되었다고 한다.



카프리 항에 다가가니 여기가 왜 옛날부터 유명한 휴양지였는지 알만하다.


카프리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 2가지가 있다. 하나는 푸른 동굴로 알려진 바다 절벽에 형성된 동굴인데 이 동굴 안에서 보이는 바닷물이 정말 아름다운 짙은 파란색이라서 카프리 블루라는 색까지 생겼다. 몇 년전 여행 프로에서 보고 카프리에 간다면 꼭 저길 가보겠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목적 하나를 달성하기 직전이었다. 두번째는 곤돌라를 타고 카프리 산에 올라가 내려다 보는 경치다. 먼저 푸른 동굴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을 찾으러 가다가 카프리의 아름다운 경치에 한참 넋놓고 바라보았다.




카프리 항에서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서 먼저 카프리 전역으로 버스들이 다니는, 서울로 치면 환승센터 같은 곳으로 갔다. 거기서 푸른 동굴(GROTTA AZZURRA)로 가는 푯말을 찾아서 버스를 기다렸다. 기다리고 있는데 신혼부부인듯한 중국인 커플이 푸른 동굴에 가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기들도 거기에 가는데 오늘이 만조라 동굴안으로 물이 차는 시기인데다 파도가 높아 오늘 투어를 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몇 년을 기다려온 목표가 눈앞에 있는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인가. 여튼 버스를 기다렸다가 운전사에게 물으니 정말 그렇다고 했다.


잠깐 허탈함에 정신이 빠져 있었다. 하지만 여행 4개월째, 맘대로 안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걸 이미 여러 번 체험한 터라 이번 여행에서는 인연이 없는 곳인가보다 하고 포기했다. 두번째 목표였던 곤돌라를 타고 산 전망대로 가기로 했다.


곤돌라가 좀 부실해 보인다. 게다가 산 윗부분에서는 경사도 꽤 가파르다.

놀이기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밌을 것 같다.



서서히 카프리 시내가 내 눈높이보다 낮아지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바다와 하늘이 비슷하게 짙푸르다. 

수평선이 없다면 어디가 바다고 하늘인지 구분이 잘 안될 정도로 비슷하게 푸르렀다.


산꼭대기에 가까워지자 경사가 제법 가팔라졌다. 사진에서는 영 경사가 안느껴지지만.



산꼭대기 전망대에서 아득한 절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물빛이 신비롭다. 작은 요트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었다.



산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카프리 섬은 아름다웠다. 깎은 듯한 절벽과 푸른 숲, 코발트 빛 바다가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산토리니보다 카프리의 경치가 훨씬 훌륭했다. 이 풍광을 보면서 멋진 레스토랑에서 우아한 점심식사를 한 것이 아니라, 풍광이 내려다 보이는 나무 그늘에 앉아 마트에서 산 재료들로 숙소에서 싼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었다. 이때부터였을까, 물가가 비싸거나 트래킹 등으로 점심을 먹기 어려운 여행지에서는 자주 샌드위치를 만들어 다녔다. 그리고 점점 샌드위치 싸는 실력이 좋아졌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멍하니 풍광을 바라보다 버스를 타고 해변으로 갔다. 하지만 사람들이 붐비는 해변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사방이 절벽이라 모래사장이 있기 어려운 섬이기 때문에 해변은 무척이나 좁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어 물도 탁했다. 게다가 커다란 새의 사체마저 둥실 떠다녔다. 하지만 경치는 무척 좋았고, 햇살은 살을 익힐듯이 내리쪼였기 때문에 레스토랑에서 맥주 한병을 시켜놓고 망중한을 즐겼다.






떠날 시간이 되어 카프리 항구로 다시 내려왔다. 겨우 반나절 조금 넘는 시간을 머물렀을뿐이라 평가하기에는 마땅치 않지만 적어도 카프리의 경치만큼은 지중해 어느 곳보다 훌륭했던 것 같다. 물론 이런 곳의 특성상 숙박비와 체류비는 산토리니와 버금가게 비쌀테지만 경치만큼은 산토리니보다 맘에 들었다. 신혼여행객들이 아니더라도 소렌토나 나폴리를 방문한 여행자라면 하루정도 시간을 내어 다녀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만, 나처럼 푸른 동굴을 못보더라도 그건 다시 오라는 뜻이니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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