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토루아는 뉴질랜드 북섬의 중앙 윗쪽에 위치한 여러 개의 호수로 이루어진 곳이다. 이곳은 뉴질랜드의 토착민인 마오리족들의 문화가 잘 남아있는 곳이며, 특히 와카레와레와(Whakarewarewa)라는 지열지구가 있어서 포후투 간헐천을 비롯해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 외에도 호수나 그 주변 산악지대, 계곡에서 여러가지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데 수상스키, 산악자전거, 스카이다이빙, 래프팅, 번지점프 등을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수상스키와 산악자전거는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릴만큼 유명하다고 한다. (위키참조)


여러가지 액티비티를 할 수는 있는 것은 좋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스카이다이빙은 다이빙을 시작하는 고도에 따라서 가격이 달라지고, 자신의 다이빙을 동영상으로 남기기 위해서는 가격이 더 높아진다. (동영상으로 남기기 위해서는 가이드 외에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다이빙을 해야하기 때문에) 한번 스카이다이빙이나 번지점프를 하는데 3,40만원쯤은 거뜬히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기여행자들이 스카이다이빙을 동구권이나 남미에서 하는 이유는 가격 때문이다. 그나마 가장 저렴한 액티비티인 래프팅을 예약하고 숙소를 나섰다. 래프팅이라도 뉴질랜드니까 훨씬 흥미진진할거라는 기대를 잔뜩하고서...


한적한 로토루아 시내. 이곳이 로토루아의 가장 중심지역이다.



숙소에서 멀지않은 로토루아 호수로 걸었다. 호숫물이 맑고 깨끗한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호숫가에 고니와 오리들이 느긋하게 떠있어서 한적한 느낌을 더해주고 있었다. 찍은 사진을 보고 있으니 독일 퓌센지방에서 자전거를 타고 갔던 그 호수와 경치가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이를 찾아 물밑으로 머리를 쳐박은 새끼 고니. 녀석의 퉁퉁한 궁뎅이를 토닥토닥해주고 싶은 기분이다.


뉴질랜드의 여름은 한국에 비해 비가 자주 내리는 것은 같지만 훨씬 덜 덥고, 흐렸다.




호숫가에서 오전 반나절을 보내고 오후에는 숙소로 마중 온 여행사 버스를 타고 래프팅을 하러 갔다. 여행사에서 이런저런 주의사항과 설명을 듣고 다시 차를 타고 상류로 향했다. 그날 예약한 사람들을 고무보트 2대에 나눠 태우고 래프팅을 시작했다.


한마디로 래프팅은 시시했다. 거리도 워낙 짧아서 조금 저어서 가다 멈추고 한참 이야기로 시간을 때우기를 여러차례 했다. 래프팅이라기보다는 그냥 물살을 타고 천천히 흘러가는 수준이었다. 래프팅 같았던 곳은 단 두 곳이었는데 그 중에 한 곳은 수미터 정도되는 작은 폭포여서 내려가다 결국 배가 뒤집어졌다. 하지만 폭포 밑으로는 급류가 아니라 물살이 아주 느린 곳이어서 배가 뒤집어지며 아래로 들어가더라도 그냥 밑으로 나오면 된다. 귀가 아프게 주의사항을 들었던 것 치고는 무척 시시했다.


안전에 대해 주의하는 것은 얼마나 자주 하건 충분히 중요한 일이고, 우리 주위에서는 그런 것에 소홀하는 바람에 종종 큰 인명사고가 생기기도 한다. 뉴질랜드 사람들의 안전에 대한 생각은 무척 바람직했지만 그것도 뭔가 그럴만한 것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 호숫가에서 오리보트를 타는데 주의사항을 30분 넘게 들어야 한다면 타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거다. (영어를 빨리빨리 알아듣지 못한다고 구박을 먹어서인지 이 래프팅은 별로 기억이 좋지 않다.)


아주 오래전, 아마도 2000년대 초반에 동강으로 래프팅을 갔던 적이 있다.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래프팅이 새로운 레저로 한참 뜨던 시기라 동강에 수없이 많은 고무보트가 띄워지던 시기였다. 그때 단 한번 래프팅을 했었는데 마침 전날 비가 좀 내린 뒤여서 물이 많고 물살도 제법 빨랐다. 그때와 로토루아에서 했던 래프팅을 비교하라면 전자가 훨씬 래프팅답다. 뉴질랜드에서 할 수 있는 수많은 액티비티가 있지만 래프팅은 좀 아닌 것 같다.


래프팅을 마치고 여행사로 돌아오니 날씨가 개었다.


여행사 주변으로 수국이 마치 들꽃처럼 피어있었다.





지나가다 우연히 한국음식점을 발견하고 먹은 오징어덮밥. 딱히 맛있진 않지만 그래도 고추장맛을 보는게 어딘가.

오클랜드를 떠나 처음 찾은 곳은 버스로 3시간 가량 떨어진 와이토모라는 곳이다. 와이토모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뉴질랜드의 독특한 버스 시스템부터 남겨두어야겠다. 사실 뉴질랜드에 다른 나라들처럼 시외 혹은 고속버스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사를 통해 뉴질랜드 전지역을 다니는 몇몇 회사의 버스들을 이용한다. 그것도 출발지와 목적지만 정해서 예매할 수도 있지만 여행하는 지역과 체류기간, 경로를 꼼꼼하게 따져서 다양한  판매 프로그램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면 체류기간이 15일내로 뉴질랜드 북섬의 주요 도시들을 다닐 수 있으며 이동거리는 몇 킬로미터로 제한되는 프로그램, 30일내로 남북섬을 모두 다닐 수 있으며 이동거리는 몇 킬로미터인 프로그램 등등이다. 이런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이유는 가격이 훨씬, 비교하는게 무의미할 정도로 가격이 싸기 때문인데, 이런 프로그램을 이용하려면 사전에 뉴질랜드에서 여행할 장소와 경로를 결정해야하기에 맘내키는대로 다니는 여행자들에겐 좀 골치아픈 일이다. 게다가 이런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버스회사가 여러 곳인데다 가격과 프로그램 세부내역이 조금씩 달라서 더 그랬다. 내가 선택한 회사는  ManaBus.com Ltd 라는 회사의 nakedbus였다. 서비스 수준은 다른 곳보다 낮을지 모르지만 가격이 비교적 저렴했다.


nakedbus는 뉴질랜드 버스회사 중에 작은 편이라 그런지, 아니면 다른 버스회사도 다 그런지 모르겠지만 도시가 좀 떨어져있으면 한번에 가는 경우가 없었다. 이 날도 오클랜드에서 해밀턴으로 가서 거기서 기다렸다가 와이토모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총 세 시간이 넘게 지난 후에야 와이토모 여행자센터 앞에 내렸다.


와이토모 지역은 서울시 면적의 5배가 넘는데도 인구는 만명 정도에 불과한 그야말로 한적한 곳이다. 그런 곳이다보니 여행자센터 근처로 보이는 것은 레스토랑 몇 개와 여행사를 제외하고는 온통 수풀과 초원뿐이었다. 이런 와이토모가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이유는 이 지역의 석회암 동굴에서만 사는 글로우웜(glowworm) 때문이다. 글로우웜은 개똥벌레의 일종이라는데 애벌레 기간동안에는 동굴 천장에 붙어서 끈끈하고 빛이 나는 거미줄 같은 것을 내려 먹이활동을 한다고 한다. 몇 마리인지 알 수 없는 수많은 글로우웜이 동굴천장에 붙어서 빛을 낸다.


여행자센터에 있었던 글로우웜과 와이토모 동굴에 대한 사진. 글로우웜이 내린 수많은 줄이 빛나고 있다.


글로우웜에 대한 설명은 위 사진으로...


와이토모 동굴은 배를 타고 지나가면서 글로우웜을 보는 것이라 들었는데 여행자센터 옆에서 예약한 여행사에서는 두터운 다이빙수트로 갈아입고 헬멧까지 쓰게 했다.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과 약간 꼴사나운 복장에 검은색 튜브까지 들고 차를 타고 간 뒤에 풀밭을 한참 걸어서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배를 타고 하는 투어와 튜브와 다이빙수트를 입고 캐녀닝을 하는 투어가 따로 있는건 아니었을까...)


수풀 사이로 동굴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이런 복장이다. 민망한 복장이지만 안전만큼은 잘 챙기는 것 같다.


아쉽게도 글로우웜이 있는 동굴에서 사진 촬영은 허락되지 않았다. 글로우웜이 워낙 빛에 민감해서 어둠속에서만 빛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들의 생태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목적인 것 같기도 하다. 까짓 사진이야 전문가들이 찍은 훨씬 멋진 사진들이 인터넷에 널렸으니 오랫동안 보호되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다면 내 사진 몇 장 남기지 못하는게 대수일까. 뉴질랜드 관광청에 있는 사진 몇 장을 올린다. 분명히 이야기하지만 아래의 글로우웜 사진의 출처는 뉴질랜드 관광청이다.





하지만 아무리 잘 찍은 사진이라도 직접 가서 보는 것보다 나을 수는 없다. 가이드의 안내로 들어간 동굴에서 간단한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가이드가 라이트를 껐다. 그때까지 아무것도 없던 동굴이 새카맣게 되면서 천장에 글로우웜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별들이 나타났다. 더구나 동굴 전체를 고르게 덮고 있는게 아니라 동굴 아래로 난 물길을 따라 구불구불한 모양이어서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를 보는 듯했다.


갑작스럽게 펼쳐진 황홀경에 '오', '아', '와' 하는 탄성외에 모두들 할 말을 잃었다. 튜브에 드러누워 동굴을 흐르는 물 위에 떠서 동굴 천장만 처다보는데도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그동안 많은 곳을 다니며 감탄이 나오는 멋진 풍광을 봐왔지만 와이토모 동굴의 은하수는 이와는 다른 인상적인 광경이었다.


튜브와 다이빙수트를 이용한 글로우웜 투어를 마치고 오늘의 목적지인 로토루아 버스를 기다렸지만 이 버스는 오후 늦게야 도착한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점심을 먹고 여행자센터 주위를 배회하며 시간을 보내야했다. 다른 여행자들도 여행자센터 앞에 배낭을 배고 눕거나 기대고 하릴없이 버스를 기다렸다.


피자의 토핑이... 조개와 홍합, 마요네즈. 해산물 피자라기에는 좀... 그래도 배가 고프니 가릴게 없다.


여름이 한창일 때지만 뉴질랜드의 여름은 우리나라의 봄날씨 정도밖에 안된다. 비가 자주 오고 흐린 날도 많았다.


여행자센터 주변 건물들. 이제 전부다.


뉴질랜드에는 텔레토비들이 뛰쳐나올 것 같은 풀로 덮인 둥그런 언덕들이 참 많았다.


동굴투어를 했던 여행사. 

가이드를 은퇴한 백발의 할아버지는 여행사를 지키고 아들과 손자가 가이드를 하고 있다. 무척 유쾌하고 유머스러웠던, 뉴질랜드에서 가장 인상적인 분.


뉴질랜드 여행은 렌트카나 캠핑을 좋아한다면 caravan을 이용하는게 좋을 것 같다.




여행자센터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배낭여행자들


뉴질랜드에서 많은 도움을 받은 곳은 iSITE라는 도시 곳곳에 있는 여행자센터다. 보통 여행자센터라면 맵과 간단한 여행정보만을 받을 수 있는 것과는 달리 각종 티켓 예매나 자세하고 다양한 여행정보들이 잘 구비되어 있고 근무하는 사람들도 친절했다.


오후 늦게 탄 버스가 로토루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대부분 가게들이 문을 닫은 상황에서 겨우 저녁거리를 샀다. 그리고 마침 그 가게에 먹거리를 사러 온 여행자의 도움으로 어두운 밤거리를 걸어 예약한 호스텔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한 일이라고는 와이토모 동굴투어밖에 없는데 꽤나 피곤한 하루로 기억에 남아있다.


뉴질랜드 남섬을 포기하니 하루정도는 오클랜드에서 더 보내도 될만큼 시간이 넉넉해졌다. 오늘은 걸어다니며 오클랜드 시내구경을 할 계획이었다. 걸으면서 구경하는 것의 장점은 많이 볼 수 없는 대신에 자세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빡빡하게 짜여진 스케줄대로 여행한 사람들에게 느긋하게 가고 싶은대로 다니며 보는 즐거움을 꼭 느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른 아침 한산한 오클랜드의 거리... 보다는 고장난 카메라 탓에 초점이 맞지 않은게 아깝다.


걷다보니 언덕배기에 자그마한 공원이 나왔다. 공원자체도 아기자기하고 예뻤지만 거기 있는 크고 기괴하게 생긴 나무 몇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이 나무는 키는 그다지 크지 않았는데 가지들이 주로 옆으로 뻗어나와 마치 SF영화에 나오는 괴물처럼 보였다. 사람이 없는 공원의 괴물같이 생긴 나무 밑 벤치에 앉아서 아침인지 간식인지를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위에서 부스럭하는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다.



놀라서 올려다 본 나무 위에는 사람의 다리와 이런저런 천이나 옷가지들이 보였다. 이 기괴하게 생긴 나무는 오클랜드 노숙자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잠시 놀라긴 했지만 이 나무의 괴상한 모양과 거기에 핀 붉은 꽃이 묘하게 어우러져 인상깊게 남아있다.




온통 담쟁이 덩굴로 뒤덮인 건물이 멋있었다.


발길은 자연스럽게 앨버트 파크로 향했다. 오클랜드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지만 인구가 얼마되지 않기 때문에 도시 곳곳에 커다란 공원들이 정말 많았다. 그 중에서 앨버트 파크는 규모가 크진 않지만 도시 중심부에 있고 스카이 타워와 가까워서 찾아가기 쉬웠다.





예쁘게 보이려고 가꿔진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관리되는 듯해서,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푯말과 함께 골프장처럼 관리된 잔디밭이 아니라 누구나 들어가 드러누울 수 있는 잔디밭이어서 좋았다. 하긴 서울에 있는 공원 잔디밭에 들어가도 좋다고하면 잔디든 풀이든 남아나질 않는다. 서울시청 앞 광장이 그렇듯이. 뉴질랜드처럼 관리하기에는 우리나라 인구가 너무 많은게 문제다.


오클랜드의 랜드마크, 스카이 타워로 가는길.



스카이 타워에는 이를 이용한 여러가지 액티비티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탑 상층부에 빙 둘러진 원형 길을 따라 걷는 '스카이 워크'와 탑 위에서 번지점프하듯 뛰어내리는 '스카이 점프'다. 그 중에서 '스카이 점프'는 뛰어내리는 사람의 비명과 함께 지상에 가까워질 때 속도를 줄이기 위해 나는 소리 때문에 아래에서 보는 사람도 아찔하게 만든다. 물론 이 두가지 모두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안그래도 높은 곳을 싫어하는데 돈까지 두둑하게 지불하고 극한을 경험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다른 대륙과 멀리 떨어진 뉴질랜드지만 오클랜드 시내에는 세계 각지의 여러 인종들이 보였다. 당연히 백인이 가장 많지만 인도, 중동, 동남아에서 온 듯한 사람들도 많다. 그 중에서 의아했던 것은 동북아에서 온 듯한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는 것이다. 커피숍에 들어가도 여기저기서 한국말과 중국말이 들렸다. 대부분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사람들이었는데 섣부른 짐작으로는 어학연수를 온 사람들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어학연수를 온 같은 국가의 사람들이 워낙 많다보니 수업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의 대부분을 영어를 쓰지 않고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어학연수의 목적은 그 언어권의 문화를 배운다는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그 언어를 쓰는 시간이 늘어남으로서 더 빠르게 습득하려는 것일텐데 오클랜드는 전혀 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환경이었다. (그 뒤에 갔던 시드니는 더 좋지 않았다.)




이 날 저녁도 타이 음식점의 해산물 스프와 찰밥으로 해결했다. 꼭 먹어봐야 할 뉴질랜드 음식이 떠오르지 않을뿐더러 오클랜드를 떠나면 먹기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뉴질랜드 북섬 여행을 시작한다.

12월 중순 여행의 마지막 방문지 오세아니아로 향했다. 태평양을 건너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가야는 길은 무척이나 멀었고 멕시코시티에서 뉴질랜드로 가는 직항편도 없었다. 멕시코시티에서 미국 LA로 가서 오클랜드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야 했는데 비행기 탑승시간만 20시간에 달했다. 장거리 비행끝에 이른 새벽 뉴질랜드의 가장 큰 도시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몸도 마음도 완전히 지쳐있었다.


입국장 출입문부터 여기가 뉴질랜드임을 알리려는 듯 마오리족의 문화를 표현하고 있다.


공항버스에서 내려 시내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를 깔깔한 입속으로 밀어넣고 예약한 호스텔에 짐을 내렸다. 예약한 곳은 뉴질랜드와 호주 전역에 있는 커다란 호스텔 체인이었는데 지금까지 머물렀던 개인이 하는 소박한 호스텔이 아니라 마치 대학교의 커다란 기숙사 같아서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멕시코에 비해 뉴질랜드의 물가가 훨씬 높다보니 가격도 만만치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실망스러웠던 것은 여행자들의 분위기였다.


배낭여행자들이 많은 곳일수록 여행자들간 단정짓기 어려운 동질감과 전우애 비슷한 것이 느껴진다. 서로에게 친절하고 정보를 교환하거나 돕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런데 이 호스텔에 묵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 백인여행자들로 처음보는 사람은 스윽 한번 보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단지 나이가 제법 든 허름한 동양인 배낭여행자를 경계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엊그제까지 있던 곳과 너무나 다른 분위기가 적잖게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괜히 멕시코가 그리워졌다. 소매치기를 당하고 경찰서까지 다녀와야했던 그 멕시코가.


여행 막바지에 이르러 카메라는 이제 한계에 달했던 것 같다. 맑은 날씨에도 촛점이 맞지 않은 사진이 점점 많아졌다.


면적은 우리나라의 2.7배이면서도 인구는 10분의 1도 되지 않는 뉴질랜드는 북섬과 남섬으로 나뉘어지는데 큰 도시들은 대부분 북섬에 위치해있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인 오클랜드는 북섬의 북쪽에 있고, 수도인 웰링턴도 북섬의 남쪽에 있다. 뉴질랜드에 머무르는 동안 어떤 경로로 여행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가고싶은대로 다니기에는 여행시간이 얼마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행 스타일이나 기호로 보면 일정이 빡빡하더라도 산과 호수, 빙하로 덮인 남섬으로 내려가야 했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찾아 본 뉴질랜드 남섬의 경치와 트레킹 코스들은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안데스와 파타고니아에서 이런 류의 경치는 눈이 호강할만큼 했으니 뉴질랜드에서는 보름동안 북섬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뉴질랜드는 워낙 요트인구가 많고 강국이기도 해서 세계 대회에서 우승한 배의 모형을 길가에 전시해놓고 있었다. 흡사 요트가 아니라 우주선이나 비행선처럼 생겼다.


여행사에서 버스를 예매하고 시내를 돌아다니다 해양박물관에 들어가게 되었다. 정확하게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뉴질랜드 근해에 사는 물고기들의 표본부터 초기 이민자들이 타고 왔던 배들의 모형, 바다에서 살아가는 뉴질랜드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여러가지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특이했던 것은 추가로 돈을 내면 요트를 타고 근처 바다를 한바퀴 돌아보고 오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언제 요트를 타고겠는가 싶어서 이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최다 초점이 맞지 않다. '장기여행에서 카메라는 튼튼하고 좋은 것으로' 라는 교훈을 얻었다.


요트 뒤로 보이는 크루즈 모양의 커다란 건물은 모두 고급 호텔이나 리조트였다.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요트는 유선형의 잘빠진 배가 아니라 오래된 목조선박이었다. 흰색 상의와 검은색 하의를 맞춰입은 사람들이 돛을 내리고 키를 조정했는데 모두가 나이가 꽤 많이 들어보였다. 과거에 무슨 일을 했던 사람들인지 모르겠지만 요트를 좋아하기 때문에 은퇴해서도 요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나이가 들어가는 이들의 삶이 꽤 부러웠다.



그리 높은 건물이 없음에도 바다에서 보는 오클랜드의 도심은 볼만했다. 


얼마전 서울시에 재개발되는 아파트 층수를 35층에서 훨씬 높게 올려달라는 요구가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재개발과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고층 아파트를 많이 지어서 멋진 스카이라인을 만들면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유럽의 도시들 중에 멋진 스카이라인을 가진 도시가 있을까? 고층건물이 늘어선 뉴욕, 홍콩, 싱가폴, 상해 등등으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단지 스카이라인을 보러 가는 것일까? 여행을 가는 가장 큰 이유는 그 도시와 국가 안에 녹아있는 문화를 보고 느끼러 가는 것이다. 우리나라 관광객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과 일본사람들이 자기네 나라에 훨씬 더 많은 고층건물을 두고 우리나라에 보러 온다고? 게다가 단지 아파트 건물일뿐인데? 타워팰리스나 삼성동 아이파트를 보러 가는 관광객이 있던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이 분은 얼핏봐도 노인에 가까워 보인다. 그래도 돛줄을 당기는 팔뚝이 젊은이 못지않다.





바다는 조용해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가끔 바람에 돛이 펄럭이는 소리와 뱃전에 물살이 부딪히는 소리, 목조요트가 삐걱대는 소리뿐이었다. 거대한 엔진이 달린 멋들어진 요트가 아니라서,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낡은 목조요트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사람들도 이것을 느끼고 있는듯 모두 조용히 입을 닫고 있었다.



오클랜드를 상징하는 건축물인 높이 328미터의 스카이 타워가 우뚝 솟아있다.



액티비티의 천국 뉴질랜드답게 거대한 교각에서 번지점프를 하고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어떤 액티비티라도 할 수 있다. 돈만 충분하다면...




수십년동안 요트를 몰아왔을 이들은 노인들임에도 아직 늘씬한 체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젊게 사는 방법은 주름제거 크림과 보톡스가 아니라 나이를 과시하지 않는 마음과 꾸준한 운동이다. 주름은 경험과 경력의 훈장일뿐...



한시간 가량 요트 탑승을 마치고 박물관 관람을 시작했다.


뉴질랜드 이민자가 가져온 오래된 트렁크. 수납공간이 잘 나눠진게 생각보다 훌륭하다.



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요트. 


백악기 때부터 대륙에서 떨어진 뉴질랜드는 독특한 생태계를 가지고 있어서 이를 상징하는 동식물들이 많다. 사람들이 이주한 뒤로 많은 동식물들이 멸종되었다고 하는데 뉴질랜드의 국조인 키위새도 마찬가지로 점차 감소하고 있다. 특히 뉴질랜드에는 뱀이 없고 수풀 곳곳에 커다란 양치식물들을 볼 수 있는데 뉴질랜드를 상징하는 마크중에 하나가 위 사진에서 요트 옆면에 그려진 양치식물을 형상화한 것이다. 


SF영화의 비행선을 보는 듯한 요트


지구 반바퀴를 돌아 유럽과 뉴질랜드 사이를 다녔던 배의 모형


박물관을 나와서 찾아간 곳은 수산시장이다. 시장구경은 세계 어느 곳이나 재밌지만 수산물로 유명한 뉴질랜드니 더욱 기대가 되었다. 예상대로 다양하거 커다란 수산물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다만 가격 또한 만만치 않다는 것이 아쉬울뿐...



연어, 다랑어, 돔(?) 류의 커다란 생선들이 가득하다. 워낙 큰 종류의 물고기가 많이 잡혀서 그런지 자잘한 생선들은 보기 힘들다.


바닷가재들... 우리나라에 비해서는 저렴한 편이지만 배낭여행자가 선뜻 사기에는 어려운 가격이라 입맛만 다셨다.


넌 누구냐?



남미에서도 그랬는데 커다란 생선에서 살을 발라내고 남은 머리나 뼈 부분은 아주 싸게 판다. 큰 생선을 마리 단위로 사는 사람이 많이 않으니 살만 발라서 무게 단위로 잘라 팔기 때문에 이런 부속물(?)들이 많이 남는 것이다. 그런데 부속물에도 살이 제법 붙어 있어서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요리가 가능할 정도다. 특히 매운탕류를 끓이기에는 아주 좋을 것 같다.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곳을 찾았다. 숙소 근처에 타이 음식점을 발견한 것이다. 당연히 태국에서 먹는 것보다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비싸지만 뉴질랜드의 다른 음식들보다 비싼 편은 아니었다. 여행을 가면 현지 음식을 먹는 편이지만 뉴질랜드처럼 역사가 짧고 다국적 문화가 섞인 곳에서는 그 곳만의 특색있는 음식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많지 않다.


쏨땀. 파파야가 아니라 당근으로 만든건 아쉽지만 파파야로 만들었다면 가격이 무척 비싸질테니 이해할 수 있다.


스티키 라이스. 제대로 대나무 바구니(?)에 담겨 나왔다.


태국 음식하면 빠뜨릴 수 없는 파타이.

뉴질랜드에서 첫번째 날을 보냈다. 한여름은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된 계절임에도 오클랜드의 기온은 서늘했다. 하지만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영어와 흰 피부의 사람들, 깨끗하게 정돈된 거리가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넉달동안 스페인어를 배경음악처럼 듣고 다니며 나와 비슷하게 까무잡잡한 사람들을 보고 다녀서 거기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되었다. 익숙해져버린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그곳에 남겨두고 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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