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밍에서 300여 km가 떨어져있는 따리는 쿤밍 서부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대여섯시간쯤 가야 도착한다. 어제의 동부버스터미널과 마찬가지로 서부버스터미널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그나마 버스비는 생각보다 높은 중국물가에 비해 낮은 편이었다. 그리고, 3,4개 정도로 버스비가 나뉘어 있는데 좋은 등급일거라고 생각하고 조금 비싼 가격을 주고 탄 버스도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그것으로 봐서는 버스 등급보다는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별로 차이가 나는게 아닐까 싶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버스였는데 내가 탄 좌석 에어콘 송풍구가 덕지덕지 바른 테이프로 막혀 있었다. 아마 부서진 송풍구를 수리하지 않고 대충 막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시트도 깨끗한 편이고 버스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중국사람들이 버스 안에서 음식물을 좀 덜 먹으면 훨씬 쾌적할텐데... (이 버스를 타고 있으니 동남아를 여행하면서 탓던 많은 버스들, 그 중에서 캄보디아 시엠립에서 프놈펜으로 가던 버스가 생각났다. 부서진 에어콘 송풍구로 비포장도로의 먼지가 들어와 버스안이 온통 뿌옇던... 그땐 정말 고역이었는데 지금은 그 시간마저 그립다.)


문득 다른쪽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니 사이드미러가 부서져 덜렁거리는 채로 운행되는 버스가 보인다.


오늘도 날씨는 좋지 않아서 잔뜩 구름낀 날씨에 가끔 비가 흩뿌렸다. 여행전에 확인한 일기예보에 윈난의 날씨가 안좋을거라 했지만 이렇게나 잘 맞을 줄은 몰랐다. 버스는 10월 중순임에도 짙푸른 녹음 사이로 난 도로를 부지런히 내달렸다. 



한참 가다보니 처마 밑 벽에 동그란 무늬가 그려진 집들이 계속해서 나왔다. 그 무늬는 집마다, 마을마다 조금씩 달랐다. 소수민족들이 그들의 거주지임을 나타내는 표시일까... 왜 그려놓은 건지 궁금했는데 결국 모른채 여행을 마쳤다.


두세시간쯤 달리고나서 버스는 휴게소에 멈췄다. 중국의 장거리 버스는 쉬는 시간을 보통 20분 이상으로 넉넉하게 줬다. 버스 안에서 이미 뭔가를 먹고 있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휴게소에서 내려 또 음식을 사 먹었다. 중국사람들의 음식사랑은 세계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 것 같다.





휴게소는 깔끔했고 투명한 유리 건너편으로 보이는 조리대도 깨끗했다. 휴게소 음식들이 어디나 그렇듯이 간단한 음식임에도 가격은 일반 식당에 못지 않았다. 게다가 위생은 중국에서 쉽게 보기 힘들만큼 나무랄때 없었지만 고른 음식들은 영 맛이 없었다. 윈난에 와서 자꾸만 음식선택에 실패했다. 윈난음식이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인지, 내가 고른 음식이 맛이 없는 것인지... 지금껏 여행다니면서 맛없는 음식이 별로 없었는데...



쿤밍에서 출발한 버스가 도착하는 곳은 여행자들이 목적지로하는 따리꾸청(古城)이 아니다. 따리시는 커다란 얼하이(洱海)이 호수를 빙둘러 도시와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데,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이 있는 따리의 신시가는 호수의 남쪽에 있고 따리꾸청은 얼하이 호수 왼편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리꾸청은 버스터미널에서 약 15km 정도 떨어져있어서 택시를 타거나 버스를 타야한다. (얼하이 호수는 꽤 커서 중국에서 7번째 큰 담수호라고 한다.)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택시기사와 흥정했지만 가격을 너무 세게 불렀다. 80위안쯤 부른 것으로 기억하는데 15km에 그 정도 가격이면 서울 택시비보다 더 높으니 도저히 탈 수가 없었다. 택시기사들은 꾸청으로 가는 여행자들을 쉽게 태울 수 있는지 절대 그 이하로 깎아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결국 세계여행때 사용했던 커다란 배낭을 매고 한참 걸어서 시내버스를 탓다.


꾸청 근처에서 시내버스를 내리고 보니 예약한 숙소와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배도 출출한데 근처에 아주머니가 뭔가를 구워 팔길래 구경하다가 하나 사먹었다. 뭘로 만든 반죽인지 모르겠지만 묽은 반죽을 구워서 계란과 상추 같은 야채, 바나나, 여러가지 소스를 넣어서 만 것이었다.(태국이나 라오스에도 비슷한 것이 있는데 여기서 파는 것과 조금 다르다.) 배고픈 와중에 뜨끈한 것이 들어가니 꽤 맛있었다.





한참을 걸어서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꾸청 안에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조용하고 깔끔한게 나쁘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꾸청 안 건물 임대료가 너무 오른나머지 꾸청 밖 현지인들이 사는 지역에 숙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따리는 한국인들에게 인기있는 여행코스는 아니지만, 중국인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중국내 여행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것 같았다. 윈난은 중국내에서 외진 지역임에도 어딜 가더라도 다른 성에서 온 중국인들로 인산인해였다.)



숙소에 대충 짐을 풀고 어두워지기 전에 따리꾸청 구경에 나섰다. 따리 꾸청은 동서남북으로 커다란 문이 있는데 숙소가 서쪽 창산문(蒼山門) 근처에 있어서 따리에 머무는 동안 이 문을 통해 꾸청을 드나들었다. 창산문인 이유는 이 문을 마주보고 해발 4122미터의 띠엔창산(蒼山, 점창산)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점창산을 보통 줄여서 창산이라 부른다.)


어렸을 때, 김용이라는 분이 쓴 영웅문, 소호강호, 천룡팔부 같은 소설을 통해 처음 무협소설에 빠지게 되었다. 그 소설들을 통해 접한 대리국이 서기 937년부터 원나라에 멸망하기 전까지 약 300년 간 윈난지방에 있었던 실제 국가라는 것을, 소설들에 정파지만 조금은 야비하거나 악역으로 나오는 점창파의 본거지가 따리에 있는 점창산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성문 앞 여행안내소에 있는 지도. 여행안내소에서 근무하는 직원도 단순한 영어조차 통하지 않았다.


창산문 앞에서 과일을 파는 아저씨. 옷차림만 바뀌면 천년 전 따리에 온 듯하다.



따리꾸청은 생각보다 커서 절반쯤은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나 술집, 상가들었지만 나머지 절반에는 현지인들이 아직도 살아가고 있었다. 따리꾸청의 가장 번화한 거리는 동서남북 사대문이 이어지는 사거리에서부터 우화로우(五华楼, 오화루)를 지나 남문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다른 길은 사람들이 없어 한산한데 그 길 주위는 밤낮없이 사람들로 넘쳐난다.


따리에서의 첫 끼니는 중심가에 있는 맥도널드에서 서쪽으로 조금 올라가다 왼편에 보이는 작은 식당에서 먹었다. 이곳은 한국여행자들에게도 유명한지 인터넷이나 책자에도 빠짐없이 나와 있었지만, 따리에 머무는 동안 이곳에 여러 번 갔어도 한국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이제 여행지로서 따리의 인기는 시들해졌나보다.



처음가면 불친절한 듯하지만 낯이 익으면 반겨주던 아주머니. 중국사람들의 특징인가보다.

어떤 사람들은 처음 봐도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일본사람, 

처음엔 너무 불친절하지만 친해지면 아낌없이 나눠주는 중국사람이라고 표현을 했었다.


쿤밍에서는 주로 국수를 먹었기에 따리에서는 쿤밍에서 먹지 못했던 볶음밥과 훈둔(물만두국하고 비슷)을 시켰다. 단지 계란과 야채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한 볶음밥이지만 기름기가 코팅된 풀풀 날리는 쌀알에 불맛까지 더해져서 맛이 무척 좋았다. 간장으로 간을 한 뜨끈한 훈둔과 같이 먹으니 쌀쌀한 윈난 날씨에 움추러들었던 어깨까지 펴지는 것 같았다.




창산에서 내려와 얼하이 호수로 들어가는 시냇물이 따리꾸청 곳곳을 흐른다. 집을 짓거나 묘자리를 쓸 때 배산임수가 가장 좋은 형태라던데 따리는 성 자체가 전형적인 배산임수였다. 옛날에는 이 물로 밥을 짓고 빨래를 했겠지만 지금은 여행자에게 예전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는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따리(리장도 마찬가지였지만)에서 가장 이해가 안되는 것은 꾸청내에 왜 젬베를 파는 곳이 그렇게나 많은가 하는 것이다. 길 곳곳에 젬베를 파는 가게가 있고, 어김없이 젊은 여인들이 젬베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노래도 모두 비슷비슷한 노래라서 여행을 마칠 때쯤에는 그 노래가 나오면 따라 흥얼거릴 정도로 귀에 익어버렸다. 중국 전통악기 중에 젬베와 비슷한 악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가게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가끔 젬베를 배우거나 가격을 문의하는 여행자가 보이기도 했지만 장사가 썩 잘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언젠가 누군가가 처음 차린 가게가 잘 되었겠지, 그리고 너도나도 그 가게를 차리고 나니 수요보다 공급이 월등히 많아지는 바람에 이젠 빼도박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 아닐까. 밤이 늦도록 젬베를 치며 노래 부르는 여인의 월급이 밀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지나가다 작은 식당들이 빙 둘러진 푸드코트를 보고 들어갔다. 처음에는 푸드코트에 뭐 맛있는게 있을까, 구경이나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양한 음식들에 현혹되어서 늦은 점심 식사를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저녁거리를 여기서 사버렸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 중국에서는 맥도널드 같은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도, 이런 푸드코드에서도 자기가 먹은 것을 치우지 않는다. 먹다가 테이블에 두고 가면 종업원이 지나가며 다 치운다. 그래도 부지런히 치우는 덕분인지 지저분하진 않았다.


오른쪽은 매미, 왼쪽은 전갈튀김이다. 하지만 산 것은 커다란 가지구이와 양꼬치.


푸드코트에서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오화루라는 누각이 나온다. 꾸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며 처마가 위로 치켜올라간 전형적인 중국 누각이다.





창산에서 꾸청으로 물이 흘러드는 곳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무리봐도 사진을 찍을만한 풍경도 아닌데 왜 그런건지 알 수 없었다.


대장부의 포스~


오화루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남문이 나온다.


이 누런 금빛 엿을 파는 곳이 꽤 많았다. 엿을 만드는 방법도 우리나라와 거의 흡사하다.


꾸청 안쪽에서 본 남문


꾸청 밖에서 본 남문


꾸청 안 티베티안 바에서 맥주 한잔. 왔으면 지역 맥주 정도는 마셔주는게 기본.

사려는 사람은 없고 구경하는 사람만 많다. 젬베를 연주하는 아가씨가 예쁘면 더욱 많다.


해가 지니 따리는 금새 어두워졌다. 중심가에는 그나마 불빛이 많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불빛이 별로 없으니 하늘이 새까맸다. 서울은 빛공해가 심해서 아무리 늦은 밤이라도 까만 하늘을 볼 수가 없다. 날이 흐려서 별이 보이지 않는건 아쉽지만 새까만 하늘조차 반가웠다. 이런 하늘을 본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창산문을 지나 다시 숙소로...


창산문 밖으로 창산과 천룡팔부 세트장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쿤밍시내에는 볼거리가 많지 않았지만, 주위에는 시산산림공원, 윈난민속촌, 주샹동굴(구향동굴), 뤄핑, 토림 등등 이름난 관광지가 여러 곳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흔히 석림이라고 불리는 불리는 윈난스린이다. 상세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 떠난 여행이기에 일단 석림을 보고 쿤밍에 더 있을지 결정하기로 했다.(일주일이 넘는 여행이라면 굳이 계획을 상세히 세울 필요가 없다. 그 계획에 발목이 잡혀 머물고 싶은 곳에 더 머물지 못하고 떠나야 하거나, 현지에서 일어나는 일로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경우에는 여행을 망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석림에 가려면 쿤밍 동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야한다. 숙소에서 나와보니 어제 나름 좋았던 날씨는 어디가고 다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안그래도 중국의 교통체증은 유명한데 비까지 내리니 시내버스를 타면 생각보다 늦어질 것 같아서 터미널까지 택시로 가기로 했다. 중국발음으로 더듬더듬 목적지를 말하고 올라타니 바로 핸들을 꺾어 불법유턴을 했다. 아무리 각오를 하고 있더라도 가끔 섬뜩하게 만든다.


택시, 불법유턴 중... ('한국에서 들어온 첨단 미용기술'이라는 간판이 재미있다.)


시내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 있는 동부시외버스터미널은 꽤나 크게 지어져있었다. 그럼에도 터미널 안에는 이른 아침부터 중국 각지로 가려는 사람들로 매우 붐볐다. 쿤밍에는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버스터미널이 있다는데 이 정도로 큰 터미널들이 모두 붐빈다는 말은 윈난성이 중국에서 변방에 속하는 성임에도 이동하는 인구와 물자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새삼 놀라웠다.



쿤밍 동부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 지하철. 공항에서 이곳까지만 개통되어 있었다.


두어시간 달린 후, 버스는 석림에 있는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매표소까지 걸어서 이동한 뒤에, 표를 사고 다시 셔틀로 다니는 전동차를 타고 석림입구까지 가야한다. 어째서 석림 앞까지 버스가 다니지 않는지, 매표소와 입구는 왜 떨어뜨려 놓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뒤 여행하면서 거친 대부분의 관광지들이 모두 이런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매표소에서 입구까지도 셔틀을 운행해서 수익을 내겠다는 얄팍한 상술인 것 같았다. 게다가 입장료도 무척이나 비싸서 한화로 3,4만원에 가까운 돈을 내야했다. (중국은 입장료를 해마다 올리고 있다. 그들의 물가가 매년 높은 수준으로 오르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친 수준이다. 그렇기에 여행책자에 나온 정보는 전혀 의미없다. 그나마 인터넷으로 찾은 그 해의 여행정보가 신뢰할만하다.)


쌩뚱맞게 입구와 떨어뜨려 지어놓은 매표소


이곳에서 셔틀을 타고 가야한다.


시도때도 없이 다니는 셔틀. 하지만 이 셔틀을 모는 드라이버가 보행자를 신경쓰지 않으니 조심해야한다.


석림 입구




세계문화유산이자 세계지질공원이라고 홍보하면서 자연석에 함부로 새긴 저 글자들은 뭐하자는거지?


어제 쿤밍 시내에서는 한국 관광객들을 전혀 볼 수 없었는데 석림에 오니 장년의 단체 관광객들이 매우 많았다. 이곳이 한국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중국 관광지 중 한 곳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대석림이 시작된다.

윈난성 어느 관광지를 가더라도 위의 사진처럼 소수민족 전통복장을 빌려주는 곳이 있다.

그만큼 윈난성이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겠지만 윈난성 전체 인구의 2/3는 한족이라는데 

관광지마다 있는 소수민족들이 정말 그런지 좀 믿기 어렵다.


어이, 좀 나와달라구





바위에 글자를 이렇게 파놓는 건 자연훼손이잖아



못된 사람이 지나가면 떨어진다는 바위



석림은 석회암이 녹아서 형성된 카르스트 지형이다. 이 일대가 석회암지대라 구향동굴과 같은 석회암 동굴도 많다.


기기묘묘하게 풍화된 바위들의 연속


'검봉'이라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잘린 검의 모양이라는건가?


꼬불꼬불한 길을 오르락내리락 해야한다. 어떤 길은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만큼 좁은 곳도 있다.


길은 다니기 편하도록 잘 닦여 있었다. 너무 손을 많이 댄 것은 아닌가 싶을만큼 사람의 발길이 닿는 석림 곳곳에 보도블럭을 말끔하게 깔아놓았다. 영겁의 세월동안 풍화되어 온 바위의 풍경과 사람이 짧은 시간에 만들어 놓은 길이 묘하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코끼리 바위. 세계에서 코끼리 바위라고 이름붙은 곳은 많지만 이 바위가 가장 비슷할 것 같다.



좁고 가파른 길도 제법 있다.



'돌 감옥'이랬던가?


봉황이 부리로 자기 몸을 쪼고 있는 모습이란다. 봉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반대편에서 보면 새처럼 보이긴 한다.



발길 닫는대로 석림 사이를 걷다가 어느새 전망대로 나왔다. 전망대에는 사람들이 무척 많아서 난간 가까이 자리를 잡으려면 기다려야 했다. 날씨도 좋지않은데 이 정도라면 성수기에 날씨 좋은 날에는 그야말로 사람들로 미어터질지도 모르겠다.

 

전망대에서 보니 과연 석림이라 부를만하다.





날씨가 맑았더라면...


대석림을 빠짐없이 다 훑고 다닌 것은 아니지만 두어시간 동안 보고 나왔다. 처음에는 기기묘묘한 바위의 모습과 풍광에 매료되기도 했는데 계속 반복되다보니 점차 무뎌졌다. 게다가 아쉽게도 석림의 규모가 크고 방대하진 않아서 광활한 모습까지는 느낄 수 없었다. 대석림을 나오면 소석림으로 이어져 있는데, 소석림은 대석림처럼 석림사이를 다니며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서 멀찍이서 보면 끝이다.








석림에서 쿤밍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다시 동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시내로 들어왔다. 쿤밍의 시내버스는 우리나라 버스보다 훨씬 크고 길었다. 내부도 깔끔하고 깨끗해서 여느 나라의 버스 못지않았다. 택시도 몇 년전 출장 때 탔던 것보다 훨씬 깨끗하고 깔끔했다. 중국의 발전은 높은 마천루와 휘황한 거리가 아니라 이런 곳에서 느낄 수 있다. 



'중국 전역이 공사중'이라는 말처럼 쿤밍의 외곽에도 수많은 건물이 지어지면서 도시가 확장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학교 앞이었다.

학부모들이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자식들을 데리러 나온 것이었는데, 

자식에게 모든 기대와 투자를 올인하는 모습이 우리네 모습과 겹쳐져서 씁쓸하게 느껴졌다.


점심은 석림을 걷다가 가져간 빵과 우유로 간단히 때웠기에 저녁은 제대로 된 윈난 쌀국수를 먹으러 갔다. 윈난의 쌀국수는 베트남이나 태국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면 종류도 여럿이긴 하지만 대표적인 면은 우동처럼 굵었다. 부드러운 촉감은 좋지만 쫄깃한 끈기가 없어서 뚝뚝 끊어지는 것이 아쉬웠다.


인터넷에서 찾은 쿤밍의 유명 국수집. 시내에 몇 군데 있는 듯.


매콤 짭짤한 양념장에 비벼서 먹는 차가운 국수


뜨거운 닭육수에 여러가지 고기와 야채, 면을 넣고 먹는 국수. 닭칼국수 맛과 비슷했다.

넣는 고기와 해물의 종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사진은 그나마 저렴한 것.


보기엔 쫄깃해 보이는 면발이 뚝뚝 끊어지는게 참 아쉽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봤던 여행기나 책자에는 동남아의 쌀국수보다 윈난의 국수가 맛있다는 말이 많아서 꽤나 기대하고 있었다. 윈난의 국수도 맛있긴 했지만 내 입맛에는 베트남이나 태국 국수가 나은 것 같다. 우선은 가격부터 차이가 많이 난다.


늦은 점심겸 저녁을 먹고 들어가다가 만두집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작은 가게지만 현지인들이 계속 들락날락 하는게 근처에서 꽤 인기있는 집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소룡포가 홍콩에서 먹어 본 고급스러운 맛은 아니지만 꽤 맛있었다. 

가격이 몇 분의 일 밖에 안되는데 같은 맛을 기대하는 것은 염치없는 생각이다.



석림은 중국 정부에서 정한 별 다섯개의 풍경구이고 매우 유명한 관광지지만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중국정부는 관광지를 그들이 정한 별의 개수로 나타내는데, 별 다섯개짜리 풍경구는 가장 가치있고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준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이번 여행을 하며 본 별 5개짜리 풍경구는 모두 썩 맘에 들진 않았다.) 지질학적으로 매우 가치있는 곳이겠지만 내가 본 석림은 단지 많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손을 많이 댄, 입장료가 비싼 관광지 이상은 아니었다.


가장 유명한 석림에서 좋은 느낌을 받지 못했으니 쿤밍 주위의 다른 여행지들도 그다지 끌리지 않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보니 구향동굴도 알록달록한 조명을 잔뜩 깔아놓은 종유동굴 이상의 느낌은 없을 것 같았고, 민속촌이나 시산산림공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토림(방파푸토림이나 원모토림)은 가보고 싶었지만 개발된지 얼마되지 않아서 교통편이 무척 불편하고 숙박시설도 많지 않았다. 적어도 1박 2일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길지 않은 여행이라 그 정도의 시간을 들여 볼 가치가 있을까 싶었다. (토림과 약간은 느낌이 비슷한 터키 괴레메나 칠레 아타까마를 비교하면 규모나 경치가 아무래도 부족하다는 느낌도 지우지 못했다. 토림을 사진으로만 본 개인적인 생각이니 참고만 하시기 바란다.) 소위 빵차라고 불리는 빠오처(현지 운전사가 모는 차를 빌려서 다니는)를 이용하면 하루만에 다녀올 수도 있지만 비용이 매우 비싸다.


결국, 쿤밍에서의 여행은 이틀로 접고 따리(大理)로 가기로 했다. 제갈량이 정벌했던 남만(쿤밍)에서 어렸을 때 봤던 김용의 무협소설 천룡팔부에 나오는 대리국으로...



세계여행을 정리하다 마무리를 짓지않고, 10월달에 다녀온 중국여행부터 정리하려고 한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마친지 한달이 넘어가다보니 슬슬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왕 늦어진 세계여행은 조금 더 미뤄두고 잊기 전에 중국여행을 정리하려고 한다. 그리고, 얼마남지않은 세계여행 정리를 마무리하게 되면 조금은 헛헛한 기분이 들 것 같아서이기도 하다.


......


살다보면 뜻대로 되지않는 일투성이다. 세계여행 후, 마지막이었으면 하고 입사한 회사에서 2년 조금 넘는 시간을 근무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여기서 더는 할 일이 없음을 깨달았을 때, 회사를 그만두었다. 어떤 선배들은 기다리다보면 기회가 온다는 조언을 하시기도 했지만, 마흔이 넘은 나이에 마냥 기다리는 것도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무엇이 더 나았을지 정답은 없고, 알 수도 없다.


회사를 그만 두려고 마음 먹고 나니, 탈탈 털면 3주 정도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고심끝에 선택한 여행지가 중국 윈난(雲南)성이었다. 


위난성을 여행지로 선택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수 년 전 읽었던 여행 책에서 리장이 배낭여행자의 천국으로 그려지고 있었다는 점, 둘째는 세계 3대 트레킹 코스라는 후타오샤(호도협)가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셋째는 영국작가 제임스 힐튼의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이상향으로 그려지는 샹그릴라(라고 중국정부가 지정해버린 것이지만)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라면 한국에서 바로 윈난성 리장이나 샹그릴라로 가야겠지만 문제는 직항이 없었다. 그래서, 인천에서 직항이 있는 쿤밍으로 가서 따리-리장-호도협-샹그릴라-매리설산 순으로 코스를 잡았다.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리장이나 샹그릴라로 가려면 쿤밍보다는 먼저 베이징이나 상하이로 가서 로컬 항공기로 갈아타고 가면 된다.)


윈난성은 남쪽으로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쓰촨성, 서북쪽으로는 티벳자치구와도 접경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거대한 히말라야 산맥의 오른쪽 끝자락이기도 하다. 구름의 남쪽(雲南)이라니 이름조차 서정적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처음으로 탄 중국 동방항공. 기내식이 좀 부실했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카메라를 하나 장만했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썼던 카메라는 성능도 떨어지는 데다가 언제 고장나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낡았기 때문이다. 트레킹을 할때 DSLR이나 미러리스는 부담이 될터라 주머니에 쏙 넣을 수 있는 작은 크기지만 성능은 괜찮은 수준급 카메라가 대상이었다. 몇몇 카메라를 리스트에 올려놓고 고민하다 선택한 것이 SONY RX100M3 였다. 후속기종까지 나왔지만 동영상이나 특별한 몇몇 기능을 제외하고는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구형이지만 저렴한 모델로 구매했다. 아쉬웠다면 면세점에서 이런저런 할인과 쿠폰을 적용해 사다보니 한번 만져보지도 못하고 바로 여행을 떠나야했다는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쿤밍으로 가는 비행기는 오후 늦게 출발해서 다섯시간쯤 걸려 쿤밍에 도착했다. 쿤밍 공항에 지하철이 있지만 아직 완공되지 않아서 쿤밍시내까지 가진 않았다. 시내로 가는 버스도 변변치 않아서 택시를 탓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조금 멀다싶긴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쿤밍의 택시비는 절대 저렴하지 않았다. 중국 물가가 생각보다 비쌀거라는 충고가 벌써 와 닿았다.



밤 11시가 다 된 시간이라 저녁이나 먹을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다행히 숙소가 시내 중심가에 있어서 조금 걸어나오니 24시간하는 패스트푸드 점들이 보였다. 햄버거 세트의 가격은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없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저렴한 음식이 어째 한국에서는 일반 음식과 가격차이가 없고 중국에서는 되려 비싼 음식이 되어버린다.


볼품은 없지만 맛은 나쁘지 않았다. 단점이라면 밤이라 그런지 야채가 시들시들.


도착하기 전, 쿤밍은 '꽃의 도시'라고까지 불리는 사시사철 온화하고 따뜻한 곳이라고 들었다. 위도상으로는 열대기후에 가까워야 하지만 고도가 1890미터라 그런 것이다. 그러나, 쿤밍에 머물렀던 며칠 간 아침저녁으로 꽤나 쌀쌀한 날씨가 계속되었고 맑은 날씨보다는 흐리거나 비가 흩뿌리는 날씨가 더 많았다. 한국의 10월 초중순보다 오히려 추웠다.



전날 도착했을 때는 비가 내렸는지 도시가 젖어 있었는데 다음날 숙소에서 나오니 다행히 하늘이 개어있었다. 숙소에서 조금 내려오면 '정의'라 쓰여진 현판이 걸린 큰 문이 있었다. 그 문을 등지고 남북으로 나있는 길에는 쇼핑센터나 상가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마도 서울 명동과 비슷한 상업중심지역인 것 같았다.


중국에 처음 온 여행자가 여기서 길을 건널 땐 대부분 난감한 상황에 처한다. 중국에 몇 번 출장 다닌 경험이 있지만, 항상 처음 며칠은 당황스러웠다. 몇 년 사이에 차와 스쿠터(특히 소리도 나지 않는 전기스쿠터는 꽤 위험했다.)는 크게 늘어난 반면, 사람들의 교통의식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아서 점점 더 주의해야 할 일만 많아지는 것 같았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건널목에서 보행자 신호가 켜졌다고 안심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보행자 신호가 켜지면 건널목으로 들어오는 차들의 숫자와 속도가 좀 줄어들 뿐이다. 그리고, 길을 건널때는 좌회전, 우회전, 직진하는 차들 모두를 신경써야 한다는 것이다. 사방에서 차들이 차선과 신호를 무시하고 들어오니 한국에서 익숙해진대로 한쪽에서 오는 차들만 주의하면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해질때까지 며칠은 길을 건널 때는 무조건 현지인들을 좌우에 두고 속도를 맞춰 후다닥 건너는게 상책이다.



상점들이 늘어선 거리는 명품 브랜드들이 즐비한 거리는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중국인들의 애플 선호가 한눈에 띌 정도로 애플 관련 매장이 많았다는 것(애플 매장, 로컬 스마트폰 브랜드 매장, 다음이 삼성 매장이었다. 중국에서 삼성의 브랜드 파워가 약화되고 있다는게 절실히 느껴졌다.), 중국의 로컬 스포츠 브랜드가 다양하고, 매장이 무척 많다는 것(중국인들의 경제수준이 올라가다보니 레저에도 관심이 많아지는 것 같았다.)이었다.


영업을 시작하기 전에 모두 모여서 체조(혹은 댄스)를 하거나 주의사항을 전달받는 듯한 모습이 흔히 보였다.

하긴, 우리나라 회사에서 체조를 하거나 사가(社哥)를 부르지 않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아침이라 거리가 한산했다.



스타벅스 커피가 무척 비쌌다. 비싸다는 우리나라보다 더 비쌌다. 그 돈을 내고는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윈난은 중국의 성들 중에서 소수민족이 가장 많은 곳이라고 한다. 중국 정부에서 공인한 56개 소수민족 중에서 25개 민족이 윈난에 있다고 한다. 쿤밍에도 일부 소수민족들은 아침마다 공원에 모여서 전통복장을 하고 춤이나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다.


모인 사람들은 모두 노인들이었다. 이들의 전통도 국가라는 커다란 용광로에 차츰 녹아 없어지고 있는 듯하다.


태극권을 수련하는 사람들. 힙합모자를 쓰고 태극권이라...


아침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다가 한 식당에 현지인들이 제법 많길래 들어갔다. 한데, 이들은 국수 하나에도 올리는 고명에 따라 종류를 수십가지로 나눠놓았다. 그리고, 주문을 받는 사람도,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중국어 외에는 아주 기본적인 영어 단어도 통하지 않았다. 손짓발짓에 눈치까지 섞어 겨우 주문을 마쳤다. 맛은...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톡 쏘는 향신료와 뚝뚝 끊어지는 쌀국수 면발은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보기엔 참 얼큰해 보였는데...



국수가 맛있지는 않았지만 어지간하면 음식을 남기지 않는 입맛 덕분에 한그릇을 다 먹었다. 그런데도 배가 차지 않아서 그나마 아는 음식으로 샤오롱바오를 하나 더 시켰다. 그런데 나온 것은 만두안에 육즙이 차 있는 샤오롱바오가 아니라 그냥 찐빵에 약간의 고기소가 들어간 음식이었다. 투덜대면서도 다 먹었다. 모든걸 뱃속으로 넘길 수 있는 이 입맛 덕분에 여행이 덜 힘들어진다.


현지인들은 제법 많았는데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아무래도 윈난의 음식은 내 입맛에는 맞지 않나보다.


여행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는 것이다. 걸으면서 생각지 못한 것을 볼 수도 있고, 현지인들의 삶을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걸으면서 하는 여행의 단점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쩌다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꽃의 도시라더니 역시 꽃이나 화분을 파는 곳들이 많았다.



윈난 여행을 하면서 까만물에 삶아지고 있는 계란이나 메추리알을 자주 봤다. 혹시 병아리라도 나올까봐 시도는 하지못했다.



천천히 구경하며 걷다보니 쿤밍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인 완통시(원통사)에 도착했다. 볼게 많지는 않지만 중국 관광지의 입장료가 너무나 비싸다보니 원통사처럼 저렴하게 볼 수 있는 곳은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가 봐야한다.



원통사는 세워진지 천년이 넘는 아주 오래된 사찰이었다. 하지만, 지금 볼 수 있는 건물은 대부분 근대에 다시 지어지거나 복원된 건물이다.








새로 산 카메라의 아웃포커싱 성능 테스트도 해보고... 

똑딱이 카메라 치고는 아주 훌륭한 성능이다. 다만, 가격이 똑딱이가 아니라는게 문제.




원통사의 연못에는 수많은 거북이들이 햇볕이 쬐고 있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생태계에 문제가 되고 있는 붉은귀 거북인 것 같았다. 이 거북들은 아마 절을 찾는 신자들이 방생을 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복을 받기 위해서 그랬겠지만 시장에서 거북이를 사다가 방생하는 것과 복을 받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을 텐데.



징그럽게 많았다. 그리고, 애완용인 붉은 귀 거북이 이렇게나 크게 자라는 줄 몰랐다.






원통사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취후(취호)공원으로 갔다. 비취색 호수의 공원이라는 뜻인 것같은데 영어식으로는 Green Lake Park였다. 물빛이 진한 녹색인게 영어식 이름이 적당한 듯 싶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차림새도 그렇고 표정도 넉넉해 보인다.


연꽃이 만개하면 보기에 좋을텐데...




호수 안쪽에는 섬이 있는데 동서남북 네 개의 다리로 건너갈 수 있다. 섬 안에 뭔가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고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에게 먹거리를 팔거나 여행자들을 위한 간단한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이 있었다.




취호공원은 볼거리가 풍부한, 반드시 가봐야 하는 곳은 아니다. 쿤밍시민들이 산책하고 가볍게 나들이하는 공원일 뿐이지만 시간이 있다면 쿤밍 사람들의 나들이에 동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취호공원 남쪽 입구로 나오니 할아버지가 커다란 붓을 들고 글씨를 쓰고 있었다. 먼저 쓴 글자들이 희미하게 말라서 없어지는게 물로 쓰는 것이었다. 한문도, 서예도 모르지만 할아버지가 쓴 글이 제법 멋있게 보였다. 저 커다란 붓으로 흔들림없이 글을 쓰려면 다리와 허리가 꽤 튼튼해야 할 것 같은데 쉬지않고 글을 쓰는 할아버지의 체력도 놀라웠다. 할아버지는 글을 쓰면서 서예만 아니라 체력과 정신도 함께 달련하시는 것 같다.



막대기와 페트병으로 만든 붓.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고, 명장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


다시 걸어서 윈난 대학교 근처 까페가 많은 거리로 갔다. 윈난은 고도가 높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커피 생산지로도 유명했다. 까페에 가면 커피 종류가 윈난원두와 해외 원두로 나뉘어져 있었다. 윈난원두를 선택해 마셔보았지만, 특징적인 인상은 받지 못했다. 원두를 사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할까 했는데 마셔보고는 관뒀다.



역시 중국은 다양한 먹거리가 있어서 좋다. 다만, 시키기가 너무 복잡해서 한참 지켜보다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말이 안통하면 어쩔 수 없이 그림이 있는 곳으로 갈 수 밖에.

 

시내를 작게 한바퀴 돌면서 둘러봤지만 박물관은 공사중이라 문을 닫았고, 번잡한 거리를 사람과 스쿠터, 차를 피해 다니다보니 몸보다 머리가 먼저 피곤해졌다. 게다가 700만이 사는 거대도시라 매연도 심한 편이었다. 한바퀴를 돌아 오전에 왔던 거리로 돌아오니 사람들이 무척 많아져있었다.



거리에 야외 안마소가 차려졌다. 받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5년 전 출장때 베이징에서 마사지를 받고 며칠간 고개를 돌리지 못했던 적이 있어서 포기했다.


팔꿈치로 어깨근육을 사정없이 문지른다. 보기만해도 아프다.


늦은 점심은 쿤밍에서 유명하다는 훠궈 식당에 갔다. 역시나 이전 출장때 맛봤던 훠궈가 그다지 내 입맛에 맞지 않았기에 썩 내키진 않았지만 유명하다니 한번 더 도전해 보기로 했다.


중심가에 있는 커다란 식당이었지만 여기서도 주문을 하려니 손짓발짓에 눈치까지 동원해야 했다. 어렵사리 주문을 하고, 육수가 끓고 주위에 먼저 먹고 있는 중국인들을 흘끗거리며 따라서 먹었지만 결론은 '맛이 없다' 였다. 여행책에는 훌륭하다고 나와 있었고, 까다롭지 않기로는 넉넉히 상위 1등급을 차지할 입맛이지만 분명 맛이 없었다. 윈난 음식이 내 입맛에 맞지 않거나, 이 식당 음식맛이 바뀌었거나, 여행책 저자가 맛을 본 적이 없거나 셋 중에 하나일 것이다. (처음엔 첫번째 이유일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뒤로 맛있게 먹은 음식이 많아서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엄청 들어가있던 돼지뼈들. 그런데 뼈에 붙은 고기가 질겨서 떨어지질 않았다.


이 육수에 이런저런 것들을 넣어봤지만 짜기만하고 맛이 없었다.

거금을 들인 식사를 실패하고 오후 늦게 열린 길거리 음식점을 기웃거렸다.








쿤밍 여행 1일차. 쿤밍은 중국의 커다랗고 번잡한 대도시였다. 삼국지연의에 제갈공명이 정복한 남만이 바로 이곳이지만, 역사적인 유적도 없고, 별다른 특징도 없다. 여행 목적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쿤밍에(적어도 쿤밍시내에서는) 별다른 매력을 느끼진 못할 것 같다.


중국여행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들이 모두 우리나라 발음으로 되어 있어서 정작 중국사람들에게 뭐라고 물어야 할지, 바이두 지도에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바이두에서 검색하려면 일단 중국단어의 영어표기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아야한다.) 중국말은 모르지만 자유여행을 준비하는 여행자들은 지명이나 관광지의 정확한 중국식 발음과 영어로 어떻게 표기하는지를 정리해 가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멕시코 플라야 델 카르멘에서 뉴질랜드의 오클랜드까지 가는 길은 3박 4일이나 걸리는 먼 길이었다. 


먼저 플라야 델 카르멘에서 버스를 타고 칸쿤 공항으로 가서 멕시코시티로 가는 비행기를 탓다. 칸쿤은 멕시코 남쪽 끝이지만 멕시코시티는 중남부 지방에 있음에도 비행기로 2시간 반쯤 걸렸다.(차로는 18시간, 거리는 1600킬로미터가 넘는다.) 새삼 멕시코가 우리나라 면적의 20배나 되는 커다란 나라란걸 깨닫는다. 멕시코시티에 도착하니 이미 거리는 어둠에 잠겨있었다. 서둘러 버스를 타고 먼저 묵었던 숙소에 도착했다.


짐을 풀 필요도 없이 잠깐 눈을 붙이고 새벽 어스름에 다시 배낭을 둘러매고 멕시코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맞춘듯이 정확하게 한달간 여행하며 매력에 푹 빠졌던 멕시코를 마치 도망치듯 서둘러 떠나는게 너무나 아쉬웠다. 차갑게 가라앉은 새벽 공기처럼 내 마음도 서늘해졌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스무번이 넘게 입국과 출국을 반복했지만 떠날 때 마음이 이랬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멕시코라는 나라가 나에게 무척 매력적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1년간의 여행이 마무리되어 간다는 아쉬움이 겹쳐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멕시코시티에서 4시간쯤 비행기를 타고 미국 LA공항에 도착했다. 미국은 무비자국이긴 하지만 입국이 아니라 환승을 하더라도 미리 정부에 신고를 하고 승인을 받아야했다.(이러면서 무비자국이라고? 쳇!) 그렇기에 굳이 뉴질랜드로 가지 않고 미국에서 여행을 해도 되지만 미국은 나에게 관심밖의 나라였다. LA공항에서 10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LA에서 오클랜드로 가는 거리만해도 이번 여행에서 한번에 이동한 가장 먼 거리였다. 거리도 멀지만 지구 자전 반대방향이라 시간도 더 걸려서 꼬박 13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야했다. 이렇게 3박 4일간 이동한 끝에 드디어 뉴질랜드에 도착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공항 입국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남극을 제외한 세계 5개 대륙 중에서 이번 여행의 마지막 대륙 오세아니아에 도착했다. 오클랜드에서 잡은 숙소는 이제 갓 스무살이 넘은 듯한 파란눈의 여행자들로 바글거렸고, 이들에게 나는 나이든 동양인 아저씨일뿐이었다. 여행자들끼리의 동질감도, 존중도 여기서는 느끼기 힘들었다. 사람도, 풍경도, 기후조차도 확 바뀌었지만, 내 마음은 아직도 멕시코나 남미의 어딘가에 두고 온 것 같았다.

코수멜에서 있었던 일들을 사진으로만 쭉 따라가다보니 정작 코수멜에 갔던 이유, 코수멜의 바닷속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글도 남기지 못한 것이 이제야 생각났다. 예전 다이빙을 배웠던 이집트 후루가다와 어디가 더 낫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한마디로 코수멜의 바닷속은 아름다웠다. 후루가다에서 더 다양한 산호초와 열대어들을 볼 수 있었다면 코수멜에서는 바라쿠다 무리나 바다거북이처럼 커다란 해양생물을 좀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세계 각국의 다이버들을 코수멜로 끌어들이는 또 다른 이유는 이곳을 지나는 고래상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도 코수멜에서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는데, 아쉽게도 멕시코에 도착할 때쯤 고래상어가 이곳을 지나는 시즌이 끝나버렸다.


......


코수멜에서 플라야 델 카르멘으로 돌아온 다음날, 카리브해의 유명한 해상공원 셀하(Xelha)로 갔다. (셀하와 비슷한 공원으로 스칼렛-Xcaret이 있는데, 거긴 안가봐서 어디가 더 나은지, 무엇이 다른지는 모르겠다.) 셀하는 플라야 델 카르멘에서 툴룸쪽으로 내려오다 아쿠말에 도착하기 직전에 있었다. 고속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는데 셀하에 가는 사람들에게는 버스비를 받지 않았다.


사실 셀하나 스칼렛은 왠지 물놀이 공원 같아서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에버랜드에 있는 캐리비안 베이와 같은 흔한 물놀이 공원 같은 이미지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을 여행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셀하나 스칼렛의 팜플렛을 보게 되었고, 이곳들이 단순한 물놀이 시설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쉽게도 이 날은 날씨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침까지 비가 내렸고, 습도도 꽤 올라가 후텁지근했다. 날씨가 좋아지길 바라면서 셀하에 입장하려는데 입구에서 화합물이 든 썬블록, 화장품 등등을 모두 사용하지 못하게 맡기라고 했다. 그리고, 자연재료로 만든 썬블록만 따로 팔고 있었다. 누군가는 장삿속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조금이라도 수질을 보고하고 해양생물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는 노력이 좋게 보였다. (내가 썬블록을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일수도 있다.)


표를 내고 입장한 곳에서 스노클링을 할 수 있는 바다까지는 꽤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내부에서 운행하는 '코끼리 열차' 같은 것을 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야했다. 자전거로는 그다지 먼 거리도 아니라 맘대로 멈추거나 내릴 수 있는 자전거를 선택했다. 자전거는 우거진 밀림 사이로 잘 닦아놓은 길을 따라 편하게 갈 수 있었다. 가끔 갈래길이 나오지만 표지판과 지도를 보고 쉽게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입구에 있던 앵무새. 과일을 움켜쥔 발을 우아하게 들어 부리로 가져간다.


셀하에 오는 주목적이 스노클링이므로 스노클링 장비와 구명조끼를 빌려야한다. 자전거를 타기 전에 빌렸는지, 그 후에 빌렸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자전거를 타기 전이었다면 오리발이나 고글들이 거추장스러웠을테니 아마도 그 후에 빌리는 곳이 있었던 것 같다.




스노클링 포인트로 가다보니 사람들이 물속에서 돌고래와 교감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보였다. 흔히 볼 수 있는 돌고래의 쇼나 공연이 아니라 사람들은 물에 가만히 떠 있고 돌고래들이 주위를 돌면서 사람들과 피부를 맡댄다던지 하는 것이었다. 야생동물은 자연에 있어야 한다는 주의라서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았다. 이 돌고래들이 불법 포획되어 동물원에서 길러졌다가 구조되었거나, 자연에서 살기 힘든 상태일 수도 있으니 성급하게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은 셀하에 온 사람들에게 추가옵션으로 돈을 받고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옳게 보이지 않는다. 몇 시간 뒤에 이곳에서 봤던 매너티의 상황도 비슷했다.


맹그로브 숲 사이로 난 물길을 지나가는 느낌은 무척 독특하고 신기했다.





셀하에서 수중사진을 제대로 찍기는 무척 어려웠다. 카메라 성능이나 사진사의 실력도 문제지만 이곳은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이라 물속이 아지랑이가 피듯이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스노클링을 하다보니 점차 여러가지 물고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가 절벽에서 본 이구아나. 물속에서 만났으면 무척 놀랐을거다.



첨벙하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려서 보니 다이빙대에서 사람들이 뛰어내리고 있었다. 뛰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들이다.






놀이기구라는 것은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린다던지, 케이블로 물 위를 지나다 뛰어든다던지 이런 것들이 전부다. 이곳은 놀이기구가 주가되는 물놀이 공원이 아니라 물과 물고기가 주가되는 물놀이 공원이기 때문이다.




커다란 덩치가 무색하게 먹는 것은 바위에 붙은 해조류


셀하에서는 모든 것이 공짜였다. 스노클링 장비도, 매끼니마다 바뀌는 다양한 종류의 부페도, 음료와 칵테일도, 수건조차도 모두가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입장료가 캐리비언베이 성수기 입장료보다 조금 비싼 70불 정도였다. 이건 뭐... 말이 안나온다.



아침을 거른채 도착해 오자마자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 한참 스노클링을 하고 점심 때 가보니 메뉴가 바뀌어 식사가 제공되고 있었다. 삼시세끼를 모두 해결하고, 버스비조차 공짜였으니 하루종일 보내고 70불이면 이곳에 가지않을 이유가 없다.







입술이 파랗게 될 때까지 하루종일 스노클링을 하다보니 어느새 해가 기울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초에 불을 붙인 등을 들고 물위에 띄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등불은 따로 돈을 받는 것인지 이것도 무료인지는 모르겠다.)

 





셀하가 뛰어난 해상공원이었던 것은 공원을 찾는 관광객들이 이곳이 공원이라는 느낌을 최대한 갖지 않도록 만든 것이었다. 훌륭한 식당과 저렴한 가격으로도 만족스러웠지만 물속에 들어가면 자연그대로 살아가는 각종 해양생물의 생태계가 펼쳐져 있어서 내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공원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4계절이 너무나 뚜렸해서 이런 해상공원을 만들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부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


셀하를 마지막으로 한달간의 멕시코 여행이 모두 끝났다. 내일은 칸쿤에서 비행기를 타고 멕시코시티로 돌아간다. 멕시코시티에서 하루를 묵은 뒤에 LA로 가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뉴질랜드로 향한다. 멕시코를 떠나는 아쉬움이 크긴 했지만 당시에는 뉴질랜드도 무척 기대되는 곳이었기에 문제가 되진 않았다. 하지만, 그 뒤로 뉴질랜드와 호주에 머물렀던 기간 내내 나는 멕시코의 기후와 사람들과 음식을 그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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