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에서 묵었던 숙소는 개인이 자기 집을 빌려주는 곳이었다. 숙소 예약 사이트로 유명한 부킹닷컴이나 아고다에서 보면 아파트먼트로 검색되는 숙소들이 대부분 이런 곳이다. 그렇다고 주인과 같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집주인이 장기 휴가나 개인 사정으로 집을 사용하지 못할 때 혹은 전문적으로 대여를 목적으로 전체를 빌려주는 것이다. 집도 무척 다양해서 한 가족이 모두 묵을 수 있는 방과 욕실이 여럿되는 집에서부터 작은 오피스텔 같은 곳까지 있다.
이런 집을 예약한 것은 빈이 처음이었는데 체크아웃할 때 청소비용을 따로 내야한다거나 주인과 약속 시간을 정해서 그 시간에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해야 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이점이 있어서 이후 유럽과 남미를 여행하면서 종종 이용했다. 빈에서 체크인을 해주었던 사람은 여기저기에 잔뜩 피어싱과 문신을 한 집주인의 20대 딸이었다. 첫인상은 놀람, 어색함 그차제였으나 알고보니 무척 친절하고 예의바른 사람이었다.
이런 집의 장점이 더욱 도드라지는 곳은 물가가 비싼 유럽이다. 집에 세탁기며, 주방, 식기 등이 모두 갖춰져 있기 때문에 장기여행자들은 밀린 빨래를 해치울 수 있고 지겨운 현지 음식에 물렸을 때는 식사를 만들어서 먹을 수 있어서 식비를 무척 절약할 수 있다.(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스위스라도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는 비용은 우리나라보다 오히려 저렴했다)
물론 유럽이나 남미에는 배낭여행자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가 많고 이런 게스트하우스에는 대부분 주방과 식기가 갖춰져 있다. 하지만 유럽은 게스트하우스조차도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다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과 이층 침대를 쓰는데 지쳤다면 이런 곳도 괜찮은 선택이다. 게다가 여행중에 만난 마음 맞는 동행들과 비용을 나눈다면 크게 부담스럽지도 않을 것이다.
이튿날 빈 관광의 출발은 슈테판 대성당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였던 빈의 상징적인 건축물 첫손에 꼽는 곳이 구시가의 중심에 있는 슈테판 대성당이다. 원래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었다고 하나 화재로 소실되어 14세기에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고딕양식으로 다시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탈리아에서 보던 성당 양식과는 확연히 다르다. 뾰족하게 하늘로 솟은 첨탑과 직선들로 이루어진 건물이 고딕양식의 특징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가장 큰 고딕양식 건물이라더니 첨탑의 높이가 꽤 높아보인다.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137m란다. 30층 건물만큼 높다.
성당 내부의 파이프 오르간. 한 대가 아닌듯 성당 내부 여기저기에 파이프 오르간이 많았다.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의 성당 내부.
개인적으로 종교와 관련된 건물안의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사람이 고리타분해서...
이탈리아에서 봐왔던 로마네스크나 르네상스 양식의 성당과는 건물의 외벽뿐만 아니라 내부의 기둥과 벽면의 모양이 많이 달랐다.
어느새 슈테판 광장에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빈에서 제일 골치아픈 것은 음악회 티켓을 팔려는 삐끼들을 뿌리치는 것이다. 음악의 도시답게 빈에서는 매일 많은 클래식 연주회가 있는데 현악 4중주 같은 간소한 연주부터 대규모 오케스트라나 오페라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런 연주회가 많다보니 관광객들에게 소개하고 표를 팔려는 사람들도 무척이나 많다. 광장에 서 있으면 연주회 팜플렛을 끼운 책자를 보여주며 여기저기서 호객을 한다.
빈에 왔으니 연주회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가장 저렴한 편인 실내악 공연(게다가 공연장이 스테판 성당 내부라니) 표를 샀다. 대형 오케스트라나 오페라 공연은 비싸지만 현악 4중주 형태의 소규모 공연은 그리 비싸지 않았다. 기억으로는 10유로 정도 했던 것 같다.
슈테판 광장 근처의 작은 꽃집
오후에는 벨베데레 궁전에 갔다. 이 곳은 벨베데레라는 건축 양식이 유명해지게 된 곳이며, 대중적으로 매우 인기있는 화가 중 1명인 클림트의 작품이 여럿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정원을 사이에 두고 저 아래의 건물과 위의 건물이 마주보게 되어 있다. 이런 구조로 지어진 건물이 벨베데레라고...
벨베데레 궁전의 오스트리아 미술관에는 클림트의 작품 중에서도 유명한 '키스'와 '유디트'를 비롯해 여러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난 클림트의 그림을 보고도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예전 유명 미술평론가의 클림트 그림에 대한 해설서도 보고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이 사람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나에게 미술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서겠지만 그런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조차 어떤 느낌이나 감정을 줄 수 있으면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도 전문가에게 인정받는 어렵고 난해한 글보다 쉽게 이해되면서 보통 사람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 수 있는 글이 좋은 글이라는 고집 때문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클림트의 화려하고 눈부진 색책와 성적인 매력을 풍기는 인물들을 무덤덤하게 보다가 미술관을 나왔다.
저녁에는 다시 스테판 성당으로 가서 실내악 공연을 봤다. 여러 공연 프로그램 중에서 연주곡명을 보고 그나마 들어봤음직한 곡을 선택했음에도 공연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넓은 성당에서 연주되는 현악기의 음률은 그다지 또렷하게 들리지 않았고, 작은 규모에 비해 연주가와 청중 사이의 거리도 지나치게 멀었다.(성당이라는 특성상 어쩔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고색창연한 성당에서 연주회를 봤다는 일이 기념할만한 체험이었을뿐이었다.(개인적으로 유럽에서 본 두 번의 연주회 중에서 다음 목적지였던 프라하 박물관에서 봤던 공연이 무척 인상 깊었다.)
오스트리아에 오니 물보다 맥주가 싸졌다. 이탈리아에서는 커피와 와인이 제법 쌌는데 맥주는 그리 싸지 않았었다. 처음보는 맥주들을 종류별로 사서 매일 마셔보기로 했다.(하지만 빈에 머무르는 며칠 동안 마트에 있는 수백종의 맥주를 다 마셔보는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맘껏 마시고 알딸딸하게 취할 수 해도 내일 출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 참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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