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갑자기 여행 경로를 바꾼 뒤로 경로를 확실히 결정하지 못해 고민이었다. 빈에서 오스트리아를 더 둘러보다 스위스로 넘어갈지, 체코와 독일 남부를 거쳐 스위스로 넘어갈지 선택하기 어려웠다. 거리는 오스트리아 서쪽을 통해 스위스로 넘어가는게 훨씬 가까웠으나 결과적으로는 체코를 거쳐 빙둘러서 스위스로 가기로 가기로 한 이유는 체코의 맥주와 음식이 맛있고 물가가 저렴하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찾아 본 오스트리아의 도시들과 알프스 지방은 무척 아름다웠으나 그 아쉬움은 스위스에서 풀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오전에 빈에서 탄 기차는 오후 느지막하게 프라하에 도착했다. 체코하면 생각나는 단어가 '동유럽', '프라하의 봄', '공산국가' 등이라 조금은 어둑하고 딱딱한 분위기를 예상했지만 여느 유럽의 나라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기차역에 설치된 지하철표 판매기는 구소련시절에 만들어진 듯한 낡은 철제 박스였고, 영어가 지원되지 않아서 사용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판매기 앞에서 한참 헤매고 버벅대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아저씨가 가장 저렴한 티켓을 사면 된다고 알려줬다. 경험상으론 가장 저렴한 티켓은 노약자나 미성년자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상하다 하면서도 현지 사람이 알려준게 맞겠지 싶어 저렴한 티켓을 샀다. 그게 나중에 몇 십배의 손해를 끼치게 될 줄은 그때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예약한 숙소에 짐을 풀고나니 저녁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론리플래닛에서 봐둔 레스토랑을 찾아나섰다. 이 레스토랑은 구시가로 들어가기 직전 좁은 골목길에 있어서 지도를 보고도 찾기가 어려웠다. 다시 프라하에 간다면 꼭 다시 가고 싶은 곳이지만 찾을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프라하에 머물렀던 4박 5일동안 이 레스토랑에만 3번은 갔던 것 같다.


프라하를 대표하는 음식은 흔히 독일 음식으로 잘 알려진 돼지 뒷다리를 구워서 만든 슈바인 학센과 헝가리 음식인 굴라쉬였다. 아무래도 국경을 접하고 있다보니 주변 국가에서도 같은 요리를 즐기는 것 같다.


학센의 크기는 엄청났다. 큼직한 다리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양이 무척이나 많아서 식성이 좋은 성인 남성이 먹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게다가 무척 맛있어서 구워진 껍질은 쫄깃하고 살은 매우 부드러웠다. 개인적으로는 며칠 후, 뮌헨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맥주집인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먹은 슈바인 학센보다 훨씬 좋았다.


슈바인 학센 뒤에 있는 맥주는 체코의 유명한 흑맥주인 코젤이다. 원래 기네스 같은 흑맥주를 무척 좋아하는데 기네스 같이 묵직하지 않고 쌉쌀하지만 단맛이 같이 느껴져서 흑맥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가볍게 마시기 좋았다. 게다가 가격이 무척 저렴해서 500cc 한 잔이 1500원 정도였다.


위의 사진은 이 레스토랑에서 먹은 굴라쉬다. 굴라쉬는 소고기와 야채로 만든 스튜인데 이 곳에서는 속을 파낸 커다란 빵에 담겨서 나왔다. 굴라쉬도 맛있었으나 나는 슈바인 학센이 훨씬 인상 깊었다. 이렇게 푸짐한 음식에 흑맥주 서너잔까지 일행과 둘이서 배부르게 먹었지만 우리나라 돈으로 2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는 조금 비싼 레스토랑의 파스타 1인분 가격밖에 안됐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해가 지는 프라하 성과 카를교를 보며 블타바 강변을 걸었다. 여행이 길어질수록 어떤 유명한 명소에서 훌륭한 예술품이나 역사적인 유물을 보는 것보다 이런 시간들이 더 즐겁게 느껴지고 오랫동안 기억이 남았다.


이튿날부터 프라하 시내 관광을 시작했다. 숙소에서 구시가쪽으로 걸어가다보니 고풍스럽게 생겼지만 건물 외벽이 시커멓고 군데군데 파인 흔적이 있는 건물이 나타났다. 이 곳이 세계 10대 박물관에 속한다는 프라하 국립 박물관이었다. 그리고, 기둥의 패인 흔적은 1968년 프라하의 봄 당시 탄환 흔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유명한 박물관이 하필이면 보수공사에 들어가 박물관으로는 문을 닫았고 저녁에 박물관 홀에서 소규모 클래식 공연만 한다고 했다. 여행은 복불복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 많이 생기지만 어째 유럽에 들어서서는 자꾸 빈번해지는 것 같다. 아쉬움에 저녁에 있는 클래식 공연만 예매를 하고 돌아섰다.

프라하 국립 박물관 외벽에 남은 탄환흔적



박물관 앞으로는 프라하의 또다른 명소 바츨라프 광장이 있다. 이 광장의 이름인 바츨라프는 10세기 나라를 구한 체코의 구국영웅이다. 우리나라 광화문 광장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듯이 바츨라프 광장에는 바츨라프의 동상이 있다. 동상 앞에는 철조망과 십자가, 옷가지들로 만들어진, 사회주의 시절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바츨라프 광장에서 바라 본 프라하 국립 박물관


바츨라프 광장의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보니 멀리 프라하의 또다른 명소인 화약탑이 보였다.


바츨라프 광장의 주변으로 까페나 레스토랑 그리고 옷가게들이 있는데, 광장 한쪽에서 길거리 농구대회가 한창이었다. 동구권 국가들의 농구실력이야 유명하지만 길거리 농구인들의 실력도 굉장했다. 게다가 이들의 키와 덩치가 아마추어 농구선수치고는 정말 컸다.


점심땐 어제 저녁에 갔던 그 레스토랑에 다시 갔다. 어지간해서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다시 가는 경우는 없을텐데 당시에 정말 인상 깊었나보다. 점심때 주문한 메뉴는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그리고 맥주였다. 이 두 메뉴도 썩 나쁘지 않았고 다른 레스토랑에 비해서 가격도 저렴했다.(스테이크가 1만원대였던...)



두번째가 되니 레스토랑에 대해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가게는 대낮에도 어두침침했고 내부 인테리어는 소박하고 낡았지만 깨끗했다. 가게 안은 사용한지 수십년은 지났음직한 골동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우리와는 생활문화가 많이 달라서 무슨 용도로 사용했을지 도저히 상상이 안되는 물건들도 종종 있었다.



만족스러운 점심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중세시대에는 프라하 성문이었으며 17세기에 연금술사들의 창고와 연구실로 사용되면서 화약탑(Powder Tower)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프라하 구시가 광장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그 중에서도 벽의 대형 시계가 매시 정각을 알릴 때는 어디서 나오는지 많은 사람들이 그 시계 앞에 모여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다. 이때는 프라하의 소매치기들이 시계를 보느라 정신없는 여행자들의 가방이나 옷에서 지갑을 훔치기 가장 좋은 시간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저녁이 되어 낮에 예매해 둔 프라하 국립 박물관에서 하는 연주회에 왔다. 저녁시간인데 프라하의 거리는 아직 훤했다. 유럽에서 체코는 중간쯤 위치한 나라지만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북쪽에 있기 때문에 여름에는 해가 더 늦게 지는 것 같다.



전시물이 모두 치워지고 관림하는 사람들이 없는 박물관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연주가들은 박물관 계단의 중간 홀에서 연주를 하고 청중들은 계단에 앉아 연주를 듣는다.


청주이 많지 않은 작은 연주회였지만 사람들에게 흔히 잘 알려진 비발디나 모짜르트의 현악곡을 섞어서 연주하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았고, 공연장은 아니지만 소리가 생각보다 또렷하게 잘 들렸다. 곡이 끝날 때마다 몇 안되는 청중들이 아낌없이 박수를 쳤다. 개인적으로는 빈의 슈테판 성당에서 본 연주회보다 좋았다.


프라하... 처음엔 큰 기대가 없었는데 점점 프라하만의 매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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