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에서 두 번째 날은 페라리 박물관이 있는 모데나로 가려고 했다. 차라고는 경차도 없지만 멋진 차를 구경하는 것은 좋아하기 때문에 은근 기대를 하며 숙소를 나섰다. 버스를 타고 물어물어서 볼로냐에서 모데나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지만 하필이면 주말이라 모데나까지 가는 버스가 몇 번 다니지 않았다. 그나마 몇 대 있는 버스도 방금 떠났고 한참 뒤에 올 버스를 타고 가봐야 박물관이 문을 닫을때까지 제대로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 페라리 박물관에 대한 아쉬움을 깨끗이 비우고 숙소로 돌아와서 푹 쉬었다.


그 뒤로 볼로냐에서 하루를 더 머무르고 베네치아로 갔지만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버렸다. 베네치아는 두번째 방문이어서 그랬는지 돌아다닐 의욕도 없어서 숙소에서 뒹굴거리거나 동네 까페에서 커피를 시켜놓고 시간을 보냈다. 사실 베네치아에 온 이유도 여기가 교통의 요지여서 오스트리아나 크로아티아 등으로 가는 기차나 버스가 많기 때문이었다.


베네치아에서 딱 하루 시간을 내서 다녀온 곳은 베니스 영화제가 열리는 리도섬이었다. 베네치아 동남쪽에 있는 아주 길쭉한 이 섬은 생각보다 커서 목적지였던 해변으로 가려면 한참을 걸어야했다. 아름다운 베네치아의 해변을 상상하며 왔는데 부드럽긴 하지만 시커먼 모래에 바닷물도 그다지 맑지 않았고 가족단위의 피서객들이 주류였다. 영화제 기간이 아니라서 그냥 평범한 유럽의 피서지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볼로냐와 베니스에서는 컨디션 난조와 약간의 의욕상실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이탈리아를 떠나게 되었다. 원해서 시작한 여행이지만 항상 의욕에 넘쳐서 다닐 수는 없는 일이다. 분위기가 달라지면 다시 의욕이 날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100유로(당시 환율로 15만원)에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는 침대 열차에 올랐다.


아침 일찍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했다. 침대 열차는 버스보다는 훨씬 편했지만 아무래도 숙소에서 자는 것에는 비할 수 없었다. 멍한 상태에서 아침식사를 하고는 근대 유럽의 맹주였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쇤부른 궁전으로 향했다.


16세기부터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궁전이 있었던 이 곳에 지금과 같은 모습의 쇤부른 궁전을 지은 것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통치자이자 유일한 여성 군주인 마리아 테레지아였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세계 역사상 많지 않은 여성 군주이면서도 능력있는 군주였고 미모까지 갖춘 인물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어머니를 닮지 못하고 프랑스 혁명의 이유가 되어버린 사치스러운 '마리 앙뜨와네뜨'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쇤부른 궁전 내부 초상화나 당시 사용하던 갖가지 전시품들은 대부분 마리아 테레지아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신성로마제국이 많이 쇠락할 시기여서인지, 마리아 테레지아의 성격이 사치를 싫어했던지 궁전 내부가 베르사유 궁전처럼 호화롭거나 눈부시게 치장되어 있진 않았다.











쇤부른 궁전도 전형적인 벨베데레 건축 양식을 하고 있다. 사실 유럽을 여행하면서 여기저기 벨베데레란 말이 무척 많이 나왔다. 궁전에도 벨베데레라는 설명이 있었고(빈에는 벨베데레 궁전까지 있다.), 숙소나 호텔에도 이 말이 자주 쓰였다. 당시 궁금해서 찾아보니 정원을 사이에 두고 궁전이나 저택의 맞은 편 높은 쪽에 전망할 수 있는 건축물을 짓는 건축양식이라고 했다.



쇤부른 궁전을 둘러보고 벤치에 앉아 매점에서 산 맥주를 마셨다.(다들 그렇게 한다.) 오스트리아는 그리스나 이탈리아보다 훨씬 덜 더웠고 그래선지 기분도 나아졌다. 꽤 긴 시간 고대 그리스와 로마,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유물들을 봐오다가 쇤부른 궁전에서 근대의 건축물이나 전시품을 보니 많이 다른 분위기라 새로운 기분으로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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