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에서 볼로냐로 방향을 잡은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피렌체의 왼쪽에는 기울어진 탑과 갈릴레오의 실험으로 유명한 피사가 있었고, 북쪽으로는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유명한 베로나 등이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덜 알려진 곳, 덜 북적일 곳을 찾다보니 볼로냐로 방향을 잡게 되었다.


목적지를 정하고 나서 볼로냐에 대한 정보를 찾다보니 이 곳이 역사 깊은 대학의 도시라는 것,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면 가장 흔한 메뉴중 하나인 볼로네제 스파게티의 본고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피렌체에서 기차를 타고 볼로냐 기차역에 내리면 남쪽으로는 성벽으로 둘러쌓인 구시가가 있고, 대부분의 관광지가 구시가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으나 피렌체에서 북적이는 사람들과 시끄럽고 시설이 좋지 않은 숙소에 힘들었기에 구시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숙소를 정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함은 버스를 타고 지나치며 보이는 것들에 재미를 갖는다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


구시가의 중심으로 향하는 도로, 멀리 중세시대에 지은 탑이 보인다.


볼로냐에서 발견한 난생처음보는 피자 자판기.


볼로냐는 구도심의 주요 길거리가 아케이드이다. 아케이드를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면 '열주(列柱 : 줄지어 늘어선 기둥)에 의해 지탱되는 아치 또는 반원형의 천장 등을 연속적으로 가설한 구조물과 그것이 조성하는 개방된 통로공간' 이라고 나오는데 대부분 건물이 인도쪽으로 나와있고 건물의 1층은 아케이드로 되어 있다. 덕분에 뜨거운 햇살이나 비를 피해 다니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볼로냐에 이런 아케이드가 생기게 된 이유가 재미있는데 대학의 도시인 볼로냐는 이탈리아 전역 혹은 전 유럽에서 유학생들이 몰려들었고 비싼 임대료로 인해 사람들이 다니는 인도 위로 집을 만들어 사용한 것이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걸어도 걸어도 아케이드가 계속 이어진다. 다른 도시에서 볼 수 없었던 볼로냐만의 독특한 모습이다.




중세시대부터 만들어진 아케이드는 중간중간 보수된 곳도 있고 현대식으로 바뀐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옛날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데 가끔 나무로 만들어진대다 무척 낡아보이는 곳을 지날때면 조금 불안하기까지 하다.


볼로냐 구도심 중앙에는 특이한 탑이 두개 있다. 중세 도시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하나, 둘 만들었다고 하는데  몇몇 도시에는 아직도 수십 개의 탑들이 남아 있는 곳도 있다. 볼로냐에는 두 개가 남아있었다. 세력 과시를 위해 높이가 수십 미터에 달하는 탑들을 작은 도심에 수십개나 건설했다니 이건 인간의 욕망을 투영하는 대표적인 건축물 바벨탑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매우 낡고 부실해보여 올라가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시 이어지는 아케이드. 구도심 중심가에 가까워지자 아케이드도 조금은 호화롭게 바뀌었다.


볼로냐가 대학의 도시로 불리우게 된 이유는 1088년에 볼로냐 대학이 세워졌기 때문이란다. 볼로냐 대학은 유럽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대학이며 단테, 코페르니쿠스, 마르코니 등 수많은 명사들을 배출한 대학으로 아직도 높은 수준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드디어, 아케이드가 끝나고 광장이 나왔다. 광장에서는 무슨 공연이 있었던 듯 무대와 객석을 철거하는데 분주했고 피렌체나 로마같은 유명한 도시만큼은 아니었지만 꽤 많은 시민들과 여행자들로 붐비고 있었다.



시청사 앞에는 작고 낮은 의자가 마련되어 있는데 시민들은 누구나 이 위에 올라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주요 관광서나 기관 앞에는 항상 집회나 1인 시위가 있지만 이런 식의 발언대는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누군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작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경청한다. 그 사람의 발언이 끝나면 다시 다른 사람이 올라가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슨 내용인지 알 수는 없지만 톡특한 광경으로 기억에 남는다.

마침, 백발의 할아버지가 목청껏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하고 있다.


볼로냐 시청사 내부


중세시대의 볼로냐는 꽤 큰 도시였는지 광장이 무척 넓은 편이었다.


처음 구도심에 들어왔을 때는 뜨겁게 내리쬐던 햇살이 사라지고 어느 덧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러 가다가 1년간 여행하면서 봤던 많은 길거리 공연 중 손에 꼽을만큼 멋진 공연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엇을 보여주려는지 알 수 없었다.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가 무슨 인형처럼 생긴 것을 어깨에 메고 앞에는 무릎까지 올 것 같은 긴 부츠를 두고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깨에 맨 것을 위로 치켜 올리며 허리를 굽혀 두 손을 부츠안에 집어 넣으니 할아버지는 사라지고 완벽하게 차려입은 남녀 인형이 나타났다.




  

갑자기 나타난 남녀 인형도 놀라운데 인형들은 제대로 된 왈츠를 추기 시작했다. 남자 인형의 다리는 할아버지의 다리이고, 여자 인형의 다리는 할아버지의 팔이다. 허리를 굽혀 바닥을 짚은 상태로 놀랍도록 날렵한 모습으로 움직이며 2인분의 왈츠를 추고 있었다. 꽤 오랫동안 진행된 춤사위가 끝나자 사람들은 어떤 공연 못지않은 열렬한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멋진 공연에는 당연히 공연료를 지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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