퓌센에서 스위스 루째른까지 가는 방법은 기차를 타는 수밖에 없지만 그다지 추천할게 못된다. 직선거리로는 멀지 않지만 거대한 알프스 산맥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기차를 몇 번 갈아타고 빙돌아서 바젤까지 간 다음에 스위스 철도로 갈아타야하기 때문이다. 세 번정도 갈아타면 바젤까지 갈 수 있었고, 거기서는 스위스 국내 기차로 갈아타고 루째른까지 가면 되었다. 시간도 고려하고 기차편도 잘 알아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항상 실수는 마음을 놓는 순간 부지불식간에 다가왔다.


몇 개의 작은 시골마을을 지나고, 걱정보다 쉽게 기차를 갈아탔다.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할 즈음 작은 기차역에 멈춰있던 기차가 갑자기 반대 방향으로 가기 시작한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원래 그런건가보다 생각하고 있었더니 다음에 멈춘 기차역에서 열차 점검을 하는 복장의 덩치 큰 아저씨가 기차 복도에서 어딜가는거냐고 물었다. 기차표를 보여자 독일어로 뭐라고 열심히 설명을 했다. 눈치껏 들어보니 이전 정거장에서 타고 온 기차의 앞 두세량은 목적지로 가고, 뒷 두량은 다른쪽으로 가는 열차로 분리가 되는 것이었는데 나는 뒷쪽 열차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차량마다에 목적지가 표시되어 있었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분리되는 기차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기에 눈여겨 보지 않았던 것이다.


다음 목적지에서 갈아타기만 하면 바젤까지 쉽게 갈 수 있었는데 단단히 꼬여버렸다. 아저씨는 다음 열차가 몇 시에 오니 그걸 타고 어디로 가면 된다고 설명해 줬다. 그리고 배낭은 열차 안에 두고 가도 문제 없으니 몇 시까지 돌아와서 가지고 가라고 했다. 덩치 크고 무섭게 생긴데다 서로 말도 안통하는데 너무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사실 아저씨라고 썼지만 나보다 나이가 어릴지도 모른다) 퓌센에서 자전거에 자물쇠를 채우지 않아도 가져가지 않는다는 것은 체험했음에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든 배낭을 놓고 가자니 좀 걱정이 되긴했지만 굳이 가지고 가면 호의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큰 맘 먹고 두고 가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원래 갈아타는 횟수보다 3번을 더 갈아타고서야 바젤에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꼬인 것은 바젤의 기차역이 국경을 넘나드는 기차역과 스위스 국내를 다니는 기차역이 서로 달랐다는 것이다. 버스를 타고 다른 기차역으로 가서야 겨우 루째른행 기차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독일의 작은 마을 Oberstdorf역. 여기에 오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는데...


유럽 배낭여행을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유레일 패스를 사서 오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유럽에서 기차를 타면서 매번 가장 저렴한 표를 사는데 신경을 써야했다. 하지만 스위스는 산악국가라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기차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여행자들을 위한 다양한 패스를 팔았다. 나는 유레일 패스처럼 한번 사면 무료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티켓이 반값이 되는 패스를 샀다. 다양한 종류의 패스가 있으니 본인의 여행경로에 따라 가장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패스를 선택해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루째른에 도착하고보니 벌써 오후 늦은 시간이 되었다. 몸도 마음도 피곤한 상태에서 민박집을 찾아 들어갔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곳 민박집도 내 기호와는 영 맞지 않는 곳이었다. 이곳에서도 한시간쯤 주인에게 잡혀 본인의 화려한 과거 경력을 들어줘야했고 부엌에서 라면을 끓이는데 이런저런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허접하나마 있는 부엌은 형식상 있는 것일뿐, 겸해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밥을 사먹도록 자꾸 유도하는 것도 기분 나빴다. 그렇다하더라도 피곤한 몸은 뉘여야하니 불편한 마음을 억누르며 잠이 들었다. 


이튿날은 루째른의 유명한 명소인 카펠교에서부터 시내여행을 시작했다. 1300년대에 지어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나무다리인 카펠교는... 그냥 오래된 나무다리다. 다리보다는 다리가 놓여진 강물이 무척 맑고 깨끗하다는 것, 강에 수많은 백조들이 산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백조들이 엄청 몰려들기에 뭔가하고 봤더니 비닐봉지에 빵을 잔뜩 담아와서 백조들에게 나눠주는 아저씨가 있었다. 보기에는 우아한 백조들의 식탐은 장난이 아니어서 다른 새들은 얼씬도 할 수 없었다.





백조들의 식사가 끝나고 나서야 비둘기나 참새같은 새들이 남은게 없나 보러왔다. 우리나라에서 닭둘기라 부르는 비둘기의 역할을 여기서는 백조들이 하고 있다는게 아이러니하다.



백조가 긴 목을 뻗고 날개를 퍼드덕거리면 꽤나 위협적이다. 가까이서 보면 몸집이 왠만한 아이들보다 더 크다.


호숫가를 어슬렁거리며 걷다보니 성당이 나왔다. 규모가 큰 성당은 아니었지만 안에서 들려오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에 살짝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성당안에 미사를 하는 동안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많은 성당을 가봤지만 이런 것은 볼 수 없었는데 

이 성당이 관광지의 역할보다는 종교적인 활동에 충실한 곳이라는 뜻인 것 같다.


성당의 뒷뜰에는 작은 공동묘지가 있었다.


루째른은 작은 도시라서 걸어다니며 구경하기에 좋다. 루째른 성당에서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듣고 나와서는 유명한 빈사의 사자상을 보러 갔다. 연못을 사이에 두고 있어서 조금 떨어져서 봐야했는데 프랑스 혁명 당시에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지키다 전사한 스위스 용병을 기리기 위해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로마 교황청에서도 그렇고 스위스 용병들의 용맹함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용병을 해야만했던 과거 스위스 사람들의 고된 역사를 알려주는 것이라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 빈사의 사자상 뒤편으로는 빙하공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기에 그냥 지나쳤다.



루째른 시내에는 명품 시계의 본고장 스위스답게 시계를 파는 상점들이 무척 많았다. 쇼윈도에 진열된 시계들은 영어와 중국어로 가격이 표시되어 있었다. 중국인들의 구매력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위력을 발휘되고 있었다.


유럽의 다른 도시들처럼 루째른도 구도심과 신도심이 나누어지는 성벽이 둘러져있다. 성벽은 조금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올라서면 루째른의 호수와 시내뿐만 아니라 멀리 알프스의 산들까지 보였다. 날씨가 맑았다면 훨씬 아름다웠겠지만...




루째른 성벽 곳곳에 오래전에 만들어진 시계가 있다. 시간이 되면 성벽에 설치된 종을 치도록 되어 있는데 대부분은 지금도 동작하고 있다.




카펠교에서 시작한 루째른 시내구경이 루째른 구도심을 빙돌아서 다시 카펠교에서 끝이 났다. 루째른은 어딜가도 깨끗하고 예쁘장했다. 큰 볼거리는 없지만 하루정도 가볍게 둘러볼만한 곳들은 많았다. 그런데 문제는 뭘하든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스위스의 물가야 하도 유명해서 오기전부터 각오를 하고 왔지만 느껴보니 상상이상이었다.


버스 요금은 5000원 정도였고, 푸드코트의 가장 저렴한 메뉴도 20 스위스 프랑(대략 2만 5천원)이 넘었다. 그나마 먹을만한 메뉴가 12프랑(1만 5천원)하는 빅맥이나 와퍼 세트였다. 이렇게 물가가 비싼 곳이라면 숙소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으면 그나마 나을텐데 루째른에서 묵었던 숙소는 부엌을 사용하지도 못하게 했다. 물가가 비싸니 민박집 숙박료도 당연히 비쌌다.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 아침과 점심을 포함한 숙박료가 스위스에서는 식사를 제외한 잠자리만 제공되는 가격이었다.


루째른은 깨끗하고 예쁜 대신에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했다. 그리고, 여행지의 깨끗하고 예쁜 것에 크게 가치를 두지 않는 나는 마음이 점점 불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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