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 온 이유가 웅장한 알프스 산을 보고 트래킹을 하기 위해서였으니 여행지 우선순위도 자연히 거기에 맞춰졌다. 우선은 마터호른이 있는 째르마트에 며칠 머무르고 이후에는 융프라우로 넘어가기로 했다. 루째른에도 리기, 티틀리스, 필라투스 같은 산들이 있고 숙소 민박집 사장님도 루째른 근처 산들이 더 좋다며 계속 머무르길 권했지만 마음은 이미 마터호른에 가 있었다.
하지만, 루째른에서 째르마트로 가는 적당한 시간의 기차가 오후에 있었고 루째른 시내에서는 특별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짐을 꾸려 기차역 사물함에 넣어두고 티틀리스 산으로 향했다.
티틀리스로 가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었지만 갈때는 우선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넌 후에 기차로 갈아타고 갔다가 올때는 시간이 촉박하니 기차로 바로 돌아오기로 했다. 호숫물도 잔잔하고 주변 풍경도 아름다웠지만, 하늘에 제법 구름이 많아 과연 티틀리스 정상이 보일지 걱정됐다.
남미 파타고니아를 여행하기 전까지는 이런 풍경은 알프스가 최고일 줄 알았다.
기차로 갈아타고 티틀리스로 가는 중
3000미터에 달하는 티틀리스 산 정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긴 케이블카를 몇 번이나 갈아타야 한다.
4000미터가 넘는 마터호른이나 융프라우도 마찬가지다.
케이블카가 위로 올라갈 수록 구름이 많아지다가 급기야 하늘이 죄다 하얀색으로 변해버렸다. 티틀리스가 나에게 모습을 보여주는 행운은 없을 듯했다.
꽤 올라왔는지 7월 중순인데도 주변에 눈이 보이기 시작했다.
티틀리스에 오르는 중에 한번은 커다란 곤돌라를 타게 되는데 세계에서 최초로 생긴 360도 회전하는 곤돌라라고 한다. 그러면 뭐하나 주변은 온통 구름과 눈뿐이라 보이는게 없는데...
마지막 곤돌라에서 내리면 티틀리스 산의 빙하를 깎아만든 통로를 통해 정상으로 갈 수 있다. 그야말로 오랫동안 쌓여만들어진 거대하고 단단한 얼음덩어리다.
드디어 산 정상으로 나왔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발밑의 때묻은 눈과 사방을 하얗게 만드는 구름뿐이었다. 중동에서 온 듯한 사람들이 무척 많았는데 이들은 눈을 처음본다는게 얼굴에 씌여있는 듯, 아이들처럼 좋아했다.
가끔 구름이 옅어지고 파란하늘이 살짝 드러나곤 했지만 금새 다시 구름으로 덮였다. 아무래도 오늘은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 없나보다.
한여름 여행을 하다가 여기에 온다고 있는 옷들을 꺼내 겹쳐 입었지만 밖에 있었더니 금새 추워졌다. 산 정상에 있는 카페에서 라떼를 한 잔 마시며 몸을 녹이고 이제 째르마트로 가기 위해 내려가는 케이블카를 탔다. '티틀리스는 원래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괜찮아. 마터호른은 모습을 보여주겠지'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몇 번 이야기했지만 빨리 포기하고 다음을 더 기대하면 여행이 편해진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루째른으로 돌아오는 기차를 타기 위해 역까지 걷다보니 멀리 알프스의 높고 거친 봉우리들이 보였다. 어제까지는 비싼 물가로만 느껴지던 스위스가 이제 확실히 인식되기 시작했다.
루째른에서는 융프라우가 있는 인터라켄이 가까워서 가기가 훨씬 편하다. 반면 마터호른이 있는 째르마트는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기차를 타고 알프스 깊숙히 들어가야하고 해발 1600미터가 넘는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한여름에도 아침저녁으로 무척 춥다. 그래도 째르마트에 먼저 가게된 이유는 세계 10대 미봉 중 하나라는 마터호른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생각과 함께,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마을에 내연기관으로 움직이는 차를 없애고 전기차만 다닌다는 것에 호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째르마트로 가는 기차 좌석 앞에는 열차가 통과하는 기도가 그려져 있어서보니, 열차가 통과하는 계곡 주위의 산들이 3,400미터 이상의 높은 산들에다 째르마트는 이 열차의 종착역이었다.
열차가 지나는 계곡 위 가까이에 빙하가 보였다.
드디어 째르마트에 도착했다. 기차역은 마을의 입구에 있어서 숙소들이 있는 안쪽까지는 걸어서 들어가야 했다. 돈이 많은 여행자라면 택시(사진에서 초록색)를 타겠지만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스위스에서도 또 유명한 째르마트니 감히 가격을 알아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다행히 마을이 크지 않아서 걸어 다닐만하다. 무거운 배낭을 앞뒤로 매고 여행한지 5개월이니 걷는다는 것에 대한 점점 부담은 줄어들고, 걸을만하다고 인식되는 거리는 점점 늘어났다. 내일은 처음으로 알프스 트래킹을 한다는 기대로 마음이 한껏 들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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