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은 구름이 조금 있긴 했지만 어제보다 날씨가 많이 좋아져서 숙소 주변의 산들도 잘 보였다. 융프라우에서는 산악열차를 타고 융프라우요흐까지 올라가서 융프라우와 산들의 전경을 보는 것이 가장 유명한 코스다. 하지만, 나는 낮은 곳이라도 내 발로 다니면서 보고 느끼고 싶었기 때문에 트래킹을 하기로 했다.



숙소에서 보는 전망이 정말 기막히게 좋았다.




트래킹을 하더라도 그린델발트에서부터 시작하면 당일치기로는 어려우니 케이블카의 도움을 받아야한다.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길에서 보는 전망도 정말 멋있었다.

전형적인 스위스 풍경이 마치 달력 사진 같았다.



스위스를 여행한 기간은 총 8박 9일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동안 케이블카를 몇 번이나 탓는지 기억도 할 수 없다. 그동안 살면서 탔던 케이블카보다 몇 배는 많이 탔을 것이다. 물가가 비싼 스위스다보니 케이블카 요금도 당연히 비싸다. 가장 높은 곳까지 가려면 여러번 갈아타야 하는데 올라가려는 높이에 따라 요금도 차이가 많이 난다. 버스나 지하철 표를 사듯이 케이블카 매표소에서 지도를 보며 노선과 도착할 정류장을 보고 표를 사야 한다. 



트래킹을 시작할 곳에 내리니 이미 수목한계선 위로 올라왔는지 나무는 보이지 않는데 너른 풀밭에 노란 꽃이 흐르러지게 피어있었다. 한 송이는 작고 볼품없는 꽃이지만 이곳저곳 무리지어 피어있으니 하늘, 구름, 풀, 꽃의 색들이 어우러져 보기 멋진 풍경이 만들어졌다.







약간 도드라지게 높이 솟아 있어서 주변을 조망하기 좋은 언덕에 올라왔다. 이 주변에서야 언덕 같이 느껴지는 높이지만 실상은 2000미터가 훨씬 넘는 곳이다. 여기에 앉아 거대한 산봉우리를 보고 있으니 인간의 왜소함, 나약함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인간의 위대함은 인간 개개인의 힘이 아니라 개인이 뭉쳐서 이뤄진 사회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압도적인 자연과 마주하고 있으면 왠지 겸손해지는 것 같다.




이곳에는 까마귀가 무척 많았다. 제주도에서 자주 보이는 커다란 까마귀가 아니라 부리는 노랗고 발은 빨간 작은 까마귀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해코지하지 않으니 사람을 겁내지 않았다. 불과 1,2미터나 떨어져있었을까? 사진 찍어보라는 듯 포즈까지 당당하다.


이날은 하늘에 구름이 많지는 않았지만 하필이면 대부분 낮은 구름이라 산허리에 항상 구름을 두르고 있었다. 그래도 없어지겠지 하는 희망을 갖고 트래킹을 시작했지만 결국 융프라우는 하루종일 구름을 두르고 봉우리를 보여주지 않았다.



작고 볼품없는 꽃들이지만 수많은 꽃들이 모여서 온 들판을 노랗게 물들였다.

인간도 모이고 합심해야 큰 일을 할 수 있는건 마찬가지다.


산을 찍고 있는데 하필 앞에서 꼬마 트래커가 지나가다 뭔가를 줍다가 사진에 찍혔다. 우연히 찍힌 사진이지만 이 사진이 참 마음에 들었다. 


트래킹 코스가 무척 다양하고 많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도 무난히 걸을 수 있는 코스도 많다. 서양 사람들과 동양 사람들의 자식들 교육 방식이 다르고, 사람마다, 가정마다 많이 다르지만 서양 사람들이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는게 나는 무척 좋게 느껴졌다. 가족이 여행을 하는 경우에 대부분의 서양 사람들은 아이들에게도 각자 짐을 맡도록 하고 있었다. 아주 어린 아이라면 가방에 좋아하는 인형이라도 넣어서 들게 했다. 아이들때부터 각자 짐의 무게를 느끼고 이겨내게 하는 듯하다. 좋아하는 것들을 무리해서 다 가지고 갔다가 짐의 무게로 힘든 경험을 하게 된다면 욕심을 절제하는 방법도 스스로 깨닫게 되리라 생각된다.


아주 잠깐 봉우리가 모습을 보였다 금새 사라졌다.











트래킹 종점은 융프라우요흐까지 다니는 산악열차의 중간역이다. 여기서 열차를 타고 그린데발트로 돌아왔다. 트래킹 코스는 무척 평탄해서 걷는 재미만을 생각하면 오히려 심심한 편이지만 경치가 무척 아름답고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야생화가 이곳저곳에 흐드러지게 피어있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여름에 융프라우를 찾는 여행자라면 하루쯤 시간을 내어 트래킹을 해보길 추천하고 싶다.


저녁은 그린데발트 마트에서 장을 봐서 숙소에서 만들어 먹었다. 놀라운 것은 그 물가 비싼 스위스지만 마트에서 사는 먹거리 재료들은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더 쌌던 것이다. 스위스에서 방목해 키운 소고기는 어떤 맛일지 궁금해서 스테이크 1인분 크기의 소고기를 샀는데 만원이 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샐러드용 채소와 치즈도 무척 쌌다.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에 서비스를 받는 것들은 따라서 비싸지지만 원재료들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저렴한 것이다. 햄버거 세트 메뉴가 1만 5천원이라는 말도 안되는 가격이지만 집에서 스테이크를 만들어 먹는데 드는 비용은 햄버거 세트 메뉴를 사는 금액보다 훨씬 적게 든다.


우리나라의 교통비가 싼 것은 물가지표를 올리지 않으려 요금은 억제하면서도 대중교통을 담당하는 기업이나 기관의 손실분을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정부의 꼼수일뿐이다. 사실 우리는 지원하는 그 세금만큼의 교통비를 더 지불하면서 타고 다니는 것이다. 게다가 식재료, 의복, 주거비는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비싸다.(특히나 식재료는 내가 다녀 본 어떤 나라보다 비싸다) 다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력들의 인건비가 과도하게 저렴하기 때문에 서비스 비용을 합하더라도 다른 나라보다 저렴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고 있다.


최저임금을 대폭 올려주고서 정작 정부가 잡아야 할 것들은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로하는 의식주와 관련된 물가들이다. 가진 사람들은 살기 편하고 없는 사람들은 살기 힘든게 우리나라 경제 구조다. 뭔가 심하게 잘못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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