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렝께로 가는 날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의 날씨는 무척 좋았다. 방문했던 멕시코 도시 대부분에서 날씨가 좋았지만 여기서는 춥고 흐린날도 있었는데 떠나는 날에 날씨가 좋아지다니... 이건 무슨 법칙 같다.
버스터미널에서 나초를 팔고 있길래 호기심이 생겼다.
나초봉지만 내어줄거라 생각했는데 치즈맛 소스와 함께 그럴듯하게 담아준다.
가격은 기억나지 않지만 비싸다면 샀을리가 없다.
떠나는 날은 항상 날씨가 좋아진다.
터미널 주변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머릿속에서 사라졌지만 버스를 기다리며 햇살에 눈부셔했던 기억난다.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와 빨렝께는 같은 치아파스 주에 속해있어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진 않다. 구글맵에서는 두 도시사이 거리가 200km가 조금 넘고, 시간은 4시간 정도 걸린다고 나온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버스는 구글맵에서 검색되는 시간보다 훨씬 더 걸렸다. 게다가 해발 2200m가 넘는 곳에서 60m 밖에 안되는 팔렝께까지는 멕시코 고원지대를 넘어야했다.
주위에 민가도 없어보이는데 자그마한 시골학교가 도로가에 위치해 있다.
고산지대라 넓직한 운동장을 만들 장소도 없었는지 시멘트로 포장된 농구장과 단층 건물이 전부다.
워낙 시골이라 번듯한 집은 아니지만 드문드문 작은 마을이나 민가가 보였고, 그 마당에는 많은 빨래가 널려있다.
아파트가 전국을 점렴하기 전 우리네 모습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버스는 아직도 고원을 달리는데 해는 이미 기울기 시작했다. 낯선 곳에서의 석양은 항상 여행자의 마음을 침잠하게 한다.
빨렝께에 도착하니 이미 어둠이 깊게 내려앉았다. 전날까지 밤이 되면 쌀쌀했던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와는 달리 빨렝께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덥고 습한 공기가 훅하고 밀려왔다. 이곳은 밀림속에 위치한 전형적인 열대기후였다.
밤에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안전문제도 있지만 목적지를 쉽게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인적이 드문 작은 도시에서는 길을 물어 볼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고, 방향을 정하기도, 표지가 될만한 게시판이나 건물을 찾기도 어렵다. 빨렝께에서도 그랬다. 길가에 가로등도 없는 길을 전날 스마트폰에 캐싱해 둔 구글맵만 보고 한참을 헤매서야 겨우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갑작스런 온도변화와 어두운 길을 무거운 배낭을 멘 채 긴장하며 걸었던 탓에 이미 몸은 진이 다 빠졌다. 식욕도 크게 일지는 않았지만 끼니를 거른다면 내일은 더 힘들어질거라는 생각으로 다시 어두운 길로 나왔다.
숙소 주변을 돌아다녔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현지인들이 많이 찾을 것 같은 식당은 보이지 않았다. 주위에는 제법 규모가 큰 레스토랑만 몇 군데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이 시간에 멀리 찾아가기도 어려우니 오늘 저녁식대는 제법 나갈 각오를 하고 숙소근처의 해산물 레스토랑에 무작정 들어갔다.
메뉴를 보니 다행히 가격이 그리 비싸진 않았다. 그리고, 레스토랑에 들어와 앉으니 그제야 몸에서 시장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떤 요린지 알지는 못하지만 대충 영어로 된 설명을 보고 새우요리와 생선요리를 하나씩 시켰다.
레스토랑에서 주는 식전빵이 멕시코에서는 나초와 소스가 대신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돈을 지불해야 먹을 수 있는 나초가 공짜로 무한정 리필된다. 게다가 바삭한게 꽤 맛있다.
식사를 시키고 조금 기다리니 새우요리가 먼저 나왔다. 크지는 않지만 제법 많은 새우가 야채와 새콤한 라임소스, 고춧가루와 버무려진 샐러드였다. 적당히 익혀져서 퍽퍽하지 않은 새우와 새콤한 소스가 꽤 잘 어울렸다. 메뉴판의 설명과 조금 다르다 싶었지만 멕시코 요리에 대해 아는게 없으니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맛있게 먹었다.
문제의 무료 제공 샐러드. 공짜치고는 양과 질이 너무 훌륭해서 착각할 수 밖에...
그런데 잠시 후에 자작한 소스에 제법 큰 새우와 치즈가 올려진 요리가 다시 나왔다. 뭔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분명 요리는 2가지를 시켰는데 벌써 새우요리만 2가지가 나왔고, 이미 나온 둘 중에 한가지는 잘못 나온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나온 요리가 잘못 나온 것이라면 그건 이미 다 먹어버렸고, 두번째 나온 요리가 잘못 나온 것이면 먹지말고 물려야 한다. 지나가는 웨이터를 불러 손짓발짓을 섞어 열심히 설명을 하니 처음엔 이해를 못하는 표정이다가 나중에야 이해하고 알려주었다. 먼저 나온 요리는 돈을 받는 요리가 아니라고...
세상에, 공짜로 나온 나초만해도 좋다고 신나게 먹었는데 새우가 듬뿍 들어간 샐러드도 그냥 제공되는 것이라니... 그제서야 두번째로 나온 새우요리도 먹기 시작했다. 여행 중 대부분의 지역에서 비싸서 엄두를 내기 힘들었던 새우를 멕시코에서는 레스토랑에서 포식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생선요리는 큼직한 접시 위에 알루미늄 호일로 싸여있었다. 알루미늄 호일을 젖히니 다시 바나나잎인 듯 보이는 커다란 잎이 나왔다. 이파리까지 벗기자 따뜻한 소스에 잘 익은 생선요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생선요리에도 커다란 새우가 제법 많이 들어가 있었다.
비리지도 않았고 촉촉한 생선살이 꽤나 훌륭했다.
게다가 멕시코 요리는 전혀 느끼하지 않아서 한국사람들 입맛에 아주 잘 맞는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빨렝께의 해산물 레스토랑은 감동적이었다. 칠레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해산물이 무척 비싸거나 해산물 요리 자체가 별로 없었다. 여행하면서 워낙 해산물을 못먹고 다닌 탓도 있지만 빨렝께에서 이렇게 저렴하게 이런 훌륭한 해산물 요리를 먹을 수 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가격도 무척 저렴해서 인당 만원 안팎으로 이 요리들을 더 이상 먹기 힘들정도로 먹었다.
마야유적을 볼 목적으로 방문했던 빨렝께의 첫인상은 아이러니하게 해산물 레스토랑 때문에 상한가를 기록하게 되었다. 멕시코가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빨렝께는 바다에 접한 도시는 아니지만 멕시코만과 그리 멀리 떨여져있지는 않아서 해산물이 저렴한게 아닌가 싶다. 나중에 멕시코 유카탄 반도를 여행하며 알게되었지만 멕시코 남부 해안도시에는 새우가 무척 쌌다. 멕시코만에는 새우가 많이 잡히는 것 같다. (예전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에서도 검프가 멕시코만에서 새우잡이 사업으로 성공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실제로 '검프 쉬림프'라는 이름의 레스토랑 체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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