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렝께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이튿날 아침에 메리다에 도착했다. 야간버스를 신물나게 타왔고 이미 몸도 적응을 했음에도 다음날 힘든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서둘러 숙소를 잡고,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까지 먹었음에도 좀처럼 나갈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괜스레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바깥이 시끌벅적해졌다.


마침 숙소로 잡은 곳은 메리다 대성당이 있는 광장(Plaza de la Independencia)과 바로 접한 곳이었다. 보통은 시끌벅적한 곳보다는 여행자들의 평점이 높고 조용한 곳을 선호하는데 이번에는 뜻대로 되지 않은데다 야간버스 영향으로 몸이 피곤해서 다른 곳을 다시 찾기도 싫어서 그냥 지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시끄러워지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숙소 건물의 광장쪽으로 난 베란다에 나와서 보니 악대가 선두에 서고 그 뒤로 흰옷에 하늘색 깃발을 든 사람들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 뒤로 사람들이 가마에 뭔가를 둘러메고 오는게 보였다.




이미 스페인에서부터 남미의 여러나라를 거치는 동안 여러차례 비슷한 광경을 봐왔기에 성모나 성인상을 메고 거리행진을 하는 것인 줄 알고 있었다. 일년에 한번, 그 성인의 날에 하는 것으로 들었는데 성당도, 성인도 많아서 그런가 어째 너무 자주 보는 것 같았다. 





베란다에서 행렬을 한참 구경하고 나니 몽롱했던 정신도 돌아왔다. 우선 점심을 먹고 메리나 구경에 나서기로 했다.



멕시코 레스토랑의 기본셋팅이다. 양파,고추,토마토로 만든 샐러드와 녹색과 붉은색의 소스 두가지, 그리고 나초.



점심메뉴는 타꼬와 몰레가 같이 나오는 치킨 바베큐 요리였다. 지금보니 이 날의 몰레는 밭앙금하고 똑같아 보인다.


메리다의 첫 방문지는 숙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몬테호의 집이었다.1542년 지어졌다는 이 집은 멕시코 유타칸 지역의 통치자였던 스페인 사람 몬테호가 살았던 곳이다. 지금은 보존되어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박물관처럼 쓰이고 있었다.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는지 내부를 찍은 사진이 없다. 규모가 크진 않아서 둘러보는데 시간이 걸리진 않는데 특이하게도 뜰에 여러가지 귤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생전 처음보는 거대한 귤이 열린 나무도 있었는데 지난달 중국 윈난성에 가니 이와 비슷한 크기의 귤을 팔고 있었다.



귤이 멜론만큼 크다.


몬테호의 집에서 나오기 전 기념품 코너에서 구경하다가 갑자기 엄지발가락이 따끔해서 보니 바닥에 벌이 한마리 버둥거리고 있고 발가락 위에 침이 꽂혀 있었다. 맨발에다 흔히 조리라고 하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어째서 벌이 발가락에 침을 놓았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벌은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그랬겠지만. 부으면 어쩌나 했는데 여행하는동안 모기, 빈대 등에 수없이 물리면서 벌에도 내성이 생겼는지 작은 표시 외에는 별다른 증상없었다.


메리다 대성당(Catedral de Merida)


다음으로 간 곳이 어디였는지 사진을 봐도 모르겠다. 여러가지 회화작품 전시되어 있었고, 건물 내부에는 벽화들이 그려져 있었다. 강렬할 인상의 벽화 때문에 다른 회화작품은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구글에서 찾아봤지만 결국 어딘지 찾지 못했다.


멕시코만큼 벽화를 좋아하는 나라도 드물 것 같다. 전국 곳곳의 시청사나 미술관 등 많은 공공건물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물론 순수미술은 아니고 국민을 깨우칠 목적이거나 혹은 작가의 사상이나 이념을 전파할 목적으로 그들의 고대와 근대사를 그린 벽화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강렬한 힘이 느껴져서 꽤 인상적이다.






여기가 어디였더라... 용량과 저장시간이 유한한 기억력을 너무 믿었나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돌아보는 것은 체력소모가 많다. 크지 않은 미술관이었지만 역시나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잠시 쉬어가려고 메리다에서 유명하다는 소르베 가게에 앉았다. 이곳은 구글맵을 보니 어딘지 기억이 났다. 가게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고 대략적인 장소와 구글맵에 뜬 사진을 보니 바로 알 수 있었다.


숙소가 있는 광장(Plaza de la Independencia) 북쪽면에 접해 있는 'Dulceria y Sorbeteria Colon Centro' 다. Dulceria는 제과점, Sorbeteria는 소르베 가게이니 '도심에 있는 제과와 소르베 파는 가게'라는 뜻인가보다.(Colon Centro는 스페인 점령기에 스페인인들이 건설한 도시의 중심지역을 뜻하는 말 같다.)


이날 먹었던 망고 소르베. 나쁘진 않았으나 나에게 소르베를 포함한 최고의 아이스크림은 역시나 피렌체의 '그 집'이다.


어느새 메리다에 어둠이 내렸지만 메리다의 하루가 끝나려면 한참은 더 있어야 한다. 재미있게도 메리다에서는 매일 저녁에 요일별로 정해진 공연들이 정해진 장소에서 펼쳐진다.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그날 공연이 펼쳐진다는 공원으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공원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히 먹을 것을 사서 나오니 예상외로 너무 조용해서 잘못 온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거리는 어두침침하지만 다행히 공원에는 가로등이 밝혀져 있었다. 그런데, 너무 조용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공원 안쪽으로 들어갔더니, 음악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춤추는 모습이 보였다. 화려한 무대는 아니지만 여러 명의 연주자들이 내가 모르는 (멕시코 음악?)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고, 꽤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뒤편에는 좌석이 마련되어 있어서 앉아서 음악을 듣거나 음악을 듣다가 흥이 나면 무대로 나가서 춤을 췄다.





이 날의 주인공은 붉은 셔츠를 입은 할아버지와 검은 바탕에 흰 무늬 원피스를 입은 할머니였다. 꽤 고령으로 보이는 두 분은 거의 쉬지 않고 음악이 나올 때마다 춤을 췄다. 이제는 날렵한 몸동작이나 현란한 기술을 보여줄 수는 없지만 열정만큼은 다른 사람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매료되어 한참동안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춤동작이 귀여우면서도 아름답게 보였다. 지금까지 춤추는 모습은 보더라도 내가 추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저렇게 춤을 추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갈 수 있다면 탱고를 배워볼까?


아름다운 춤은 댄서의 현란한 기술과 스텝에 의해 나오는건 아닌 것 같다. 나는 이 날 두 분들의 춤이 정말 아름다웠다고 생각한다.




공연은 꽤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었다. 늦은 시간이라 숙소로 돌아오면서 조금 긴장이 되었지만, 매일매일이 축제인 메리다에서는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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