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리장꾸청 둘러보고 다음으로 간 곳은 꾸청의 북쪽에 있는 수허고전(Shu he gu zhen, 束河古鎮)이었다. 리장꾸청 근처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근처에서 내린다음, 표지판을 보고 조금 걸어가면 수허고전에 닿을 수 있다.


먼저 이렇게 생긴 문이 나오면 계속 쭉 걸어들어간다.


수허구전임을 나타내는 고풍스러운 문이 나타난다.



어제도 날씨가 나쁘진 않았지만 오늘은 하늘이 화창하게 개었다. 리장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구름이 걷힌 위룽쉐산 봉우리를 볼 수 있었다. 내일은 위룽쉐산에 갈 예정인데 계속 날씨가 맑기를 바랬다.



리장은 아직도 한족보다 소수민족들이 더 많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여러 소수민족들 중에서도 나시족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 나시족의 언어로 수허구전을 '사오우'라고 하며 '높은 봉우리 아래에 위치한 촌락'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수허고전이 역사적으로 가치있는 이유는, 이곳이 윈난에서부터 티벳 라싸까지 이어진 차마고도의 여러 마을 중에 아직도 완벽하게 보존된 거의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두산백과 참조) 그리고, 1997년 리장꾸청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나시족 전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칼을 만지면 행운이 있다는 속설이라도 있는지 칼만 반질반질했다.


윈난북부지방에 살았던 소수민족들은 거친 자연에 터전을 잡고 살아오면서 다른 민족들과의 전쟁 또한 수시로 벌어졌기에 성향이 매우 호전적이었다고 한다. 순수하고 착하지만 자신의 굴욕은 참지 않기 때문에 지금도 종종 사건사고가 발생한다. 뒤에 샹그릴라의 숙소 주인에게 들은 바로는 굴욕을 참는 것보다 감옥에 가더라도 그것을 갚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실제로 리장을 벗어나 샹그릴라나 더친 같이 작은 도시로 들어가면 허리에 작은 칼을 차고 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수허구전에도 소원을 비는 나무판들이 수없이 매달려 있었다.


수허구전 입구에서 천천히 걸어들어가면 리장꾸청과 마찬가지로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곳곳에 건물들이 세워지고 있어서 이곳도 곧 리장꾸청처럼 변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을 벗어나 외곽에서부터 수허구전을 한바퀴 돌기로 했다.


오전부터 열공하는 중국 어린이



이곳에도 곳곳에 웨딩촬영을 하는 커플들이 있었다. 붉은 색을 좋아하는 중국인 특성상 신부의 드레스도 대부분 붉다.


할머니와 아침장을 보고 돌아가는 아이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할머니 주위를 춤추며 빙빙 돌았다.


레스토랑과 까페들이 늘어선 거리. 수허구전도 절반쯤은 '리장化' 되었다.


많은 까페나 식당 중에서 눈길을 끌었던 곳. 다른 곳보다 오래되어 보이는 집과 담쟁이 덩굴이 인상적이었다.




웨딩촬영하던 커플은 장소를 옮기는 중에도 떨어질 줄 모른다.


완벽하게 관광지로 바뀐 리장과 달리 수허구전은 아직도 사람 사는 냄새가 많이 남아있다.



하루 장사를 준비하는 엄마 옆에서 공부하는 아이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3,40년 전에 우리 모습이, 내 모습이 저랬을거다.


수허구전내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지우딩롱탄(九鼎龙潭, 구정용담)이라고 부르는 연못에 도착했다. 수허구전에서 가장 중요한 곳인 듯, 연못 뒤편으로 오래된 돌다리와 룽취안시(龙泉寺, 용천사)가 있다. 맑고 잔잔한 수면에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와 하늘이 거울처럼 비치고,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이 연못 주변으로는 많은 젊은이들이 캔버스를 세워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미대생인지, 지망생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수십명은 될 것 같았는데 재밌게도 대부분은 수묵으로 그림을 그렸다.





수허구전의 한적한 길을 걷다가 맘에 드는 커피숍을 보고 들어가서 주인을 불렀지만 나오는 사람은 없고 청소하는 소리와 라디오 음악소리만 들려왔다. 사람들이 많지않은 시간이라 아쉽게도 영업을 시작하지 않은 듯 했다. 커피숍 담에 매달린, 고목으로 만든 자연친화적인(?) 화분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예전 여행 중에 야자열매 껍데기를 화분으로 썼던 라오스 루앙프라방의 예쁜 집들이 생각났다.


행복한 얼굴의 남자가 예닐곱살된 아들을 태우고 밀며 가던 손수레를 시멘트 턱에서 들어 옮겨주고 '쎄쎄'하는 인사를 받았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지나가는데 조금 떨어져오던 그의 아내가 이방인에게 수줍게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중국 사람은 조금 시끄럽고 자기 중심적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지만, 현지에서 본 어떤 중국사람들은 친절하고, 잘 웃고, 감사를 표할 줄 아는 사람들도 많았다.



늪지같은 곳을 빙 둘러 지나가는데 한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서 보니 몇몇 남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동네에 사는 나이 지긋한 분들의 사랑방 같은 곳인지 우거진 나무그늘에 여러개의 소파와 의자를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새소리가 많이 들려 찾아보니 나무에 새장을 걸어놓은 곳이 여기저기 보였다. 새소리를 들으며 나무그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게 수허구전에 사는 이들이 노년을 보내는 방식인가보다.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 처마 위에 인형처럼 생긴 무언가를 얹어놓은 곳이 많이 보였다. 악귀를 막는 도깨비 같은 것인가?


짐을 싣고 차마고도를 다니던 말들이 지금은 관광객을 태우고 투어를 다니고 있다.


수허구전에는 차마고도에 대한 작은 박물관도 있다고 했는데 바이두앱에서 검색도 잘 안되고, 구전 입구에서 봤던 허술한 관광지도로는 찾기도 쉽지 않아서 포기했다. 수허구전은 적어도 리장보다는 훨씬 옛모습이 남아있는 곳이었다. 이미 꾸청에 숙박을 정해놓고 왔기에 바꿀 수 없었지만 리장에 여행을 오면 수허구전에서 묵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는 꾸청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흑룡담 공원에 들렀다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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