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컴컴한 새벽녁, 밤새 놀다지쳐 잠든 도미토리 여행자들을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짐을 챙겨서 숙소를 나섰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한참 가다보니 뿌옇게 밝아오다 해가 떠올랐다. 마지막 여행지로 떠나기 때문인지 그날따라 유독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싱숭생숭한 마음도 고픈 배는 어쩌지 못하는지 공항 푸드코드에서 일본 라면을 먹었다. 오클랜드는 여름에도 새벽녘에는 쌀쌀했기 때문에 뜨끈한 것이 먹고 싶었다.


늘 그렇듯이 뉴질랜드를 떠나는 날은 다른 날보다 화창하게 맑았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등장인물들로 재미나게 구성한 뉴질랜드 항공사의 기내방송


미국 LA에서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올때, 오클랜드에서 시드니로 갈때 뉴질랜드 항공사를 이용했는데 이 항공사의 기내방송이 무척 재미있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촬영장소이자 감독 '피터 잭슨'의 고국답게 기내방송에 '반지의 제왕'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실제 연기했던 배우들은 아니고 간달프, 골룸, 레골라스 등으로 분장한 승무원들이 등장한다. 안전수칙, 비상상황 대처요령을 설명하는 기내방송은 어느 항공사나 비슷하기 때문에 탑승객들이 보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이 기내방송은 등장인물들이 상황에 맞춰 연기를 하기 때문에 꽤 재미있다. (진짜 피터 잭슨인지 그와 비슷한 인물도 잠깐 등장한다.)


포털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보니 뉴질랜드가 '반지의 제왕'의 무대로 알려진 뒤에 뉴질랜드를 찾는 관광객이 증가했다고 한다. 여행하던 시기가 영화 '호빗' 첫편이 개봉할 무렵이었는데 그 뒤에 '호빗'을 이용해 다시 기내방송을 만들었다는 기사도 있었다. 그 내용에 대한 우리나라 언론의 기사제목이 '호빗이 기내방송... 영화 우려먹는 뉴질랜드 항공' 이었다. 남이 잘하는걸 배아파하는 꼴이다. 우리나라 항공사들은 우려먹을 것이 있는지나 찾아봤을까, 매출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기내방송을 바꿀 생각이나 해봤는지 궁금하다.


여행하는 동안 거의 볼 수 없었던 우리나라 국적기를 뉴질랜드에서 보았다. 당시에는 반가워서 찍었는데 그뒤 땅콩회항 사건이 나고 그룹일가의 '갑질'이 불거지면서 기피 항공사가 되었다.

앞으로 대한항공을 탈 일은 없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곧게 뻗은 해안선을 따라 흰색 포말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보고있으니 자연의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비행기 창밖으로 나폴리, 히우 지 자네이루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이자 이번 여행의 마지막 여행지인 시드니가 보였다. 복잡한 해안선이 아름답게 펼쳐져있긴 했지만 생각보다 빽빽하게 들어찬 빌딩과 집들이 조금은 숨막히게 보였다.


구불구불한 만에 빽빽하게 들어찬 요트들을 보니 교통체증이라도 생길 것 같다.


하늘에서 본 오페라 하우스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시드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난감한 상황에 부딪혔다. 연말연초는 호주 사람들에게 최대의 휴가철이어서 시드니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나 저렴한 숙소들에 남는 침대가 없었다. 공항에 있는 여행자 인포메이션을 통해 알아봐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인포메이션에 앉은 여자 안내원은 불친절했다. (영어에 서투른 여행자가 영어권 국가에서 종종 겪는 일이다. 영어권 국가 사람들은 영어를 쓰지 않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모른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비영어권 사람들끼리도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려고 관심어린 눈으로.상대의 표정을 읽는데, 영어권 국가에서는 이런 친절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하고 시드니에 도착한 사람들이 꽤 있었고, 그 중에는 한국인 여행자들도 있었다. 어디선가 공항 직원이 나타나서 자기가 아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를 소개해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다행히 한국 게스트하우스 주인과 연결되었고, 픽업을 나오기로 했다. (공항직원은 게스트하우스 주인들에게 소개비를 받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의 친절을 감사하며 받아들였지만 결과적으로 최악의 선택이 되었다.)


도착한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첫인상이 무척 좋았다. 승합차에 사람들을 태워 데려가면서 시드니의 신년축하 불꽃놀이가 세계 3대 불꽃놀이라며 어제 도착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둥, 시드니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며 분위기를 좋게 만들었다. 다분히 정치색을 띈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는 되도록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그 성향이 꽤나 맞았기에 호감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도착한 게스트하우스 상태와 바가지 요금을 보고 그 호감도는 단번에 사라졌다. 그는 단지 여행자를 속여서 장사하는 속물 장사꾼일뿐이었다.


숙소에 도착하자 여행자들을 매니저에게 인수인계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 뒤로 이 사람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일단 방을 보여주기 전에 입구에서 미리 방값을 지불하게 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그런 경우는 없었다. 요금을 선불로 받기는 하더라도 방을 보여주고 여행자가 선택하도록 하는데 요금을 내고 방에 가던가 아니면 나가라는 식이었다. 게다가 요금도 성수기라며 정확히 평소 요금의 두배를 요구했다. 이때 게스트하우스의 상태가 엉망임을 처음에 알아차리고 나왔어야했다. 성수기라 갈만한 숙소가 없을거라는 생각과 설마 한국인 주인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숙소를 운영하며 뒤통수를 치겠는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해버렸다. 사흘치 요금을 지불하고 머무르기로 했다. (가격은 물가가 높기로 악명높은 스위스의 게스트하우스보다 훨씬 비쌌는데 시설은 관리하지 않는 공공화장실과 특급호텔 화장실만큼 차이가 났다.)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을 밝힐 수는 없다.(이름도 모른다. 이름이나 있는지, 등록은 된 숙소인지도 의심이 든다.) 이 숙소에 대해 길게 쓸 마음도 없다. 매트리스에는 구멍이 다섯군데쯤 나 있었고, 그 구멍으로는 끊어진 스프링이 튀어올라와 몸을 찔렀다. 다음날 이상하게 몸 여기저기가 아파서 보니 스프링이었던 철사가 매트리스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숙소는 전등도 제대로 없고 청소는 전혀 되지 않는지 카페트에는 온통 음식물 쏟은 자국과 여러가지 얼룩이 수없이 있었다. 무엇보다 최악이었던 것은 빈대가 많아서 몸 수십군데를 물린 것이다. 빈대에 물린건 두번째였는데, 빈대에 물렸다니 본인이 운영하는 숙소에서 물린 것도 아님에도 병원에 연락해 의사를 불러준 아르헨티나의 숙소주인에 비해 이 한국인 숙소는 아무런 조치도 신경도 쓰지 않았다. 빈대에 물리거나 죽은 빈대를 발견했던 몇몇 숙소들에 비해서도 이곳의 청소상태는 최악이었다. 


이틀 후, 선불로 지급한 사흘치 방값에서 하루치를 포기하고 나가면서 빈대에 물렸다고 하니 매니저는 '아, 그랬어요? 그러게 좀 더 비싼 방을 쓰지 그랬어요.' 란다. 기가찼다. 첫날 픽업을 했던 주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런 의욕도 없어 보이는 (혹은 착취당하고 있는) 매니저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당시에 찍어 둔 숙소의 지저분한 사진(매트리스를 뚫고 튀어나온 스프링과 빈대들이 터진 핏자국)들이 있지만 여기에 올리면서 다시 그때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다.


캄캄하고 지저분한 숙소에 머무르기 싫어서 새벽에 일어나 비행기를 타고 도착해 피곤한 몸을 억지로 끌고 밖으로 나왔다. 습하고 깜깜한 숙소와 반대로 밖은 뜨겁고 강렬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사해일가. 이 말만큼 중국인들의 현지화 능력(속된 말로 장사꾼 기질)을 잘 나타내는 말도 드물 것 같다.


숙소에서 시드니 항구쪽으로 걸으면 차이나타운이 나왔다. 중국인들은 세계 곳곳에서 그들이 사는 지역에 붉은색 문을 세워 그곳이 차이나타운임을 알린다. 유럽에서도, 남미에서도 차이나타운은 말그대로 커다란 타운을 형성하고 있었다. 전에는 굳이 자신들의 지역임을 알리고, 정체성을 강조하는 이런 모습이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았다. 현지에 녹아들지 못하고 자신들끼리 무리지어 사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건 중국인들에 대한 선입견을 가진 어설픈 판단이었다. 중국인들만큼 현지 문화에 잘 녹아들면서도 자신들의 문화도 잘 계승하는 민족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민족들은 다수가 포함된 그 지역의 문화에 쉽게 융화되어 버리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겉돌거나 둘 중에 하나인데 중국인들은 오히려 자신의 문화를 주위에 녹여 퍼뜨린다. 놀라울 정도로 현지 적응을 잘하는 사람들이다.



여러가지 문화 중에서 가장 쉽게 타문화에 녹아들 수 있는 게 식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국 음식들은 엄청나게 비싸보이는 해산물부터 10달러 미만의 면요리까지 다양했다. 그리고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현지 호주인과 중국인부터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까지 다양했다. 근처에는 한국음식점도 몇몇 군데 있었지만 현지화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곳이었다. 일단 음식을 파는 대상이 시드니에 있는 한국 기업의 주재원들이나 한국에서 온 패키지 관광객으로 보였다. 가격은 엄청나게 비싸서 한국 생맥주 피쳐와 치킨 한마리가 50달러 이상이었다.(도대체 왜 호주까지 와서 하이트 생맥주와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을 먹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심지어 어떤 한국 식당에는 20달러 이하의 메뉴는 없다고 출입구에 붙여 놓고 있었다. 김치찌개나 순두부조차도 2만원이 훨씬 넘는 가격이었다.(당시 환율로는 2만 5천원, 많이 내린 지금 환율로도 17,000원이 넘는다.) 20달러면 호주인들에게도 한끼 식사로 큰 금액일 것이다. 고급화 전략을 쓰는 것도 아닌 일반 식당의 음식가격이 그정도이면 현지화가 될리가 없다. 한국음식은 그렇게 현지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일부 한국사람들을 위한 메뉴로 겉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당시 정부는 한식의 세계화를 한답시고 해외 지하철 광고판에 김치와 불고기를 광고해서 해외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외국의 어떤 나라가 우리나라에서 비싸서 먹기도 힘든 음식을, 혹은 들어보지도 못한 음식을 강남역 지하철 광고판에 선전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정말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음식의 1/3가격에 팔고 있는 중국식당의 면요리. 가까이에 한국음식점이 있음에도 이곳을 찾을 수 밖에 없었던 나를 비롯해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중국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중국의 음식과 문화를 배우게 된다.


호주의 토종 조류인듯한 새가 공원을 어슬렁거리며 먹이를 찾고 있다. 꽤나 큰 새임에도 사람도 새도 서로를 신경쓰지 않았다.







관광객들을 위한 볼거리를 패키지로 묶어 팔고 있었는데 이런 볼거리에 흥미가 없는 나에게 시드니는 매력없는 대도시일뿐이었다.


어두침침하고 지저분한 숙소를 나오면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에 눈이 부시고, 거리는 깨끗하고 사람들은 평온해 보였다. 그렇지만 나에게 시드니는 그 도시만의 독특한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밍숭맹숭한 대도시의 느낌이었다.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항구를 따라 난 길을 걸어서 시드니의 랜드마크인 오페라하우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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