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서 출발한 버스는 어딘지 모를 황량한 버스 터미널에 여행자들을 내려줬다. 밤새 불편한 버스에서 몸을 구긴채 보낸 여행자들은 아직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다시 다른 버스에 올라탔다. 이스탄불에서 출발한 버스는 괴레메가 마지막 목적지가 아니라서 괴레메 근처에 여행자들을 내려놓고 최종 목적지로 다시 출발하는 듯 보였으며, 여기서 괴레메까지는 작은 버스를 타고 조금 더 가야하는 것이었다.
괴레메에 도착해서는 짐을 내려놓고 한숨 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부랴부랴 숙소를 찾았다. 중심지와 조금 떨어져있긴 했지만 적당한 가격의 숙소를 구하고, 숙소에다 저녁에 로즈밸리 투어를 신청하고서는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점심시간 직후 잠에서 깨어 주린 배를 채우러 나왔다. 터키의 또다른 유명 음식 항아리 케밥을 시켰더니 정말로 항아리 같은 걸 갖고 와서는 윗부분을 깨줬다. 조그만 토기 안에 고기와 야채를 채워서 봉인한 다음 불에 익힌 음식이었다. 토기가 막혀있기 때문에 야채의 수분으로 익혀진 음식은 압력솥과 같은 효과가 생겨서 그 재료만으로도 꽤 맛이 훌륭했다.
하지만 나에게 항아리 케밥보다 더 입맛에 맞았던... 이름을 잊어버린 음식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이스탄불과는 또 다른 날씨였다. 바닷가여서 습하고 선선했던 이스탄불과 달리 괴레메는 건조했고 햇살이 매우 강렬했다. 햇볕 아래에서는 더웠지만 건물 안에서는 서늘하다 못해 춥기까지 했다.
처음 도착한 곳에서는 으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동네 구경을 시작했다. 사진으로 봐왔던 버섯모양의 기괴한 바위들이 동네 곳곳에 삐죽하게 솟아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바위들마다 조그만 구멍들이 뚫려있는게 신기했다.
이 작은 마을에서는 아직도 바위 산을 일부 깎아내어 주거지를 만들기도 했다. 대부분은 호텔로 이용되는 것 같은데 숙소 예약 사이트에서 이 지역의 숙소들을 검색해보면 'Cave Hotel'로 이름붙은 곳들이 꽤나 많다.
괴레메에서 근교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대부분 투어를 이용해야 하는데 투어 장소에 따라 로즈밸리 투어, 그린투어, 레드투어 등이 있다. 여행자의 기호에 따라 선호하는 투어가 다른데 나에게는 로즈밸리 투어도 매우 좋았다.
로즈밸리 투어는 오후 늦게 시작해서 괴레메 근교의 로즈밸리라 이름 붙은 골짜기를 천천히 트레킹하고 해가 질 때쯤 끝난다. 투어들 중에서 시간도 짧고 괴레메 근교이기 때문에 가격도 가장 저렴하다. 점심식사 후 동네마실 다니듯 괴레메 구경을 하다가 투어 시간에 맞춰 출발 장소에 도착했다.
그날 같이 투어를 했던 사람들은 모두 한국 사람들이었는데 신혼 여행 온 부부, 가족 여행객 등등이었다. 아마도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주로 한국 사람들을 담당하는 가이드가 따로 있는 듯했다. 버스를 타고 괴레메 근교에 도착해 간단한 설명을 듣고 트레킹을 시작한다.
이날 가이드를 했던 터키 아저씨. 과수원과 큰 식당을 가진 부자이면서도 취미삼아 가이드를 하는 듯.
한국 사람들을 가이드하면서 배운 짧은 한국말도 섞어서 유머러스하게 가이드한다.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에 자리한 이 곳은 몇 억년 전 화산폭발로 용암과 화산재가 굳어서 형성되었는데 이 바위들이 아주 부숴지기 쉬운 구조에다 이 고원의 심한 기온차이와 바람에 의해 풍화되면서 기기묘묘한 바위산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로마의 기독교 박해를 피해서 이 황량한 고원에 숨어든 사람들이었는데 7세기 경 이슬람의 침입으로 다시 박해를 받기 시작하자 부수기 쉬운 바위를 파내어 그 안에 집과 도시를 건설하고 살았다고 한다. 원래는 나무와 식물들로 덮여 밖에서 보이지 않았을 이 도시들은 풍화가 일어나면서 겉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가 로즈밸리인데 붉은 색의 바위들이 많아서 로즈밸리라 이름붙인 듯하다.
실제 사람이 살았던 곳에 들어가 볼 수 있는 곳도 있고 성화가 남아 있는 성당도 있다. 한참 걷다보면 차이와 간식거리를 파는 매점이 나오는데 이 매점도 옛날 바위산을 깎아 만들어진 곳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었다.
이 곳을 발견한 이슬람인들이 성화에서 성인들의 얼굴부분만 훼손했다.
집 내부에 있는 구멍들은 비둘기가 살았던 곳으로 마음대로 밖을 돌아다닐 수 없었던 사람들은 산과 산 사이, 도시와 도시 사이를 연락할 방법으로 비둘기를 이용했다고 한다.
산길을 벗어나 너른 들판으로 나왔을 때는 해가 저물고 있었다. 건조하고 맑은 괴레메의 파란 하늘과 붉은 저녁놀이 대비되어 이 황량하고 안타까운 역사를 간직한 이 곳을 더욱 처량하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린투어는 이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작해서 하루 종일 투어를 진행한다.(레드투어는 해보지 않았다.) 물론 로즈밸리 투어보다 더 많은 곳을 보고 배울 수 있지만 그 곳들은 관광지로 개발된 곳이라 오히려 로즈밸리가 괴레메의 분위기를 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투어라고 생각된다. 둘 다 좋은 투어였지만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로즈밸리 투어가 훨씬 더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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