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계획했던대로 숙소에서 우치사르까지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물론 쉽게 가려면 차들이 다니는 넓직한 길로 가면 되지만 카파도키아를 걸으며 보고 느끼고 싶어서 정확한 길도 모른채 그냥 나섰다. 확실히 계획 자체가 무모했다.


먼저 괴레메를 둘러싸고 있는 언덕에 올랐다. 올라서 보니 괴레메를 둘러싸고 있는 계곡들과 괴레메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햇살은 강렬했지만 아직 덥지 않은 공기로 기분도 상쾌했다.


바로 위의 사진처럼 바위산이 풍화되면서 무른 부분은 없어지고 단단한 암석부분만 남게 된다. 뾰족한 바위들이 예전에는 모두 흰색의 무른 바위들로 덮여있었고 그 위로 나무와 풀도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괴레메 시내 반대쪽으로는 로켓 모양의 많은 돌기둥들이 서있다. 보기에 따라선 조금 민망한 모양이기도 하다.


멀리 오늘 목표로한 우치사르가 보였다. 사진이 광곽으로 찍혀서 멀어보이지만 실제론 그다지 멀어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작은 물병과 단순한 간식거리만 챙겨들고 가볍운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길이 평탄하고 넓었다. 가끔 자동차도 지나다니고 있었고, 휴일을 맞아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도 종종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한참 가다보니 넓은 길은 우치사르와 반대 방향으로 나 있고 우치사르 방향으로는 좁은 농로만 나 있었다.


구불구불하게 나 있는 농로로 가다보니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우치사르가 가까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경치도 무척 좋았고 일반적인 투어로는 가지 않는 길을 걸으며 이곳저곳 내키는대로 다니는 기분이 정말 최고였다.


농로를 따라 가다보니 갑자기 길이 끊기면서 계곡과 이어진 절벽을 만나기도 했다.


비교적 평탄한 곳을 찾아 계곡을 내려가면 계곡 아래에 숨은 과수원이 나오기도 하고


꽤 넓은 분지같은 곳이 나오기도 했다.


우치사르가 꽤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길이 끊기고 절벽과 만나기를 여러차례 반복했다.


길을 찾아 돌아가다보면 과연 살아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포도나무 밭을 만나기도 했다.


이제 가져온 물도 다 떨어지고 태양은 머리 위에서 이글거릴즈음 우치사르가 손에 잡힐듯 가까워졌다.


하지만 다시 어제 본 피존 밸리가 앞을 막았고 이제는 물도 없이 더 이상 가는 건 어렵다고 생각되어 계곡을 따라 우치사르 쪽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계곡을 엉금엉금 기어 내려와 아래에서 보니 꽤 높아보인다. 하지만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가파르지 않아서 그리 위험하지 않았다.


계곡을 통해 우치사르 방향으로 걷고 있을 때 길 앞에 뭔가가 꿈틀거리는게 보였다. 가서 보니 거북이였다. 이런 물도 없는 계곡 바닥에 거북이가 살고 있을 줄이야. 사막에 사는 거북이도 있다는걸 알고 있긴했지만 이 곳 괴레메에 거북이가 살고 있는게 신기했다.


자세히 보고싶은 마음에 다가가니 거북이도 약간 놀란듯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미안하긴 했지만 더 보고싶은 마음에 약간 떨어져서 길을 마저 건널때까지 지켜봤다.




조금 높은 곳을 오르기 위해 뒷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쭉 늘린 모습이 귀엽다.


이 정도는 별 일도 아니라는 듯 가뿐하게 오르더니 수풀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걷다보니 또 다른 거북이가 수풀속에서 햇볕을 쬐고 있다. 거북이가 정말 많은가보다.


피존 밸리의 바위색은 다채롭고 오묘했다. 흰색, 노란색에 분홍색 바위라니... 카파도키아 고원 자체가 아주 오래전 대규모 화산폭발로 생성되어서 품은 광물에 따라 다양한 색의 바위가 보이긴 하지만 분홍색 바위도 있을 줄은 몰랐다.





이미 오래전에 떨어져버린 물, 내리쬐는 햇볕 덕분에 이젠 몸도 지쳐가고 힘들었지만 계곡을 지날 때마다 나타나는 기기묘묘한 바위와 풍경들로 지루한 줄 모르고 걸을 수 있었다.


계곡 사이사이에는 계곡 위의 마을에서 이어지는 오솔길들이 있어서 길을 잃거나 할 염려는 없었다. 우치사르가 가까이 보이는 곳에서 오솔길을 통해 마을로 올라왔다.


우리네 호박과 모양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노랗게 잘 익은 호박이 탐스럽다.


마을로 올라왔을 때는 더 이상 갈증을 참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부랴부랴 레스토랑에 들어가 물부터 주문했다. 2리터짜리 큰 통이 거의 다 비어갈즈음에야 정신이 돌아왔다.


정신없이 밥을 먹다가 뒤늦게 남긴 사진


늦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우치사르로 가니 관광객들과 그들을 태우고 온 관광버스가 무척이나 많았다. 우치사르에 오를 수 있는 매표소에 가보니 역시나 입장료가 만만치 않았다. 터키는 모든 관광지의 입장료가 무척이나 비싸서 종종 가난한 여행자를 좌절시킨다.


우치사르 꼭대기에 오르는 일은 포기하고 (나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하고 현명한 일을 했다. 우치사르 앞에서 파는 피스타치오를 산 것이다. 관광지라 시장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비쌀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무척이나 비싼 피스타치오를 불과 몇 천원에 꽤 많이 살 수 있었다.


카파도키아에는 아몬드, 피스타치오 같은 견과류와 무화과 포도 등을 많이 키운다고 했다. 기후가 건조하고 일조량이 강하니 이 과실들도 무척이나 달고 고소했다. 피스타치오를 까느라 손톱이 부러질지경이었지만 먹는걸 멈출 수 없었다.



이 날의 마지막 즐거움은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교통편을 알아보면서였다. 도시가 아니라면 대중교통이 불편한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가까운 마을이니까 분명 교통편이 많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우치사르는 관광지라 모두 관광버스를 타고 오는 통에 그 근처에는 현지 사람들이 타는 대중교통을 찾을 수 없었다.


현지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와서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물어봤다. 어차피 영어는 안통하는터라 'BUS'하고 이야기하면 대충 알아들을 줄 알았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인상이었다. 여러 번을 반복하다보니 그 중에 한 사람이 '오~ 부스~'하고 이야기한다. 여기선 '부스'라고 하나보다. 여튼 드디어 의미가 통했다.


그 중 한 아주머니가 열심히 버스 타는 곳을 설명해주셨는데 서로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아주머니는 포기하더니 따라오라고 하셨다. 직접 안내하실 생각이니 가까우리라 생각했는데 왠걸 10분 이상 걸어야했다. 거기까지 데려다 주시더니 바로 사라지셨다.


현지인들과 소통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비록 말이 통하지 않아도 손짓, 발짓으로 소통하고 진지하게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면 그 의미를 파악하려 애쓴다. 그 의미가 통했을 때 서로 즐거워하고 미소짓게 된다. 이런 친절을 만나게 되면 여행이 즐겁고, 세상이 밝아보인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서로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대화하면서도 상대방의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거나, 상대의 말을 자르고 자기 의견부터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분명히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면서도 짐짓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체 하기도 한다. 자기 의견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성의껏 들어주는 태도가 아쉽다. 특히 직!장!에!서!


이 날의 내맘대로 트레킹은 무척 즐거웠고 좋은 시간이었지만 준비가 부족해서 힘들었다. 만약 다시 간다면 충분한 물과 간식을 챙긴다면 훨씬 더 편하고 즐겁게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날의 강렬했던 햇살과 건조한 바람이 아직도 머릿속에서는 뚜렷하게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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