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그 유명한 파묵칼레의 석회붕으로 갔다. 최근에는 삼성전자 갤럭시 태블릿 광고에 나왔었고 예전부터 수많은 광고와 사진으로 잘 알려져 여행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석회붕을 한번쯤 보지 않은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곳에 오기전에 이미 먼저 다녀온 여행자들의 기록에서 이 곳에 대한 실망을 수없이 봤던터라 마음에 별다른 기대를 갖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물론 광고나 사진에서 봤던 층층이 푸른 물이 가득찬 거대한 석회붕은 볼 수 없었다. 그것과 비교하면 현실은 조금 초라한 것이 사실이다. 수천, 수만년동안 흘렀던 지하수원이 마르면서 이제는 석회붕을 가득 채울 정도로 물이 흐르지 않는 것이다. 이 또한 인간이 자연을 너무 과도하게 개발하고 사용한 탓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지금은 터키 정부에서 물을 끌어와서 채우고 있지만 겨우 예전의 모습을 살짝 볼 수 있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몰락해버린 고귀한 귀족의 모습일까. 일년에 한 번 축제 기간에 물을 가득 채운다고 하니 그때는 예전의 제대로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석회붕에 오르려면 신발을 벗어야한다. 석회붕이 신발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 오랜 세월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 인간의 순간적인 만족을 위해서 파괴되어서는 안되니 즐거운 마음으로 맨발에 동참했다. 물을 참방거리며 갈 수 있으니 오히려 더 즐거웠다.
미끄러울 것 같았던 느낌과는 다르게 석회암 바닥은 까끌까끌했다. 석회질을 품은 물이 바위 위를 흐르면서 조금씩 쌓여서 바위에 물결 같은 무늬를 남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물 안에는 부드러운 석회질이 두텁게 쌓여 있어서 걸으면 금새 뿌옇게 흐려졌다.
어느 정도 올라가니 아래에 어제 갔던 연못이 보였다.
아직은 이른 계절이지만 성미급한 사람들은 수영복 차림으로...
꼭대기에 오르니 멀리 눈덮인 산맥과 녹색의 벌판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온천까지 나왔으니 오래전 로마인들이 휴양지로 이용할만했다.
물이 찬 곳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대부분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 곳에 모두 물이 들어차 있었다면 대단한 경치였을텐데. 미리 알고 왔음에도 어쩔 수 없이 아쉬운 순간이었다.
꼭대기에 다 오르면 앞으로 평평한 분지가 나타나는데 이 분지가 모두 로마 시대의 유적지다. 기원전부터 도시를 형성했던 이 곳은 1300년대 대지진으로 사라졌다가 19세기경 다시 발굴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직도 발굴과 복원이 진행중인 곳도 많았다.
성벽의 일부와 온천수가 흘렀을 수로도 남아있다.
유적의 곳곳에 붉은 양귀비가 흐드러지게 펴있었다.
석관이 안치된 무덤의 수가 매우 많다.
인구 8만명이 살았다는 이 거대한 고대도시는 신전, 시장, 묘지, 극장, 목욕탕 등을 제대로 갖춘 휴양도시였다고 한다. 목욕탕에는 지금도 온천수가 나오고 있어 입장이 가능했지만 입장료가 터무니없이 비쌌다. 이곳을 촬영했던 TV 여행프로에서 물밑에 고대의 돌기둥과 유적들이 잠긴 곳에서 사람들이 온천을 즐기는 장면을 방영했던 기억이 났다. 그 기억으로 대신하고 목욕탕에 들어가는 것은 포기했다. 터키의 무리한 입장료는 나에게 많은 것들을 포기시켰다.
오후 해가 많이 기운 시간이었음에도 많은 방문객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파묵칼레는 석회붕이 유명하지만 고대 로마유적도 볼 거리가 많았다. 마을 전체가 관광지라 오랫동안 머무르고싶게 만드는 은근한 끌림은 없었지만 짧게 보고 떠나기에는 충분히 화려했다.
이스탄불에서 터키 일정 계획을 세울 때 고민이 많았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터키 동북쪽에 위치한 나라 '조지아'에 빠져서 비행기 표를 알아보기도 했고, 지중해를 따라 에페소나 안탈리아로 갈까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이스탄불에서 터키의 매력을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고 가장 유명한 두 곳, 괴레메와 파묵칼레만 갔다가 그리스로 넘어가는 배편이 있는 보드룸으로 가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터키에 머무른 기간은 보름이 채 되지 않았지만 터키는 이스탄불보다 작은 도시가 훨씬 매력적이었다. 터키를 떠날 때가 다가오니 슬슬 아쉬워졌다.
'세계여행(2012년) > 유럽/중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드디어 그리스로... 그리스 코스 (0) | 2014.11.30 |
---|---|
파묵칼레에서 보드룸으로... (0) | 2014.11.29 |
괴레메에서 파묵칼레로 (0) | 2014.11.28 |
지상에서 본 벌룬투어, 떠나기 아쉬웠던 괴레메 (0) | 2014.11.27 |
무모했지만 최고였던 내맘대로 트레킹 - 괴레메 (0) | 2014.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