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한꺼번에 너무 많이 받아들이는 것은 대부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음식도, 지식도 용량을 초과하면 탈이 나거나 앞에 들어간 것이 밀려 나올 수 밖에 없다. 나에겐 룩소르에서 투어를 한 이 날이 그런 날이었다. 하룻동안 고대 이집트에 대한 너무 많은 지식을 받아들이려다보니 용량초과 상태가 되어버렸다. 투어를 하기 전에 공부를 하고 가거나 원래 고대 이집트 문명에 관심있었던 사람이 아니고는 대부분 나처럼 되지 않을까 싶다.
불행하게도 사진만 보고는 여기가 어디였는지, 이 곳이 유적으로서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뜨거웠던 열기만 아직도 온 몸이 기억하고 있어서 사진만 봐도 열기가 후끈 느껴진다.
이 곳은 왕들의 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기억난다. 매표소에서 멀기 때문에 이런 시설을 이용해야만 했다. 왕들의 계곡은 말 그대로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들의 무덤들이 있는 곳으로 도굴을 막기 위해 산을 무덤으로 이용했다고 하는데 그다지 효과는 없었는지 대부분 도굴되었다. 그나마 도굴이 되지 않은채 발굴된 무덤이 투탕카멘 왕의 무덤으로 카이로 박물관에 보관중인 그 유명한 투탕카멘의 마스크도 여기서 발견된 유물이라고 한다.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한 걸까, 너무 더워서 사진 찍을 정신도 없었던 걸까? 왕의 계곡에서 찍은 사진이 없다.
다음으로 간 곳은 하트셉수트 여왕이 지은 신전이다. 이 신전은 매우 유명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진으로 한번쯤 봤을 곳으로 나도 사진으로 보고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신전으로 가는 입구에 기념품이나 햇빛을 피할 모자나 천들을 파는 가게들이 있었다.
멀리 하트셉수트 여왕의 신전이 보인다. 사진에서 보던대로 절벽을 깎아서 만든 거대한 건축물이다.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하트셉수트 여왕의 신전을 앞에서 보면 절벽 바로 앞에 있어서 신전 내부를 절벽 안쪽에 마련해 놓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된다. 하지만 절벽 앞에 지은 것뿐으로 앞에서는 넓고 크게 보이지만 세로로 무척 짧아서 규모가 생각보다 작았다.
기원전 1500년경에 고대 이집트를 지배한 하트셉수트 여왕은 다른 여왕들에 비해 재위 기간도 길고 국가도 안정적으로 다스렸다고 한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여왕이 국가를 다스린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은데 고대 이집트는 여왕이 다스린 경우가 비교적 많았던 것 같다.
가이드했던 잘생긴 이집트 청년. 우리나라 대학에서 몇 년간 공부해서 한국말을 꽤 잘했다. 하지만 이집트의 민주화와 정치적 개혁에 대해서는 별 기대를 안하는 듯 했다. 쓴 웃음을 지으며 이집트는 멀었다고 잘 안될거라 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잘 될거다, 우리나라도 그랬다' 라고 틀에 박힌 위로를 해줬으나 속으로는 이십대 초반에다 외국에서 공부했다는 너부터 포기하니 잘 될리 있냐고 버럭 해주고 싶었다.
이집트 신전의 돌기둥이나 벽의 상형문자 혹은 그림들을 보면 일부 채색이 남아 있는 것들이 보인다. 남아있는 색들도 꽤 다양하다. 지금은 누렇게만 보이는 이 신전들이 당시에는 얼마나 화려하게 치장되었을지...
멤논의 거상. 이 거상들은 신전 입구를 지키는 거상인데 나일강의 범람으로 신전은 파괴되고 이 거상들만 남았다고 한다. 옛날 새벽만 되면 거상에서 소리가 났는데 이를 본 그리스인들이 새벽의 여신을 그리워하는 아들 멤논의 소리라고 해서 멤논의 거상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고대 이집트의 거상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이름이라니...) 당연히 지금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고대 이집트 최대의 신전이었던 카르낙 신전이다. 입구에서 본 규모만으로도 이 신전이 얼마나 거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직도 신전의 대부분이 발굴되지 못하고 남아있는 상태라고 한다.
스핑크스 사이로 난 길을 화려하게 장신된 파라오의 수레가 지나다녔을 상상을 해보는 것도 재밌다.
돌기둥에 채색된 장식이나 새겨진 부조도 매우 새밀하다.
아직 복원하지 못한 신전의 일부가 돌무더기처럼 쌓여있다.
이집트의 신전이나 유적을 돌아보면서 제대로 이해하려면 고대 이집트의 왕조와 종교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물론 나는 그러지 못했기에 후회가 많이 되었다. 대략적인 내용만 파악하고 있었더라도 이날 투어에서 훨씬 더 많이 이해하고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유럽이 여행하기 편한 것은 많이 알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문화의 대부분이 유럽에서 발생한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고 어렸을 때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시작해서 역사, 종교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에 유럽을 여행하면 이미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훨씬 쉽게 배우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여행하는 곳에 대한 기본적인 역사와 종교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여행을 제대로 하기 위한 자세이다.
고대 이집트의 종교는 다신교로 수많은 신들이 등장하고 각 신들은 벽화에서 특징있게 그려진다. 카르낙 신전은 기원전 2천년 전에 아문(아몬) 신을 섬기는 신전이었고 이 신은 후에 라(레) 신과 합쳐져 '아문 라' 라는 이름으로 태양신이 되었다고 한다. 이 신은 고대 이집트 종교의 최고 신으로 그리스의 제우스, 로마의 주피터와 동일한 신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수많은 신들의 이름을 듣고, 그 신들이 그려진 벽화와 역사를 들었는데 별반 기억나는게 없다. 하지만 투어를 하던 당시에는 상당히 흥미롭고 재밌었다. 고대 이집트 문화에 관심이 있는 여행자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다. 다만 더위에 약한 사람이라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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