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면서 가장 더웠던 때가 94년 여름이었다. 그때 이상기온으로 전국이 40도에 육박했고 9시 뉴스는 날마다 더위 소식을 전하는 뉴스로 시작했다. 아직도 생각나게 대구의 아스팔트에 날계란을 깨서 흰자가 서서히 굳어가는걸 보여주며 더위 소식을 전하는 뉴스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여름이라도 40도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나도 40도가 넘는다는게 얼마나 더운 것인지 인지해본 적이 없었다.
룩소르에서 42도를 경험한게 처음이었다.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이는 것이 아니라 해는 보이지도 않고 하늘이 흐릿한데 온 세상이 후라이팬처럼 뜨거웠다. 그러나 그것도 약과였던게 아스완은 이집트에서도 남부에 속하는지라 섭시 45도까지 기온이 올라갔다. 룩소르에서 아스완으로 가는 기차에서 내려 숙소를 찾아가기 위해 봉고차 같은 버스를 탔다. 당연히 에어콘은 없고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불었는데 마치 헤어드라이기를 최고로 세게 틀어놓고 얼굴을 바로 앞에 대고 있는 기분이었다. 더위에 숨이 막힌다는게 이런 것이구나, 지금까지 더워서 숨이 막힌다고 생각했던 것은 절대 그럴리 없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여기서 살아가는 사람들, 인간의 적응력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스완에서 예약한 숙소는 열악했다. 룩소르에서 저가 호텔에서 머물렀다면 여기는 여인숙 수준이다. 물이 잘 안나오고 침구가 더럽고, 전등이 어둡고... 이런 모든 것은 다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더위에 골골거리며 돌아가는 에어콘으로는 도저히 내부가 시원해지지 않았다. 시원해지는건 바라지 않지만 제발 잠들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스완에 온 목적은 단 하나다. 그 유명한 아부심벨 신전을 보기 위해서. 하지만 아스완과 아부심벨 신전 사이의 거리는 구글맵에서 대충 봐도 룩소르와 아스완 사이의 거리보다 멀어보였다. 아부심벨 신전은 이집트와 수단 국경 바로 위 아스완 댐으로 생긴 저수지 바로 옆에 있다. 이렇게 멀기 때문에 아부심벨 투어도 일찍부터 시작한다.
새벽 세 시부터 각 숙소를 돌며 여행자들을 픽업한 여행사 차량들은 아부심벨로 출발하기 전에 아스완의 한 주차장에 다 모였다. 여기서 경찰의 검문을 받은 후, 경찰차를 따라 출발했다. 하필 봉고차의 가장 뒷좌석을 배정 받아서 좁은 자리에 몸을 구겨 넣고 부족한 잠을 보충했다. 해가 뜨면서 봉고차 내부가 더워졌다. 아무리 에어콘을 틀어도 뒷자리까지 시원해지지 않았다. 비좁은 자리에서 더위에 땀 흘려가며 부족한 잠으로 꾸벅꾸벅 졸며 이렇게 대여섯시간을 가야했다. 왜 나는 투어를 하거나 버스를 타면 항상 봉고차의 가장 뒷자리만 앉게 되는지 미스테리하다. 라오스에서도 터키에서도 이집트에서도 툭하면 맨뒷자리였다.
이런 불편함을 참고 참은 끝에 오전 9시쯤 아부심벨에 도착했다. 9시임에도 아부심벨의 온도는 40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걸어가다보면 작은 산이 나온다. 산을 빙 돌아가보면 그 산 자체가 신전이다.
람세스 2세 자신을 위한 대신전 옆에 왕비 네페르타리를 위한 소신전이 나란히 있다.
신전 바로 앞에는 아스완 댐으로 생긴 거대한, 바다처럼 보이는 호스가 펼쳐져있다.
높이 3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람세스 2세 자신의 상.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네 개나 입구에 세워놓았다.
네페르타리를 위한 소신전 입구. 정작 여왕의 상은 2개이고 4개는 자신의 상이다.
기원전 13세기, 지금으로부터 3천년도 전에 이런 거대한 신전을 만들만큼 이집트의 국력이 왕성했고, 람세스 2세의 권력은 막강했다고 한다.
이 신전은 1960년대 아스완 댐을 건설할 때 물에 잠길 운명이었는데 유네스코와 고고학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이 곳으로 옮겨 올 수 있었다. 매표소에는 그 당시의 모습을 찍은 자료화면을 보여주는데 신전과 석상들을 하나하나 톱으로 잘라 분해하고 레일을 만들어 돌을 옮겨와서 다시 쌓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작은 산 두개를 옮겨 온 것이다. 이런 세계 문화유산을 지키려는 노력이 없었다면 아스완 댐 저수지 밑으로 잠겨버렸을 것이다.
아부심벨 신전 뒤로 아스완 댐과 이시스 여신에게 받쳐진 피레 신전을 갔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곳은 피레 신전이었다. 이 신전은 섬에 있어서 배를 타고 가야하는데 신전 입장료와는 별개로 배 삯을 따로 내고 가야한다. 이집션들과의 흥정은 항상 피곤하다. 이 점만 빼고 물 위에 떠 있는 듯 보이는 고즈넉한 이 신전이 참 좋았다.
저 입구 안쪽에 이집트인 두 명이 기다리고 있다가 다가와 사진을 찍고 친한척 하다가 가이드를 받으라거나 입장료를 달라는 둥 여행자의 돈을 뜯으려 한다. 이집트 여행에서 가장 힘든 점은 더위가 아니라 이집트인이다.
신전 안에 도마뱀이 산다. 밖은 덥고 건조한데 신전 안은 그늘지고 습해서 살기 좋은가보다.
어둠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종이라 눈도 퇴화된 듯하고 몸 빛도 희게 변했나보다.
투어를 마치고 오면 무척이나 피곤하다. 여행사를 통한 투어이긴 하지만 이들이 해주는 것은 차로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것 뿐이다. 설명해주는 것은 어림도 없고 투어에 식사나 입장료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피레 신전에 가기 위해 배 삯도 직접 협상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투어보다 훨씬 피곤하다. 바로 위 사진은 어디였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데 마지막 들른 곳이었다. 차로 내려주긴 하지만 봉고차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 사진만 몇 장 찍고 다시 차에 탔다. 모두들 피곤해서 숙소로 돌아가고 싶은 표정이었다.
아스완을 흐르는 나일강 반대편은 모래 사막이었다. 몸도 피곤하고 슬슬 어두워졌지만 숙소가 너무 더웠기 때문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아스완 강변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저녁을 먹고 해지는 모습을 보고 근처 시장을 구경하고 완전히 캄캄해져서야 숙소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아깝게도 시장에서 찍은 사진이 없는데 시장 구경이 제법 재밌었다. 여기서 모래 바람과 햇빛을 피할 천을 샀다. 이 천들은 이집트에서, 그 뒤 유럽을 여행하면서도 두고두고 요긴하게 잘 썼다. 어디선가 쓸 데가 없어지고 짐이 되면서 버리게 되었지만 그 모양과 색깔은 뚜렷하게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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