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후루가다에서 떠나는 날이 되었다. 있고자하면 계속 즐겁게 머무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떠나야하니 더 헤어지기 힘들어지기 전에 떠나야했다. 강사님 중에 한 분이 하신 말씀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 '오신 분들이야 가시면 일상에 적응하고 쉽게 잊겠지만 남은 우리들은 더 오래 기억나서 힘들어요'라고. 왠지 떠나기가 미안해졌다.
후루가다에서 룩소르로 가게 된 이유는 가까웠 때문이다. 후루가다에서 룩소르로, 다시 아스완까지 남쪽으로 계속 갔다가 아스완에서 카이로까지 야간 열차로 한 번에 올라가는 경로를 선택했다. 오전에 탄 버스가 오후 늦지 않게 도착했으니 그리 멀지 않았고 길도 나쁘지 않았다. 버스가 낡았지만 이 정도는 동남아에서 경험한 버스에 비하면 그리 심한 편도 아니다 싶었다.
이집트 여행은 힘들다. 더욱이 배낭 여행은 무척 힘든 편이다. 한국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더위와 너무해서 화가 날 정도로 달라붙는 삐끼들, 조금은 불안한 치안에 장소마다 시간마다 달라지는 가격... 언젠가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주요 국가들 중에서 어디가 가장 여행하기 힘든지 투표를 했는데 1위가 인도, 2위가 이집트였다고 한다.
이런 여행하기 힘든 장소에서 여행자들을 돕는 구세주같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 배낭여행자들에게는 이집트의 4대 천왕이라고 불리는 이들인데 나는 룩소르와 아스완을 여행하면서 각 도시에서 1명씩 2명을 만났고 또 도움을 받았다.
이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이 사람은 후루가다에서 도착한 버스가 룩소르에 도착하자 버스가 밀리는 틈에 어느새 올라탔다. 먼저 자기 소개를 하며 내가 누구니 숙소나 국제 학생증(이집트의 유적지나 박물관 입장료가 대폭 할인된다)이 필요하면 이야기하란다. 그때 같이 버스를 탓던 한국 여행자들이 당신이 그 4대 천왕인지 못 믿겠다고 하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자기 신분증까지 보여준다.
믿어보자싶어 이 사람을 따라 나섰다. 먼저 숙소를 보여주는데 싸긴한데 너무 낡고 왠지 치안이 안좋을듯 싶은 곳에 있었다. 조금 비싸더라도 좋은 숙소를 알려달라고 했는데 그 뒤에 다른 여행자의 여행기를 읽어보니 여기에 머무르는 배낭 여행자들도 꽤 있는 듯했다. 여튼, 같이 갔던 젊은 여행자들은 국제 학생증을 위조로 만들었고 나를 포함하여 저렴한 호텔까지 소개 받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웃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사람 좋게 웃으며 도움이 됐다면 좋다고만 했다. 나중에 든 생각으로는 위조로 국제 학생증을 만들어주거나 소개해주는 숙소에서 약간의 돈을 받는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여행자에게는 좋은 이미지로 비춰져서 입소문이 나도록 하는 것 같다. 이유야 어떻든 여행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할 때 나타나는 고마운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이집트 음식은 대부분 이렇다. 구운 닭이나 양고기에 야채, 빵...
늦은 점심을 먹고 나일강에 펠루카를 타러 갔다. 펠루카는 이집트 돛단배인데 룩소르에서 근처의 섬을 투어하는 것부터 아스완까지 며칠을 가는 투어까지 다양하다. 강변으로 나가니 역시나 수많은 삐끼들이 펠루카를 권하며 귀찮게 했다. 처음에는 웃으며 싫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고개만 가로 젓다가 결국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지도 않게 된다.
펠루카를 타러 왔다가 결국은 이집션 할아버지가 모는 엔진으로 가는 배를 타게 되었다. 삐끼들한테 시달린데다 많은 배들 중에 고르기도 귀찮아져서 뭐, 돛단배가 아니면 어떤가 가기만 하면 되지 싶었다.
이집트 돛단배, 펠루카
나일강은 크고 풍요로웠다.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긴 하지만 이집트 남부 룩소르에서도 이렇게나 풍부한 수량을 가지고 있었다. 다음날 가이드의 말로는 룩소르에 5년째 비가 제대로 내리지 않았다는데도 강은 룩소르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게다가 물도 맑은 편이었다.
배를 타고 들른 곳은 농장이다. 이 풍부한 나일강의 수량으로 대추야자, 바나나, 사탕수수 같은 작물들과 가축들을 키웠다. 나일강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황량하고 거친 사막인데 강변에서는 이런 작물들을 재배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일강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물을 주지만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은 그리 풍요롭진 못했다.
이들은 소작농일뿐, 이들이 키운 작물이나 가축도 이들의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는 나일강변
강변의 좋은 건물들은 대부분 리조트나 호텔들이다.
강변에는 꼭 아파트를 옆으로 엎어놓은 듯한 커다란 배들이 많이 있는데 이 배들은 며칠동안 카이로에서 룩소르를 거쳐 아스완까지 왕래하는 유람선들로 침실에서 강을 볼 수 있게 커다란 창이 나 있다. 배마다 가격과 서비스 차이가 많다고 들었다.
내일은 예약한 고대 이집트의 유적과 신전들을 둘러보는 투어를 할 것이다. 사진으로만 봤던 카르낙 신전이나 하트셉수트 여왕의 신전, 왕의 계곡을 둘러 볼 생각에 꽤나 흥분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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