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 왔으니 좋건 싫건 의무적으로라도 봐야하는 한가지가 기자 지구의 피라미드다. 여행자가 패키지나 투어를 하지 않고 피라미드까지 찾아가는 것은 방법이 조금 번거롭다. 일단, 지하철로 가장 가까운 곳까지 간 다음에 택시를 타고 가야한다. 방법은 단순하지만 택시를 잡고 흥정하기도 만만치않은데다 생각보다 택시를 타고 가야하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나 역시 택시를 흥정하는 일이 잘 되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약간의 바가지는 개의치 않는 성격이지만 똑같은 가게에서 동일한 생수 한병을 사더라도 날마다 변하는 가격 때문에 이집션들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인터넷에서 본 가격만을 주장하고 기사는 터무니없다며 훨씬 높은 가격을 부르고 있었다. 그 때 지하철 뒤에서 내려온 이집션이 자기는 집에 가는 길인데 집이 피라미드 바로 앞이라며 가격을 1/n하자고 했다. 말끔한 옷차림에 인상 좋은 젊은 친구였으나 왠지 그런 인상일수록 경계가 되었다. 하지만 가격이 낮아지는데 거부할 수는 없었다.



택시는 쓰레기가 가득 쌓인 고속도로를 지나 한참을 달렸다. (정말 고속도로 가에 쓰레기가 가득 쌓여 차가 지날 때마다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날렸다. 더운 택시안에서도 문을 열 수 없었다.) 피라미드가 보이는 현지인 마을에서 젊은이가 내렸다. 이 친구는 내가 한국에서 온 걸 알자 당시의 최신 스마트폰 갤럭스2를 꺼내 보이며 자랑을 했다. 그리고 자기네 집 옥상에서 피라미드가 무척 잘 보인다며 차나 한잔 하고 가라고 했지만 뭔가 썩 내키지 않아서 저녁에 약속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그냥 보냈다. 친절한 젊은이가 동양인에게 보내는 사심없는 선의일 수도 있지만 그 선의를 무턱대고 받아들이기에는 내가 나이를 먹으며 않좋은 것들을 너무 많이 봐왔나보다.



멀리서 봐도 거대했다. 다만 거대한 것 말고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스핑크스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서는 따로 입장료를 내고 봐야하는데 근처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입장료를 내고 봐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이집트 삐끼들의 호객을 넘어선 무례함은 도가 지나쳐 세계의 여행자들에게 이집트의 이미지를 많이 훼손시키고 있는데 바로 위 사진에 보이는 곳에서도 그랬다. 이 작은 피라미드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일단, 앞에서 들어가려고 하면 입장료를 내라고 다그친다. 이들이 여행자의 돈을 뜯으려는 것은 그들의 행색만 봐도 알 수 있다. 십대에서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일상복을 입은 이들에게 누가 입장료를 지불하겠는가? 


이들을 지나쳐 들어가면 다음으로는 따라오면서 가이드를 받으라고 한다. 여기는 가이드 없이는 입장이 불가능하니 돌아가라고도 한다. 앞을 막아서기도 하고 돌아가려면 다시 막아선다. 죄다 무시하고 가다보니 이젠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집트 삐끼들의 무례함은 알고 있었지만 여기는 좀 심하다 싶어서 나도 화가 났다. 결국 이들은 내 모자를 낚아 챘다. 다행히 달아나기 전에 내가 모자를 잡고 빼았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한국말로 방언을 퍼붓고 거기서 나왔다.


피라미드의 이집트 삐끼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단체 관광객이 아니라면 누구나 거치는 통과의례와 같다. 그런데 이집트 정부는 알면서 손 놓고 있다. 밖에는 경찰도 있고 피라미드 관리인들도 있지만 누구도 아는체 하지 않았다. 정 안된다면 정부가 피라미드 근처에 사는 이들을 교육시켜 정말 제대로 가이드로 고용하던가 아니면 통제라도 할 수 있지만 전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삐끼들보다 수많은 관광객으로부터 입장료를 받고도 두 손 놓고 있는 이집트 정부에 더 큰 화가 났다. 이미 여기서 피라미드는 아무런 감흥도 경외감도 줄 수 없게 되었다.



이집트에 산재한 피라미드들 중에서도 가장 크다는 쿠푸왕의 피라미드





크다, 덥다, 삐끼들, 낙타 몰이꾼들의 호객 행위가 귀찮다. 이게 기자의 피라미드에서 내가 느낀 전부였다. 피라미드를 나와 바로 앞 KFC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기 2층에서도 피라미드는 잘 보였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햄버거를 먹으며 여기서 피라미드를 보고 가는게 훨씬 낫겠다 싶었다. 어차피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중요한 유물들은 도굴되었거나 카이로 박물관에 있다. 얼마나 큰지 보고 고대 파라오의 권력과 이것을 건설한 인간의 힘을 느끼기에는 현시대에는 커다랗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너무 많다. 피라미드는 유적지로서, 관광지로서 매력이 떨어졌다.





피라미드를 보고 돌아오니 타흐릴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확성기로 뭔가를 크게 외치는 사람, 깃발을 들고 따라 외치는 사람들을 보니 우리네 시위 모습과 똑같았다. 내가 이집트를 방문한 때는 오랫동안 독재를 해오던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권력을 빼앗기고 대통령 선거가 막 일어난 후 였다. 대통령을 선거로 뽑긴 했지만 아직 안정이 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래도 이 때는 시위가 평화롭고 심하진 않았다. 그 뒤 여행하면서 보니 서방 여기자의 폭행사건, 시위대와 공권력의 폭력등으로 정세가 무척 불안하게 되었다.


이집트의 민주화를 바랐다. 과거 독재자의 모습이 지워지고 이집트 국민들을 위한 정부가 세워지기를 바랬다. 일부 몇몇이 부를 독점하는 현재의 구조에서 궁핍한 많은 이집트 국민들에게 그것을 나눠줄 수 있는 지도자가 집권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건 요원한 일이었다. 불과 지난달 말 무바라크 대통령의 모든 협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고 이집트 민주화는 수포로 돌아갔다. 한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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