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던 아시시를 겨우 사흘째 날에 떠난 이유는 '그 곳' 피렌체에 가기 위해서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중심이었던 꽃의 도시 피렌체는 오랫동안 나에게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 1순위였다.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연인들이 10년 후 만나기로 한 장소였던 두오모 성당의 돔, 보티첼리의 두 걸작 '봄'과 '비너스의 탄생'이 있는 우피치 미술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이 있는 곳... 피렌체는 나에게 유럽 여행에서 이상향 같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내가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관광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기 전까지...


여행지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커다란 두 가지는 기차역(혹은 버스정류장)에서 내렸을 때 처음 본 도시의 풍경과 첫 날 묵게 되는 숙소다. 아쉽게도 피렌체는 두 가지 모두 좋지 않았다. 기차역 주변은 매우 번잡했고 위협적으로 보이는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무척 많았다. 인종차별적인 말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유럽의 대도시들 아테네, 로마, 파리 등등의 기차역 주변이 모두 그렇다. 아테네 여행기에서도 썼었지만 아프리카에서 목숨걸고 지중해를 건너 밀입국한 사람들이 서유럽의 경제난으로 안타깝게도 일자리를 찾지 못한채 길거리를 배회하게 되면서 서유럽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안게된 심각한 사회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6월말 대학생들의 배낭여행 시즌이 시작되어서 인기 유럽배낭여행 코스인 피렌체의 저렴한 숙소나 민박집은 오래전 예약이 끝나버렸다. 수차례 연락후, 어렵게 잡은 민박집은 일년 간의 여행 중에 탑 5안에 드는 안좋은 숙소였다.


피렌체의 빨래방.

빨래는 빨래방이나 숙소에 있는 세탁기에 동전을 이용해서 해야 하는데 

세탁기와 건조기를 한번씩 돌리는데 동남아에서 하룻동안 쓸 수 있는 여행경비가 든다.

유럽의 비싼 물가가 새삼 와닿는다.


나에게 좋지 않은 숙소의 기준은 세가지다. 더럽고 불결한 숙소(혹은 베드벅이 나오거나)거나, 주인장이 여행자들을 손님으로 대하지 않고 불쌍하고 가난한 여행자에게 선심을 쓰듯 대하는 숙소(유럽의 몇몇 민박이 그랬다), 마지막으로 주인이든, 매니저든 여행자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숙소인데 피렌체에서 잡은 민박집이 마지막의 경우였다.


숙소에 도착하니 맨 먼저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들려주고, 못지킬거면 나가던지... 하는 분위기라 일단 기분이 나빴다. 모든 숙소에는 여행자들이 지켜야 할 사항들이 있고, 어떤 곳은 그 사항들을 프린트 해놓거나 여기저기 붙여 놓기도 한다. 하지만 '싫으면 나가던지' 하는 분위기를 발산하는 곳은 처음이었다. 성수기니 니가 안묵어도 상관없다는 것이었을게다.


이 곳은 문제도 많았는데 매니저들이 손님이 들어가든, 나가든, 처음보든 아는체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같은 방을 쓰는데도 쳐다보지 않았다. 게다가 방은 너무도 더웠다. 35도가 넘는 더위에 선풍기조차 없었고 열어놓은 창문으로는 밤새 차소리로 잠을 자기 힘들었다. 이런 환경에 무뎌질대로 무뎌진 나조차도 그랬다. 정해진 시간이 넘어서 들어오는 여행자가 아래층 벨을 누르면 맨 앞방에서 묵게되는 손님(이번엔 나였다)이 문을 열어줘야했다.


먼 한국에서 큰 돈을 들여 난생처음 배낭여행을 시작하는 어린 학생들을 단지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는 듯해서 너무 불쾌했다.(대부분의 숙박객이 방학을 맞아 나온 대학생들이니)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업에는 어느 정도 책임감이나 사명감도 필요하다. 더구나 먼 외국에서 민박집에 묵는 경우는 여행에 익숙치않아 같은 한국인들끼리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 주인은 한국 여행자들에게 현지에서의 도움을 주고 여행자들은 이런 도움에 대한 댓가까지 포함하여 숙박료를 지불하는 것이다.


어쨌든 불쾌하지만 길거리에서 잘 수는 없으니 일단 여기서 머물기로 했다. 그리고 숙소에서 망친 기분을 전환 할 겸, 피렌체의 유명한 음식, 티본 스테이크를 맛보러 나섰다.


여행중에 가장 신뢰하게 된 여행정보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의 추천 레스토랑이었음에 티본스테이크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다. 내 입맛의 문제일 수도 있고, 방문한 레스토랑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기대에 비해서 많이 모자랐다.



르네상스 시대의 수많은 건축물과 예술품으로 들어찬 이 도시에서도 무엇보다 유명한 것은 두오모 성당(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꽃의 성모 마리아)이다. 이튿날 아침 이 유명한 두오모 성당에서부터 피렌체에서의 일정을 시작했다. 흰색과 녹색의 대리석의 기묘한 외형만으로도 여지껏 다른 곳에서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더구나 브루넬레스키가 건축한 두오모 성당의 돔은 건축가로서 그의 천재적인 역량이 발휘된, 당시 건축 기술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거대한 규모이다. 후에 미켈란젤로가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돔을 완성하기까지 가장 큰 돔이었다고 한다.


이 돔은 밖에서 보기에는 그다지 크지 않아보이지만 돔 꼭대기에 가기 위해 성당 내부에서 돔 가까이 올라가면 그 큰 규모를 실감하게 된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최후의심판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이자 건축가인 조토가 건축한 '조토의 종탑'


조토의 종탑과 두오모의 돔은 높이가 비슷한데 종탑에서는 돔을, 돔에서는 종탑을 볼 수 있으나 둘 다 유료이기 때문에 돔을 선택했다.



두오모의 돔에 오르자 지붕이 온통 붉은 벽돌색인 피렌체 시내의 전경과 멀리 토스카나 지방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계단 반대쪽에 앉아서 한참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덥고 수많은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저 아래로 내려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높이가 85m라는 조토의 종탑과 높이가 거의 비슷하다. 아래로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말 작게 보인다.


두오모 성당의 최후의 심판

아래에서 볼 때는 크기가 와닿지 않지만 돔에 올라가며 바로 앞에서 보면 그 크기가 정말 거대하다.


점심으로 먹은 피자. 토핑이 거의 없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피자지만 신선한 토마토소스와 치즈로 맛이 훌륭했다.


두오모 성당의 박물관이었을까... 어디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피렌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인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 상이다. 귀신들린 여자였으나 예수님으로부터 구원받고 그를 따르게 된,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는 광야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살았다는 막달라 마리아의 상이다.


아름답고 고귀하게 그려지는 마리아(예수님의 어머니)가 아닌 헐벗고 굶주렸으며 육신의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막달라 마리아의 상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수백년 전 르네상스 초기 작품이지만 마치 현대 미술가가 고통스럽지만 아직 잃지않은 삶의 의지를 표현한 듯한 느낌이 든다.




피렌체의 유명한 음식은 어제 저녁에 먹은 티본 스테이크와 아이스크림(정확하게는 샤베트에 가깝다)이다. 이 아이스크림은 피렌체의 유명한 메디치 가문이 주최한 요리 경연대회에 출전한 음식이었다고 한다. 로마에서도 유명한 아이스크림을 먹어봤고, 피렌체나 세계 곳곳에서 유명하다는 다른 아이스크림을 먹어봤지만 나에겐 이 곳이 내가 먹어 본 최고의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이었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특히나 피스타치오를 알갱이채 넣은 것이 아니라 세밀하게 갈아서 섞은 연두색의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은 환상적이었다.




오늘 피렌체 일정의 마무리는 아르노 강에 세워진 베키오 다리였다. 많은 소설과 영화에 등장한 이 다리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갔으나 지금은 단지 고가의 보석과 금세공품점들이 늘어선 쇼핑장소일뿐이었다.




해지는 쪽에 다른 다리가 있었는데 거기는 사람들도 많지 않고 오히려 베키오 다리가 더 잘 보일 것 같았다.


역시 훌륭한 선택이었다. 베키오 다리에서 보는 것보다 다른 쪽에서 보는 것이 훨씬 훌륭했다. 더구나 지는 태양빛을 받아 베키오 다리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아르노 강으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다리 위로는 퇴근하는 직장인들과 파티에라도 가는 듯 잘 차려입은 이탈리아의 멋쟁이들이 쉴새없이 지나다녔다. 불과 얼마전에 나도 저들처럼 바쁘게 출퇴근하는 직장인이었는데 이제는 마치 딴 세상 사람인냥 그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새로웠다. 


지금은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왔지만 지금까지의 삶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으로 자신을 볼 수 있었던 시간들이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된다. 경력의 단절을 일순간이지만 인생은 길기 때문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