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가리로 국립공원에서 트레킹을 마친 다음날, 뉴질랜드의 가장 유명한 휴양도시이자 북섬의 윗쪽 끝단에 위치한 파이히아로 향했다. 생각같아서는 계속 아래로 내려가 남섬으로 가고 싶었지만 뉴질랜드에서 머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오클랜드가 있는 윗쪽으로 올라가야했다. 통가리로에서 파이히아로 가는 직행버스가 없어서 일단 통가리로에서 오클랜드로 가서 하루를 보낸 뒤에 오클랜드에서 다시 파이히아로 갔다.


통가리로에서 오클랜드로 가는 버스시간이 다가오자 갑자기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더니 엄청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태껏 맑던 하늘에서 하필 버스시간에 맞춰 비가 오는게 무슨 조화인가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비에 흠뻑 젖으며 정류장으로 향했다. 더 어이없었던 일은 버스가 오기 직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냐 싶게 비가 그쳐버렸다. 질척거리는 신발을 끌고 버스에 오르니 다른 사람들은 깔끔한데 나만 딴 세상에서 온 것처럼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비가 그치자마자 도로 위에 남은 물기가 마르기 시작했다.


잠시 뒤에는 언제 비가 왔었냐 싶게 보송보송 말라버렸다.

 

이튿날 오클랜드에서 파이히아로 가는 버스를 탓다. 오클랜드도 비가 내려서 땅도 하늘도 우중충했다. 당시 뉴질랜드는 장마철이었는지 비가 무척 자주 내렸다.




흔히 생각하는 뉴질랜드의 전형적인 풍경



파이히아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풀고 여기서 할 수 있는 여행상품을 알아보러 인포메이션센터를 찾았다. 여러가지 수상 액티비티부터 스쿠버 다이빙, 스노클링, 요트투어 등등이 있었는데 바닷물이 그다지 맑아보이지 않아서 스쿠버 다이빙은 할 생각이 들지 않았고 한여름 날씨 치고는 비교적 쌀쌀해서 물놀이도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요트투어와 바다카약, 스노클링 등등이 합해진 것이었다. 특히 요트로 근처 섬에 가는 중에 운이 좋으면 돌고래를 만날 수 있다는 말에 끌렸던 것 같다.


여행자 센터 뒤편에 있는 요트나 근처 섬으로 운행하는 배들을 대는 선착장. 물빛이 우리나라 서해하고 비슷한 수준이라 실망했다.




저녁거리도 살겸 근처 근처 바닷가를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늘은 여전히 해가 잠시 비쳤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내일 요트투어를 위해서 날씨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는 수 밖에.


햇볕이 나고 다시 흐려지길 반복했다. 햇살은 제법 강했지만 무덥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바닷가에서 마오리로 보이는 가족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 날씨에 물속에 뛰어들 수 있는 젊음이 부럽네.


당시에는 뉴질랜드의 한여름이었고 파이히아가 뉴질랜드에서 유명한 휴양지라 사람들이 꽤나 많은 편이라고 했다. 그래도 워낙 인구가 적은 탓에 바닷가는 한적하고 길에도 사람들이 북적이진 않았다. 파이히아는 물빛도 바다풍경도 우리나라 서해와 무척 닮아있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늦여름, 피서객들이 떠난 폐장 직전의 해수욕장 같았다. 파이히아를 찾는 사람들은 주변 섬이나 해안을 찾아서 오는 것이지 파이히아의 해변에서 물놀이를 하진 않는 것 같다. 저녁이 다가오자 다시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고 서둘러 장을 보고 숙소로 들어갔다.


타우포에서 아름다운 호수와 강을 보며 2박 3일을 보낸 후에 국립공원이 있는 통가리로(Tongariro)라는 작은 도시(라기보다 마을에 가까운...) 로 옮겼다. 이곳에 온 이유는 단 하나, 북섬에서 유명한 트레일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트레일로는 세계 3대로 꼽히기도 하는 밀포드 사운드의 트레일이 있지만 이번 여행에서 남섬은 제외했기 때문에 북섬에 한정해서 찾다가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을 발견하게 되었다. 뉴질랜드의 트레일이라면 빙하가 깎아놓은 피요르드나 설산을 보며 걷는 코스를 떠올리지만 북섬에는 이런 것들이 없다. 아름다운 피요르드나 설산을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거칠고 기묘한 지형이 대신한다.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이 있는 통가리로 국립공원은 타우포 호수의 남쪽으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이 곳은 유네스코 자연유산이자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1990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었으나 1993년 마오리의 성지라는 문화적 가치가 재조명되어 문화유산으로도 등록되었다. 그리고 위키백과에서 본 재밌는 사실은 테헤우헤우 투키노(아마도 마우리족장이 아닐까)가 정부에 토지를 선물하여 1894년 뉴질랜드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항상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에 있었던 쟁탈과 침략의 역사만 보다가 원주민이 정부에 토지를 선물해서 지정된 국립공원이라니 놀라우면서 더욱 가치있게 느껴진다. (잠시 말이 좋아 선물이지 강탈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1800년대 말에 황무지 같은 이곳을 정부가 굳이 강탈할 이유는 없었을 것 같다. 이곳이 아니더라도 개척해야 할 땅은 널려있었을테니 말이다.)


게스트하우스에 피어있던 수국. 뉴질랜드에서는 정말 여기저기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통가리로로 다가가자 산꼭대기가 분화구인 화산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한여름이었음에도 산꼭대기에는 잔설이 남아 있었다.


통가리로는 생각보다 훨씬 작은 마을이었다. 버스는 주유소겸 마트를 겸하는 곳에 사람들을 내려주었는데 숙소로 걸어가면서 보니 띄엄띄엄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게스트하우스나 레스토랑이었다. 숙소는 무척 훌륭했지만 연말이 다가와서인지 묵고 있는 여행자들은 많지 않았다. 뉴질랜드에서 묵었던 숙소 중에서 가장 깔끔하고 훌륭한 곳이었는데 연말에 젊은 서양여행자들의 떠들썩한 분위기에 휩쓸리고 싶지 않아서 다른 곳보다 조금 비용을 더 썼기 때문이었다. 시설도 훌륭했고 주인도 친절했지만 무엇보다 주방이 무척 깨끗하고 조리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남미 이후로 게스트하우스에서 식사를 만들어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주방시설도 매우 중요한 숙소 평가요인이 되었다.


통가리로가 작은 곳이다보니 흔히 보이던 대형 마트도 없어서 다시 버스에서 내렸던 주유소의 작은 마트로 가야했다. 내일 트레킹하면서 먹을 것들, 트레킹 다녀와서 먹을 것들을 모두 사려는 것이었는데 연말 연휴를 앞두고 물건이 얼마 없어서 살 수 있는 것들, 살만한 것들은 빠짐없이 골라야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립공원 안까지 막걸리, 전, 산채비빔밥 등등을 파는 곳들이 꽉 들어차 있어서 당일치기 산행이라면 간식만 조금 챙기면 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트레킹이나 산행중에 먹거리를 파는 곳이 거의 없다. 그래서 전날 트레킹 중에 먹을 끼니를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숙소 뒤편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저녁놀은 항상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다음날 아침 통가리로 국립공원으로 가는 버스를 탓다.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은 해발 1100미터가 조금 넘는 곳에서 시작해 몇 개의 분화구와 호수를 보며 1900미터 가까이 오른 다음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총 거리 19킬로미터가 조금 넘는 트레일이다. 이 공원의 주요 산들은 루아페우, 나우루호에, 통가리로 산인데 높이는 2000미터부터 2700미터 남짓으로 높지는 않지만 모두 화산이라서 거칠고 황량해서 기묘한 경치를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가 반지를 없애기 위해 화산으로 가던 장면을 촬영했다고 한다.


해외에서의 트레킹은 항상 날씨 걱정을 하게 된다. 국내에서처럼 날씨에 맞춰 여행스케줄을 조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역시나 날이 흐리다.



날씨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머리 위로는 구름이 잔뜩 낀 날씨였다. 아직 이른 아침이니 해가 뜨고 기온이 올라가면 구름이 걷히길 기대하며 트레킹을 시작했다. 트레킹 초반은 초원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완만한 경사를 오르는 쉬운 길이었다.






초반에는 길 옆으로 풀들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었는데 천천히 오르다보니 바위에 달라붙다시피 자라는 식물들만 남아있고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거무튀튀한 돌들이 울퉁불퉁 솟아있었다.







심하진 않지만 조금씩 경사가 가팔라졌다. 오르기 어려운 곳은 어김없이 나무로 만든 계단이 놓여져 있어서 힘들지는 않았다. 뒤돌아보니 봉긋하게 솟은 기생화산과 거무튀튀한 흙과 돌들이 덮인 땅이 보였다. 제주도 오름에 오른 후에 내려다보는 풍경과 비슷해서 낯설게 보이지 않았다.





주변 풍경이 점점 더 거칠고 황량해졌다.





한참 오르막을 올라서 눈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돌아 지나면 갑자기 평평한 분지가 나온다. 사방이 빙 둘러싸여 있어서 분화구처럼 보이는데 크기가 제법 컸다. 이 분화구처럼 보이는 분지를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가야한다. 날씨가 맑아지길 기대했지만 높이 오를수록 구름은 더 짙어졌다.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올랐다. 이곳에 검붉고 기괴하게 생긴 분화구가 있는데 당장이라도 땅이 흔들리며 용암을 분출할 것처럼 생겼다. 원래대로의 트레일 코스라면 이곳을 지나서 몇 개의 호수를 감상하며 내리막을 걸어 내려가면 된다. 그런데 하필이면 당시에 감지된 지진활동으로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길이 통제되고 있었다. 나머지 절반을 볼 수 없으니 실망스럽지 않을리가 없지만 1년 가까운 여행기간동안 이런 경우를 여러 번 겪다보니 안될건 일찌감치 포기할 줄 아는 마음도 길러졌나보다. 여행도, 인생도 그렇다. 안되는걸 마음속에 담아둘 필요는 없다.






통제하는 길 앞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심해지고 빗방울도 흩뿌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용암이 분출된 화산이 여러개였던 것 같다. 여기저기 작은 분화구에 물이 고여 작은 호수를 만들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호숫가를 돌아 내려가는 코스였는데 멀리서 눈으로만 봐야했다. 호숫가까지는 갈 수 있지만 갈까말까 고민하다가 내려가지 않았다. 다시 올라오는걸 감수할만큼 호수가 매력적이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려가는 길은 꽤나 고생스러웠다. 내려가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코스의 가장 가파른 경사에서 갑자기 바람이 심하게 불면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얇은 바람막이로는 가려지지 않을만큼 제법 비가 많이 내렸고 바람 또한 심하게 불어서 경사를 내려가기 위험할 정도였다. 다들 길가 바위에 달라붙어 바람이 멎기를 기다렸다. 그 시간이 길진 않았지만 몸이 젖고 체온도 떨어지면서 컨디션이 안좋아졌다. 높지 않더라도 산의 기후는 종잡을 수 없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어느 정도 내려오니 이곳은 햇볕이 쨍쨍했다. 그날의 날씨는 참 야속했다.




트레킹을 마치고 출발점으로 돌아오니 이곳은 뉴질랜드 치고는 꽤나 햇볕이 강렬하게 내리쬐이고 있었다. 일광욕을 좋아하는 서양 여행자들은 여기저기 햇볕아래 등을 대고 누웠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이었을 통가리로 국립공원에서의 트레킹을 마쳤다. 특별히 인상적이거나 훌륭했다는 느낌은 없지만 트레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다녀올만하다. 당시를 떠올리면 아쉬운 점은 자연을 보고 걷는 것을 좋아하면서 왜 여행을 마무리하는 장소로 시드니를 선택했을까 하는 점이다. 호주에서의 짦은 일정을 생략하고 뉴질랜드 여기저기를 다니며 트레킹을 했다면 훨씬 나은 마무리가 될 수 있었을 것 같다.


트레킹을 할 수록 어디가 최고의 트레일이다 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소를 판단하는 개인의 기준은 절대로 객관적이지 않다. 같은 장소라도 그 날의 날씨가 어땠는지, 본인의 컨디션은 어떤 상태였는지, 동행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따라 좋고 나쁨이 완전히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접 가보고 느끼다보면 어디라도 나름의 매력을 가질 것이다. 그 곳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 때문이다.

타우포 번지점프대를 떠나 다시 후카폭포로 향했다. 잠시 숲이 없는 길이 나왔지만 이내 강을 따라 난 숲길로 다시 들어갔다. 왼쪽으로는 무척이나 맑고 푸른 강물이 흐르고 우거진 숲에는 거대한 고사리처럼 생긴 양치식물들이 자라고 있어서 걷는 길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걷다가 쉬고 싶으면 언제든 강가에 앉아 발을 담글 수도 있다.

같은 화산지대라 그런지 둥글둥글한 언덕과 거무스름한 흙길이 제주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빛이 아름다운 호수는 여럿 봤지만 강물이 이런 색을 띄는 건 처음이다. 게다가 석회질을 많이 함유한 뿌연 색이 아니라 맑은 청록색이라 더 예쁘다.




잔잔한 강물 위로 카약이 스스르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강물이 호수처럼 잔잔해서 힘도 들지 않을 것 같다.


물가에는 처음보는 수초가 잔뜩 있었다. 짧고 몽글몽글하게 생겨서 수초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 수초들 덕분에 물이 맑고 푸르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트레일은 강을 따라 완만한 경사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이어져 있었다.


자연은  그대로일때 더 아름답고, 더욱 가치있다. 물론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해야겠지만 그런 자연재해조차도 커다란 관점에서 보면 자연의 불균형을 맞추는 지구의 자정활동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재해들로 발생하는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최소화한답시고 무리하게 자연에 손을 대면 결국 더 큰 불균형을 가져오고 결국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 타우포와 와이카토 강이 아름다운 것은 자연 그대로를 잘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쉬면서 잠시 맑은 물에 발을 담그는 트레커들. 무척 시원해 보여서 돌아가는 길에 따라 해봤다.



거대한 고사리처럼 생긴 양치식물



자주 쉬고 사진을 찍기도 하며 걸었더니 얼마나 걸었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렸는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새 조용하던 숲길에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더 걸으니 호수처럼 잔잔하게 흐르던 강물이 급류가 되어 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물이 맑아서인지, 강바닥이 흙이 아니라 바위여서인지 급류가 흔히 볼 수 있는 흙탕물이 아니라 하얀 포말이 섞인 하늘색이었다. 이 급류를 보고 난데없이 거대한 '캔디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류 옆으로 난 길을 따라 폭포쪽으로 걸어갔다. 다리도 있어서 급류 한가운데 서서 시원스런 물줄기를 감상할 수도 있다.



폭포 자체는 큰 볼거리가 아니다. 낙차가 크지 않고 수량도 커다란 폭포들에 비해서 많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훌륭한 경치를 보인다. 게다가 대부분의 폭포는 흙탕물이거나 급류에 이런저런 부유물이 많이 섞인 혼탁한 물인데 후카폭포는 맑고 깨끗한 물이라 청량감이 배가 되었다.





액티비티의 천국, 뉴질랜드답게 후카폭포에도 액티비티 프로그램이 있다. 날렵하게 생긴 제트보트를 타고 폭포에 가까이 다가가는 투어다. 이구아수 폭포에도 비슷한 것이 있었지만... 한번 타는데 뉴질랜드 달러로 100달러 정도였다. 지금은 환율이 많이 떨어져서 1NZD에 800원이지만 당시에는 1000원이 넘었기에 타는 것은 포기하고 구경만 했다. 


그 와중에 텅빈 보트가 한 대 폭포쪽으로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배를 운전하는 가이드를 제외하고 젊은 동양인 남자 혼자 타고 있었다. 보트 정원은 가이드를 제외하고 14명인데 어째서 저 배는 텅 빈 채로 운행하나 궁금했다. 다른 배들에는 모두 사람들이 꽉꽉 차 있었다. 그러다 저 배는 타고 있는 젊은 사람이 통째로 전세 낸 것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14명이니 원래대로라면 1400달러, 당시 환율로 150만원이 넘는 돈을 선뜻 지불하고 탄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할 수 있는 돈을 가지고 있다면 참 편할 거다. 가격대비 좋은 숙소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저렴한 교통편을 구하느라 궁리하지 않아도 된다. 갖고 싶은 것, 필요한 것은 그냥 사면 그만이다. 하지만 어떤 일이건 댓가가 필요한 법이라, 편하게 얻는 방법은 그것을 어렵게 구한 기쁨도 알지 못한다. 뜻하지 않게 만난 연연도, 현지인에게 받은 친절도, 우연히 먹은 눈물나게 맛있는 음식도, 골목과 거리를 헤매다 보게 된 광경도, 내 발로 걸어올라가서 봐야 느낄 수 있는 황홀한 경치도 모두 알지 못할 것이다. 아마 저 보트에 혼자 타고 있는 젊은 친구는 보통 사람들이 사는 삶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을테고, 더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모르고 살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재벌 2,3세들의 '갑질'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들은 태어나서부터 그런 '갑질'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요구하면 들어주는 세상에서 살아왔는데, 갑자기 자신의 당연한 행동이 지탄 받고 욕을 먹는 이유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사과하고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사과를 해야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단 한순간도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렇게 살아왔고 그런 삶을 당연하게 교육받아 왔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책임도 있지만 그런 갑질과 특권의식이 통하게 만들어 온 사회의 책임이 더 크다.


물론, 저 보트를 빌린 젊은 친구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저 보트를 혼자 타보는게 소원이라 여행 경비의 상당 부분을 보트 타는 데 투자했을 수도 있고, 같이 탈 친구들이 모두 아파서 같이 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내가 저 보트를 10번 타는 것보다 훨씬 적을 거라는 것도 사실이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는 즐거움을 깨닫는다면 인생이 훨씬 즐거워질걸?


원래는 이게 정상적인 보트의 모습이다.




물이 맑다는 것 말고는 음... 솔직히 크게 훌륭한 경치는 아니다.


벤치에 앉아 급류를 바라보며 싸가지고 간 샌드위치를 먹었다. 점점 훌륭해지는 솜씨에 감탄하며 게눈 감추듯.





겨우살이라고 하나? 파타고니아 숲에서 수없이 봤던 이 식물이 여기도 보인다.







돌아가는 길에 발을 담그다.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시끌시끌해서 보니 사람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얕은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온천인가 싶어 다가가니 뜨거운 물에서 나오는 열기가 후끈하게 느껴졌다. 갈아 입을 옷도 없고 벗고 입기도 귀찮아 몸을 담그지는 않았지만 손을 담가보니 물이 꽤 뜨거웠다. 사람들은 뜨거운 물이 나오는 물가에 몸을 담그고 있다가 더워지면 깊은 강쪽으로 가서 몸을 식혔다. 





오후 해가 제법 기울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후카폭포까지 가는 트레킹이었지만 정작 후카폭포보다는 그 곳에 가는 동안 볼 수 있는 경치가 훨씬 아름다웠다. 뉴질랜드 북섬을 여행하면서 잘했다 싶은 한가지가 후카폭포까지 교통편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간 것이었다. 차를 타고 휙 갔다가 폭포만 보고 돌아왔다면 무척 실망했을 것 같다. 살면서 겪에 되는 많은 일들이 이것과 비슷하다. 목적한 바를 이뤘지만 정작 목적은 허망하고 애썼던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진 일, 목적은 이루지 못했지만 거기까지 가는 동안 소중한 경험들을 얻게 되는 경우가 있다. 쉽게 얻는 것들은 오히려 쉽게 잊혀진다. 여행도 발로 하는 여행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


돌아와서 저녁으로 대형마트에서 파는 해산물 샐러드와 뉴질랜드의 명물인 녹색홍합을 사서 데쳐 먹었다. 뉴질랜드는 마트에서 파는 식재료가 무척이나 쌌다. 고기와 유제품, 해산물은 물론이고 마트에서 파는 1달러도 안되는 커다란 머핀조차 스타벅스에서 파는 4000천원이 넘는 조그만 머핀보다 훨씬 맛있었다. 마트에는 갖가지 종류의 머핀과 빵들이 매장 한쪽을 커다랗게 차지하고 있고, 여러가지 과일과 먹거리들도 무척이나 다양하고 저렴했다. 뉴질랜드에 온 뒤로 매일 저녁 마트에 가는게 꽤나 재미난 일과가 되었다. 자연환경과 복지와 물가까지 현지인들이 살아가기에 참 좋은 뉴질랜드는 경제선진국은 아닐지 몰라도 선진복지국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PS. 2000년대 중반까지 뉴질랜드와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비슷했고, 2010년대 초만해도 우리나라는 3만불이 조금 안되었고, 뉴질랜드는 3만불이 조금 넘었었다. 지금은 뉴질랜드는 4만불이 훌쩍 넘었고 우리나라는 변함없이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국민소득이 비슷했던 나라가 어째서 몇 년만에 이렇게 크게 차이 나게 되었는지, 복지로는 한 나라는 세계 3대 복지국가로 일컬어지고 한 나라는 '헬'이라 불리는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뉴질랜드를 여행하던 당시에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 탄생했다. 잘 터지지 않는 와이파이로 선거결과를 검색하던 나는 절망했다.

이튿날 아침, 트레킹을 하면서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여행내내 해온 일이라 이젠 제법 익숙해진데다 약간의 노하우도 생겼다. 노하우중에서 내가 생각해도 꽤 훌륭하다 싶은 것이 샌드위치 빵에다 아보카도를 바르는 것이었다. 아보카도는 갑옷같은 껍질속으로 물렁한 과육과 가운데 커다랗고 딱딱한 씨가 있어서 깎기가 무척 어려웠다. 처음에는 서투르게 깎은 과육을 얇게 잘라 샌드위치에 넣었는데 한번은 너무 익어 자르기 어렵기에 어쩔 수 없이 그냥 숟가락으로 떠서 빵에 발랐다. 그런데 이게 꽤나 훌륭했다. 따로 야채를 넣지 않아도 아보카도의 식감이 무척 부드러워 빵의 뻑뻑함을 많이 상쇄해주고 치즈와 햄의 느끼함도 잡아줬다. 아보카도 자체는 별다른 맛도 없고 조금은 느끼하달 수도 있는데 샌드위치에 넣으니 완전히 달라진다. 게다가 잘라서 넣은 것보다 빵에 바르니 이질감이 없어서 더 좋았다.(나만 그런지도 모르지만...) 


살아가면서 약간의 수정과 생각의 전환이 일과 인생을 완전히 다르게 만드는 경험을 종종 하게된다. 그런 전환이 무조건 인생을 올바르게 이끄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시도가 일보후퇴 이보전진을 만들게 되는 것 같다. 샌드위치를 싸고 출발하기 전에 하늘을 보니 아쉽게도 구름이 제법 있어서 걱정스러웠다.


타우포에서 묵었던 호스텔. 뉴질랜드에서 묵었던 숙소중에 가격대비 훌륭한 편이었다.




크리스마스 트리로 쓰면 굉장할 것 같다. 연말이었는데도 장식이 안된걸 보니 그러진 않나보다.

 


숙소에서 나와 트레일을 찾아서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마오리족의 전통적인 조각이 장식된 문이 보였다.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족은 10세기경 폴리네시아 동부에서 카누를 타고 뉴질랜드로 이주했다고 하는데 특히나 목공예 솜씨가 뛰어나서 (내가 보기에는)희안하고 독특한 문양의 공예품이 많다고 한다.(위키백과 참조) 


뉴질랜드와 호주는 가까이에 있으며(오클랜드와 시드니가 비행기로 세시간이니 가깝다고 볼 수는 없지만) 유럽의 백인들이 이주하면서 현대적인 국가가 되었다는 공통점도 있지만 그 속의 역사는 무척이나 다르다. 호주에서는 에보리진이나 타즈매이니아 원주민이 유럽인들의 학살과 그들이 옮긴 질병으로 수없이 죽어갔으며 그들이 국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되지 않았지만 뉴질랜드에서는 비교적 빠른 시기에 유럽인과 마오리족 간에 협정을 맺어 공존해 왔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호주보다 뉴질랜드에 훨씬 호감이 간다. 게다가 뉴질랜드의 지명은 영어권 이름뿐만 아니라 마오리족 언어에 기반한 이름들이 상당히 많다. 이런 이름들은 낯설지만 어감이 무척 재미나서 영어권 국가 여기저기에 있는 비슷한 이름을 가진 도시들보다 훨씬 기억에 남는다.


그러고보니 와이토모의 동굴투어를 했던 여행사의 주인 할아버지가 기억난다. 이 할아버지는 무척 말이 많고 유머스러운 사람이었는데 호주사람들에 대해 뉴질랜드에 와서 돈자랑한다느니, 예의가 없다느니, 유럽에서 건너온 질이 안좋은 사람들이 건설한 나라라느니 하며 비꼬는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뉴질랜드나 호주나, 조상들이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고 비슷한 이주역사를 가진 사람들이라 생각했었기에 처음에는 약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역사도 다르고, 수백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그 땅에 정착한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마야의 조각상과 비슷하게 보인다.




트레일을 찾아 걷다보니 어느새 날이 맑아졌다. 오히려 내리쬐는 햇볕이 따가울 정도였는데 트레일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녔다. 딱히 표지판이 있거나 길에 표시가 된게 아니라서 우선은 타우포호수에서 후카폭포로 흐르는 강을 찾아야했다.



우여곡절 끝에 맑은 물빛의 와이카토 강을 발견하고 풀밭을 헤치며 가로질러서 다가갔다. 강가에 다가가니 아이들이 개와 함께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건강한 아이들이 뿜어내는 발랄함이 보기 좋아서 한동안 아이들이 노는걸 구경하며 서 있었다.




낯선 이방인의 등장에 한 아이는 경계를, 한 아이는 친밀함을 보인다. 모두 아이들의 꾸미지 않은 표정이다. 


어이 친구, 이제 그만 집에 가자구


와이카토 강의 물은 정말 맑아서 깊이에 따라 다양한 물빛을 보여주었다.


절벽 위에 보이는 번지점프대가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를 촬영한 유명한 타우포 번지점프대다.






절벽 아래에서 번지점프대로 올라가려고 했지만 좀처럼 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기껏 찾아낸 절벽 아래로 난 길은 낙석으로 위험해선지 쇠창살로 갈 수 없게 막혀 잇었다. 한동안 절벽 밑을 뒤진끝에 위로 올라가는 좁은 숲길을 찾을 수 있었다. 위에서 보니 짙은 수풀 사이로 흐르는 와이카토 강이 에메랄드처럼 보였다.





충분히 튼튼하게 지어졌겠지만 공중에 붕 떠있는 점프대가 조금은 아찔하다.



번지점프대에서 내려다 본 와이카토강의 물빛은 수심에 따라, 강바닥의 색에 따라 갖가지 푸른 빛을 보여주었다.


아직 이른 시간인지 점프대에는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점프대 끝에는 밧줄만 한두개 쳐 있을뿐이었다.




번지점프를 하는 가격은 무척 비쌌다. 정확하진 않지만 20만원이 훨씬 넘었던 기억이다. 거기다 본인이 뛰어내리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겨주거나 하는 서비스들이 붙어서 결국은 30만원이 넘었다. 당시 환율이 아주 좋지 않은 상태였지만 비싸도 너무 비쌌다. 게다가 높은 곳을 싫어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번지점프대에서 서서 주변을 구경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타우포 번지점프대에서 본 와이카토 강은 무척 아름웠다. 후카폭포로 가는 트레킹을 이제 막 시작했음에도 여기저기 발길을 잡는 풍경이 많아서 자연히 속도가 느려질 수 밖에 없었다. 어차피 긴 거리가 아니기에 천천히 가도 시간이 충분하니 마음이 더 느긋해졌던 것도 있다. (산길을 트레킹 할 때는 시간을 정해놓고 조금 늦어지는 것 같으면 자꾸 서두르게 된다. 사진을 보니 다시 카메라 상태가 아쉬워졌다. 일부러 찍으려고 해도 찍기 어려운 사진들이 엉망으로 찍혔다.)


글을 마무리하려다 갑자기 생각난게 뉴질랜드 버스의 안전벨트다. 뉴질랜드에서 탄 버스들이 안락하다거나 시설이 좋은 건 아니다. 우리나라의 일반 시외버스와 다를 바 없다. 가장 눈에 띄는 다른 점은 안전벨트가 승용차처럼 어깨와 허리 양쪽을 연결하는 3점식이라는 것이다. 분명히 세계 여러나라들 중에 뉴질랜드만 이렇지는 않겠지만 거쳐 간 나라들에서 탔던 버스들 중에는 뉴질랜드 버스가 유일했다. 2점식과 3점식은 사고시 안전벨트의 효과가 무척 다르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안전벨트의 개념이 없었던 동남아와 3점식 안전벨트를 갖춘 뉴질랜드 사이 어딘가에 있을텐데 자꾸만 전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로토루아를 떠나 다음으로 찾은 곳은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호수가 있는 타우포였다. 타우포 호수는 뉴질랜드 북섬 중앙에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은 2차세계대전 전후까지만 해도 정착민들이 많지 않은 곳이었지만 농업과 목재산업이 발전하면서, 그 뒤에는 호수를 중심으로 관광지가 개발되면서 도시가 커졌다고 한다. (위키백과 참조) 이곳의 관광지로는 타우포 호수와 후카폭포가 유명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주인공이 뛰어내린 번지점프대가 있는 곳으로 알려져있다.

호스텔을 찾아가다 본 멋진 클래식카. 옆에 있는 고급 SUV를 후줄근하게 만들어버렸다.

자동차 디자인은 옛날 차들이 오히려 훌륭한 것 같다. 요즘 고급차 메이커들이 신차를 발표하면서 오래전 모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말을 자주 하는걸 보면.


초등학교였던 것 같은데 심심한 담장을 이렇게 귀엽게 바꿔놓았다.


타우포에 있는 현대자동차 매장. 현대자동차는 한국기업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삼성이라는 브랜드는 아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다.

한국기업이라고 굳이 마케팅을 할 필요도 없고, 그네들도 품질 좋은 제품을 살뿐 어느 나라 기업인지 알 필요도 없지만...



호스텔에 배낭을 내려놓고 타우포 호수쪽으로 걸었다. 뉴질랜드에 머문 날들 중에서 워낙 날씨가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그냥 숙소에 쉬고 싶지 않아서였다. 호수 근처에 다다랐을 때 막 지면을 차고 이륙하는 듯한 옛날 비행기 모형이 보였다. 궁금해서 가보니 맥도널드 매장이었다. 주차장에 이런 거대한 비행기를 둔 것이 재밌어서 사진을 찍었는데, 여행 후에 인터넷에서 누군가가 세계의 유명한 맥도널드 매장을 올려 둔 곳들 중에 한 곳으로 나와있어서 반가웠다.



타우포 호수는 생각보다 더 컸다. 오세아니아 대륙에서 파푸아뉴기니에 있는 호수 다음으로 두번째로 큰 호수라고 하기에 찾아보니 호수면적이 서울시보다 조금 더 컸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커다란 호수가 화산폭발로 생겼다는 것이다. 26,500년 전에 있었던 이곳의 화산폭발은 최근 7만년 동안 있었던 화산폭발 중에 가장 큰 규모였고, 이 부근에 있었던 작은 화산폭발 중에 서기 180년 경에 있었던 폭발조차도 최근 2만년 중에서 가장 큰 폭발이었다고 한다. 같은 시기에 중국과 로마의 하늘이 붉어졌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마 이 화산폭발로 인한 것이라고 추측한다고 한다.(위키백과) 거대한 도시 폼페이를 파묻어버린, 화산폭발로 인한 최고의 참사로 기록된 베수비오 화산조차 비교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다행이라면 이런 화산폭발이 사람이 살지 않았던 시기의 뉴질랜드에서 발생한 것이다.



호수 근처에는 오리나 갈매기들이 많이 보였는데 녀석들은 해코지를 당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사람을 전혀 겁내지 않았다.



호숫가를 따라 걷다보니 재밌는 시설이 있었다. 호숫가에서 호수쪽으로 골프공을 치는 연습장이었는데 구경이라도 해볼까했더니 사람은 없고 오리만 놀고 있었다.



잠깐 기다리자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와서 골프공을 치기 시작했다. 호수에 떠 있는 구조물 안에 공을 넣으면 뭔가 상금을 주는 것 같았는데 당연히 쉽지 않았다. 몇 번인가 비슷하게 날아가면 탄성을 내고 즐거워했다. 그러던 중에 점차 하늘이 어두워지고 호수위로 검은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어린이용 트램벌린이었는데 트램벌린당 한명씩, 낙상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공중에 매단 안전띠를 착용하고야 탈 수 있다.

어렸을 때 수십명이 올라가던, 종종 사고가 나던 트램벌린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곳곳에서 늘낄 수 있는 뉴질랜드 사람들의 안전의식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사람이 만든 벤치지만 갈매기의 양해를 구해야 이용할 수 있다.


호숫가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뉴질랜드의 여름날씨는 원래 이렇게 변덕이 심한 것인지, 우리나라처럼 장마철이라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여행내내 날씨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돌아갈 길이 꽤 멀어서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한참 열심히 가다보니 빗방울이 멈췄다. 





아가씨를 도촬한 것이 절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리트리버를 찍은거다.


타우포 시내쪽에서 걸어간 호숫가는 화산분화구라 그런지 경사가 심해서 물가까지 내려가 볼 수 없었다.


시내로 돌아와 걷다보니 여기저기 펍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펍이라면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기네스 생맥주가 있을터. 부드러운 거품과 쌉쌀한 맛이 제대로인 기네스를 오랫동안 천천히 즐겼다. 내일은 호스텔에서 후카폭포까지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가는 길에는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그 번지점프대도 있으니 금상첨화였다. 마트에서 트레킹중에 먹을 샌드위치 거리를 사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트레킹을 하게 되었는데 부디 날씨가 좋기를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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