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에도 6시쯤 걷기 시작했다. 7월말 스페인은 무척이나 덥고 태양이 강하기 때문에 6시 출발, 12시나 늦어도 1시 전에 도착하는 것으로 나름의 규칙을 정했다.




걷다보면 주위가 천천히 밝아온다. 그리고 한두시간쯤 지나면 벌써 햇볕을 받은 등과 목덜미에 뜨끈한 열기가 전해진다. 길은 다양하다. 도시의 평평하고 잘 정돈된 길도 있고, 농로나 자갈길, 산길도 있고,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이 비포장된 길이기 때문에 신발이 무척 중요하다. 당연히 밑창이 두꺼운 등산화나 트래킹화가 좋다. 가끔 이런 신발들은 배낭에 매단채, 슬리퍼를 신고 걷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물집이나 다른 더 고통스러운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다니는 것이다.


내 신발도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6개월째 여행하는 동안 많이 닳아서 밑창이 얇아지고 맨들맨들해진 것이다. 이틀짼데 벌써 발바닥을 콕콕 찌르는 자갈들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걷다보면 곳곳에서 포도나무가 보였다. 순례자의 길에 대한 여행기나 수필을 읽어보면 포도를 따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여름은 포도가 한참 익어가는 시기라 먹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당연히 극심한 갈증 때문이 아니라면 함부로 먹어서도 안될테고.


페인에도 와인이 무척 많이 생산된다. 와인이 무척 싸기 때문에 자주 와인을 마실 수 있다. 각 마을이나 도시의 레스토랑마다 '메뉴 델 디아'라는 메뉴가 있다. 우리말로는 '오늘의 메뉴'인데 큰 도시의 관광지에서는 15유로, 관광지가 아닌 작은 마을에서는 6~10유로 정도면 먹을 수 있다. 언뜻 비싸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에피타이저, 메인, 디저트, 음료를 선택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게다가 음료로 와인을 선택하면 레스토랑의 하우스 와인을 유리병에 담아 내어주거나 병째로 주는 경우도 있다.


와인과 함께 에피타이저(스파게티나 샐러드), 메인(돼지, 소, 닭고기 요리), 디저트(아이스크림)을 먹는데 그 정도 가격이라면 저렴해도 엄청 저렴하다고 할 수 있다.










스페인은 과거 작은 국가들로 나뉘어 있었고 한 나라로 통일된지 얼마되지 않은데다가 언어도 조금씩 다르다. 역사적으로도 분리독립 요구를 융화보다는 독재와 억압으로 눌러왔기 때문에 아직도 독립을 요구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팜플로냐에서 시작한 순례길은 바스크 지역을 지나는 동안 도로나 길 곳곳에 독립을 요구하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정치적으로 탄압 받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과거가 불과 몇 십년 지나지 않았기에 이들의 독립 요구가 비이성적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이들에게 사과하고 감싸안지 못하는 스페인 정부의 무능함이 한심해지지만 생각해보니 우리 또한 별반 다를게 없다.





한낮에 가까운 시간이 되었다. 이제 일정을 마무리하고 숙소를 찾아 쉬어야 할 시간인 것이다. 빨리 쉬어야 내일 다시 걸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오늘은 Estella까지 24km 정도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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