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날은 W코스의 마지막 오른쪽 부분을 아래에서 위로 왕복하는 코스였다. 실질적인 트레킹은 오늘 마무리하고 내일은 새벽에 일어나 오전 중에 승합차가 데리러 오는 곳까지 도착해야 했다. 왕복 20km가 넘는 산길이지만 표고차가 심하지 않아서 이번 트레킹에서 무난한 코스이며, 코스의 마지막에는 모레노 빙하만큼 거대하진 않지만 작은 빙하가 있어서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오늘도 날씨는 아침부터 흐려서 마지막까지 맑게 갠 모습은 보여주지 않으려나 싶었다. 어제 비바람에 꽤나 고생을 했기 때문에 혹시나 다시 날씨가 거칠어질까싶어 처음부터 걷는데 속력을 내다보니 초반에는 찍은 사진이 별로 없었다.
호숫가를 따라 난 산길을 걸으면서 보니 위로 갈 수록 호수에 떠다니는 작은 빙하 파편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문득 호수 저편으로 빙하가 나타났다. 다시 숲길을 얼마간 걸어 산장에 도착했다. 며칠간 트레킹하며 묵거나 봤던 산장중에 가장 호사스런 곳이었다. 프런트에 취사를 할 수 있는 곳을 물어 점심을 만들었다. 다른 산장에서는 취사할 수 있는 곳이라 해봐야 겨우 바람만 막을 수 있는 곳이 다였는데 여기는 간이건물이긴 하지만 제대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산장에서 안쪽으로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 빙하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넓게 펼쳐진 빙하에서 트레킹 중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부분은 사진의 오른쪽 부분이다.
빙하와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지점에 도착했다. 예전에는 빙하와 내가 서있던 자리가 붙어있었거나 아주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빙하는 조금씩 녹아서 짧아지고 위로 올라가고 있다. 여기서 한동안 쉬면서 경치를 감상하다가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오면서는 바삐 걷느라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경치들을 이젠 느긋하게 즐기면서 걸었다.
오전내내 흐렸던 날씨가 오후가 되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맑아지기 시작했다. 이번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에서는 날씨운이 참 좋지 않았다. 트레킹을 시작하면 날씨가 안좋다가 마칠때쯤에는 개는 날이 반복되었다. 엘 찰텐에서 날씨운을 모두 써버린 느낌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아쉬움에 왔던 길을 뒤돌아봤더니 멋진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조금씩 옇어지는 구름사이로 햇살이 호수표면에 반사되어 금빛으로 강렬하게 빛이났다. 조금 전에 있었던 빙하에도 구름이 제법 걷혀서 빙하 뒷편 산자락이 드러나고 있었다. 오후 느지막한 햇빛을 받아 설산과 호수가 금빛으로 빛나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인 광경이었다. 찍힌 사진으로는 그 느낌이 전혀 전달되지 않는게 무척 아쉽다.
산장에 돌아왔을 때에는 날씨가 완전히 개었고, 심지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토레스 델 파이네의 여러 봉우리들까지 깔끔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정말 나를 놀리는 것 같아서 약이 올랐다.
토레스 델 파이네의 비경은 저 안에 있다. 셋째날 저 계곡 안쪽으로 들어갔어야했다.
심지어 바람마저 잠잠해져서 깃발이 펄럭이지 않고 늘어진 것을 이틀만에 처음 봤다.
보기만해도 거칠고 황량해 보이는 토레스 델 파이네의 봉우리 들.
이렇게 토레스 델 파이네의 트레킹을 마쳤다. 날씨 때문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트레킹이었지만 육체적으로는 고달프고 힘든 트레킹이 마음에는 이렇게나 행복하고 편안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어나서 산길을 이렇게 오랫동안 걸은 것은 처음이었다. (제주 올레길이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순전히 자연안에서 걷는 길은 아니므로) 점점 더 산이 좋아지고 자연이 좋아졌다.
토레스 델 파이네는 날씨 때문에 미련이 남아서인지 다시 한번 가야 할 곳 1순위로 마음에 남았다.
'세계여행(2012년) > 남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산물을 좋아한다면... - 푸에르토 몬트 (0) | 2015.04.23 |
---|---|
마지막 다섯째날 - 토레스 델 파이네 (0) | 2015.04.22 |
트레킹 셋째날 - 토레스 델 파이네 (0) | 2015.04.17 |
트레킹 둘째날 - 토레스 델 파이네 (0) | 2015.04.17 |
트레킹 첫째날 - 토레스 델 파이네 (0) | 2015.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