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을 마치고나서 보니 노숙자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여행중 한번도 깎지 않은 머리카락은 전부터 어깨를 덮어가고 있었는데 트레킹 중에 제대로 빗지도 못했더니 엉망이었다. 며칠간 세찬 바람에 노출된 피부는 더욱 거칠어졌고, 표정에도 피로감이 잔뜩 묻어있었음에도 왜그런지 트레킹 전보다 훨씬 건강해진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따뜻한 물이 끊길까하는 조바심 없이 느긋하게 샤워를 하고 따뜻한 침대에서 편안하게 잠을 잤다.
이튿날에는 더러워진 몇 안되는 옷들을 세탁소에 맡기고 하루종일 할 일 없이 빈둥대며 피로를 풀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엔 파타고니아 여행을 마치고 푸에르토 몬트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거칠고 혹독한 기후지만 맑고 깨끗했던 파타고니아는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자연 중에서 가장 내밀한 곳이었고, 가장 인상깊은 곳이었다. 여행자의 이기심만으로 이야기하자면 언제까지나 개발되지 않고, 때묻지 않고 보존되길 바란다.
푸에르토 몬트는 바릴로체에서 남쪽으로 내려가기 전에 스치듯 머물렀던 곳이지만 이번에는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로 올라가기 전에 며칠 머무르기로 했다.
푸에르토 몬트는 '푸에르토'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항구도시이며, 인구가 15만이 넘는 대도시에 속하는 곳이다. 이 항구는 상업항이면서 또한 근해에서 잡히는 수산물들이 모이는 어항으로도 유명한 곳이라 항구 바로 옆에 유명한 수산물 시장이 있다. 좋아하는 해산물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버스(승합차)를 타고 물어물어 시장에 도착했다.
마치 거북손처럼 생기긴했으나 크기가 엄청나다.
도착한 시간이 오전이라 시장에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매우 다양한 해산물들을 팔고 있었다. 연어만해도 한마리를 통으로 팔기도 하고, 일부 잘라서 팔거나 훈제해서 팔기도 했다. 조개도 매우 다양한 종류를 팔고 있었고, 게도 날것뿐만 아니라 쩌서 살만 바르거나 집게 발만 파는 등 다양하게 팔고 있었다. 심지어 멍게 비슷한 것들도 보였다.
유럽이나 동남아에서는 주로 생선 중심의 해산물을 파는데 칠레에서는 우리네 시장처럼 다양한 해산물들을 팔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격이 무척 저렴했다. 요즘 가격이 저렴하면 '착하다'라고 표현하는데 착하다 못해 고마울 지경이었다.
1미터가 훨씬 넘을 듯한 크기의 싱싱한 연어들이 가게마다 가득하다.
고마울지경인 해산물의 끝판왕은 게였다. 내 손바닥보다 훨씬 큰 게 한마리 가격이 단돈 2달러였다. 처음엔 당연히 20달러라고 하는 줄 알고 비싸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왔을 때, 대형마트에서 샀던 털게는 1달러였다.(대형마트는 시장보다 훨씬 비쌌다.)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맛이 어떨지는 2달러만 투자해 먹어보면 되는 것이니 무조건 사야했다.
이 곳을 방문했던 다른 여행자의 블로그에서는 연어를 잘라서 팔지 않아 한마리를 사야했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연어만 먹어야했다고 하는데 내가 갔을 때는 잘라서 팔고 있었다. 하긴 자른 연어 덩어리도 큼지막하긴 했다.
커다란 게를 사들고 즐거운 마음으로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다 재밌는 광경을 봤다. 뭔가 '딱', '딱'하는 소리가 들려 유심히 봤더니 갈매기가 공중에서 떨어뜨린 조개가 바위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였다. 갈매기가 딱딱한 조개껍데기를 깨기 위해서 바위에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었다. 누가 새를 머리 나쁜 동물이라하면 갈매기는 제외해야 할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와 게를 쩌먹었다. 껍질이 무척 두껍고 단단했지만 크기가 워낙 컸기 때문에 한마리만 먹어도 배가 찰 지경이었다. 좋은 음식을 저렴하면서도 배부르게 먹었을 때 행복함을 느낀다. 푸에르토 몬트는 이 게 한마리로 나에게 행복한 도시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지금보니 내 손바닥 두배는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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