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카카 호수(El lago Titicaca)는 남아메리카 최대의 수량을 가진 호수이며, 운송로로 이용되는 호수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3812미터)에 있는 호수이다.(위키피디아 참조) 면적도 꽤 넓어서 충청남도보다 더 넓다.


티티카카라는 이름은 푸마를 뜻하는 티티(Titi)와 바위나 회색을 의미하는 카카(Caca)가 합쳐진 단어인데, 푸마는 잉카인들이 힘과 용맹함을 상징하는 동물로 콘도르와 함께 숭상하던 동물이었다. 실제로 호수를 찍은 항공사진을 보면 푸마처럼 생겼다는데 우리나라 한반도가 호랑이처럼 생겼다고 해도 처음 보면 전혀 와닿지 않는 것처럼 이곳도 어째서 푸마를 닮았다는건지 좀처럼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이 커다란 호수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40여개의 섬이 있는데 그 중에서 볼리비아에 속하는 태양의 섬(Isla del Sole)과 달의 섬(Isla de la Luna), 페루에 속하는 갈대로 만든 섬 우로스(Uros)가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태양의 섬은 호수에서 가장 큰 섬 중의 하나이며 잉카의 태양의 신천(Templo del Sol)이 있던 곳으로, 비교하자면 우리나라 강화도 참성단하고 비슷한 곳일 듯 싶다. 여행자들은 아침 일찍 코파카바나에서 출발하는 배편을 이용해 태양의 섬을 둘러보고 오후 배편을 타고 돌아오는 일정으로 많이 방문한다.


코파카바나를 떠난 보트


수면에 깔린듯 떠 있는 구름과 호수 위 일렁이는 물결이 몽환적이다.


배 위에 사람들이 올라갈 수 있도록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데 햇볕을 좋아하는 서양사람들로 북적인다.


멀리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안데스의 설산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유유자적한 상체와는 다르게 다리로는 배의 키를 조정하고 있다.

수없이 다닌 물길이라 굳이 손을 쓸 필요도 없나보다.


아예 키와는 반대방향으로 얼굴을 돌리고 앉았다. 아저씨,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배는 지금까지 오면서 봤던 섬들보다 훨씬 크고, 황량해 보이는 섬에 닿았다. 내려서 섬에 들어오는 요금(?)을 지불하고 간단한 요깃거리를 샀다. 


태양의 섬을 둘러보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한가지는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있는 곳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방법이고, 다른 방법은 전망대부터 계속 호수를 내려다보며 걸어서 내린 곳과는 다른 항구에서 배를 타고 돌아오는 것이다.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해 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 싶어서 후자를 택했다. 길이 멀고 험하진 않지만 높은 곳이라 평지보다 훨씬 빨리 숨이 가빠지는데다 낮동안 내리쬐는 햇살도 만만치가 않기 때문에 중간중간 쉬어가며 걷다보면 총 3,4시간은 걸린다. 충분한 물과 에너지를 보충할 간단한 간식거리 정도는 가지고 가는게 좋다.





걷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재밌는 광경을 봤다. 서양 여행자 한명이 나귀를 찍으려고 가까이 다가갔는데, 이 어린 나귀는 뭔가 먹을 것이라도 주는 줄 알았던지 자꾸 다가오는 바람에 상체를 뒤로 젖히고 겨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낯선 사람을 겁내지 않는 어린 나귀와 자꾸만 다가오는 나귀에 당황하는 여행자의 모습이 재밌었다. 아마도 그의 사진에는 어린 나귀의 머리만 크게 찍혔을 것 같아서 한동안 자꾸 웃음이 났다.



결국, 어린 나귀를 스다듬어주는 것으로 둘의 신경전이 끝났다. 여행자의 마음이 느껴지는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현지 마을과 집들을 지나고, 한적한 호숫가가 내려다보이는 길을 걸었다. 그 와중에 우리나라 제주도와 매우 흡사한 돌담길을 지나게 되었다. 어렸을 때 제주도에 살며 봤던 그 풍경과 매우 비슷해서 눈길이 갔다. 제주도에서 돌로 담을 쌓게 된 이유가 가장 흔한 건축재료이기 때문이었던 것처럼 이곳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현무암이 아니지만 제주도와 무척 비슷한 풍경이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과 푸른 물빛은 여기가 해발 4000미터에 달하는 호수가 아니라 지중해에 있는 그리스의 어느 섬인 듯한 생각마저 들게 했다. 생각이 고쳐지게 된 것은 바로 다음, 호숫가 옆 비탈에서 밭을 일구는 현지 주민들을 보고나서였다.


이 춥고 척박한 땅에서 비탈을 밭으로 일구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연중 가장 따뜻한 계절을 앞두고 뭔가(아마도 옥수수)를 심고 있었다. 남자가 처음보는 농기구를 갈아진 밭에 꾹대고 눌러서 구멍을 내면 여자는 어깨에 둘러맨 보퉁이에서 종자를 꺼내 구멍에 넣었다. 농사를 전혀 모르니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무척이나 단순해 보이는 농사방법이었다. 이들에게 좀 더 효율적인 농사법이 전해져서 물질적인 풍요로움까지는 아니더라도 삶의 각박함이 조금이나마 덜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데스 고산지대를 여행한지 꽤 되었기 때문에 몸이 제법 적응을 했음에도 언덕을 오르거나 하면 숨이 쉽게 가빠왔다. 그런데, 전망대에 다달았을 즈음 몇 명의 10대 소년들이 뜀박질로 앞질러 지나갔다. 다들 햇빛에 바랜듯한 낡은 운동복과 운동화 차림이지만 이 높은 곳을 아프리카 영양처럼 탄력있게 달리는 것을 보니 육상선수들인 것 같았다. 이 작고 척박한 섬에 육상선수들이 있을리 만무하니 볼리비아 어디선가 전지훈련이라도 왔나보다 싶었다. 세계적인 브랜드의 런닝화가 아닌, 곧 구멍이 날 듯 낡은 운동화를 신고 비포장 흙길을 달리는 선수들이지만 꿈을 향해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절대 초라하게 보이지 않았다.


며칠 전,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양궁선수들을 양성하던 박영숙 감독님의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어린 선수들을 엄마처럼 챙겨가며 아무것도 없는 흙바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비행기라고는 처음 타보는 선수들을 데리고 터키 안탈리아까지 가서 말라위의 첫번째 국제 양궁경기를 치르는 모습이었다. 대회를 앞두고 부모님의 장례에도 참석하지 못한채 제작진이 가져온 장례식 영상과 가족들의 응원 메시지를 보며 눈물흘리던 모습을 보니 가슴이 울컥했다. 성공한 양궁감독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훌륭한 스포츠인으로, 인간으로 존경 받을 분이라 생각한다. 그런 환경에서도 너무나 밝았던 감독님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날 것 같다.



전망대에 도착했다. 어렸을 때 책에서 보던 그 티티카카 호수를 직접 보게 된 것이 조금은 감격스러웠다. 돈과 권력을 갖지는 못했지만 소소히 원하는 것들을 해낼 수 있을 정도의 건강과 부는 가질 수 있었으니 복받은 삶이 아닌가 싶었다. 한동안 전망대에 앉아 뜨거운 햇살과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생각에 잠겼다.




전망대에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고, 다른 마을까지 걷기로 했다. 출발하는 뱃시간이 있으니 여유롭게 걷지는 못하지만 체력이 아주 떨어지는 사람이 아니라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만큼 시간은 넉넉했다.


재미있는 것은 배에서 내릴 때 섬에 들어오는 비용을 지불했음에도 다른 마을로 넘어가게 되면 그 경계에서 다시 돈을 받는다. 처음에는 이 사람들 왜 이렇게 돈독이 올랐나 불쾌하기도 했지만, 이들이 닦아놓았을 길을 이용해 걷는 것이니 어느 정도의 비용을 받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게다가 그리 큰 돈도 아니니 마을을 통과하고 길을 사용하는 이용료 정도로 가볍게 생각해도 될 것 같다.(볼리비아 정부가 이 곳까지 길을 만들어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이 서로 마을을 오고 가기 위해 만든 길이 아닐까 싶다.)


유럽에서는 비싼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아낌없지 지불한다. 화장실 입장료마저도 이들의 문화이니 하며 이해하고 지불하면서도 제3세계 국가에서는 이런 것에 지불하는데 무척 인색한게 아닌가 싶다. 여행자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대감보다 비용이 과하다 생각되면 안보면 그만이다. 그것이 루브르건, 앙코르와트건. 입장료를 아끼기 위한 꼼수는 여행자의 자세가 아니다.



이 언덕 위에도 요금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비포장 흙길이지만 이정도로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이라면 기쁘게 내어줄 수 있다.










호수의 풍광은 아름다웠다. 전망대까지 가는 초반에는 여행자들도 제법 많았지만 그 뒤로는 트레킹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아서 오로지 주위의 풍경과 걸음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자연의 위압적이거나 경이로운 풍광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 뒤로 이날 걸었던 길들이 자주 생각이 났다. 좋은 여행지는 여행 후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곳이다. 왜 그런지 정확히 집어낼 수는 없더라도 그런 곳들이 가끔 있다. 나에게는 이 곳도 그 중의 하나이다.


배를 타기 위해 태양의 섬을 빙돌아 반대편에 있는 항구에 도착했다. 이 항구는 급경사의 산비탈 아래에 있는데 위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가 여럿 있었다. 이 숙소들은 호수쪽으로 창을 두고 있어서 해가 뜨거나 지는 광경을 숙소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에 숙소들이 있는 줄 미리 알았더라면 코파카바나에서 짐을 싸들고 와서 여기서 하루쯤 머물렀을텐데... 처음 와서 그곳에 대한 모든 것을 다 경험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 그런 생각이 든 여행지라면 반대로 그다지 매력적인 곳이었다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미련이 남았기 때문에 여행자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운다.



물가에서 나귀들이 물을 마시고 있었다. 덩치가 작고 머리는 커다란 이 나귀들은 산토리니에서 관광객들을 태우고 언덕을 오르던 그 냄새나는 나귀들에 비하면 애완용이 아닐까 싶을만큼 장난감처럼 귀엽고 앙증맞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다른 안데스 지역에서는 짐을 나르는 목적으로 대부분 야마를 기르고 있었는데 어째서 이곳은 나귀를 많이 기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설마 이 작은 나귀의 등에도 올라타는 걸까?



호수면을 눈부시게 빛나게 하던 오후 햇살을 받으며 코파카바나 항으로 돌아왔다. 제법 힘들었지만 예상보다 좋았던 트레킹에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가지않고 항구 앞 바에서 맥주를 한 병 시켜놓고 해가 저물때까지 앉아 있었다. 주위가 어두워지고 급격히 기온이 내려가면서 몸이 떨려오자 그제야 숙소로 들어갈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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