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섬 투어를 했던 다음날에는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없다. 단 한장의 사진이 남아 있고, 그 사진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만 남아있을뿐이다. 사람의 기억이 무한하게 보존되는 것이 아니니 역시 여행에서는 사진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한장 있는 그날의 사진은 트루차 구이를 찍은 사진이다. 코파카바나에 도착했던 첫날 먹었던 트루차 구이에 실망한 나머지 현지인들이 찾는 레스토랑에서 다시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날 점심때 우연히 현지인들로 가득한 허름한 식당 앞을 지나다가 그 생각이 퍼뜩나서 들어가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나 트루차 구이는 나에게 특별한 느낌을 주지 못했다.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만 생선치고는 고소한 맛이나 감칠맛이 부족했다. 많은 여행자들이 환호했던 그 트루차의 맛이 나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어서 적잖이 실망했었다.


트루차 구이와 밥 또는 고구마와 옥수수를 같이 준다. 옥수수는 한 알이 엄지손톱만 했다.


글을 쓰다보니 그 날 무엇을 했었는지 조금씩 기억이 살아났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차려 준 아침을 배부르게 먹고 트레킹 후의 피로 때문인지 오전내내 뒹굴거렸다. 


참고로 이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는 가격대비로는 여행을 통틀어 최고였다. 숙박비도 저렴한데 이런 훌륭한 아침식사를 제공해도 남는게 있을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동남아에서는 보통 숙박비가 저렴한 대신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방에 먹거리가 있어 숙소에서 따로 아침을 제공하지 않는다. 남미에는 아침에 여는 식당이 없기 때문에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곳이 많다. 대부분은 간단한 빵과 음료 수준이고 조금 나은 곳은 달걀후라이나 오믈렛까지 제공한다. 그런데 이 곳은 다양한 빵과 치즈, 잼, 우유와 커피, 주스, 달걀, 요쿠르트 등이 1인분씩 예쁘게 차려져 있었다. 물가가 저렴한 볼리비아임을 감안하더라도 훌륭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위에서 썼던 현지인들이 많았던 음식점에서 트루차 구이를 다시 한번 시도하고, 여행자 거리를 어슬렁거리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를 중계해주는 펍에 들어갔다. 거기서 기성용 선수가 속한 스완지 경기를 포함해 두 경기를 보고 숙소로 돌아갔다.


2012년은 박지성 선수가 맨유에서 QPR로 이적한 후였지만, 대부분 외국인들은 아직 박지성 선수가 맨유 소속인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펍에서 축구를 보고 있으면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엄지를 지켜들면서 박지성과 맨유를 언급했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외국인들 중에서 아주 가끔 기성용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차츰 중심이 옮겨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영원한 것은 없기 때문에 후에 어떻게 기억되는지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박지성 선수는 역시나 훌륭한 선수다.


이튿날 아침, 볼리비아 코파카바나를 떠나 페루 푸노로 가는 버스를 탓다. 볼리비아에서는 보름 정도 머물렀다. 볼리비아는 안데스의 산악지역부터 아마존의 밀림까지 다양한 기후에 볼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안데스 산악지역만 겨우 훑고 지나갔다. 머문 시간은 짧았지만 훌륭한 자연경관과 멋진도시를 가진, 물가가 저렴하고, 사람들이 순박했던 볼리비아가 내 마음에 들어와 박혔다. 나는 아무래도 볼리비아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페루쪽 국경에 세워져 있던 조형물 


버스에서 내려서 볼리비아 출국과 페루 입국도장을 받아야 한다. 오래된 건물의 일부가 양국의 국경을 표시한다.


페루로 넘어왔음에도 안데스의 자연과 사람들의 사는 모습에는 큰 변화가 없다.


버스는 푸노 외곽지역에 있는 버스 터미널에서 멈췄다. 구글맵에서 대충 찾아봐도 푸노는 코파카바나와 비교할 수 없이 큰 도시였는데 버스 터미널도 현대적으로 지은 크고 깨끗한 건물이었다.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보니 푸노 인구는 10만명, 코파카바나는 6천명)  거기서 택시를 타고 도심안으로 들어갔다.


택시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골목길 바닥에 뭔가를 뿌려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한 곳만 그런게 아니라 길 곳곳에서 그리는 중이었고, 그림은 색이 알록달록한 가루와 꽃잎을 뿌려서 그려진 것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축제나 국경일 같은 행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빨리 숙소를 잡고 구경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정작 다시 도심으로 나오게 된 것은 한참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날은 맨유와 첼시의 빅게임이 있던 날이어서 점심식사와 축구경기 관람을 한번에 해결할 생각으로 적당한 레스토랑을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축구경기를 보고 나오니 한두시간 전에 그려져 있던 골목길의 꽃그림은 어느새 모두 치워지고 푸노 대성당 앞, 아르마스 광장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생각지 못한 재밌는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해졌다.




숙소 베란다에서 본 푸노 시가지 전경 


우선 숙소를 잡고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아야 했다. 구글맵에 나온 숙소 주소를 보고 언덕을 올라 한참 헤매고 다녔음에도 결국 찾는데 실패하며 시간을 허비했다. 다시 갔던 길을 더듬어 내려오며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부랴부랴 아르마스 광장으로 달려갔다. 역시 예상이 들어맞았다. 광장은 이미 축제가 시작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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