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배낭을 매고 한참을 헤맨 끝에 겨우 잡은 숙소에 배낭을 내려놓고 아르마스 광장으로 나오니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광장 반대편에서 인디오 전통복장을 한 여인들이 춤을 추며 들어오고, 그 뒤를 악단이 뒤따르며 음악을 연주했다. 춤추는 여인들과 악단들로 이뤄진 팀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한 팀이 푸노 대성장 앞을 지나 퇴장할 때 쯤에는 다른 팀들이 곧바로 광장으로 들어오며 춤과 음악을 연주했다.





여성들의 춤은 단순하지만 독특했다. 남미 인디오 전통복장인 한껏 부풀려진 치마를 입고 반바퀴 돌았다가 다시 반대쪽으로 반바퀴를 돌며 조금씩 앞으로 행진했다. 손에는 알록달록한 실들이 달린 줄이나 전통악기처럼 생긴 것을 돌리고 있었다. 전문가의 춤사위는 아니지만 아이부터 어른까지 함께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얼굴에 하얀 회반죽 같은 것을 바른 꼬마 신사숙녀들까지 동참했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할머니의 춤. 이 날의 가장 훌륭한 춤꾼이었다.


축제에는 먹을 것이 빠질 수 없는 법, 솜사탕을 자기 키보다 훨씬 기다란 봉에 꽂아서 팔고 있었다.

가볍지만 부피가 커다란 솜사탕을 옮겨다니며 팔기에는 아주 훌륭한 방법이다.


젤리처럼 생긴 것을 일회용 컵에 담아서 팔고 있다. 먹어봤어야 했는데... 아쉽다.



개구장이처럼 생긴 어린 소년도 비눗방울을 불며 신이 났다. 

요즘은 좋은 장난감이 많지만 내가 어렸을 땐 빨대에 비눗방울 부는 것만으로도 좋은 장난감이었다.



대부분의 팀들이 브라스밴드 악단의 연주(악기가 조금 낡긴 했지만...)춤추는 여인들의 화려한 복장을 잘 갖춘 상태에서 축제에 참여하고 있었지만, 어떤 팀들은 복장도 덜 화려하고 악단도 방금 마을에서 소집된 아저씨들의 전통피리 연주가 전부인 곳도 있었다. 나같이 먼곳에서 온 여행자에게는 오히려 흔한 브라스밴드보다 이런 전통악기 소리가 더 눈길을 끄는 법이다.




축제를 좀 더 잘 볼 수 있는 푸노 대성당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사이에 축제에 참여한 팀들의 규모가 늘어나고 복장이 더 화려해지고 있었다.





카스테라처럼 생긴 빵을 잘라 팔고 있었다. 이것도 먹었어야 했는데.


현지인들이 빼곡하게 앉아 축제에 집중하고 있다.




축제 복장은 이제 화려해지다 못해 악마나 천사의 형상인듯한 복장도 있고, 고릴라처럼 생긴 탈을 쓰고 춤을 추기도 했다. 푸노가 페루에서는 제법 큰 도시라고는 들었지만 끊임없이 계속되는 행렬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축제에 참여한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복장은 화려해지고, 젊은 여성들의 과감한 노출의상도 등장했지만 오히려 축제가 시시해지기 시작했다. 화려함을 추구하다보니 이 팀이나 저 팀이나 다들 비슷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에 마음주민들끼리 참여한 것 같았던 소박한 행렬이 더 흥겹고 보기에 좋았다. 축제가 시들해지니 뒤에 있던 푸노 대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유럽에 있던 성당에 비해 화려함은 덜 했지만 깔끔하면서도 수수한 모습에서 오히려 종교적인 분위기가 났다. 종교적인 장소가 너무 화려하면 왠지 신자들을 주눅들게 하고 억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명색이 대성당임에도 모든 사람들이 축제에 참석하거나 축제를 구경하느라 성당 안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성당안에 혼자 있는 경험을 푸노에서 처음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성당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왔지만 축제 행렬은 끝날 줄 몰랐다.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길래 끊이질 않는지 궁금해져서 행렬이 입장하는 광장 한쪽 골목길로 가봤다. 남미 대부분의 도시가 스페인 통치기간에 세워진 계획도시라 길들이 반듯반듯한 경우가 많다. 푸노의 길들도 대부분 그랬는데 축제에 참여하는 팀들이 대기하고 있던 그 길도 도시 반대편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길 위에 끝이 보이지 않는 수의 팀들이 저마다 입장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하고 있다고 해서 멍하니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작 광장을 통과하는 시간은 채 5분도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면서 춤을 연습하고 있었다. 다들 비슷비슷해 보여서 나에게는 시들해져버렸지만 이들은 오랜 시간동안 의상을 준비하고 춤을 연습하며 이 순간을 기다려 온 것이다. 이들의 노력을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쉽게 판단해버린게 조금 미안해졌다.













축제 행렬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축제인지...


해가 슬슬 기울어가는데도 축제는 끝날 줄 몰랐다. 축제가 벌어진 광장을 떠나 저녁 먹을 곳을 찾아 다니다보니 커다란 마트가 나왔다. 남미에는 나라마다 커다란 마트체인들이 있는데 여기에서 이들이 무엇을 즐겨 먹는지, 어떤 식재료가 저렴한지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에 이 마트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게다가 이 마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






푸노의 마트에서는 트루차와 각종 해산물들을 많이 팔고 있었으나 아쉽게도 숙소에 부엌이 없었기 때문에 이 저렴하고 신선한 해산물들을 눈으로만 구경해야 했다. 부엌만 있었어도 티티카카 호수의 트루차 맛을 다시 한번 검증해 볼 수 있었을텐데...


결국, 마트 근처에 있는, 현지인들로 붐비는 중국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축제를 맞아 외식을 하는 가족들이 무척 많았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괜찮았던 기억이다. 식사를 마치고 들어가다보니 광장에서 벌어지던 축제는 완전히 끝나고 없었지만 축제의 흥겨움을 못이긴 사람들은 어둑해진 길 곳곳에서 여전히 춤을 추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페루사람들 꽤나 흥이 많은 사람들인가보다.


 ...


이번 글을 쓰면서 내가 푸노에서 봤던 축제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서 찾아봤지만 아직도 찾지 못했다. 그날 밤, 담배피러 올라간 숙소 옥상에서 불꽃놀이와 함께 성당에 있던 성인의 상을 모시고 도시를 한바퀴 돈 후에 다시 성당에 안치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런 모습은 스페인과 남미의 도시에서 여러번 봐 왔기 때문에 그 날이 어떤 성인의 날인 것은 짐작할 수 있는데 어떤 성인인지, 왜 축제를 하는지는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푸노에서는 매년 2월 푸노의 수호성인인 성처녀 칸델라리아를 기념하는 축제가 벌어진다고 한다. 이 축제는 남미의 4대 축제중 하나이며 2주간이나 계속된다고 한다. 이 축제에 다녀온 여행자의 블로그나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사진들을 보면 내가 그 날 봤던 축제 행렬과 꽤나 비슷했다. 어쩌면 나는 성대한 칸델라리아 축제의 축소판을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각지도 못했던 여행지에서의 행운은 여행을 더욱 즐겁게 만들고, 그곳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게 한다. 그것이 축제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현지인이 나눈 조그만 친절함인 경우에 더욱 기억에 남는다. 우리나라에 많은 외국인 여행자들이 오게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친절을 배풀 수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 지자체에서 수많은 축제을 열고, 서울이나 제주에 대기업들이 대규모의 면세점을 지는 것은 그 다음에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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