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카카 호수에서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두 장소는 앞서 볼리비아 코파카바나에서 갔던 태양의 섬과 페루 푸노에서 가까운 우로스 섬이 있다. 태양의 섬은 잉카제국을 건설한 인물의 탄생과 기원이 담긴 곳으로, 우로스는 여전히 수백년 전의 생활양식으로 살아가는 잉카 후손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서로 여행 포인트가 다르다.


이튿날 아침 일찍, 어제 푸노 시내가 축제로 시끌벅적한 가운데서도 영업을 하는 여행사를 찾아 예약해뒀던 우로스 섬 투어에 나섰다. 푸노는 도시가 제법 크기 때문인지 배를 타는 선착장도 코파카바나처럼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것이 아니라 시멘트와 블록으로 크고 단단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바람이 거의 없어서 하늘에 뜬 구름이 그대로 반영될 듯 호수가 잔잔했다. 그런데, 호숫물은 코파카바나쪽보다 훨씬 지저분해 보였다. 큰 도시에 속하는 푸노의 생활하수가 처리되지 않고 그대로 유입되는대다가 구글맵에서 보면 커다란 티티카카 호수에서 푸노쪽은 내륙으로 움푹 들어가 있어서 호숫물이 순환이 잘 안되는 것은 아닐까... 맘대로 생각했다.


푸노에서 조금 멀어지면 호수에 자라는 갈대 사이로 난 물길을 따라 간다.


어째 물이 녹색에다 거품도 떠 있다. 맑았던 코파카바나쪽의 티티카카 호수와는 좀...


태양의 섬 투어를 했던 배와 마찬가지로 배 위에도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있다.

야외에서 경치를 감상할 목적인지, 더 많은 여행자를 태우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갈대 사이로 난 물길을 가다보면 환영한다는 표지판과 함께 본격적으로 우로스 섬이 나타난다.

푸노에서 가깝기 때문에 금방 도착한다.



어렸을 때 사진으로 봤던 갈대로 만든 배(관광용으로 만든 배라서인지 사진에서 본 것보다 훨씬 크다)와 집들이 호수 여기저기에 떠 있었다.


찍힌 사진을 보니 레고나 프라모델로 만들어진 미니어처 같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여행사의 보트들이 이미 섬들을 하나씩 차지하고 있다.


우로스 섬은 일반적인 섬처럼 물 위로 솟은 육지가 아니라, 티티카카 호수에서 자라는 갈대를 커다란 블록처럼 뭉쳐서 물위에 띄운 섬이다. 그리고, 섬은 하나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대가족으로 이뤄진 집단마다 각각 하나씩 섬을 가지고 있어서 갈대로 만들어진 작은 섬 수십 개가 모여 있다.

여러 개의 섬 중에 하나에 올라서면 여행사 가이드가 티티카카 호수에 대해 설명을 시작한다. 태양의 섬 투어는 교통편만 제공하고 가이드 없이 개인이 알아서 다니는 투어였는데 우로스 투어는 가이드의 설명이 포함된다. 이런 투어는 각자 장단점이 있는데 미리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알아두지 못했다면 가이드가 있어서 나쁠 건 없다. 쇼핑이나 추가상품에 대한 판매만 없다면...


가이드는 준비한 판넬에다 갈대 줄기를 지시봉 삼아서 꽤 오랫동안 설명했다. 티티카카가 옛 잉카인들에게 어떤 곳이었는지(푸마를 닮았다고 설명을 했는데 역시나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 섬이 갈대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등등을 열심히 알려주었으나 나중에는 조금 지루해져서 한눈을 팔았다.





가이드가 설명하는 동안 묵묵히 바느질에 집중하는 우로스 섬의 여인


갈대로 우로스 섬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갈대는 생각보다 굵고 길었는데 갈대로 엮은 블록을 물에 띄우고, 섬이 물길에 흘러가지 않도록 줄로 호수 밑바닥과 연결해 고정시킨다고 한다. 그리고, 섬 가장 아랫부분, 그러니까 옛날에 만들어 띄워진 부분은 썪어 없어지니 계속해서 위에다 갈대를 보충해 준다고 한다. 드디어 설명이 끝나고 섬 주위를 살펴보는 시간이 주어졌다.


갈대로 만든 집의 내부인데... 갈대로만은 아니고 잘 다듬어진 각목과 못이 쓰였다.


갈대를 연료로 섰던 우로스 섬의 화로


우로스 섬까지 전기를 끌어오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에서 태양열 전지판을 설치해 줬다고 한다.


우로스 섬에 있는 현지인 대부분이 가판을 펴고 여행자를 대상으로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다.


가이드가 우로스 섬 주민들의 생활을 설명하며 사용했던 미니어처들


갑자기 다들 섬 한쪽으로 몰려가길래 따라가 봤더니 돈을 내고 갈대로 만든 배를 타보라는 것이었다. 투어를 예약할 때 추가되는 것들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면 좋을텐데 대부분은 현지에서 이런 식으로 은근슬쩍 참여하게 만드는게 맘에 들진 않는다. 같이 온 사람들이 모두 타는데 혼자 남아있기도 어색하고,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니라서 기념으로 타보기로 했다. 이들에게는 여행자들이 기념품을 사거나 갈대 배를 타야 생활에 도움이 될테니...


여인들이 떠나는 배 옆에서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갈대로 만든 배를 두 개 연결해 중간에 널판지를 대어 크게 만든 것인데 특이하게도 노를 앞에서 저었다. 두 여인이 각각 배 앞에서 따로 노를 젓는데 커다란 배가 생각보다 잘 나아갔다. 갈대 배를 타는 것은 특이한 것은 없다. 그냥 '갈대 배를 타 본 것' 뿐이다.



갈대 배는 우로스 섬 중간에 있는, 다른 섬보다 크기가 좀 더 큰 섬에 닿았다. 거기는 기념품을 사거나 음료를 파는 매점 같은 것들이 있었다. 거기서 여행자들이 지갑을 열 시간을 조금 준 다음에 다시 배를 타고 푸노로 돌아왔다.






푸노 항에 돌아오니 점심때쯤 되었는데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놀랍도록 멋진 경치도, 척박하지만 자신들에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잉카의 후손들도 없었다.(우로스 섬에서 여행자들을 맞는 사람들은 우로스 섬에 살지 않는다. 푸노에서 출퇴근하는 직업인일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옛날 삶을 복원해 놓은 민속촌에 다녀 온 것일뿐인데 투어를 하기 전까지 실제 거기서 사는 줄 알았기 때문에 왠지 속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페루와 볼리비아는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물가차이가 꽤 나기 때문에 투어도 괜히 비싸게 느껴졌다.(2014년 기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페루는 6000달러대, 볼리비아는 3000달러를 겨우 넘는 수준으로 양국의 소득차이는 두배가 넘는다.)


선착장에는 우리나라 바닷가 횟집처럼 생긴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었다.


시내로 돌아오니 어제 축제가 벌어지던 시끌벅적했던 아르마스 광장 주위가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했다. 지나가다 조금 비싸보이지만 꽤나 깔끔하게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스페인에서 자주 선택했던 오늘의 메뉴(메뉴 델 디아)가 있길래 바로 그것을 주문했다.



커다란 아보카도와 버섯, 야채, 토마토가 있는 샐러드


메인은 가장 무난한 치킨과 감자튀김


우리나라 옛날 다리미와 비슷하게 생긴 물건이 벽에 걸려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푸노시내를 걷다보니 자그마한 광장에 사람들이 꽤나 몰려 있어서 들어가 보았다. 거기에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독특하게 생긴 커다란 빵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있고, 심사위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뭔가를 적고 있었다. 빵 품평회 내지는 경연대회가 열리는 것 같았다. 


대회로서는 별 특이할게 없지만 여기서 가장 특이한 것은 빵의 모양이었다. 커다란 빵의 상단부에 사람의 얼굴 모양이 떡하니 박혀 있었다. 종교적인 행사나 기념일에 사용되는 빵인 모양인데 정확하게 어떤 용도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독특한 모양의 빵과 한쪽에 보이는 그 유명한 남미의 잉카콜라


그 뒤로 이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사진으로 이날 남은 것은 저녁으로 먹었던 치킨과 감자칩, 샐러드로 된 음식밖에 없다. 여행을 하며 내가 느꼈던 페루 음식의 특징이라면 한국인의 입맛에 맞을만한 음식들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치킨은 후라이드부터 양념치킨까지 한국의 치킨맛과 아주 비슷했다. 한국의 다양한 치킨메뉴로 페루에서 장사하면 아주 잘 될 것 같았다.



이날로 티티카카에서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 티티카카에 오는 여행자들은 볼리비아의 코파카바나만 가거나 페루 푸노만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티티카카 호숫가에 있는 도시들이긴 하지만 도시 분위도, 호수의 경치도, 투어의 포인트도 많이 다르기 때문에 가능하면 두 도시 모두 가보는게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태양의 섬 트레킹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데다가 도시 분위기도 크기가 작아서 어디서든 호수가 내려다보였던 코파카바나쪽이 훨씬 기억에 남는다.


다시 티티카카에 가게 된다면 코파카바나와 태양의 섬에서 지겨워질때까지 머물러보고 싶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