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숙소에서 나와 쿠스코 구시가지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잉카의 기원과 문명을 나타내는 커다란 벽화가 설치되어 있어서 쿠스코가 잉카의 수도라는 것을 다시 실감하게 했다.




쿠스코 구시가지의 중심은 아르마스 광장이다. 아르마스 광장 주위로 스페인인들이 세운 쿠스코 대성당, 은행, 여행사들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를 예매할 수 있는 티켓판매소와 쿠스코 주위의 잉카유적지 투어를 하는 여행사들이 있어서 여행자들이 꼭 한번은 갈 수 밖에 없는 곳이다.


하지만, 잉카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었으며 중심이 되는 곳은 바로 위 사진에서 보이는 '코리칸차'이다. 잉카 제국의 태양의 신전이 있었으나 스페인 정복자들이 그 위에 산토 도밍고 성당을 만들어 버린 아픔이 있는 곳이다. 처음 이 곳을 지날 때는 그런 배경을 모르고 '뭔가 중요한 곳인가보다, 나중에 시간될 때 와봐야지' 하고 지나쳐버렸다.





잉카의 수도였던 쿠스코지만 정작 아르마스 광장까지 가는 동안 잉카 유적이나 건축물은 거의 볼 수 없었다. 당연히 그랬겠지만 그것들은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파괴되고 그들이 그 위에 다시 지은 건물들만 남게 된 것이다.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은 꽤나 넓었다. 광장 주위는 누런 기와를 얹고 벽이 흰 전형적인 스페인풍 건물들과 성당에 둘러싸여 있으며 그 너머로 해발 3600미터나 되는 이 도시를 더 높은 안데스의 산들이 감싸고 있었다.


케추아어로 '배꼽'이라는 뜻을 가진 쿠스코는 잉카인들이 세계의 중심이라 여기는 곳이었다. 그들의 신성한 장소들은 모두 파괴되었지만, 쿠스코에서 중심이 되는 아르마스 광장에 잉카제국의 시조인 망코 카팍(Manco Capac)이라 생각되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열차 매표소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표를 예매하고 나니 벌써 점심 때가 가까워졌다. 인터넷에서 아르마스 광장 근처에 한국식당이 있다고 들은터라 가보기로 했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무척 가까운 골목길에 위치해 있는데 광장으로 통하는 골목길이 한두개가 아닌터라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닌 끝에야 찾을 수 있었다.


정겹게도 이름이 사랑채였다. 여기서 김치찌개와 소고기덮밥을 먹었다. 한국에서 먹는 맛과 정확히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오랫만에 먹는 한국음식은 항상 기가 막히다. 해외에 있는 한국 음식이 원래 맛과 조금씩 다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음식재료의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한국음식 맛을 좌우하는 발효시킨 장맛을 현지에서 비슷하게 내기 어렵거나, 음식의 현지화로 현지인이나 다른 외국인들의 입맛에 맞추다 보면 조금씩 달라질 것 같기도 하다.(짜장면과 까르보나라가 중국이나 이탈리아의 그것과 완전히 다른 음식인 것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점심을 거하게 먹고 나오니 밖에는 이미 한바탕 소나기가 퍼붓고 지나가있었다. 


누구의 동상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잉카의 시조인 망코 카팍이 아닐까...



라파스에서도 봤지만 비구름이 소나기를 뿌리면서 이미 지나간 하늘과 비가 내리고 있는 하늘이 극명하게 다른 모습을 여기서 다시 보게 되었다. 고지대라서 그런건지 유독 안데스 지역에서 흔히 보이는 것 같았다.


아르마스 광장을 구경하다가 그 유명하다는, 12각 돌을 보러 가기로 했다. 잉카인들의 석조술은 어떤 시대, 어떤 문명보다 더 뛰어났다고 한다. 잉카문명은 고작 청동기 시대 수준에서 스페인 침략자들에게 멸망했지만, 그들의 석조술은 스페인인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래서, 이 침략자들도 잉카인들의 건물을 모조리 허문 다음에 다시 지은것이 아니라 벽이나 바닥은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자신들의 건물을 올렸다. 옛날 쿠스코에 큰 지진이 발생했을 때, 스페인인들이 만든 건물들은 다 무너졌지만, 건물 밑 잉카인들이 만든 벽은 무너지지 않고 남았다고 하니 얼마나 이들의 석조술이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쿠스코 대성당의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가면(아마도... 기억이 가물가물)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보통의 골목길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커다란 돌들로 만들어진 담벼락이 나온다. 보통의 담이나 벽은 비슷한 모양과 크기의 돌들을 쌓고 흙으로 그 틈을 메운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담벼락은 쌓은 돌들 중에서 같은 모양인 것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그 크기도 무척 컸다.



겉으로는 조금 틈이 있는 것 같아보여도 안쪽으로는 꼭 맞물려 있어서 종이 한장 들어가질 않는다.




얼마나 대단한지 정말 칼끝조차 들어갈 틈이 없었다. 더 대단한 것은 겉으로 모양만 비슷하게 깎아 맞춘게 아니라 안쪽으로 각 돌들이 퍼즐처럼 서로를 단단하게 물고 있도록 쌓았기 때문에 어지간한 지진이나 흔들림에는 끄떡도 하지 않다. (코리칸차에서 돌들이 맞물린 벽 내부를 볼 수 있는데 정말 감탄했었다.)


이 벽을 쌓은 석조술이 대단하긴 하지만 12각돌은 그냥 12각돌일뿐이다. 이 벽을 쌓은 돌들 중에서 가장 각이 많은 돌로서 유명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돌이 아니라 벽 자체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그 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고 나도 그랬다.



잉카인들이 만든 벽과 비교해서 그 후에 만들어진 벽들은 갈라지고 파괴되어 보수된 흔적들이 많았다.


아르마스 광장을 지나는 2층 투어버스와 전차 모양의 투어버스




오전에 이미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표와 내일 쿠스코 근교의 잉카 유적지 투어 예매를 마쳤기 때문에 마음도 느긋해진데다 지나간 줄 알았던 빗줄기도 가끔 떨어졌다. 궃은 날씨도 피하고 걷느라 피곤한 다리도 쉴겸 아르마스 광장 근처를 지나다 봐둔 아이리쉬 펍에 들어갔다. 아쉽게도 좋아하는 기네스 생맥주는 없었지만 커다란 흑맥주와 피스코 사워를 홀짝거리며 펍에 설치된 텔레비전으로 프리미어 리그 축구경기를 보며 나머지 오후 시간을 보냈다.



이 펍의 입구에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아이리쉬 펍'이라고 쓰여 있다. 처음에는 설마 했지만 생각해보니 히말라야나 안데스의 몇몇 도시들은 쿠스코보다 고도가 높겠지만 그곳에 반드시 아이리쉬 펍이 있다는 보장은 없으니 허튼 소리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다.


펍 화장실에 있는 재밌는 경고문


옛날 정복자들은 의례 정복한 문명은 발전된 문명이며, 피정복민들의 문명은 말살되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쿠스코 시내에 잉카유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탄압과 억압으로 그들의 문화와 문명을 없애는 것은 쉽게 착취하고 복종시킬 수 있는 수단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남미의 인디오들이 아직도 그들의 토속 문화와 종교색(많이 희석되었더라도...)을 가지고 있음은 오히려 도시화되기 어려웠던 척박한 환경의 탓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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