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가장 비싸면서 또한 가장 편한 방법으로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를 타는 것이지만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여행자들이 일반적으로 많이 선택하는 방법은 마추픽추행 기차가 정차하는 역 중에서 마추픽추와 가장 가까운 오얀따이땀보까지 버스를 타고 간 다음, 거기서 마추픽추행 기차를 타는 것이다.(그래도 기차 탑승권 가격이 만만치 않다.) 가장 저렴한 방법은 모험심 많고 체력도 충분하지만 여행비를 아끼려는 여행자들이 선택하는 방법인데 버스로 마추픽추와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 간 다음에 걸어서 가는 방법이다. 그외에 몇 일간 전문 가이드와 잉카 유적을 찾아다니며 야영하는 잉카 트레일 투어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것은 돈과 시간과 체력이 모두 많은 여행자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대부분의 여행자들과 다르지않게 오얀따이땀보까지 버스로 간 다음, 이튿날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를 타는 것이었다.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는 등급에 따라, 회사에 따라 가격 차이가 많이 나는데, 가장 저렴한 등급에 저렴한 회사의 열차를 탓음에도 (정확하진 않지만) 기억에 100달러쯤 줬던 것 같다. 물론 기차가 매우 깨끗하고 좌석도 편안하지만 고작 2시간 남짓 가는 기차를 그렇게나 비싼 돈을 내고 타야하는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마추픽추로 가는 방법은 기차를 이용하지 않고는 걸어서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렇게 마추픽추행 기차 탑승권이 비싼 이유는 마추픽추까지 철로를 놓은 서구자본들이 탑승권 가격을 주무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일생에 한번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 큰 돈을 들여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여행자의 주머니를 사정없이 뜯어내기에 이보다 좋은 방법이 또 있겠는가? 마추픽추가 상업적으로 오염되었다는 이미지를 갖게 하는데는 이 기차 탑승권 가격이 한몫한다.


오얀따이땀보로 가는 버스를 타기 전, 쿠스코에서의 마지막 식사로 가장 훌륭했던 샌드위치 가게를 다시 한번 방문했다. 숙소에서 아르마스 광장으로 가는 길에 현지인들과 여행자들까지 가득 붐비는 것을 보고 우연히 들어가게 되었는데 샌드위치의 크기와 맛이 무척 훌륭했다.


맛이 좋을뿐만 아니라 샌드위치가 큼직하고 가격마저 저렴했다. 고기패티, 치즈, 야채가 듬뿍 담긴 가장 비싼 샌드위치가 0.5리터 콜라를 포함해 지금 환율로 4000원 정도 였다. 특히 감자를 얋고 작게 튀겨 샌드위치 안에 넣었는데 이게 바삭바삭하니 식감이 아주 좋았다. 4000원이면 우리나라에서도 점심때 맥도널드 빅맥 햄버거를 먹을 수 있지 않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가게에는 아이스크림도 팔고 있었는데 샌드위치와 아이스크림 모두 손님들에게 엄청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 정도면 비주얼도 훌륭하지 않은가?


쿠스코에서 만난 훌륭한 샌드위치 가게


오얀따이땀보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터미널에서 타는 것이 아니라 쿠스코 근교의 작은 도시들만을 오가는 버스들이 모여있는 길거리에서 탄다. 버스도 일반적인 대형 버스가 아니라 승합차 정도의 미니버스인데 현지인들과 여행자들이 섞여서 탄다. 다행히 버스가 깨끗하고 상태도 나쁘지 않아서 중간에 가다가 멈추진 않겠다 싶었다.


시내는 비교적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으나 조금만 벗어나면 정돈되지 않은 달동네 모습이다.


쿠스코를 벗어나 국도를 타기 시작했을 때 미니버스가 길을 벗어나더니 연료를 채우느라 정차했다. 다시 출발하길 기다리면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길 건너편에서 동양인 여행자들로 보이는 커플이 히치하이킹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배낭여행의 극한을 경험하려는 젊은 패기인지, 단순히 여행경비를 아끼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조금은 고단해 보이고 또한 걱정스러웠다. 좋은 사람을 만나거나 기억에 남을 경험을 할 수도 있지만, 이곳은 순박하고 친절한 사람들과 최악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뒤섞인 남미이며 현지인들조차 낮에도 두꺼운 쇠창살로 된 대문을 닫고 사는 쿠스코라는 대도시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시골이나 소도시보다 대도시의 빈민가가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버스를 타고 오얀따이땀보로 가는 내내 이 커플이 생각났다. 이들의 여행이 별 탈없이 마무리되길 속으로 기원했다.







쿠스코에서 오얀따이땀보로 가는 길은 너른 구릉에 펼쳐진 밭과 수량이 풍부해보이는 강과 호수, 진한 녹색의 무성한 나무들이 펼쳐져 있어서 지금까지 본 안데스의 풍경 중에서 가장 풍요롭게 보였다. 역사적으로 너른 평야와 풍부한 수량이 갖춰진 곳에서 문명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안데스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었던 것 같다.


오얀따이땀보에 거의 다달을때쯤, 계곡을 따라 난 길 옆으로 '레프팅, 카약킹, 패러글라이딩'을 광고하는 간판들이 계속해서 보였다. 강과 계곡의 수량이 풍부하다보니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물과 관련된 액티비티가 성행하는 것이었다. 이곳은 지금까지 보아오던 척박하고 건조한 안데스가 아니었다.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에 도착했다. 버스는 오얀따이땀보 유적으로 가는 길과 숙소들이 있는 마을 사이 애매한 곳에 여행자들을 내려주었다. 일단, 예약한 숙소에 가서 방을 잡고나서 유적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얀따이땀보도 마추픽추나 모라이에서 봤던 계단식 밭과 잉카인의 뛰어난 석조기술을 볼 수 있는 잉카의 대표적인 유적지 중 하나이다. 멀리 보이는 계단식 밭을 통해 많은 여행자들이 유적지로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유적지 앞에 있는 기념품점과 주차장을 지나 매표소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막상 입장하려고 보니 입장료가 도저히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무리 잉카문명을 대표하는 유명한 유적 중 하나라 하더라도 인당 몇 만원에 달하는 입장료는 페루가 아니라 물가가 비싼 유럽이라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게다가 오얀따이땀보 유적은 거대해서 몇 시간은 돌아봐야하는 그런 곳도 아니다. 반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터키 이스탄불의 톱카프 궁전과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느꼈던 기분이 다시 살아났다.


세계 각지의 여행자들이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 큰 돈을 들여 머나먼 남미의 오얀따이땀보까지 왔으니 입장료를 비싸게 받더라도 대부분 돈을 쓸거라는 상술이 아닐까 싶었다. 여행중에 비싼 비용이 들더라도 감수하려면 비용대비 경험의 가치가 크다고 느껴져야 하는데 이곳은 나에게 반드시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남들에게 가치가 크다고 해서 자신에게도 그런 것은 아니다. 판단은 오로지 여행자의 개인적인 생각에 달린 것이다. 과하다 싶은 입장료에 기분이 상했다.


유적 앞에는 기념품점들이 많이 있었는데 심지어 기념품까지 비싸다.




유적지에 가려던 시간에 마을 구경이나 하기로 했다. 마추픽추와 오얀따이땀보가 있는 이쪽은 지금까지 거쳐왔던 해발 3,4000미터에 달하는 고산지대가 아니다. 거의 1000미터가 낮은 곳이라 그런지 식물의 식생이 매우 풍부했다.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고, 꽃들이 마을 곳곳에 화려하게 피어 있었다.




마추픽추 바로 아래에 있는 마을, 아구아깔리엔떼까지 가는 기차가 다니는 역



계절이 맞지않았을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안데스에서 볼 수 없었던 꽃들이 이곳에는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마을 곳곳을 다니다보니 여행자들을 위한 깔끔한 까페도 제법 보였다. 이곳은 오로지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 오는 여행자들로 인해 유지되는 마을로 보였다. 본의아니게 유적지 입장료도 아꼈겠다,  까페에서 모히또를 한잔 시키고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어스름이 질 무렵 까페에서 돌아오는 길, 마을 광장에는 벌써 가로등이 켜졌다. 오얀따이땀보에서 묵은 숙소에는 부엌이 없었기 때문에 저녁을 간단히 때울 요량으로 마을 광장에 있는 빵집에 들어갔다. 맛있어 보이는 빵을 몇 가지 고르고 계산대에 가니 뜬금없이 카운터를 보는 백인 아가씨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무척 반가워했다. 자신이 부산에서 5년간 영어 강사를 했었다며 한국 음식 중에 특히 순두부 찌개를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갈비나 김치가 아니라 순두부 찌개를 좋아한다니 한국에서 살았던게 정말인가보다 싶었다. 어설픈 발음으로 짧은 한국 문장을 늘어놓는 아가씨에게 한국말을 잘한다고 칭찬해주자 지금은 많이 잊어버렸단다.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괜히 이 빵집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빵은 무척 맛이 없었다. 1년간의 여행을 통틀어 가장 맛없는 빵, 아니 음식이었다.)




오얀따이땀보의 골목골목은 모두 잉카인의 석조기술을 느낄 수 있는 곳들이었다. 좁은 골목길 옆으로 만든 물길과 커다란 자연석을 그대로 가져다 썼지만 빈틈없이 만들어진 양옆의 벽들을 보면 이곳이 잉카의 유적지는 아니지만 그들의 놀라운 능력은 충분히 알 수 있다.


숙소로 돌아와 맛없는 빵을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이제 내일이면 마추픽추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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