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픽추를 보기 위해서 총 2박 3일의 시간과 숙박료와 식비 등등은 제외하고 교통비와 입장료로만 200불에 가까운 돈을 들였다. 그랬음에도 상대적으로 부족한 볼거리나 지나친 상업성으로 나에게 남미여행에서 마추픽추는 결국 필수코스까지는 아니지만 빼려면 또 찜찜한, 가보긴 해야하지만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었던 계륵같은 곳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마추픽추를 보고 온 다음날, 오얀따이땀보를 떠나 페루의 사막도시 이까로 향했다. 일단 왔던 것처럼 쿠스코로 돌아간 후, 쿠스코에서 이까로 가는 야간버스를 타는 일정이었다.


오얀따이땀보 숙소에 난 창문. 하얀벽과 유리창이 보기는 좋지만 겨울이었다면 글쎄...



오얀따이땀보에서 묵었던 숙소는 넓은 정원을 가진 나쁘지 않은 곳이었지만, 워낙 집이 낡은대다 공용으로 사용하는 화장실과 욕실이 정원을 통해 갈 수 있는 별도의 건물에 있어서 겨울이었다면 꽤나 춥고 불편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비싼 숙소가 아니라 배낭여행자용 숙소라면 오얀따이땀보에서 이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쿠스코에서 이까는 12시간 이상 버스를 타야하는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 구글맵에서 나오는 거리만 800km가 넘었다. 그리고 이까는 태평양과 가까운 곳이라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쿠스코에 비해 해발고도가 3000m 이상 낮았다.


이까에 가려는 목적은 이까가 인구 20만 명이 넘는 대도시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까 주변에는 페루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이 반드시 들러야하는 볼거리가 2곳이나 있기 때문이다. 한 곳은 와카치나 사막이고 나머지 한 곳은 작은 갈라파고스, 배고픈 여행자들의 갈라파고스라는 바예스타 섬이다. 이까에 가려는 목적은 분명했으나 쿠스코에서 목적지로 이까를 결정하는데는 마지막까지 애를 먹었다. 그 이유는 쿠스코와 이까 사이에 너무나도 유명한 나스카 평원이 있기 때문이다.


나스카 평원에는 마추픽추와 함께 페루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고대인들이 그렸다는 정체불명의 그림들이 펼쳐져 있는 곳이다. 이 평원의 불가사의한 그림들은 지상에서는 전체적으로 볼 수 없어 대개 경비행기를 타야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걸렸지만, 어렸을 때부터 책이나 다큐멘터리로 워낙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실제로 보게 된다면 그 규모나 신비로움에 감탄하게될지 모르겠지만 보고싶은 생각이 없는데 유명세나 직접 보면 좋을지도 모를 확률에 기대어 가야한다는게 우습게 느껴졌다. 그리고, 과감하게 이번 여행에서 이곳을 제외했다.


여행중에 꼭 보려고 했거나, 가고 싶었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그럴 수 없었던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이번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두고두고 후회가 되는 곳이 있다면 그 때 다시 오면 될 문제다.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 본 세계 7대 불가사의가 페루에만 2가지가 있었다.)




쿠스코 버스터미널에서 이까로 가는 버스표를 구매하고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꽤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터미널 매표소 앞에 개 한마리가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처음엔 주인이 근처에 있겠거니 하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한참을 지나도 거기에 계속 앉아있었다. 자꾸 보고 있으니 왜그런지 표정도 배고프고 슬퍼보이기까지 했다. 먹을거라도 줘볼까하고 배낭에서 남은 것을 주섬주섬 꺼내고 보니 그새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녀석이 나갔을만한 터미널 출구로 찾아봐도 결국 찾지 못하고 주려고 꺼낸 먹을 것만 손에 든채 엉거주춤 돌아왔다.


이상하게도 이때 녀석에게 먹을 것을 주지 못한게 오랫동안 마음에 불편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사실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길거리를 다니는 개들은 하루에도 여러 마리를 볼 수 있는데 그런 개들마다 모두 먹이를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유독 이 녀석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살다보면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 평소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사실이 어떤 날엔 마음에 들어와 박히는 그런 날이 있다.


오오~ 버스가 좋아보인다. TEPSA는 페루에서 제법 유명한 버스회사다.


남미의 장거리 버스는 편안하고 시설이 좋기로 유명하다. 이미 브라질부터 아르헨티나, 칠레에서 질리도록 타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지만 어떤 면에서 페루의 버스는 그 버스들을 능가한다. (볼리비아는 제외. 이들 나라중 경제적으로 제일 빈곤한 볼리비아의 버스는 시설과 편안함보다는 현지인들과 부대끼는 재미로 타야한다.)


넓은 좌석을 가진 등급의 버스는 아니었지만 좌석은 제법 넉넉했고, 편안했다. 버스 천정에는 제법 큰 LCD 모니터가 여러 군데 달려 있어서 우리나라 버스처럼 앞자리가 아니고는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어느 좌석에서든 영화를 볼 수 있다. 게다가 좌석마다 전기 콘센트와 엄청 느리지만 와이파이까지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다. 이쯤되면 페루의 장거리 버스는 세계에서 손꼽힐만하지 않을까 싶었다.


무엇보다 이 버스가 기억에 남았던 것은 외국에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처음 본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 노래가 빌보드 차트에 오르고 외국에서 유행중이라는 것을 주로 국내 뉴스기사로 보다가 페루의 장거리 버스에서 뮤직비디오로 보게 된 것이다. 외국 버스에서 한국어 유행가를 듣는 것은 꽤 신나고 기분 좋은 독특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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