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픽추에 대해서는 여행을 마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좋았던 여행지와 기대에 못미친 여행지에 대해 남긴 글이 있어서 그 부분을 조금 수정해 올리기로 했다.
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추픽추는 여행을 하기 전부터 꼭 가보고 싶은 곳이어서 기대가 무척 컸었지만 가보고 나서 기대에 비해 실망도 컸던 여행지다. 오로지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실망이 컸던 이유는 '유명 여행지일수록 그런 경우가 심해지긴 하지만 대놓고 여행자의 주머니를 털려는 듯한 과한 상업성', '근거없는 불가사의와 미스테리로 포장된 신비주의', '(들인 비용과 시간에 비해) 별로 볼게 없었던 유적'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나서 그것에 대해 반추하다보면, 그때는 갖지 못했던 느낌이나 생각들로 처음의 인상과 많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 일반적으로 좋지 않았던 기억보다는 좋았던 부분이 부각된다. 그렇기에 이번에 수정하는 글이 먼저 쓴 글과는 많이 달라져 있기를 바란다.
이후부터는 예전 글을 수정한 부분이다.
마추픽추는 남미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지이자 유적지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방문하고 싶은 곳으로 이곳을 꼽고 있으며, 실제로 여행중 만난 여러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마추픽추는 께추아어로 '오래된 봉우리', '늙은 봉우리'를 뜻하는 말이며, 잉카의 수도였던 쿠스코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우르밤바 계곡에 있는 높이가 2057m인 산꼭대기에 지은 작은 도시이다. 사실 도시라기 보다는 마을에 가까운 크기이다.
안데스에서 2000m는 높은 곳은 아니다. 안데스 지역을 여행하다보면 대부분의 도시가 3000m가 넘는 고원에 위치해 있다. 다만, 마추픽추가 있는 우르밤바 계곡은 넓은 고원지대가 아니라 험한 산들로 이루어진 지형이라 2000m라 하더라도 계곡에서는 산 위에 지은 마추픽추가 보이지 않는다.
이른 새벽 기차역으로 가는 중, 오얀따이땀보의 광장
이른 새벽의 오얀따이땀보. 곧장 가면 유적지이고 왼쪽으로 가면 기차역이다.
오얀따이땀보에 도착한 다음날 새벽, 아구아 깔리엔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갔다. 낡은 기차지만 운임이 비싼만큼 잘 관리되고 있는 듯 내부는 깨끗하고 좌석도 편안한 편이었다.
가장 저렴한 회사의 낮은 등급의 좌석이지만 상태는 매우 훌륭하다. 그렇긴해도 너무 비싸다
마추픽추로 가는 방법이 여러가지인 이유는 앞선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 드는 비용이 지나치게 비싸기 때문이다. 가장 저렴한 기차등급을 이용하더라도 쿠스코에서 아구아 깔리엔떼까지 왕복 200불, 오얀따이땀보에서는 왕복 100불 정도가 든다.(기차 회사가 3군데 정도 있고, 금액에 조금 차이가 있다.) 거기에 아구아 깔리엔떼에서 마추픽추로 올라가는 버스비와 마추픽추 입장료를 포함하면 50불 가량이 더 들어간다.
페루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혹은 칠레 같은 나라들보다 물가가 싼 편이지만 잉카 유적지에 대해서는 어이없을 정도로 높은 입장료를 받고 있다. 오얀따이땀보에 있는 잉카 유적지조차 3만원대의 입장료를 받는다.
안데스에 부족형태의 국가가 수립되고 문명을 이루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의 일이지만, 잉카의 시조로 알려진 망고 카팍이 나라를 세운 것이 1200년대의 일이며, 흔히 알고 있는 안데스 전체를 지배하던 잉카 제국이 이루어진 시기는 스페인에게 멸망당하기 얼마전의 일이라고 한다. 사실상 제국으로서 역사에 남은 시기는 얼마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스페인이 침략한 1500년대에도 청동기 문명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잉카의 유적은 석조기술을 바탕으로 만든 건축물이 대다수이다. 잉카인들의 건축물은 앙코르 와트와 같은 웅장함과 아름다움이 아니라 실용성과 내구성의 의미로 대단한 것 같다.
기차는 천천히 우르밤바 계곡을 달려 마추픽추로 다가갔다.
빗방울이 부슬부슬 떨어지던 아구아 깔리엔떼 역
아구아 깔리엔떼 역에서 나와 다리를 건너가면 마추픽추로 올라가는 버스표를 파는 곳이 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어젯밤 비가 내렸는지 젖은 땅과 잔뜩 흐린 날씨를 보고 걱정을 했었다. 깊은 산골짜기에 위치한 마추픽추는 날씨가 좋지 않으면 안개와 구름으로 시야가 제한되어 흔히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마추픽추가 아니라 자욱한 안개만 보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오는 내내 산허리에는 안개가 피어올랐고, 아구아 깔리엔떼 역에서 내려 마추픽추로 올라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중에는 굵은 빗방울까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추픽추는 나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아구아 깔리엔떼는 오얀따이땀보보다 더 작은 마을이지만 여행자 숙소들이 많이 있어서 이른 시간에 마추픽추를 보려거나 와이나픽추까지 오르고 싶다면 여기서 하루를 묵는게 좋다. 물론 숙소 가격은 더 비쌀 것 같다.
버스를 기다리는 중, 노점에서 본 코카잎과 빨간 바나나
우리가 알고 있는 사물의 본질이 반드시 그것이 아니거나 그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아구아 깔리엔떼에서 버스를 타고 마추픽추에 오르는 중
마추픽추 매표소 앞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미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비수기였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였으나 온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로 북적였다.
버스에서 내려 마추픽추로 가다보면 1911년 잊혀졌던 마추픽추를 발견하여 세상에 알린 고고학자 히람 빙엄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보인다. 아마도 발견 50주년을 기념하는것 같다.
매표소를 지나 마추픽추 안으로 들어가려면 절벽이나 다름없는 가파른 경사에 만들어진 계단식 밭을 지나야 한다. 계곡사이에 흘러넘치는 안개와 구름이 이구아수 폭포의 물보라를 연상하게 했다.
아침부터 궃은 날씨라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도 사진에서 보던 마추픽추를 보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구름으로 덮인 산봉우리와 뿌옇게 보이는 유적지를 보니 더욱 아쉬워졌다. 산에서는 날씨가 금새 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생각으로 일단 마추픽추 뒷쪽에 있는 '잉카인의 길'부터 구경하기로 했다.
마추픽추 뒷쪽에 있는 제단인데 인신공양에 쓰였다고 한다.
잉카인의 길은 예전에 잉카인들이 마추픽추로 들어오는 길이었다고 하는데, 마추픽추 유적에서 봉우리를 돌아 30~40분쯤 걸어가면 볼 수 있다. 도중에 입장하는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적고 나올 때 다시 사인하도록 하는 곳이 있다. 길 자체는 전혀 위험하지 않지만 길 밖으로는 워낙 심한 낭떠러지인데다 간혹 쓸데없는 모험심을 발휘하는 사람들 때문인 것 같다.
절벽으로 난 좁은 오솔길을 걸어가다보면 더 이상 갈 수 없도록 창살로 막혀진 곳에 다다른다. 그 뒤로는 아슬아슬한 절벽에 벽돌을 쌓아 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는데 보기만해도 위험해 보였다. 벽돌을 쌓아 만든 길 중간은 통나무 몇 개로 이어놓았는데 외부에서 침략을 받을 때 저 나무들을 치워서 적의 진입을 막았다고 한다. 사진은 높지 않게 찍혔지만 그 밑은 꽤 깊은 낭떠러지였다. 길을 만든 사람도 대단하고, 이 길을 다닌 사람들도 대단하다.
'잉카인의 길'에 다녀오는 동안 구름이 조금 옅어진 듯했다. 과연 한두시간 지났을 뿐인데 마추픽추가 선명하게 보이고 그 뒤로 와이나픽추도 험준한 산세를 드러내고 있었다. 언제 다시 날씨가 나빠질지 모르니 서둘러 유적지쪽으로 걸어내려갔다.
가까이 다가갈 수록 날씨는 점점 더 좋아졌고 어쩌면 와이나픽추에 올라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와이나픽추는 마추픽추와는 반대의 의미로 '젊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마추픽추보다 훨씬 높고 가파른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마추픽추의 경치가 아름답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나무숲 사이로 언뜻언뜻 와이나픽추를 오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여행 후, 산악인 엄홍길씨가 참여했던 '안데스 8000km'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8000m 이상 고봉을 모두 등정한 엄홍길씨도 이 와이나픽추를 오르면서 '아, 산이 무척 험합니다', '아, 힘드네요' 하는 말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엄홍길씨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무척 빠른 속도로 오르는 것 같았다.)
마추픽추의 채석장 유적에서 뭔가를 발굴하는 사람들
마추픽추에는 채석장이 있어서 이곳에서 캐낸 돌로 마추픽추가 지어졌다고 한다.
역시 산에서의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어서 금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도 혹시나하고 준비해 온 우비를 꺼내 입었다.
잉카인들이 마추픽추에서 사라진 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던 이곳을 다시 발견한 빙엄은 수풀로 우거진 이 산의 절벽을 기어올랐다고 한다. 위 사진 반대편으로 빙엄이 올라 온 루트라는 표지가 있었는데 내려다보면 지금도 수풀이 가득한 절벽이었다.
안그래도 험한 산세에 비까지 오락가락하니 와이나픽추에 오르는 것은 포기했다. 와이나픽추를 포기하고나니 시간이 넉넉해져서 느긋하게 남은 유적지를 돌아다녔다.
콘도르 신전. 앞부분이 콘도르 머리, 뒷쪽에 펼쳐진 거대한 자연석 두개가 콘도르의 날개란다.
마추픽추에서 가장 유명하고 성스러운 곳이라는 태양의 신전
계단 모양의 하얀 바위가 아마 이곳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중요한 바위가 아닐까 싶다.
마추픽추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라기 보다는 종교적인 의미가 강했던 곳이었나보다. 곳곳에 신전이나 제단이라 이름이 붙여진 곳이 많았다.
아구아 깔리엔떼에서 탄 버스가 올라 온 구부구불한 도로
고도는 그다지 높지 않지만 산세는 제법 험하다.
마추픽추에 거주한 잉카인들이 경작한 거대한 계단식 밭
자연석을 파서 만든 수로
잉카인들의 석조기술은 지진에도 견디도록 돌들이 퍼즐처럼 맞물리도록 만드는 것, 다양한 모양의 돌을 빈틈없이 짜맞추는 것도 놀랍지만 자연을 거스르지 않도록 만든 것 같아서 더 마음에 들었다. 벽을 쌓다가 옮기기 불가능한 거대한 자연석을 만나면 그것을 그대로 벽으로 사용한다던지, 자연석이 포개져 생긴 공간에 신전을 만든다던지, 수로를 만들때도 자연석을 파서 수로를 낸다던지 하는 것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보였다. 마추픽추를 대표하는 유적인 태양의 신전이나 콘도르의 신전을 그 규모나 예술적인 면에서만 보자면 보잘것없는 게 사실이다.
마추픽추를 둘러보는데 대략 네댓시간쯤 걸린 것 같다. 다시 버스를 타고 아구아깔리엔떼로 내려오니 햇볕이 나고 하늘이 맑아졌다.
오얀따이땀보로 가는 기차가 올때까지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에 오늘 본 마추픽추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생겼다. 마추픽추를 보고 왔지만 뭔가 허전하고 부족하게 느껴졌다. 엄청나게 광고하는 영화를 잔뜩 기대하고 갔다가 기대에 못미치는 바람에 나오면서 흠을 잡고 싶은 그런 마음하고 비슷하달까.
마추픽추는 잉카 문명에서 대단한 유적지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유적이 가지는 의미나 가치보다 그외의 것들로 과장되어 있는 것도 분명하다. 마추픽추에 대해서는 잘못 알려진 것들, 억측과 과장에 의해 신비한 불가사의로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그것은 학자들, 언론인, 돈만 밝히는 출판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게다가 그 유적을 보기 위해서는 그 가치보다 훨씬 더 큰 비용과 시간을 지불해야 한다.
마추픽추만을 위해 남미여행을 계획하는 여행자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이 곳을 목표로 여행하기에는 남미에는 볼 것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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