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까에 있는 사막의 이름은 와까치나(Huacachina)였다. 분명히 뭔가 이름이 있었을텐데 생각이 나지 않아서 처음에는 이까의 사막이라고 썼다가 며칠 뒤에야 생각이 나서 고치기로 했다. --


눈을 뜨니 버스 창문 밖으로 해가 뜨고 있었다. 쿠스코에서 출발해 밤새 안데스 고원을 내달렸을 버스는 아직도 산악지역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지평선 끝에 보이는 산들이 둥그스름하게 변한게 해발고도가 많이 낮아졌음은 알 수 있었다.


동남아, 중동, 유럽을 거쳐 남미까지 이제는 일일이 새기 힘들정도로 많은 횟수의 장거리 버스와 기차를 타왔지만 여전히 그 안에서 아침을 맞을 때에는 멍한 상태의 머리와 고통을 호소하는 허리와 팔다리를 달래야했다.




멍한 상태에서 찍은 사진이라 많이 흔들렸다.

이 구불구불한 길로 안데스 산맥을 넘어서고나면 태평양 연안까지 완만한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스마트폰 구글맵에서 GPS를 통해 내 위치를 찾아보니 나스카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저멀리 평원 어딘가 고대인들이 그려놓은 불가사의한 그림들이 펼쳐져 있겠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지나치기로 했다.


이른 아침, 버스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도시의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까에 도착한 줄 알고 기뻐했던 것도 잠시, 터미널 지하에 있는 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고 오란다. 버스비에 포함된 아침식사이긴 하지만 조금만 더 가면 이까에 도착할텐데 왜 여기서 아침을 먹으라는 건지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야 이 버스의 목적지는 이까가 아니라 더 먼 도시(어쩌면 리마까지?)여서 버스를 타고 더 가야하는 승객과 운전사를 위한 아침식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까에 도착해서 터미널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이까의 와카치나(Huacachina)사막은 시내에서 가까워서 물가가 저렴한 페루에서는 택시를 타도 될 것 같아서였다. 곧 시내를 벗어나 달리던 택시의 앞 유리창 앞으로 모래 언덕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 모퉁이를 돌아들어가자 풍경이 갑자기 바뀌면서 여느 도시와 다를바 없던 평범한 이까의 모습은 사라지고 사막과 오아시스가 나타났다.


길 앞에 문득 모래언덕이 나타났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았을뿐인데 택시는 사막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었다.


와까치나 사막이 시작되는 초입에는 오아시스가 있다. 그리고, 이 오아시스를 빙둘러서 작은 마을이 있는데 사막을 보려고 찾아오는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와 음식점들이 대부분이다. 이 오아시스에 마을이 생긴 것이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마을에서 사막 버기카 투어와 근처 바예스타 섬 투어를 예약할 수 있다. 밤새 버스에서 쌓인 피로가 가시지 않으니 가격대비 양호한 숙소를 찾아다닐 의욕도 없어서 가격이 적당하다 싶은 게스트하우스에 자리를 잡고 그날 오후 버기카 투어와 다음날 아침 바예스타 섬 투어 예약도 한번에 해치워버렸다. 경비를 절약하면 좋겠지만 여행은 보고 느끼고 즐기기 위한 것이니 체력을 회복하는게 우선이다.



남미 남단에서부터 꾸준히 올라오다보니 적도에 꽤 가까워졌는지 정오의 그림자가 매우 짧다.


오전에는 숙소에서 부족한 잠을 보충하고 점심때 일어나 식사를 하기 위해 오아시스로 나왔다. 이까 사막의 오아시스는 내가 상상해왔던 오아시스의 전형적인 모습과 매우 비슷했다. 이집트 바하리아 사막에서는 말라버린 오아시스를 보고 실망했었는데 이곳은 부드러운 모래언덕으로 둘러쌓여 물가에 야자수가 자라는 예의 그런 오아시스였다. 물이 맑지는 않았지만 영화에서처럼 사막에서 목마름의 한계에 도달한 주인공의 상태라면 나도 이곳에 뛰어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아시스의 전형적인 모습... 아닌가?


점심식사를 하고 나오니 우리나라 중학생 나이쯤으로 보이는 페루 학생들이 단체로 와까치나의 오아시스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 중 한무리가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학생들과 좌우로 쭉 늘어선 중에 돌아가면서 자신의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남미에서 한국 배우나 가수들이 인기라더니 그래서 사진을 찍자고했나 싶었지만 정작 아이들은 그런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단지 흔히 보이지 않는 동양인이라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기도 하다.


마을 곳곳에 사막 투어를 할때 타는 버기카가 서있다.


오후 느지막히 사막 투어를 할 시간이 되었다.(사막 투어는 늦은 오후에 시작해 해가 질때 끝이 난다.) 숙소 앞에서 투어를 예약한 다른 여행자들과 버기카에 타고 마을 바로 뒤에 있는 모래언덕을 올라갔다. 모래언덕 위에서 본 사막은 생각보다 훨씬 커서 내가 택시를 타고 들어온 반대방향으로는 모래언덕만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바하리아 사막은 흑사막이나 백사막 같은 돌로 된 사막과 모래 사막이 모두 있어서 이곳보다 훨씬 넓었지만 모래 사막만 따지자면 이곳의 모래 언덕이 훨씬 크고 높았다.


버기카는 이런 모래언덕을 신나게 내달렸다. 모래언덕이 워낙 크고 높낮이도 심해서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었다. 어떤 때는 버기카가 뒤집혀 그대로 모래언덕을 굴러내려갈 것 같지만 사막지형에 특화된 이 버기카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달렸다. 사람들도 신이 나서 환성(또는 비명)을 지르며 마음껏 즐겼다.




한참을 내달리던 버기카가 커다란 모래언덕 위에서 멈췄다. 운전사는 다들 내리게 하고 차에 실린 스노우보드 형태로 생긴 나무판을 하나씩 갈라줬다. 샌드보딩을 하게 할 모양이었다. 샌드보딩은 바하리아에서도 했었는데 거기서는 모래언덕이 낮아서 스릴있지 않았지만 이곳의 모래언덕은 거기보다 훨씬 높아서 꽤 재미있을 것 같았다. 다만, 보드를 타고 내려간 뒤에 이 높은 모래언덕을 어떻게 다시 올라올지 걱정이 되었는데 운전사는 내려가고 나서 다시 올라오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모두 내려가고 나면 버기카를 몰고 태우러 온다.)


점차 높은 모래언덕으로 옮겨가며 이런 샌드보딩을 세 번 정도 했다. 세번째 모래언덕은 경사가 꽤 심해 정말 스릴있었다. 하지만, 모래가 워낙 곱고 부드러워 샌드보딩을 하고나면 이 날 입었던 옷에서 오랫동안 모래가 나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아무리 깔끔하게 털고 세탁을 하더라도 허리춤, 주머니속 어딘가에서 계속 모래가 나왔다.


마지막으로 모래언덕에 버기카를 세우고 사막을 몸으로 느낄 시간을 준다. 바하리아에서도 그랬지만, 사막이 없는 나라에서 온 여행자에게 사막은 너무나 신비롭다. 주위는 너무나 고요해서 바람소리와 모래가 사각거리는 소리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파란하늘과 빛의 방향에 따라 명암이 다른 모래 언덕의 부드러운 곡선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한동안 모래 언덕에 앉아 신체의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이 신비로운 느낌을 부지런히 받아들였다.




자세히 보면 투어 중인 버키가 사막에 띄엄띄엄 붉은 점처럼 보인다.


다른 투어에서 샌드보딩을 하고 있는 모습. 멀리서 보니 모래 언덕 높이와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샌드보딩이 끝나면 버기카도 이런 모래 언덕을 그대로 달려 내려온다.



사람 발자국과 버기카의 바퀴자국을 제외하고

 사막에는 오로지 바람이 만들어 놓은 기하학적인 무늬들로 가득하다.





해가 뉘엿뉘엿 반대편 모래언덕을 넘어가고 나면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모래언덕에서 내려다 본 이까의 오아시스는 역시나 내가 상상해왔던 그것과 너무도 비슷했다.



산에서처럼 사막에서도 해가 지면 금새 어두워진다.



저녁을 먹으러 점심때 갔던 식당에 다시 갔다. 음식이 나쁘지 않았고, 가격도 무난한 편인데 다른 식당을 고르기도 귀찮았기 때문이다. 메뉴에 프라이드 치킨이 있기에 별 기대없이 시켜놓고 기다렸다. 


어느 나라건 치킨이 고기요리 중에서는 제일 저렴한 편이지만 대개 단순히 굽거나 튀긴게 전부라 여행중에 가끔 우리나라의 다양한 닭요리가 생각나곤 했었다. 그런데(!!!) 여기서 나온 닭요리는 생김새가 우리의 양념치킨과 무척 흡사했다. sesame 소스라더니 참깨를 넣고 소스를 만든게 아니라 치킨 위에 잔뜩 뿌린 것이었다. 마치 우리나라 음식의 마무리로 깨를 뿌리듯이. 게다가 맛을 보니 오호라, 우리나라 양념치킨 맛과 아주 비슷했다. 100%는 아니더라도 90% 이상은 비슷한 것 같았다. 페루에서 만난 양념치킨이라니, 매콤한 양념이 씌워진 프라이드 치킨이 너무 반갑고 맛있었다.


세상이 넓고 많은 사람들이 살다보니 비슷한 입맛을 가진 사람들의 비슷한 요리가 어딘가에 한두가지는 존재하나보다. 만족스러웠던 사막 버기카 투어에 이어 더 만족스러웠던 저녁식사까지... 마추픽추에서 조금 실망했던 페루에서 남은 일정이 더 기대가 가기 시작했다.


(버기카 투어 동영상과 샌드보딩 투어 동영상을 올리려니 10M 초과라고 올려지질 않는다. 변환까지 해서 올리기에는 나는 너무 게으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제한 클라우드 서비스가 판을 치는 요즘 10M 제한이라니 티스토리 뭔가 어설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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