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새벽, 숙소 앞에 도착한 승합차를 타고 한참을 달린 끝에 어느 한적한 해변에 닿았다. 이곳의 지명은 기억나지 않고, 바예스타(ballestas) 섬 투어가 시작되는 곳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이곳 해변의 특징은 펠리컨이 무척 많다는 것이다. 새들의 천국인 바예스타와 가까우니 그렇다하더라도 이곳 펠리컨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펠리컨은 새중에서 크기가 매우 큰 종류로, 섯을 때 머리 높이가 사람의 허리 이상이고 날개를 펼쳐서 펄럭거리면 날개 한쪽 끝에서 다른쪽 끝까지 길이가 사람 키보다 훨씬 커서 무척이나 위압적이다. 하지만 성격은 온순한 편인지 현지인 남성이 물고기를 먹이로 나눠줄때(아마도 팔다남은 물고기인듯) 싸우지 않고 가만히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펠리컨에게 팔다 남은 생선을 먹이로 주던 남자와 자신도 그걸 해보고 싶었던 여행자


다른 곳에서 봤던 펠리컨보다 부리 색깔이 알록달록한게 독특하다.


남미여행에서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여행이 거대석상이 있는 '이스터 섬' 여행과 찰스 다윈이 보고 종의 기원을 쓰게 되었다는 '갈라파고스 제도' 크루즈 여행이다. 그 중에서 동물에 관심이 많은 여행자라면 꼭 들러야 할 곳이 갈라파고스라고 한다. 동물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은 편이지만 이번 남미여행에서는 페루에서 멕시코로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 얼마남지않아서 둘다 포기해야 했다. 이 갈라파고스에 갈 수 없는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수 있는 곳이 바예스타 섬 투어였다. 


바예스타 섬 투어는 스피드 보트를 타고 섬 주변을 돌면서 펭귄, 펠리칸, 바다사자, 물개들을 볼 수 있다. 여행자들이 바예스타 섬의 별칭을 '가난한 여행자의 갈라파고스'라 이름붙인 것도 이런 연유다.



보트에 올라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나면 투어가 시작된다. 처음 도착한 곳은 아무것도 없는 모래언덕처럼 보이는 섬이었다. 가이드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그 모래언덕에 나무 혹은 촛대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바람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이 그림은 나스카 평원에 그려진 그림과 유사하게 지표면을 파헤치는 형태로 그려져있는데 나스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그래도 아래위 길이가 200미터에 가깝다고 한다. 촛대 모양이라서 촛대(El Candelabro) 그림이라고 이름붙여졌는데 누가, 언제 그렸는지 알 수 없지만 나스카와 비슷한 시기에 그려졌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제 본격적인 바예스타 섬 투어가 시작되었다. 배를 돌려 멀리 하얗게 보이는 작은 섬들로 속력을 올렸다.



펭귄이나 바다사자 같은 동물없이 파도에 침식된 섬의 모습만으로도 훌륭한 풍경이었다.


섬 가까이 다가가자 절벽아래에 펭귄 한마리가 서 있었다. 절벽 위에는 펭귄과 펠리컨이 무리지어 있었는데, 날지도 못하고 다리도 짧아 평지에서도 빠르게 걷지 못하는 펭귄이 절벽 위에서 어떻게 아래로 내려와 바닷속으로 들어가는지, 바닷속에서 어떻게 다시 절벽 위로 올라가는지 궁금했다.


그 궁금증은 여행을 마친 후, TV에서 BBC에서 촬영한 '스파이 펭귄'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나서 풀렸다. 이 다큐멘터리는 황제펭귄, 바위뛰기 펭귄, 훔볼트 펭귄의 서식지를 가까이에서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가 달린 여러가지 움직이는 모형(펭귄이나 바위, 심지어 알까지)을 이용한다. 펭귄이 이 모형들을 같은 무리나 주변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들의 생태를 정말 놀랍도록 가까이에서 촬영할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즐겁게 볼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바예스타에 있는 이 펭귄이 바로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훔볼트 펭귄이었다.(동물원에 있는 펭귄도 훔볼트 펭귄이 많다고 한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훔볼트 펭귄이나 바위뛰기 펭귄은 짧은 다리로도 절벽을 오르내리거나 평지를 제법 빠른 속도로 달렸다.






섬의 침식된 동물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무리의 바다사자(아니면 물개)가 쉬고 있었다.



섬을 돌아 뒤편으로 가니 바다사자들이 섬 절벽 바위 위에서 다들 늘어져 낮잠을 자고 있었다. 배로 가까이 다가가는데 낮잠을 방해하는게 아닌가 싶었지만 정작 녀석들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심지어 눈을 뜨거나 쳐다보는 녀석조차 없었다.



새들이 정말 많았다. 그 중에서도 펠리컨은 워낙 덩치가 커서 쉽게 눈에 띄었다.


바예스타 섬이 유명해진 이유는 동물들의 서식지로서가 아니라, 구아노(guano)라고 부르는 새들이 남긴 배설물 때문이다. 이 섬에는 섬들을 새카맣게 뒤덮을만큼 많은 수의 새들이 사는데, 이 새들이 섬에 남긴 배설물들이 쌓여 수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굳어서 딱딱해진 이것들은 질소와 인산 성분이 다량으로 함유된 훌륭한 비료가 된다. 바예스타의 섬들은 모두 흰색을 띄고 있는데 원래 흰색이 아니라 배설물로 뒤덮여서 흰색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을 처음 비료로 사용한 사람들은 잉카인들이라고 하는데, 유럽인들이 비료로서 구아노의 효과를 알게된 후, 1800년대 이 지역에서 채취한 구아노를 유럽으로 엄청나게 수출했다. 당시 페루에서 수출로 벌어들이는 재화의 대부분이 이 구아노로 인한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볼리비아와 페루의 자원을 탐낸 칠레와 전쟁이 발발하게 되고(구아노 전쟁), 전쟁의 결과는 이전 글에도 썼듯이 칠레가 아타카마 사막과 태평양 해안을 차지하고 볼리비아는 내륙국이 되어버렸다.  


그 후에는 화학비료가 개발되어 쓰임새가 줄어들었다가 세계적으로 유기농업이 활성화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이 배설물 채취는 페루 정부에서 허가 받은 회사만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과도한 채취를 막기 위해 특정 기간에만 실시한다.


올해 초에 이 섬에서 구아노를 채취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새의 깃털과 뼈들이 섞인 배설물을 간단한 도구로 긁어 포대에 담는 일이었다. 심한 먼지와 냄새가 나는데도 페루의 인부들은 마스크 하나만을 쓰고 고되게 일을 하고 있었다. 이 배설물들은 비싼 비료로 팔리는데 정작 이것을 채취하는 페루 노동자들의 보수나 노동환경은 척박한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섬마다 나무로 만든 구조물들이 하나씩 있는데 이것은 섬에서 채취한 배설물 포대를 배로 옮기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이 구조물마저 새의 배설물로 하얗게 변하고 있다.


바예스타에 얼마나 많은 새들이 사는지는 사진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수많은 새가 섬을 뒤덮어 색깔마저 검게 바꿔버린다.


정말 놀랍도록 새들이 많았다.




단순히 경치만 감상해도 바예스타는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야생 바다사자 무리를 이렇게 가까이 볼 수 있다니...


배나 인간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전혀 유연하지 않을 것 같은 몸매에서 이런 유연함이... 죽은듯이 자고 있다는 표현은 딱 이런 모습...









바예스타 투어는 배를 타고 반나절 둘러보면 끝나는 단순한 일정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경관과 펭귄, 펠리칸 등 수많은 새들과 야생 바다사자와 물개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멋진 투어였다. 그리고, 이 곳을 방문하기 전에 섬들을 뒤덮고 있는 구아노와 이로인한 역사적인 일들을 미리 알고 투어를 한다면 더욱 의미있는 장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흔들리는 배 위에서 새와 동물들을 제대로 찍는건 불가능에 가깝다. 성능 좋은 카메라 한대도 필요할 것 같다.)



이 동네는 펠리컨이 동네 강아지보다 흔하게 보인다.


와카치나로 돌아갈 승합차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과 마을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는데 잉카와 원주민들을 조재로한 조각과 회화 기념품을 많이 팔고 있었다.




바예스타 투어를 마치고 와카치나로 돌아온 뒤, 이까의 버스터미널로 이동하여 페루의 수도 리마로 가는 버스를 탓다. 리마로 가는 길은 태평양을 따라난 해안도로를 타고 쭉 올라가는 것이었다. 가는 중에 해가 저물었다. 날씨가 맑지 않은 탓에 붉은 노을은 아니지만 수평선으로 사라지는 해가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는 떠오르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졌다.




꽤 늦은 시간에 리마에 도착했다. 여행내내 처음 가는 도시에는 가능한 밤에 도착하지 않으려 일정을 잡아왔지만 가끔은 그게 불가능할 때가 있다. 리마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이 늦은 시간이었고, 여행자들로부터 리마에 대한 악명도 조금은 들었던터라 터미널에 나오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예약한 숙소로 향했다. 그런데, 택시 창문 밖으로 보이는 리마는 내가 생각했던 리마와 많이 달랐다.


어둠이 내려앉은 리마 시내는 현대적으로 지어진 높은 빌딩과 깔끔하게 꾸며진 거리가 인상적이었다.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사실 도시에서 여행자에게 위험한 곳은 번화한 길거리의 뒷골목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나는 내 상상만으로 위험한 도시의 전형으로 어두컴컴한 슬럼가를 상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리마의 주택가에 위치한 숙소도 나쁘진 않았다. 조금 낡은 시설과 마주보고 있는 다른 숙소와의 과도한 경쟁으로 불편했던 점을 제외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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