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하까에서 두번째 날에 찍은 사진을 고르다보니 기억하고 싶고, 블로그에 올리고 싶은 사진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멋지거나 아름다운 경치는 아니지만 나에게는 당시의 기억들을 떠올리고 행복하게 만드는 무척이나 소중한 사진들이라는걸 다시금 느낀다.


......


두번째 날은 와하까의 한 시장에서부터 시작했다. 와하까에는 여러 시장이 있지만 이곳은 조금 독특하다. 시장건물 전체가 고기를 구워 파는 곳이기 때문이다. 시장이라기보다는 단일메뉴의 음식을 파는 커다란 푸드코트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여러 가축들의 고기와 내장, 소시지를 골라 주문하면 구워준다.


시장에 들어서면 엄청나게 시끌벅적하고 건물은 고기를 굽는 연기로 가득 차 있다. 음식을 먹기 위해 온 사람들, 호객하는 사람들로 발디딜틈이 없는데 여러 가게들중에 하나를 골라 겨우 고기와 같이 먹을 야채를 주문하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멕시코에서도 가축의 내장을 먹는다. 타코 같은 것에도 구워서 넣기도 한다. 여행 전에는 소나 돼지의 내장을 먹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는 줄 알았지만 특별히 고기가 많이 생산되어서 먹을 필요가 없는 나라들을 제외하고 많은 나라에서 이것을 먹고 있었다.



건물안이 연기로 가득하다.


또르띠야와 구워져서 나온 고기


주문한 고기는 종이가 깔린 바구니에 얹혀져 또르띠야와 함께 나온다. 또르띠야를 적당히 찢어서 고기와 야채, (토마토, 양파, 고추로 만든) 샐러드를 넣어 싸먹는다. 맛은 나쁘지 않지만 무척 훌륭하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무엇보다 너무 시끌벅적해서 음식을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한번쯤 먹어보는게 좋긴하지만 반드시 먹어봐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새콤한 이 샐러드 없이 고기와 또르띠야만 먹기는 힘들 것 같다.


시끌벅적한 고기 시장을 나와 소칼로 광장으로 갔다. 스페인어 소칼로(Zocalo)는 멕시코에서 중앙광장을 뜻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멕시코 도시 곳곳에 소칼로라는 이름의 광장이 있다. 멕시코시티의 소칼로에 비해서는 아주 작지만 푸른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시원하고 운치있었다.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주말을 즐겼고, 광장 주변으로는 레스토랑이나 박물관, 조금 떨어진 곳에 와하까 대성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 곧 겨울이 될 늦가을이지만 와하까의 햇살은 강렬하고 눈부셨다.



와하까 대성당 (Catedral de Oaxaca). 유럽이건 어디건 더위를 피할땐 돌벽이 두터운 성당 건물이 제격이다. 





특별할게 없는 스페인풍의 성당이다.


와하까 시내를 다니는 여행자용 전차. 모양만 전차이지 버스를 개조한 것이라 밑에 타이어가 보인다.


와하까 구도심을 천천히 걸으며 구경하다가 북쪽에 있는 산토 도밍고 수도원(Templo de Santo Domingo)까지 왔다. 이곳은 수도원이지만 부근에서 발굴된 여러가지 고대유물부터 수도원에서 보관하고 있는 고문서 등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날은 주말이었기 때문인지 개방하지 않고 있어서 다음에 다시 오기로하고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야자나무 아래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나처럼 문닫힌 박물관을 보고 허탈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와중에 야자나무 아래에 뭔가를 팔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NIEVES'라고 쓰인 간판을 달고 있는데 통에서 하얀것을 담아 그 위에 시럽을 뿌려서 건네주고 있었다. 찾아보니 'NIEVE'가 눈이라는 뜻의 스페인어였다. 우리의 팥빙수하고 비슷한 것인가 싶었다. 비록 이것을 맛보진 못했지만 세계 곳곳에서 우리와 비슷한 음식, 사는 방식이나 문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시 소칼로 광장으로 내려가다가 기념품점들이 모여있는 작은 상가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가게는 멕시코의 전통술 메스깔(Mezcal)이었다. 메스깔은 멕시코의 가장 보편적인 술(우리나라의 소주)로 이곳 와하까가 주산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멕시코의 술이라하면 대부분 데킬라만을 알고 있지만 쉽게 말해 데킬라는 메스깔의 한 종류일뿐이다. 멕시코의 할리스코주와 타마울리파스주에서 생산된 용설란으로 증류한 술을 데킬라라고 하고, 그 외의 지역에서 생산된 용설란으로 만든 술이 메스깔이다.


그리고, 술병안에 애벌레가 들어간 데킬라를 고급으로 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품질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한다. 어쩌다 용설란에 살고 있던 애벌레가 술병에 들어갔는데 이게 히트치는 바람에 마케팅 수단이 되어버렸고, 요즘에는 생산과정에서 애벌레를 한마리씩 집어넣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어쩌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데킬라도 진정한 데킬라가 아닐지 모른다. 데킬라를 마실땐 원산지가 할리스코나 타마울리파스주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시음용 메스깔. 자꾸 마시라고 주니 안살수가 없었다.


메스깔은 용설란을 증류하여 만드는 술로 도수가 40도 이상이다. 너무 독해서인지 아니면 관광상품인지 메스깔에 여러가지를 섞어서 매우 다양하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요즘 소주에 과일액을 섞어서 여러가지 종류의 소주가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종류가 너무나 다양했다. 갖가지 열대과일뿐만 아니라 초콜렛, 민트, 누가 등등 흔히 생각하기 어려운 별의별 종류가 다 있었다. 여행 초기에 라오스에서 '라오라오'주를 샀던 이후, 다시 여기서 메스깔을 한병 샀다. 짐이 될테니 와하까를 떠나기 전에 다 마셔버리기로 하고.




상가 곳곳에 '호세 과달루페 포사다'의 '카탈리나'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포사다는 멕시코혁명기에 해골을 이용해 상류층과 부유층을 풍자했던 유명한 화가라고 한다. 디에고 리베라도 포사다를 존경했는지 멕시코시티에서 봤던 '알라메다 공원의 일요일 오후의 꿈'이라는 그림에서 카탈리나를 한가운데 두고 그렸다.






구도심을 구경하다가 다시 재밌는 것을 보았다. (지금은 방앗간이 거의 없어졌지만) 우리나라 방앗간에서 고춧가루를 만들어주거나 참기름을 짜주듯이 와하까의 방앗간에서는 카카오 열매를 가루로 빻아주고 있었다. 


초콜렛으로 유명한 곳은 많다. 유럽에서는 벨기에, 남미에서는 아르헨티나의 바릴로체, 볼리비아의 라파스가 유명했다. 바릴로체나 라파스는 유럽의 이민자들이 남미에서 생산된 카카오를 이용해 만든 초콜렛이 유명해진 반면에 와하까는 초콜렛뿐만 카카오 그 자체가 유명한 특산품인 것 같았다. 이곳에서 초콜렛 음료를 팔기도 하는데 맛이 무척 진하고 달았다.


카카오의 원산지가 멕시코의 유타칸 반도이고, 이곳에서 살던 원주민들이 카카오콩을 발효시켜 음료로 마신 것이 초콜렛의 기원이라고 하니 와하까가 초콜렛으로 유명한 것도 당연하다.

 


우리나라의 방앗간에서 고춧가루를 빻는 기계와 거의 같은 모양이다.


카카오에 계피, 아몬드, 설탕을 넣어 고운 가루로 빻아준다.



구도심을 걷다보니 커다란 건물에 시장이 있어서 무작정 들어갔다. 생활용품, 식료품 등을 파는 전형적인 시장이었는데, 시장을 구경하다보면 이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먹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어 재미있다.




멕시코 사람들은 육류, 콜라(1인당 소비량 세계 1위)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


마리아치가 연주할때 쓰는 모자일까?


멕시코는 해안부터 5600미터가 넘는 화산까지 표고차가 심한 지형이며, 25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가 매우 많다. 그래선지 열대과일부터 고산지방에서 경작되는 농작물까지 매우 다양한데, 뭐니뭐니해도 멕시코에서 가장 유명한 농작물은 고추다. 멕시코는 고추의 원산지이기도 하며, 매운 고추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매번 언급되는 아바네로를 비롯해 핫소스로 유명한 타바스코 등 다양한 고추가 산생된다.


고추를 파는 곳에 들어서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어떤게 가장 매울지 냄새를 맡아보고 싶지만 감히 그러지 못하고 눈으로만 구경했다.




와하까의 또다른 명물은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공모양의 치즈다. 처음에는 흰 끈같은 것으로 둥글게 뭉쳐놓은 이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다가 치즈라는 말을 듣고, 앞서 샀던 메스깔의 안주가 필요하다는 핑계로 작은 것을 하나 샀다. 맛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척 쫄깃하고 고소하다. 흔히 생각하는 부드러운 치즈가 아니다. 오징어처럼 세로로 찢어서 입에 넣으면 쫄깃함도 오징어와 비슷한데 맛은 고소하다. 맥주 안주로도 안성맞춤일 것 같다.






시장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시장 옆에 와하까에서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었다.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보다는 생과일로 만든 셔벗 같은 것들이 대다수였는데 종류가 무척 많았다.


수박맛으로 골랐는데 수박을 그대로 얼렸는지 중간중간에 씨가 그대로 들어가 있었다.

수박맛바에 있는 씨처럼 초콜렛이 아니다 그냥 수박씨다.


다음으로 본 것은 길거리에서 건새우 같은 것을 잔뜩 쌓아놓고 파는 모습이었다. 자세히 보니 메뚜기였다. 멕시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메뚜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대다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시골에서는 메뚜기를 구워먹거나 졸여먹었기 때문에 별로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상인들이 먹어보라며 건네주는걸 맛봤더니 고소하긴하지만 매콤하면서 시큼했다. 멕시코시티에서 먹었던 칩도 그랬지만 멕시코 사람들은 소스에 매콤한 맛과 시큼한 맛을 같이 쓰는 것 같다. 시큼한 대신에 짭조름했더라면 한국사람들 입맛에 훨씬 더 맞을 것 같았다.



잘라서 파는 과일에도 매콤시큼한 소스를 올려서 팔고 있다.


블로그를 쓰다보니 와하까에는 명물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여튼, 와하까의 또다른 명물인 '몰레'다. 여러가지 몰레가 있는데 몰레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써야겠다. (이번 글은 너무 길어서 지쳐버렸다. 빨리 마무리하고 싶다.)


하루종일 와하까 시내 곳곳을 뒤지며 다녔더니 어느새 해가 기울었다. 다시 소칼로 광장으로 돌아왔더니 신나는 음악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은 낮보다 훨씬 많아져있었다.



무대에서는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고 사람들은 나와서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춤을 출 흥이 부족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너무나 좋다. 남녀노소 아무나 꺼리낌없이 춤을 출 수 있는 장소와 분위기가 이들을 훨씬 밝고 낙천적 살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여기서 혼자 춤추던, 모두들 쌍쌍인데 분위기에 취해 혼자서 춤추던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광장 저편에서는 만담인지 개그무대인지가 한창이다.

사람들은 웃고 신나하는데 나야 뭔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풍선이 이렇게나 많이 남았는데 밤하늘은 점점 어두워간다.

풍선에 가려진 아저씨의 속마음도 까맣게 타들어가는건 아니었으면...



시장에 있는 음식점에서 스프와 몰레가 올려진 튀김(?)으로 늦은 저녁식사를 마쳤다. 


자그마한 시내를 하루종일 돌아다녔음에도 볼거리가 넘쳐났다. 그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끌벅적하고 흥겨웠다. 와하까, 만만치않게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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