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기 전까지 라틴 아메리카의 예술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특히나 미술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르네상스 이후의 서구화가들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조금이나마 배우는 것이 있고, 늘상 언론매체에서 다뤄지니 겉핥기나마 자연스레 알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주류에서 벗어나있는 라틴 아메리카의 미술가에 대해서는 몇 년 전부터 국내에서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보테로나 (영화로 먼저 대중에게 유명해진) 프리다 칼로, 칼로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이름만 겨우 들어봤을 뿐이었다.


하지만, 멕시코시티 여행 정보를 찾다보니 멕시코 근대미술의 아버지이자, 공산주의자이며, 멕시코 민중이 가장 사랑했던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이름이 도시 곳곳에 넘치고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미술에 무지한 나조차 어디선가 봤던 그림들이니 흥미가 절로 생겼다. 멕시코시티에서의 둘째날은 리베라의 이름만 따라다녀도 충분할 듯 싶었다.


둘째날의 첫번째 장소는 어제 인류학 박물관을 가면서 겉모습만 보고 지나쳤던 멕시코시티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과 사그라리오 성당으로 정했다.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성당으로 손꼽히는데 1573년 건축을 시작해 1813년 완공된, 240년 동안 지어진 교회다. 이렇게 오랜 기간 지어졌기 때문에 르네상스, 바로크, 네오 클래식 양식이 혼합되었다는데 건축에 문외한이라 정확하게 어디가 르네상스 양식이고 어느 부분이 바로크 양식인지 뚜렷하게 구분할 깜냥이 없다.


성당내부에 들어서니 우선 전면에 황금 빛 제단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검은 대리석으로 조각된 십자가에 못밖힌 예수상이 보였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수차례 화려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성당을 봐왔기 때문에 그에 비할 수는 없지만 이교도의 나라를 식민지로 삼아 자신들의 종교 건축물을 이 정도로 크고 화려하게 지었다니... 역사는 정복자에 관대하게 기록되는건 알지만 이걸 짓느라 수탈당했을 원주민들의 고통은 알려지지 않는게 불편했다.





 

당연하게도 성당 내부는 스페인에서 본 성당들과 매우 흡사하다. (성당에 들어서면 먼저 전면 가까이에 제단이 있고, 그 뒷쪽에 또 제단이 있다. 그리고, 좌우로는 귀족이나 성직자가 드나들었을 나무로 만든 커다란 문이 있다.)




지어질 당시에는 피지배계층에게 고통을 안겨주었을지언정 지금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당시의 기술과 자금을 총 동원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때의 문화수준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없을 테니 당연하다 생각하면서도 아이러니하다.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 바로 옆에는 사그라리오 대성당이 있다.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보다는 훨씬 크기가 작고 화려함도 덜하지만 종교적인 분위기는 더한 것 같았다.



성당에서 나와 왼쪽에 있는 국립왕궁(Palacio Nacional)로 걸어갔다. 이 건물은 아즈텍 왕국 이후에 멕시코를 지배했던 계층의 궁전이었다가 지금은 국회의사당과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간단한 검문을 받고 입장한다.


여행자들이 이 건물을 찾는 이유는 단 하나,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가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미술활동을 하며 이탈리아 벽화에 영향을 받았던 리베라가 멕시코로 돌아온 후, 정부의 요청으로 공공건물에 많은 벽화를 그렸다고 한다. 이 벽화들은 멕시코의 역사의식과 사회주의 사상을 담고 있어서 멕시코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 건물에도 그런 벽화들이 많이 그려져 있다.


이 곳에 그려진 벽화 중에 가장 크고 유명한 것은 주 계단 전면과 좌우측에 그려진 벽화이다. 우측부터 아즈텍의 신화와 역사, 스페인의 침략과 지배, 근대의 자본주의와 혁명 순으로 그려져 있다. 크고 복잡한 이 벽화들을 일부분씩 떼어놓고 보면 모두 하나씩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멕시코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이런 그림들을 통해 못배우고 착취만 당했던 군중들을 깨우치려했던 리베라의 의도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계단 전면의 벽화(스페인의 침략과 지배)


계단의 우측(아즈텍 시대의 역사)


계단의 좌측(근대, 혁명)


타락한 성직자


칼 막스의 자본론을 손에 든 노동자


원주민에게 인두로 표식을 남기는 노예상인


노예로 팔리지 않기 위해서는 개종할 수 밖에 없었던 것...



리베라는 벽화에 역사적인 인물들이나 그의 주위사람들을 많이 그렸다고 하는데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 영향을 받았는지도) 벽화에서 붉은 옷을 입은 이 여인은 리베라의 처제이자 정부였던 크리스티나라고 한다. 리베라는 화가로서는 훌륭했으나 자신의 예술적 근원이 여인들과의 관계에 있다고 할 정도로 문란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프리다 칼로가 세번째 아내였으며, 칼로의 사후에 네번째 결혼을 했다.



리베라는 계단에 그려진 벽화말고도 이 커다란 건물을 빙 둘러서 멕시코의 역사를 주제로한 십 여점의 벽화들을 그렸다.





건물 안에는 자그마한 리베라의 기념관도 있는데, 기념관에 있는 리베라의 사진을 보면 덩치가 크고, 뚱뚱하고, 못생겼다. 외모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내적으로 강렬한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나보다.



리베라의 벽화 외에도 전시실에 미술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나로서는 어떤 유명한 화가의 작품인지, 어째서 훌륭한지 볼 능력이 없었다.


벽화를 보고 나오니 벌써 점심때가 가까워져 있었다. 다음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현지인들이 꽤 많은 식당에 들어가 치킨과 샌드위치를 시켰다. 멕시코는 음식이 무척 저렴했다. 게다가 매콤한 소스를 같이 주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도 먹기에 좋았다.

 

매콤한 소스. 푸른 고추냐 붉은 고추냐의 차이다. 둘다 맵다.


점심식사를 하고 다음 목적지로 가다가 멋진 우체국 건물을 만났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체국 건물중에 하나라는데 특별한 구경거리는 없으니 굳이 찾아갈 필요는 없고, 지나는 길이라면 한번 들러볼만 하다.






우체국 건물치고는 꽤 멋지다. 명동에 있는 중앙우체국(포스트 타워)도 멋지게 지었으면 좋았을텐데.




다음 도착한 장소는 Palacio de Bellas Artes 였다. 이곳은 멕시코 전통 음악과 춤을 공연하는 극장과 극장 벽면에 그려진 멕시코 유명 화가들의 벽화가 유명하다. 전통 공연은 볼 수 없었지만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벽화들을 볼 수 있었다. 오전에 본 국립왕궁 벽면에 그려진 리베라의 벽화보다 단순하지만 훨씬 강렬하게 주제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않지만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인지 사진이 한장도 없었다. 어쩌면 하루종일 걸어다녀서 지쳐버렸는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디에고 리베라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아라메다 공원의 일요일의 꿈'이 전시되어 있는 Museo Mural Diego Rivera로 향했다. 처음엔 디에고 리베라 벽화 박물관이라고 해서 규모가 꽤 큰 박물관인줄 알았는데 아라메다 공원 한쪽에 있는 작은 건물이라 의아했다. 그리고, 박물관 앞 공원에는 멕시코 할아버지들의 체스 게임이 벌어지고 있었다.


Museo Mural Diego Rivera


이 박물관은 오로지 '아라메다 공원의 일요일의 꿈'의 전시를 목적으로 지어진 곳이다. 몇 점의 그림이 더 있지만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은 이 벽화를 보기 위해 오기 때문이다.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벽화는 무척 컸다. 박물관에서는 벽화에 그려진 각 인물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인쇄물을 나눠주었지만, 대부분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크게 흥미가 생기진 않았다.



관심이 가는 부분은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해골여인과 어린 시절의 리베라(좌측), 나이 든 리베라(우측), 그리고 뒤편의 프리다 칼로였다. 그때도 그랬지만 블로그를 하면서 다시 생각을 정리해보려 해도 도통 이 남자의 뜻을 알기가 힘들었다. 이 그림에 대해 설명한 분들의 블로그나 기사를 찾아보니 네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그림들이 가진 역사적인 의미는 알겠지만 리베라가 이 네 명을 그린 의미가 정리되진 않았다.



 

박물관에서 나와 거리를 걷다보니 사람들로 가득 찬 거리에 들어오게 되었다. 아마도 우리네 명동쯤 되는 것 같았다. 길거리에는 이런저런 먹거리 음식도 팔고, 거리 양쪽에는 상가들이 가득했다. 감자칩에 붉은 소스가 올려진 먹거리를 샀는데, 감자칩인 줄 알았던 것은 딱딱한게 감자맛이 나지 않았고 붉은 소스는 매운맛보다는 신맛이 강했다. 겉모습이 같다고 해서 같은 특성을 갖는 건 아니라는걸 또 경험했다.




 

생각해보니 이 날 숙소를 옮겼다. 나쁘진 않았지만 구시가 가까이에 있어 번잡했던 호스텔을 떠나 신시가 주택가에 있는 곳으로 옮겼다. 숙소에 맡겨둔 배낭을 찾아 둘러매고 새로운 숙소에 짐을 풀고나니 꽤 밤이 늦은 시간이 되었다. 숙소를 옮기느라 저녁도 거르는 바람에 새 숙소로 오면서 봐둔 길거리 샌드위치를 파는 곳에서 가장 토핑이 많이 들어간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젊은 멕시코 청년이 만들어 준 샌드위치는 내용물이 굉장했다. 햄, 소세지, 베이컨, 고기, 치즈, 달걀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여기에 야채를 좀 더 넣어주었다면 더 훌륭했을텐데 가격이 너무 저렴해서 불만을 가질 수는 없었다. 먹을게 맘에 들면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는 타입이라 멕시코가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봤던 리베라의 벽화보다 강력했던 건 결국 샌드위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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