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다는 멕시코 유타칸주의 주도이면서 인구가 100만 정도 되는 대도시다. 내가 머물렀던 곳은 스페인 식민지시대에 건설된 구도심지역이라 규모가 작았지만 도시가 커지면서 생긴 신도심에는 높은 빌딩들도 있다. 앞서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메리다에서는 요일마다 정해진 공연이 정해진 장소에서 열리는데 단지 여행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뻔한 공연이 아니라 현지인들이 즐기는 춤과 음악을 여행자들이 같이 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매력적이다. 


여행자의 주머니를 노리는게 뻔히 보이는 행사나 이벤트는 그들이 다시 오고싶거나 주위 사람에게 추천해줄 만큼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우리나라가 관광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나 지자체가 벌이는 축제나 행사가 과연 여행자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것인지 냉정하게 돌이켜봐야한다. 솔직히 하는 행사들을 보면 대부분은 내가 외국인이라면 절대 관심이 가지 않거나 흥미를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왜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이 외국 사람들에게 인기인지는 뻔하지 않은가?


메리다에서의 즐거운 첫날을 보내고, 두번째 날은 어제 신청한 세노떼 스노클링 투어에 참여했다. 메리다나 유타칸 반도에서 할 수 있는 재밌는 경험중 하나는 세노떼에서 수영을 하는 것이다. 석회암지대인 유타칸 반도는 이 석회암이 빗물과 지하수에 녹아서 싱크홀처럼 움푹 꺼진 곳들이 많이 있는데 이런 곳을 세노떼(Cenote)라고 한다. 그리고, 이 석회암이 녹아서 생긴 구멍에는 맑은 지하수가 차 있어서 아름답고 신비로운 광경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수십 명이 들어가서 수영을 할 수 있을만큼 큰 곳도 있다. 마야시대에는 이런 세노떼가 식수를 공급하는 곳으로, 종교의식을 치르는 곳으로 중요한 장소였다고 한다. 지금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들을 제외하고 일반적인 세노떼에서는 여행자들을 위한 투어가 진행된다.


아침에 여행사 승합차를 타고 메리다 근교에 있는 세노떼로 출발했다. 운전사는 메리나 시내를 지나면서 역사적인 건물들 앞에서는 간략한 설명을 했는데, 안그래도 안들리는 말인데 역사적인 배경을 모르니 알아듣기 더 힘들어서 고개를 끄덕이며 사진 찍는 것으로 분위기를 맞췄다.



뭔지 모르지만 설명을 하길래 사진만 찍었다.


메리다 교외로 나와서 한참을 달린 후에 어느 작은 마을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말이 끄는 마차로 갈아타라고 했다. 세노떼가 밀림 군데군데 있어서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없는 모양이었다.



마차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타서 말이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세노떼로 가는 길마다 엉성하지만 철로가 놓여져 있어서 마차는 그 위를 달렸다. 철로가 없는 비포장도로에서 사람들이 잔뜩 탄 마차를 끄는 것보다는 힘이 훨씬 적게 드니 말은 제법 빠르게 마차를 끌었다.



멕시코 남부의 하늘과 구름은 항상 맑고 푸르렀다.


첫번째 세노떼에 도착했다. 세노떼로 들어가는 입구도 크고, 내려가는 계단도 잘 되어 있었지만 처음에는 어두컴컴한 동굴 안으로 내려가는게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세노떼가 가장 시설(?)이 좋은 곳이었다. 다른 곳은 거의 구멍에 사다리 놓인 수준이었다.)



막상 세노떼 안으로 내려가자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눈이 아직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세노떼 대부분은 어둡게 보였지만 햇빛이 비치는 곳의 물색깔은 환상적이었다.




세노떼의 수심은 제법 깊어서 사람키의 몇 배는 족히 되었지만 물이 워낙 맑아서 밑바닥이 매우 선명하게 보였다. 가이드는 구명조끼와 오리발을 나눠주고 세노떼에서 스노클링을 하라고 했다. 유럽이나 미주에서 온 여행자들은 호수나 강에서 수영하는게 익숙한지 구명조끼 없이 들어가서 물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을 했지만,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운 나는 아직 바닥이 닿지 않는 곳에서의 수영은 서툴러서 구명조끼에 의지해야했다. 오리발을 끼고 있으니 괜찮을 법도 하지만 어두컴컴한 세노떼에서 내가 혹시 물을 먹고 허우적대더라도 사람들이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다.




세노떼에 들어가는 입구말고도 군데군데 작은 구멍들이 있어서 세노떼 안으로 햇빛이 비친다.


첫번째 세노떼에서 스노클링을 마친 뒤에는 두번째 세노떼로 향했다. 이번에는 입구가 좀 더 작고 더 은밀해 보였다. 하지만 물빛은 오히려 더 맑았고 은밀해서인지 더 신비로웠다.






두번째 세노떼는 첫번째처럼 수면 바로 위까지 계단이 놓여있지 않았다. 동굴 벽을 따라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지만 가이드는 중간에 놓여진 발판에서 세노떼로 뛰어들라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먼저 장비를 착용하고 뛰어들었다. 스킨스쿠버 전문가인 그는 덩치도 무척 크고, 뚱뚱해서 물보라가 엄청나게 튀었지만 물속에서는 한마리의 바다코끼리처럼 아주 자유로워보였다.


세노떼로 뛰어들기 직전의 바다코끼리


역시나 엄청난 물보라를 내며 입수


역시나 서양 여행자들은 구명조끼도 착용하지 않고 세노떼의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멈칫거리던 서양 여자들까지 비명을 지르며 뛰어었고 나도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뛰어들었다. 예전 용인에 있는 캐리비안베이의 다이빙풀에서 구명조끼 없이 뛴 적이 있었다. 그때는 구조요원이 지켜보고 있었고 주위도 밝았기 때문에 두려움없이 뛸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그러지 못했다.


자유롭게 물속을 유영하는 모습이 무척 부러웠다.


세번째 세노떼에는 그야말로 조그만 구멍에 수직으로 허술한 사다리만 놓여 있었다. 어쩌면 가장 위험하고 허술한 곳이었지만 가장 멋진 세노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세번째라 이제 너무 익숙해져버렸는지 그 뒤로는 찍은 사진이 없다.



하루종일 물놀이로 손발이 퉁퉁 불고 몸이 추워지자 세노떼 투어를 마치고 가이드가 안내한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멕시코 전통가옥 형태인지 아주 높은 천정에 지붕은 긴 풀로 엮은 나무집이었다. 음식가격은 투어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니어서 각자 본인이 먹고 싶은걸 시키고 식사하며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으로 투어는 끝이 났다.


여행을 하며 세노떼에 대해 더 찾아보니 내가 갔던 세노떼보다 훨씬 더 신비하고 아름다운 곳이 많았다. 어쨌든 유타칸 반도를 여행하는 여행자라면 하루쯤 세노떼에서 스노클링을 즐겨보길 추천하고 싶다. 아름다운 바다나 호수에서 수영하는 것은 어디서든 해볼 수 있지만 아름다운 동굴에서 수영을 하는 것은 쉽게 경험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물에서 텀벙거리다 와서 피곤했는지 그 날 있었던 공연은 보러 가지 못했다. 대신 숙소 베란다에서 어두워지는 광장을 바라보며 밤늦게 여러가지 알콜 음료를 마시다 잠들었다.(멕시코에는 코로나라는 세계적인 맥주가 있지만 캔으로 나온 여러가지 칵테일 음료들도 있다. 이것저것 마셔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양한 풍경과 맛있는 음식과 술, 재밌는 경험이 어우러진 멕시코 여행이 점점 더 즐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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