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허구전에서 헤이룽탄 공원까지 바로 가는 시내버스가 없었다. 가능한 가까운 곳에서 내려서 걸어야했다. 여행지에서 낯선 거리를 걷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제법 먼 거리였지만 발걸음이 가벼웠다.



걷다가 북쪽으로 난 길을 보니 멀리 위룽쉐산이 보였다. 오후가 되면서 점점 구름이 많아지더니 설산 꼭대기가 짙은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내일 위룽쉐산을 제대로 볼 수 있을지 점점 걱정되기 시작했다.


시장 규모에 비해 입구가 너무 큼직하다.



'남한에 종이는 좋다'(?) 맞춤법은 맞지 않지만 중국에서 한국산 제품들은 고급으로 인식되는지 쿤밍에서 리장까지 한국어로 쓰여진 간판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성형외과병원 선전물이라 오히려 한국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헤이룽탄 꽁위안(黑龍潭公園, 흑룡담공원)에 도착했다. 공원은 흑룡담이라는 연못 주변과 연못 내에 만들어진 작은 섬, 동파문자 연구소와 나시족 박물관을 포함하고 있었다. 연못 옆으로 나지막한 산을 끼고 있는데 산 위에 보이는 정자에 오르면 주위 경치가 무척 잘 보일 것 같았지만 아침에 국수를 먹은 뒤로 더 이상 먹은게 없다보니 오를만한 체력이 남아있질 않았다.


공원 북쪽에서는 울창한 버드나무에 가려 위룽쉐산이 흑룡담에 비치지 않았다.


위룽쉐산의 만년설이 녹은 물이라는데 흑룡담의 물은 전혀 깨끗하지 않았다. 옛날 흑룡담이라 이름이 붙여지던 시절에는 맑았을 물이 도시가 커지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더러워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맑은 물에 비치는 위룽쉐산을 기대하고 왔으니 아쉬움이 가시진 않았다. 일단, 둥바(東巴, 동파)문자와 나시(納西, 납서)족에 대한 자료가 전시된 박물관을 찾았다.




동파문자는 사용된지 1000년이 넘는,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유일한 상형문자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동파문자를 보면 이것이 그림인지 문자인지 파악하기 힘들다. 하지만 예전에 동파문자 하나하나에 대해 왜 이런 글자가 되었는지 설명을 해주던 다큐멘터리를 보고 문자 하나가 담고 있는 큰 의미에 감탄했던 기억이 났다. 


아침 수허구전에서 봤던 나시족 용사와 똑같은 포즈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 서양인이 큐레이터로부터 나시족 민속의상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었다. 나야 그저 구경하며 지나칠 뿐...



작은 도시의 시립박물관이지만 유물은 잘 전시·보존되고 있었다.

지자체장들의 공약남발로 세금을 들여서 지어놓고 제대로 관리는 하지 않는 우리의 많은 중소박물관들이 본받아야겠다.


사면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이 전시실이다.


박물관 입구


흑룡담 공원 북쪽에 놓여진 나무다리는 무척이나 낡아있었지만 나름 정취가 있다.



벤치에서 카드놀이에 열중인 아주머니들. 중국하면 마작을 주로 하는 줄 알았는데 요즘은 대부분 카드놀이를 한다.

길거리에서도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마작하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날씨가 좋았더라면, 바람이 불지 않았더라면 위룽쉐산이 흑룡담에 비쳤겠지만 딱히 기대되지는 않았다.

여행을 많이 다니고, 본 것이 많아질수록 높아지는 눈높이와 약간 건방진 마음도 생긴다.


여기서 본 풍경이 이 날 흑룡담 공원에서 본 가장 훌륭한 풍경이었다.


흑룡담 공원 남쪽문을 나와 물길을 따라 아래로 걸어내려왔다. 지나가는 길에 돼지머리를 통째로 굽고 있는 광경도 보이고, 이제는 중국 어느 관광지에 가도 넘쳐나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도 수없이 만났다.





오기 전에 기대했던 리장은 아니지만 몇 년간 그려왔던 리장의 모습은 모두 담고 가리라 생각하고 이제는 지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꾸청내의 언덕배기로 옮겼다. 꾸청을 가까이에서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은 꾸청내의 성벽인지 누각인지(이름은 잊었다.)였지만 거기에 들어가는 입장료가 또 수십위안이었다. 그런데 돈을 보태고 싶지 않아서 꾸청의 좁은 골목길을 여러 번 돌아 높은 곳에 오르니 그나마 꾸청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 나왔다.




새벽부터 시작된 도보여해으로 이제 몸이 녹초가 되어버렸다. 어째 산길을 하루종일 걷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꾸청을 전망할 수 있는 커피숍을 발견하고 커피를 시켜 2층으로 올라갔다. 꽤 비싼 커피였는데 창가는 이미 자리가 차 있었다. 늦었으니 그건 어쩔 수 없다치고 창가 자리를 잡고는 쇼파에 드러누워 있는 젊은 여자 두 명은 눈살이 찌푸려졌다. 가지고 있는 물건이나 누워서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한국사람인 것 같은데 잠시 뒤엔 아예 코까지 살짝 골면서 잠을 잤다. 여행중에 피곤하면 까페에서 잠깐 잠이 들 수도 있지만 신발까지 벗고 쇼파에 올라가 잠들어버리는 건 꼴불견에 속하는 행동이다. 우리를 방문한 다른 나라 사람들의 수준을 이야기하기에는 우리의 여행문화도 그다지 성숙해 있지는 않다.



오늘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는 길은 다니지 않던 방향으로 잡았다. 가다보니 황제의 명으로 리장을 다스렸던 목씨의 집(목부)이 있어 들어가봤다. 그런데 입장료가 또 100위안에 가까운 돈이었다. (아마도 80위안이었던 것으로...) 목부의 대문만 사진으로 남기고 혀를 차며 다시 나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위룽쉐산의 꼭대기에는 구름이 제법 많았지만 어느 정도 봉우리 모양을 보여주고 있었다. 숙소 근처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잠들기 전에 하늘을 보니 별도 조금씩 보이고 있었다. 내일 날씨가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