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일찍 후타오샤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아직 아무도 깨지 않은 숙소를 조용히 나섰다. 버스는 숙소 주인아주머니께서 전날 어딘가에 연락해서 예약주었는데 딱히 버스표가 있는게 아니라 아주머니가 적어준 쪽지를 들고 버스가 온다는 꾸청 밖 도로에서 기다리면 된다. 버스는 이미 리장 내의 여러 곳에서 여행자들을 태우고 약속시간을 한참 넘어서야 도착했다. 그래서인지 도착한 버스에는 자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버스에 탄 사람들 대부분은 트레킹을 좋아하는 서양여행자들이었는데, 마침 한국인처럼 보이는 젊은 친구의 옆자리가 비어있길래 거기에 앉았다.


버스가 후타오샤로 출발한지 얼마나 되었을까, 갑자기 스마트폰으로 전화가 왔다. 처음에는 잘못 걸려 온 전화라 생각하고 무시했는데 연속으로 계속 울리는게 이상해서 받았더니 숙소 아주머니께서 버스에 잘 탔는지 물어보기 위해 전화를 하신 것이었다. 버스 타고 잘 가고 있다고 했더니 버스 차장이 타기로 한 내가 안탔다며 연락을 했다고 하셨다. 알고보니 버스에 탈 때 아주머니가 적어 준 쪽지를 보여주고 버스비를 내야 하는데 버스를 타는 중에 차장이 아무 말도 안하길래 내릴 때 요금을 지불하는 줄 알고 버스에 타버렸던 것이다. 사정을 말씀 드리고 버스 차장을 불러 요금을 지불했다. 차장은 좀 궁시렁대는 듯 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는지 금방 돌아갔다. 내 입장에서는 내가 버스에 탈 때 차장이 챙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그걸 이 사람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말이 안통하는게 편할 때도 있다.


통화를 마치자 옆에 앉았던 젊은 친구가 '한국인이세요?'하고 말을 걸어왔다. 내가 숙소 아주머니와 통화하는걸 듣었던 것이다. 그리고, 1박2일 후타오샤 트레킹하는 동안 동행할 친구가 생겼다. 내가 차장에게 버스비를 내고 탓더라면, 숙소 아주머니가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트레킹을 하며 혼자 걸었거나 나중에야 동행이 생겼을 것이다. 여행에서 생기는 이런 우연들, 인연들이 여행자를 반갑고 기분 좋게 한다.


버스가 세 시간을 족히 달린 뒤에 위룽쉐산이 보이는 작은 마을에 섰다. 여기서 표 다발을 든 여자가 타더니 후타오샤 트레킹을 하러 온 승객들에게 표를 팔았다. 사실 후타오샤 트레킹을 하도록 코스를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니고, 그곳에 수백년 전부터 살던 사람들이 왕래하는 산길일뿐인데 유명해지고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중국정부에서 표를 팔고 있는 것이다. 따지자면 올레길에 온 외국인들에게 표를 파는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물을 찾는게 당연하니 어쩔 수 없다. 여튼 중국사람들이 장사는 참 잘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문에 밝은 편이지만 이 사람들은 훨씬 더하다. 표를 사고 나니 버스는 조금 더 들어가서 길가에 사람들을 내려주었다.


표지판도 안내도도 없다. 먼저 움직이는 사람을 따라 가면 된다.


사진 앞쪽에 배낭도 없이 걸어가는 사람은 트레커가 아니라 지친 트레커를 태우려는 이곳 현지 마부다.


앞에 어제 나를 애먹였던 위룽쉐산이 보인다. 오늘은 훨씬 기분이 나은지 구름모자를 거의 벗었다.




아주 완만한 오르막을 삼십분쯤 걸었을까? 저 앞에서 가던 서양 트레커들이 갑자기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이제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본격적으로 오르막이 시작될 참이라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나도 따라 채비를 점검했지만 이들처럼 길가에서 바지를 갈아입지는 못하겠다. 여인네들조차도 스스럼없이 바지를 갈아입는 모습은 여행중에 여러번 봤지만 아직도 낯설다.


꽤 올라왔는지 계곡이 깊어지고 진사장(金沙江, 금사강)이 한참 아래에 보였다.


양쪽으로 5000미터가 훨씬 넘는 위룽쉐산과 하바쉐산을 끼고 걷는 길이기는 하지만 이 곳은 2000미터대로 그다지 높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산에 적응이 안된 몸으로 배낭을 매고 오르자니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게다가 이곳을 찾기 전에 인터넷으로 검색했을 때는 가장 힘든 구간인 28밴드를 제외하면 초반에는 그리 힘들지 않을거라 했지만 처음부터 꽤나 힘들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작년인가 재작년에 초반 일부 코스가 뀌면서 좀 더 힘들어졌다고 한다. 코스를 시작할때 초등학교를 지난다고 들었는데 그러질 않아서 이상했다.) 힘들지만 길을 잃어버릴 염려도 없고, 험하지도 않았다. 트레킹을 하는데 부족한 것은 내 체력뿐이었다.


멀리 위룽쉐산의 설봉들이 보인다. 걷는 쪽이 하바쉐산, 건너편이 위룽쉐산이다.


후타오샤(호도협)은 전설에 사냥꾼에게 쫓긴 호랑이가 협곡을 뛰어서 건넜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영문명도 'Tiger Leaping Gorge'이다) 사실여부야 차치하더라도 호랑이가 뛰어서 건널만큼 험하고 폭이 좁은 협곡이라는 뜻일 것이다. 이 후타오샤로 난 트레일은 원래 차마고도의 일부로 상인들이 다니던 길인데, 외부에 알려진 것은 서양의 학자가 이곳의 생물학적 다양성(전 세계 동물종의 25%가 이곳에 존재한다)을 알리는 논물을 발표하고 나서부터라고 한다. 1980년대에는 세계의 오지를 찾아다니던 여행자들만 방문하는 곳이었으나 1993년부터 일반인에게 개방했다고 한다. 이곳은 지리학적인 특징은 상류와 하류의 낙폭(170미터), 강의 수위와 협곡을 이루는 봉우리의 높이가 최대 3790미터에 달하는, 이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트레일은 2000미터대에 있다보니 트레커의 시야에서는 그렇게 깊어보이지 않는다.)


트레일 중간에 음료수를 팔던 아저씨. 물 하나 사고 손발짓으로 이야기하다가 갈때쯤 사진 한장 찍어도 되냐니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초반부터 꾸준히 계속되던 오르막이 점점 더 가팔라지고 쉬는 횟수가 늘어났다. 동행이 되었던 젊은 친구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먼저 보내고 오히려 느긋해진 마음으로 힘들때마다 자주 쉬어가면서 천천히 올랐다. 같이 버스를 탓던 사람들 중에는 두어명의 서양 여자들 빼고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걷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초반부터 따라오던 현지 마부는 아예 내 뒤에 달라붙어서 말을 타라고 귀찮게 굴었다. 트레킹 코스 옆 간식을 파는 노점에서 쉬려니 자기도 주저앉아서 말을 붙였다. 뒤에 오는 서양 여자들을 가리키며 '쟤네들이나 태워'라고 하니 '서양애들은 안타거든'이라고 한다. '그럼 누가타?'라는 물음에 '한국사람과 중국사람만 타. 서양사람들은 절대로 안타'라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오기가 생겨서 더 타기 싫어졌다.(서로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들끼리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다는건 몇 번을 경험해도 놀라운 일이다.)



점심때가 다 되어서 나시객잔이 있는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도가 높다보니 벼농사는 불가능할테고 주식은 옥수수인 듯...


아름다운 경치지만 매일 보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함을 가져오는 커다란 장벽으로만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시객잔 입구에 도착했다.


언뜻보면 우리네 강원도 시골마을과 별반 차이가 없다.


나시객잔은 숙박도 겸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트레커들은 여기서 점심식사를 하고 중도객잔이나 티나객잔에서 묵는다.


나시객잔에 도착하니 고맙게도 먼저 갔던 젊은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식사를 주문하고 걸으면서는 힘들어서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을 시작했다. H반도체 회사에 다니는 이 친구는 중국법인에 파견되어 1년을 지내면서 중국 여러곳을 돌아보기도 했고, 중국어도 꾸준히 익힌터라 중국어도 능숙했다. 처음 봤을 때는 대학생인가 싶을 정도로 어려보이는 외모였지만 이제 막 서른줄에 들어선 어엿한 30대 직장인이었다. 식사를 하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길을 나섰다.


이 친구는 예의바르고 반듯하며 회사일에서도 인정받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회사와 본인을 동일시하지 않아서 좋았다. 간혹 본인의 수준과 본인이 다니는 잘 나가는 회사의 위치를 혼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좀 답답해진다. 이야기하다 보니 이 친구와 꼭 닮은, 예전 직장에서 같이 일했던 후배들이 생각났다.




나시객잔에서 나오자마자 길을 잘못 들었다. 표지도 없고 뭔가 트레일 같지 않은 분위기에 이상하다 싶을 즈음에 앞에서 오던 중국 할머니가 돌아가라고 손을 내저었다. 다시 객잔에 돌아가 길을 물어보고나니 이제야 커다랗게 표시된 표지가 보였다. 어째서 이걸 못봤을지 둘다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나시객잔에서 나와서 좀 걸으면 후타오샤에서 최고 힘든 코스인 28밴드가 나온다. 28밴드인 까닭은 좁고 가파른 바위로 된 길이 28번 굽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참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막을 오르고나니 쉼터가 나왔다. 거기서 캔커피를 사서 마시며 주인아주머니에게 28밴드 중에 여기가 몇 번째쯤 되냐고 물었더니 우리를 맨붕시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직 밴드는 시작도 안했다는... 


옷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고, 심장은 부족한 산소를 보내느라 최대로 펌프질을 하고 있는데 아직 시작도 안했다니 맥이 빠졌다. 우리 앞에는 5,60대(그중 한명은 거의 70대로 보였다)로 보이는 서양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따라 온 예의 그 마부에게 배낭을 맡긴 상태였다. 말의 힘을 빌리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계속 밀어붙일 것인가 아니면 타협을 할 것인가 고민했다. 그리고 50위안을 주고 우리 배낭도 말에 얹기로 했다. 배낭을 매고서 어떻게든 갈 수야 있겠지만 트레킹은 고생을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니 체력도 안되면서 무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배낭을 말에 싣고나니 몸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28밴드는 과연 가파르고 힘든 코스였다. 배낭을 매고 왔다면 족히 한 시간 이상 더 걸렸을 것 같았다. 28밴드에 오르면서 말은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가끔은 마부의 지시를 무시하고 걸음을 멈춰야 할 정도였다. 앞선 사람들의 자그마한 배낭 4개에 우리의 커다란 배낭 2개를 더 얹었으니 고산에서 단련된 튼튼한 말에게도 버거워 보였다. 가장 무거운 배낭을 얹은 우리는 말에게 굉장히 미안해졌다.



28밴드 꼭대기에 도착해서 배낭을 돌려 받았다. 예상대로 마부는 약속했던 50위안이 넘는 금액을 이야기했고, 중국어를 잘 하는 젊은 친구는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 대응했다. 마부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장기 여행을 할 때도 여러 곳에서 자주 겪었던 일이지만 이들은 그냥 찔러보는 것일 뿐이다. 팁 문화가 있는 서양 사람들은 팁처럼 줄 수도 있다. 혹은 금액을 착각해서 더 많이 줄 수도 있고, 고생한게 있으니 미안해서 부르는대로 줄 수도 있다. 이들은 그런 행운이 있기를 바라며 '시도'해 보는 것일뿐, 그리 나쁜 마음으로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과 약속한 금액을 내가 분명히 기억하고 있음을 표현하면 금새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지만 당신의 친절함에 감사하기 때문에 조금 더 사례를 하겠다고 하면 나는 그 사람에게 어느새 친구가 되어있다.



28밴드에서 오늘 숙박할 차마객잔까지는 쉬운 산길에다가 위룽쉐산의 봉우리를 오른쪽에 두고 걷기 때문에 멋진 경치를 볼 수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중국 아저씨 몇몇이 모여 산기슭에 작은 전망대를 만들어 놓고 자기들이 만들었으니 여기서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라고 하기도 하지만 그곳이 아니더라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좋은 포인트는 많기 때문에 돈을 보태 줄 생각이 아니라면 그냥 웃어주고 가던 길을 계속 가면 된다.


가던 중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매번 1회용 우비만 사다가 혹시나 싶어서 이번에 처음 사 본 아웃도어용 판초우의를 꺼내서 썼다. 큰 맘을 먹고 산 이 판초우의는 비가 올 때 1회용 우비와는 비할 수 없이 유용했다. 비를 잘 막아주면서도 비닐 우의처럼 덥지 않았다. 그 뒤에 어찌어찌해서 이 판초우의는 내 손을 떠났지만 나중에 다시 트레킹을 할 때가 오면 다시 하나 장만할 것이다.


소나기가 멈추고 후타오샤에 무지개가 떴다. 희미하게 보이지만 쌍무지개였다. 비가 오면 걷기 힘들고 번거롭지만 이런 멋진 행운도 가져다 준다.







28밴드에서부터 차마객잔까지 걸으면서 봤던 경치가 후타오샤 1박2일 트레킹에서 본 최고의 경치였다. 마침 구름도 적당히 걷혀서 거칠고 험한 위룽쉐산의 13봉우리가 멋들어지게 펼쳐졌다. 비록 어제 위룽쉐산에서 눈과 구름밖에 보지 못하고 내려왔지만 후타오샤에서는 평균보다 나은 날씨에 트레킹을 할 수 있었다.





차마객잔에 짐을 풀고 식당 옥상에 올라가니 먼저 온 사람들이 햇볕을 쬐며 앉아 있었다. 옥상에서 본 경치도 무척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차마객잔까지 오면서 봤던 경치가 더 좋았다.


차마객잔에는 한국 트레커를 위한 메뉴로 백숙이 있다. 오래전 이곳에 온 트레커가 닭을 사서 백숙을 해달라고 주문하면서 요리법을 알려주었다는데 이곳을 찾는 한국인들이 많아지면서 아예 가장 비싼 정식 메뉴로 자리잡았다. 고생했으니 몸보신이나 해보자는 생각으로 백숙을 시켜놓고 따리 맥주를 마셨다. 시간이 걸려 나온 백숙은 거대했다. 양계장의 경제성 때문에 큰 닭을 보기 어려운 우리나라와 다르게 이곳은 아직도 닭을 풀어서 기르기 때문에 닭이 무척 컸다. 그리고,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맛도 무척 훌륭했다. 처음에는 둘이서 이 큰 백숙을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정신을 차리고보니 밥까지 시켜서 먹고 있었다. (세상에 김치까지 제공된다.)


산이 높으니 밤이 금새 찾아왔다. 외부에 있는 세면장에서 급히 샤워를 하고(태양열로 물을 데우기 때문에 빨리 하지 않으면 더운 물이 떨어질 수도 있다) 나오니 식당에는 커다란 배낭을 매고 이제야 도착한 한국인 남자 둘이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상대방은 식사를 하던 중이었고 나는 얼른 잠자리에 들고 싶어서 굳이 가서 인사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인연이 있으면 내일 볼 수 있겠지 생각하고 지나쳤다. 이 사람들이 그 후 며칠동안 나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고는 이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후타오샤 트레일이 세계 3대 트레일이라고 할만 하냐고 물으면 '글쎄...'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했던 트레킹 중에서 최고냐고 묻는다면 '아니오'라고 할 것 같다. 똑같이 트레킹을 좋아하더라도 사람마다 좋아하는 풍경이 다르고,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많은 사람들은 후타오샤 트레킹을 최고로 칠 수도 있다. 분명 훌륭하고 멋진 트레일이지만 나에게는 최고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같이 트레킹했던 젊은 친구는 중국의 유명한 풍경구인 황산, 화산 등등을 가봤다고 했지만, 후타오샤만큼 자연의 경이를 느낄 수 있는 장엄하고 거대한 풍경은 아니었다면서 이 곳이 더 낫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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