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해가 뜨기 전의 위룽쉐산을 카메라에 담고, 식사를 했다. 차마객잔에서는 아침으로 국수나 밥류를 사먹을 수 있는데 평소에서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이날은 닭죽이 무료 서비스로 나왔다. 어제 남은 백숙으로 끓였을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중국에서 이런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내가 느낀 중국 사람들은 내면의 친절함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 못지않지만 아직 서비스(비록 상업적인 목적이라 하더라도)에 대한 개념은 부족했기 때문에 심심산골에서 이런 서비스를 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닭죽을 한 그릇 뚝딱 비우고 이틀째 후타오샤 트레킹에 나섰다.







출발할 때는 쌀쌀했던 날씨가 산봉우리 위로 해가 뜨자 금새 따뜻해졌다. 심지어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게 어제보다 날씨가 훨씬 좋아보였다. 어제는 숲과 오르막을 지나느라 볼 수 없었던 하바쉐산의 봉우리리가 왼쪽으로 펼쳐졌고, 절벽으로는 만년설에서 녹은 물이 작은 폭포를 이뤄 떨어졌다.


출발한지 한시간쯤 되었을까, 중도객잔이 저 앞에 보일때가 되어서야 이번 트레킹을 위해서 샀던 등산용 스틱을 차마객잔에 두고 온게 생각났다. 동행인 젊은 친구는 가지러 가자고 했지만 그러면 왕복 2시간을 허비해야 하고 어쩌면 여기서 나가는 차 시간에 제대로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냥 포기했다. 어제는 트레일이 가파르니 스틱을 요긴하게 잘 썼는데 오늘은 시작부터 트레일이 평지라서 한시간을 걸어도 생각이 나질 않았던 것이다. 남미 안데스에서도, 스페인 산티아고에서도 사지 않고 버텼던 스틱을 이번 트레킹을 대비해 맘먹고 샀는데 첫날 하루 쓰고는 잃어버리다니... 꼼꼼하지 못한 내 성격에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중도객잔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여행전에 정보를 찾아보면서 중도객잔의 화장실이 천하에서 제일 경치가 좋은 화장실이라느니 하는 이야기가 정말 많았다. 나는 화장실에 가지는 않았지만 중도객잔에서 보는 경치가 특별히 더 낫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위룽쉐산의 절경과 화장실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장소가 합쳐져서 재미있게 만들어진 이야기인 것 같다.



평탄한 길을 따라 산등성이를 몇 개 돌아서 가다보니 골짜기도 아닌 산허리에서 트레일 위로 물이 떨어지는 작은 폭포가 나왔다. 여행전에 찾은 정보로 관음폭포라 이름붙은 곳인 줄은 알았지만 떨어지는 물의 수량이나 높이나 그다지 인상적인 폭포는 아니다. 다만, 여름에 이곳을 방문한 트레커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장소가 될 것 같았다.




점심때쯤 되어서 티나객잔에 도착했다. 티나객잔은 차가 다니는 도로옆에 있어서 마지막 30분 이상은 산을 내려오는 것으로 트레킹이 마무리 된다. 둘째날은 첫째날에 비해 코스가 너무 쉽고 평탄했고, 경치도 첫째날이 훨씬 좋았다. 후타오샤를 상-중-하로 나누는데 대부분은 상에서 중까지 오는 약 22km의 코스가 일반적으로 많이 찾는 코스이다. 트레킹을 마친 사람들은 티나객잔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버스를 타기 전까지 여기서 쉬거나, 사냥꾼에게 쫓긴 호랑이가 진사장을 뛰어 넘을 때 밟고 건넜다는 호도석을 보기 위해 이 곳에 짐을 맡기고 다녀온다.

 


점심식사를 시켜놓고 더위를 식히고 있으려니 어젯밤 잠깐 봤던 한국사람 둘이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들어왔다. 어제는 인사를 할 겨를이 없었는데 인연이 있나보다 싶어서 인사를 하고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두 사람도 나하고 같이 트레킹을 한 동행과 같은 나이였다. 이 두 사람은 고등학교 친구사이로, 세계여행을 시작한지 40여일째라고 했다. 세계여행을 먼저 한 선배로서 무척 반가웠고, 앞으로 펼쳐질 흥미진진한 여행이 부럽기도 했다. 게다가 후타오샤 트레킹을 마치고 나처럼 버스로 샹그릴라로 갈 예정이라고 해서 동행하기로 했다.


넷이서 점심을 먹고나서 트레킹을 같이 한 친구와 티나객잔에서 만난 두 친구는 같이 호도석을 보러 내려가고, 나는 그냥 객잔에서 쉬면서 이들을 기다렸다. 



객잔에는 우리가 산을 내려올때 같이 내려온 젊은 부부와 어린 두 아이가 있었는데, 커다란 오토바이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객잔에 오토바이를 세우자 그 중 딸아이가 오토바이에 타보고 싶다고 아빠에게 수줍게 이야기를 했다. 아빠가 오토바이 여행자에게 딸 아이가 오토바이에 타봐도 되는지 물어보고 승낙을 얻어냈다. 오토바이에 탄 귀여운 여자아이 얼굴이 환하게 웃음꽃이 피었고, 아이의 귀여운 모습에 객잔에 있던 여행자들 얼굴도 모두 환해졌다.


이 젊은 서양인 부부는 이제야 걷기 시작한 한두살된 남자아이와 그보다 조금 큰 여자아이를 데리고 후타오샤에 왔다. 아빠는 엄청나게 큰 배낭에다 여자아이를 데리고, 엄마는 작은 배낭에 남자아이를 안고 트레킹을 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 생각보다 코스가 험해서인지 오르던 길을 포기하고 되돌아가다가 우리와 만나게 되었다. 이 작은 아이들을 데리고 트레킹을 강행한 용기도 대단하고, 이 아이들이 불평없이 부모와 같이 다니는것도 놀라웠다. 세계여행을 하면서도 이런 가족들을 종종 봐왔음에도 볼때마다 이들의 사고방식과 교육방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티나객잔에서 호도석에 다녀오는 길은 꽤나 험해서 왕복 세시간쯤 걸린다고 했는데, 한 시간 반쯤 지나자 다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서 돌아왔다. 생각보다 가까웠거나 길이 험하지 않았던 것이냐고 묻자 큰 사고가 생길뻔해서 돌아왔다고 했다. 가파른 길을 내려가던 도중에 한 친구가 부실한 돌을 밟고 절벽에서 떨어뻔하는 순간 옆에 있는 나뭇가지를 잡고 겨우 추락을 면했다고 했다. 얼굴이 벌건 이유가 더워서인줄 알았는데 다들 놀래서 상기된 것이었다. 물을 마시고 한숨을 돌린 후에야 조금 안정이 되는 것 같았다. 앞으로 1년 가까이 남은 여행에 큰 액땜을 한 것이라고, 앞으로는 더 조심히 다닐테니 잘 된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서로를 진정시켰다.


호도협을 마친 사람들은 대부분 리장이나 샹그릴라로 가기 때문에 티나객잔에서는 이쪽으로 가는 버스표를 판다. 나와 세계여행중인 친구들은 샹그릴라로, 후타오샤를 동행했던 친구는 리장으로 가는 버스표를 샀다. 오후 4시경에 기념사진을 찍고, 이메일이나 페이스북 계정을 주고 받고는 버스앞에서 헤어졌다. 그런데, 동행했던 친구에게 급하게 이메일 계정을 알려주느라 주로 쓰는 두 계정의 아이디와 이메일주소를 섞어서 이야기해버렸다. 그 친구는 내가 알려준 엉뚱한 계정으로 메일을 보냈을테고, 나는 그 친구의 계정을 알지 못한다. 이 블로그를 볼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혹시라도 보게 된다면, 혹은 H반도체 회사에 다니는 후타오샤 트레킹을 다녀온 서른 두살의 남자를 알고 계신 분은 글을 남겨주시면 무척 고마울 것 같다. 


후타오샤에서 샹그릴라로 가는 중에 휴게소에서... 무슨 설산인지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티벳불교의 상징인 불탑과 타르초가 보이는게 점점 티벳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후타오샤 티나객잔에서 샹그릴라까지 4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구글맵에는 100km가 조금 넘는 거리에 2시간 반이라고 나오는데 항상 그렇듯이 훨씬 더 오래 걸렸다. 쿤밍-따리-리장-샹그릴라에 오는 동안 조금씩 도시의 분위기가 달라지는게 독특했다. 전형적인 중국의 대도시 쿤밍, 고도(古都)의 느낌인 따리와 오래된 마을 같은 리장이었는데 샹그릴라는 정말 먼 외지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버스에서 내려 샹그릴라에서 가장 먼저 본 것은 도로를 맘껏 활보하고 있는 소들이었다. 주인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지만 소들은 자기들끼리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차들은 그런가보다 하고 소가 지나갈때까지 서행을 하거나 멈췄다. 사람이 지나가려고 해도 좀처럼 멈추는 일이 없는 다른 큰 도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신기해하며 택시를 잡아타고 샹그릴라에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를 찾아갔다.




샹그릴라의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숙소는 한국인들도 있지만 서양 배낭여행자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지금껏 가본 한국인 숙소는 대부분 한국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는데 이곳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여행자들이 묵고 있는 것이 특이했다. 게스트하우스로는 당연한 모습이지만, 가장 마케팅하기 좋은 한국인 전용숙소가 아니라 서양여행자들이 알아서 찾아오는 게스트하우스로 자리잡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곳에서 며칠 묵으면서 하나둘 이야기를 듣게 되었지만 사업수완과 운과 노력이 모두 좋았기에 성공한 게스트하우스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랫만에 한국 음식을 먹고, 뜨끈한 철판 난로 옆에서 샹그릴라 맥주를 마시고... 후타오샤 트레킹의 피로를 푼다.


오늘까지 같이 다니던 동행과 헤어지고 새로운 동행을 만났다. 나이 차이가 10살 정도 나지만 이들이 어렵게 느끼기 보다는 일행으로 생각해주길 바랬다. 회사에서, 사회에서 그렇게 경계해 왔던 꼰대의 모습이 보여지지 않기를, 10살 정도는 쉽게 어울릴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며 어느 정도는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이들과 동행이 되었다. 사회에서는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과 어울릴 기회가 점점 없어진다. 직급이 올라가면서 사원, 대리들과는 소통할 기회가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이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면 좋지 않게 보기도 한다. 거꾸로 젊은 친구들이 불편해하고 꺼릴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에서는 그런 직급이나 직무를 벗어나 훨씬 편하게 어울릴 수 있다는 것도 여행의 크나큰 장점이다. 사장님, 임원님들. 회사내 소통을 강조하시면서 매년 별 효과없는 커뮤니케이션 교육만 필수적으로 시키실게 아니라 직원들 여행 한번 보내시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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