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희랑'(샹그릴라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샹그릴라에서의 첫날은 자희랑 주인장이 소개해 준 중국인이 운영하는 숙소에서 묵었다. 멋들어진 목조건물에 시설도 나쁘지 않았고, 비싼편도 아니었는데 숙소는 텅비어있었다. 어젯밤에는 자희랑에서 술자리를 가진 후 숙소에 늦게 들어와서 몰랐는데 이 넓은 숙소에 달랑 우리 일행 셋만 있었다. 어찌된게 중국인 주인도 사업에 흥미가 없는 듯 심드렁한 표정이었고 다른 곳에서는 으례하는, 여행자에게 자신의 숙소에 대해 좋은 후기를 남겨달라는 둥 그런 말도 하지 않았다.


숙소는 훌륭한 편인데 손님이 아무도 없다. 스릴러물이라도 찍으면 좋을 듯...



샹그릴라라는 말의 기원은 위키백과의 설명을 그대로 옮긴다. 


샹그릴라(Shangri-La)는 제임스 힐튼이 쓴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 1933)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가공의 장소이다. 쿤룬(Kunlun)산맥의 서쪽 끝자락에 있는 숨겨진 장소에 소재하는 신비롭고 평화로운 계곡,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고 외부로부터 단절된 히말라야의 유토피아로 묘사되었다. 소설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 말은 지상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천국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샹그릴라 사람들은 평균적인 수명을 훨씬 뛰어넘어 거의 불사(不死)의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은 상상에서 우러난 동양(Orient)에 대한 이국적 호기심(Exoticism)을 담고 있다. 샹그릴라 이야기는 티베트 불교에 전승되는 신비의 도시 샹바라(Shambhala, 香巴拉)에 기초하고 있다.


이상향을 의미하는 샹그릴라라는 지명을 가진 곳이 현실에 존재하게 된 연유는 앞의 여행기에서도 썼지만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제임스 힐튼이 상상했던 샹그릴라가 어디인지, 어느 곳이 가장 소설과 가까운 곳인지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중국정부는 원래는 중뎬(中甸)이라는 이름을 가진 디칭티벳족자치주에 있던 현을 '소설에 나오는 이상향이 이곳이다'라고 선포하고 지명을 샹그릴라로 바꿔버렸다. 이곳이 이상향, 도원향일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는 수많은 여행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해발 3100미터가 넘는 곳이라 경치나 분위기가 페루나 볼리비아와 매우 흡사하다.


자희랑 게스트하우스... 흙벽돌로 만든 집과 나무판으로 올린 지붕이 그대로 안데스 어느 마을에 옮겨 놓아도 전혀 어색함이 없을 것 같다.

기후가 비슷하고, 주위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도 별 차이가 없으니 사람 사는 모습이 비슷해진다.


아침에 일어나니 잠들기 전에는 뜨끈했던 전기장판에 미열만 남아있고 숙소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소개받은 숙소가 이 모양이라며 투덜거렸지만 알고보니 새벽부터 샹그릴라 전역이 정전이라고 했다. 수도는 우리가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끊겨 있었다. 몇 년전 샹그릴라 구시가를 뒤덮은 화재로 이곳을 상징하는 오래된 목조건물의 반이상이 전소되었다고 했다. 대부분의 집들이 새로 지어졌거나 짓고 있었고, 수도나 전기도 공사가 진행중이어서 이런 일들이 일상적이라고 했다. 그래서 형편이 괜찮은 숙소들은 태양열로 물을 끓여서 숙박객들에게 제공하는데 장사가 안되는 숙소에 묵은 덕분으로 따뜻한 물을 셋이서 넉넉하게 쓸 수 수 있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에는 샹그릴라 시내구경에 나섰다. 샹그릴라의 스팡지에에는 티베트 불교를 상징하는 백탑이 서 있다. 백탑의 네 면에는 뭔가가 새겨진 원통들이 붙어 있는데 신자들은 이 통들을 돌리며 탑을 돈다. 동남아에서 봤던 수십개의 작은 종들을 하나씩 치며 소원을 비는 모습과 정확하게 겹쳐졌다.





목조건물들이 늘어선 구시가를 벗어나면 도시가 확장되면서 지어진 새 건물들로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된다. 샹그릴라라는 이상향으로 이름붙은 도시가 일반적인 중국의 소도시와 크게 다를바가 없다니 조금은 실망스럽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갈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아프리카나 아마존에도 인터넷을 연결하겠다고 열기구를 띄우는 마당에 이들만 내 상상속에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나 이기적인 생각이다.



샹그릴라 시내의 한 시장을 찾아 구경에 나섰다. 샹그릴라가 지금까지 여행한 중국의 다른 지역과 차이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할 때 대부분 티베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쓰는 중국어도 발음이나 억양이 상당히 다른지 중국어에 능숙한 일행도 이들과 대화하는데 약간 어려움을 겪는 듯했다. 간판이나 게시판도 중국어와 티베트어를 같이 사용하고 있었다. 말도 글도 다른 이들은 어쩌면 중국이라는 커다란 국가에 속한 또 다른 작은 국가일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곳곳에서 소수민족들의 독립을 요구하는 테러나 시위로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자치구라고는 하지만 모든 것을 중앙당에서 통제하고 관리하는 정치방식이 소수민족들의 문화와 충돌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소수민족들이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한족들에게 피해를 입는 일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윈난성을 지나 티베트자치구에 이르면 이런 성향이 깊어지는 이유로 중국정부에서는 외국인들의 여행을 금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정부는 소수민족들의 문제를 무력으로 억눌러 왔지만 이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샹그릴라의 시장은 우리네 재래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야채나 과일들이 훨씬 큼직큼직하고 싱싱해보였다. 우리나라에서 중국산 농수산물이 하품으로 취급받는 이유는 중국에서도 하품으로 취급되는 물건을 싸게 들여오기 때문이다.




시설도 나쁘지 않았다. 비를 맞지 않고 장을 볼 수 있도록 커다란 지붕이 덮여 있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과 물건을 펼쳐놓는 공간이 잘 분리되어 있었다. 중국에서도 오지에 가까운 작은 도시에 있는 시장이 우리네 시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은, 우리가 벌어들이는 수입의 절대치는 높을지 모르겠지만 그 수입으로 영위하는 생활 수준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의미일지 모른다.


중국하면 돼지고기... 소고기보다 돼지고기가 훨씬 맛있다.





이곳의 아이들은 모두 수줍다. 사진이라도 찍을라치면 수줍게 웃으며 도망가버린다. 카메라를 들기만하면 멋진 모델포즈를 취하는 아이들에 익숙해진 탓에 오히려 이 아이들의 순진함이 반갑다.



샹그릴라 시장을 구경하고 일행 중 한명은 아웃도어 매장에서 두터운 바람막이 점퍼를 아주아주 저렴한 가격에 샀다. 오후에는 자하랑 주인장이 추천한 비타하이(碧塔海, 벽탑해)로 자전거 하이킹을 가기로 했다. 일단 숙소에서 돌아와 자하랑이 자랑하는 야크버거로 든든히 배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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