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드디어 메이리쉐산을 향해 길을 떠났다. 샹그릴라도 중국내에서 무척 작고 외진 도시지만 샹그릴라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보니 공항도 있고, 도시도 계속 커지고 있는 반면, 메이리쉐산의 깊은 산중에 있는 위뻥(雨崩)은 60년대까지도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말그대로 심심산골이다. 그렇다보니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샹그릴라에서 위뻥까지 하루만에 갈 수가 없다.(빠오쳐를 비싼 값에 빌려서 이른 새벽에 샹그릴라를 출발해 디칭현과 페이라이시를 그냥 지나치고 시당까지 논스톱으로 달린 다음, 시당에서 대여섯시간쯤 걸으면 당일에 도착할 수도 있긴 하겠지만 제대로 된 여행경로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자희랑 주인장이 고맙게도 디칭에서 샹그릴라로 여행자를 태우고 왔다가 돌아가는 빠오처를 수배해 주어서 저렴한 가격에 디칭까지 가는 교통편을 구할 수 있었다. 샹그릴라와 디칭 사이에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버스가 있긴하지만 버스터미널로 가는데 드는 비용, 좁은 좌석과 걸리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일행을 네다섯명쯤 모아서 빠오처를 이용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아침 일찍 출발한 빠오처는 중간에 중국인 여행자를 한명 더 태우고 디칭까지 부지런히 내달렸다.


넓게 보면 샹그릴라도 디칭(DEQEN, 德钦县)현에 속한 곳이지만, 샹그릴라에서 현청소재지인(것으로 보이는) 디칭까지는 4시간 넘게 차를 타야 한다. 200킬로미터도 채 되지 않지만 해발 4500미터에 가까운 고개를 넘어야 하는 등, 가는 내내 구불구불한 산길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금은 도로 사정이 좋아져서 이 정도이지 사정이 나빴던 예전에는 얼마나 걸렸을지 생각하기 어렵다.


얼마나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산중턱에 차가 멈췄다. 보이는건 주차장과 매표소로 보이는 건물이 전부였다. 중국 관광지의 유별난 특징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차가 멈춰선 곳은 진사강(金沙江)을 볼 수 있는 전망대였고, 이 전망대의 매표소에서는 오늘의 목적지인 페이라이시 전망대, 메이리쉐산 입장권 통합한 표를 팔고 있었다. 예전에는 관광지별로 별개의 표를 팔았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메이리쉐산 입장권만 사고 다른 관광지 입장권은 사질 않으니 모두 묶어버린 것 같다. 매번 당하는 일이지만 당할 때마다 기분이 좋진 않다.



이곳도 메이리쉐산 국가공원이라고 하는데 정작 메이리쉐산은 여기서 멀리 떨어져있어서 보이지도 않는다.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곳보다 더한 우유니에서도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봤으니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들의 체력과 용기에 절로 경의를 표하게 된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은 마침 여행직전 EBS 세계테마기행 장강편에서 본 것이었다. 높은 전망대 밑으로 험하고 척박한 산골짜기를 굽어 흐르는 진사강이 내려다보였다. 진사강 건너편은 쓰촨성이고 전망대가 있는 쪽은 윈난성이다. 이 작고 좁은 물길이 다른 여러 물길과 합쳐져서 거대한 장강을 이루고 중국을 남북으로 나누며 흐른 끝에 상하이에서 바다로 흘러든다. 거대한 산맥과 그 사이를 흐르는 강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제법이긴 하지만 비싼 입장료를 지불할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니 찾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다른 관광지와 묶어서 패키지 입장료를 만들어버렸다.



저런 길을 볼 때마다 어떤 사람이 저 길을 다니는지, 저 길을 따라가면 뭐가 나오는지 궁금해진다.

10년 전 모스크바 출장길에 비행기 창밖으로 시베리아 평원에 난 길을 보며 궁금해했던 뒤로 항상 그렇다.


세계에서 세번째로 긴 강이라더니 지도에 그려진 장강을 보니 길긴길다.


우리가 타고 온 빠오처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서 있다.




전망대에서 쉬었다가 다시 출발했다. 산은 높아지고 길은 더 험해졌다. 그러다 갑자기 창밖으로 꽤 높아보이는 설산이 나타났다. 이곳이 메이리쉐산이냐고 물었더니 운전사는 바이마쉐산(白馬雪山, 백마설산)이라고 대답해주었다. 바이마쉐산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잠시 차를 세웠다. 5000미터가 넘는 봉우리 스무개가 펼쳐진 이곳의 경치는 대단히 훌륭했지만 주변에 아무런 시설이 없어서 야영을 할게 아니라면 메이리설산으로 가는 길에 잠시 차를 멈추고 경치를 둘러보는 정도에서 끝낼 수 밖에 없다.



4000미터가 넘는 고갯길에서 세찬 바람을 맞으며 서 있으니 자연의 광활함, 사람이 흉내낼 수 없는 거대함이 느껴졌다. 이번 여행기간이 윈난의 가을이 가장 깊어진 시기였는데 우리나라의 가을처럼 울긋불긋하게 단풍이 물들지 않았다. 고도가 높아 다양한 수목이 살 수 없는 환경이어선지 대부분은 노랗게 물든 나무 아니면 사철 푸른 침엽수였다.



이미 눈이 여러차례 내린 듯 산등성이에는 녹지 않은 눈이 쌓여 있다.

 



5430미터의 바이마쉐산 좌우로 5000미터대의 봉우리들이 거대한 산맥을 이루고 있다. 이번 블로그를 쓰면서 '백마설산' 혹은 '바이마쉐산'으로 검색하다보니 '바이망쉐산(白茫雪山)'만 찾을 수 있었다.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나보다 생각했는데 오늘 어느 분의 블로그에서 두 산이 같은 산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중국 운전사가 '바이마쉐산'이라고 알려줬으니 나도 그에 따라 '바이마쉐산'으로 쓰기로 했다.


바이마쉐산 전망대에서 몇 개의 산등성이를 지나면 윈난 최고봉 메이리쉐산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다. 5000미터대였던 바이마쉐산에 비해 1000미터 이상 높은 메이리쉐산은 얼핏봐도 훨씬 높아보였다. 산에서 흘러내린 거대한 빙하도 눈에 들어왔다. 차안에서 말을 잊은채 메이리쉐산의 웅장한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오늘의 목적지 페이라이시에 가기전에 일단 더친에 도착했다. 원래는 더친에서 페이라이시로 가는 바오처로 갈아타야 하지만 중국어에 능숙한 동행 덕분에 비용을 조금 더 주고 페이라이시까지 타고 가기로 했다. 더친은 깊은 산골짜기에 형성된 도시라서 경사가 급한 도로를 따라 집들이 지어져 있었다. 산과 바다라는 차이가 있지만 이탈리아 포지타노에서 본 마을 풍경과 흡사했다. (물론, 포지타노처럼 아기자기하고 고풍스러운 맛은 없다.)


산골짜기에 형성된 도시, 더친. 사진에서는 급경사가 잘 느껴지지 않지만 건물들이 무척 급한 경사면에 지어져 있다.


더친에서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고 일단 운전사와 헤어졌다. 돌아다니다 현지인들이 식사하고 있는 식당을 찾아 무턱대고 들어갔다. 옆 테이블에서 시킨 음식을 따라 주문하고 희끄무레한 음료까지 시켰다. 야크젖으로 만든 것인지 미지근하게 데운 음료는 조금 쿰쿰한 냄새와 짠맛이 났다. 부족한 염분이나 미네랄을 보충하기 위해서인지 소금을 제법 타서 먹는 것 같았다. 식사를 방해하는 파리들을 부지런히 쫓으며 나온 음식들을 뱃속에 밀어넣었다.


더친에서 페이라이시는 10킬로 남짓되는 거리라 금새 도착했다. 내일 아침이면 메이리쉐산의 산중마을 위뻥으로 출발해야하니 근처의 저렴한 방을 잡고 서둘러 메이리쉐산이 보이는 전망대로 나갔다.



이 전망대도 미리 샀던 패키지 입장권에 포함되는 곳이다. 전망대 뒤로 숙소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굳이 전망대를 찾지 않아도 숙소 창문이나 옥상에서 쉐산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곳도 패키지로 묶은 듯 싶다. 살 수 밖에 없는 입장권이지만 기왕 산 것이니 열심히 써줘야 한다.


티벳승려 복장의 남자가 메이리쉐산을 바라보고 있다.



6000미터급 봉우리 13개로 이뤄진 메이리쉐산은 티벳불교 8대 성산이다. 그래서인지 페이라이시 전망대에는 관광객, 여행객뿐만 아니라 많은 현지 티베트인들이 탑을 돌고, 합장을 하고, 오체투지를 하고 있었다. 중세시대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 로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성지순례를 했듯이, 이슬람인들이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에 성지순례를 하듯이, 티베트인들은 이 높고 고고해 보이는 산을 성스럽게 여기며 찾아오고 있었다. 이들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준비한 울긋불긋한 천에 티벳불교 경전을 찍은 타르초를 가져와서 설산이 잘 보이는 곳에 걸고 소원을 빈다. 강한 햇볕에 바래고 바람에 낡은 타르초부터 방금 걸었는지 깨끗하고 선명한 것까지 수많은 타르초가 걸려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이런 깔끔한 전망대가 있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메이리설산이 티벳의 성산이었던 것은 변함이 없지만 이 외진 곳까지 도로가 놓이고 중국내 여행인구가 많아지면서 잘 꾸며진 전망대가 생기고 그 뒤로는 수많은 숙박시설이 생긴 것 같다. 원래는 이 근처에 있는 페이라이시(비래사)라는 티벳불교 사원의 일부가 이곳에서 신자들을 받았던 게 아닌가 싶다.



해가 서서히 기울어가자 많던 관광객들이 대부분 떠나고 조용해졌다. 오후 햇살 속에서 백탑과 그 뒤로 펼쳐진 메이리쉐산을 보고 있으려니 지팡이를 짚고 조용히 백탑을 돌고 있는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 시골에서 왔을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 분에게 지금 이 시간은 평생의 소원이 성취되는 극적인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을 자주 찾는 분인지, 평생의 염원으로 이번에 처음 오게 된 분인지 모르겠지만, 엄숙한 표정으로 걸음걸음 집중해서 백탑 주위를 몇 번이고 돌고 있었다. 행색이 그리 넉넉해 보이지 않는 이들이 정성스레 만든 타르초를 걸고, 오체투지를 하는 모습을 보며 이들에게 종교가 인생에서 갖는 의미가,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졌다.


봉우리에 쌓인 하얀 만년설과 할아버지 머리에 쌓인 하얀 나이의 흔적이 무척이나 비슷한 느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왓장으로 절에 공양하는 일이 이곳에서는 판판한 검은 돌로 행해진다.


6740미터에 달하는, 윈난에서 가장 높은 이 봉우리는 오후가 되면서 오히려 구름이 두터워져서 제대로 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당시에는 아쉬운 마음이 컸는데 지금 다시 사진을 보니 아쉬움에 투덜거렸던 시간조차도 아깝게 느껴진다. 출근 전, 회사근처 까페에서 그 때를 정리하고 있으려니 그곳의 바람과 햇살과 공기가 더욱 그리워진다. 분명 지금 이 순간이 훨씬 안락하고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열흘 넘게 윈난을 여행한 시간 중에 가장 좋았던 시간이 이 날 오후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뭔가 밍숭맹숭하다고 느꼈던 여행이 짭조름해진 것과 함께 윈난에 온 걸 잘 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숙소 주인의 어린 딸. 결혼도 하지 않은 동행 중 한 명이 고무찰흙을 빚어가며 오랫동안 놀아주었다. 아이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쉽게 친해질 수 있다.


저녁으로 먹었던 훠궈... 내가 먹어 본 훠궈 중에서 가장 훌륭했다.


식당을 겸하는 숙소에서 맥주를 마시고 저녁으로는 야크고기 훠궈를 먹었다. 베이징이나 쿤밍에서 먹었던 훠궈와는 다르게 육수에 향신료 맛이 강하게 나지 않았고 맛이 흔히 먹는 샤브샤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야채와 두부, 야크 고기를 넣어서 익혀 먹고 나중에 국수까지 넣어서 먹는다. 나중에 샹그릴라로 돌아가서 자희랑 주인에게 중국인들이 파는 야크고기에 아편인지 대마인지 마약성분을 조금 넣어서 중독성있게 만든다는 말을 들었다. 이때 먹은 야크고기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드럽고 담백해서 무척 맛이 좋았다.


내일은 위뻥까지 가는 메리설산 트레킹의 첫날이다. 날이 어두워지니 기온이 뚝 떨어졌다. 화장실에는 온수는 커녕 변기에 물도 내려가지 않는 후줄근한 숙소였지만 메리설산 트레킹을 시작한다는 설렘과 전기장판의 온기에 의지해 깊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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