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후와 신푸를 하루에 다녀오는 것은 40대(초반이기는 하지만)의 평범한 여행자에게는 무리일거라 생각했다. 빙후까지 가는 길이 생각보다는 힘들지 않았지만 남은 체력으로 다시 신푸까지 갔다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남은 시간을 그냥 죽치고 보내자니 몸이 근질거렸고 내일 다시 적응이 안되는 쾌활한 처자들과 같이 동행하자니 그것도 마뜩치 않았다. 앉아있을 바에는 하위뻥 마을이나 구경가자는 생각으로 다시 혼자 길을 나섰다. (어제 아침에 순례자에게 받은 지팡이를 점심을 먹으면서 식당 앞에 세워뒀었는데 식사를 하고 나오니 지팡이가 없어져버렸다. 이때는 지팡이도 없었지만 아랫마을 마실가는 기분으로 가볍게 나선터라 개의치 않았다.)



티벳의 말들은 강인하다. 짧은 다리와 커다란 머리와 굵은 목을 가지고 있다. 작은 덩치에도 사람과 짐을 싣고도 험준한 고산지대를 거뜬하게 다닌다.

이런 강인한 말 덕분에 차마고도(茶馬古道)라는 무역로가 생길 수 있었다.


설산을 배경으로 오후 햇살이 비치는 하위뻥 마을이 평화로워 보인다.


동네 길거리에 개보다 돼지가 더 흔하다. 돼지를 앞세우고 하위뻥 마을로 갔다.


미처 몰랐는데 사진을 정리하면서 보니, 가운데 있는 산이 마치 드러누운 사람의 얼굴을 머리맡에서 본 것 같다.

 

하위뻥으로 내려가다가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상대방은 나를 알지 못하는, 나에게만 반가운 사람이다.) 어제 위뻥으로 오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여러번 마주쳤던 할아버지였다. 뚱뚱하고 얼굴이 거무죽죽한 할아버지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고령인 탓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병색이 완연해 보였다. 말을 타고 가면서도 자주 내려서 쉬어야했고 말에서 내리거나 탈때마다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했다. 한번은 말에 오르는데 남자 세 사람이 태우려해도 잘 되질 않아서 나도 도와 말 위에 올려드린 적도 있었다.


정도를 벗어난 생각인줄은 알지만 이 할아버지를 보면 죽기전에 이곳에 오는 것이 소원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러 번 왔던 곳이었다면 병색이 완연한 얼굴, 가누기조차 힘든 몸을 이끌고 이곳까지 올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보니 이들에게 종교란 어떤 의미인지 더욱 궁금해졌다. 이들의 삶에서 종교가 현대 도시인들이 매주 교회에 가고 절에 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큰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상위뻥과 하위뻥을 나누는 계곡 사이에 놓인 다리


계곡 아래로는 설산에서 내려 온 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나뭇짐을 지고 가다가 이웃과 대화중인 티벳 할머니

좀 더 카메라를 들이댈 용기가 있었다면, 사진 기술이 좋았다면 훨씬 맘에 드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텐데



산비탈에 형성되어 길고 폭이 좁은 상위뻥과 다르게 하위뻥은 계곡사이의 평평한 분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고보니 신푸로 가는 길은 어느쪽인지 궁금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만 마을 깊숙히 들어가고 있었다.



표지판에 상위뻥 1.6km, 신푸 5.4km 라고 쓰여 있다. 이걸보고 벌써 1.6km를 왔다면 5.4km도 금방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무모한 생각을 해버렸다.

이미 한참 기울어진 그림자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상위뻥(3228m) - 하위뻥(3055m) - 신푸(3657m), 표고차 775m를 오후해도 한참 기운 시간에 출발하려 했던 것은 만용이었다. 그런데 표지판 앞에서 갈까말까 망설이는 순간에도 어린 아이들과 나이 많은 노인들이 포함된 사람들은 계속해서 신푸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들이 가는데 못갈게 있을까 싶었다. 가다가 정 안되면 돌아서면 그만이다 결정하는 순간, 내 발걸음은 어느덧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것이 룽다인가?


가다보니 룽다로 보이는 장대가 서 있었다. 룽다는 긴 장대에 경전을 쓴 깃발을 매단 것이라고 한다. 한자로는 風馬라고 하는데 깃발에 쓰인 경전이 바람을 타고 멀리 전해져서 중생들이 해탈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다고 한다.


한동안은 평평한 산길이 계속되다가 1/3이 지난 지점부터 서서히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오르막도 경사가 심하지 않은 편이라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숲이 끝나고 눈앞에 설산이 펼쳐지면서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신푸는 설산으로 둘러쌓인 깊은 계곡에 위치해 있어서 어째서 티벳인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곳인지 알 수 있다.







기울어가는 햇살을 받은 하얀 설산과 그 아래로 시커먼 거대한 절벽이 색의 대비를 이루며 경이로운 경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형형색색의 수많은 타르초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말 그대로 작은 산이라면 뒤덮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타르초의 물결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가족의 염원을 담아서 내건 타르초들이었다. 사람이 다니는 길마저 덮어버려 타르초 밑으로 허리를 굽히느라 안그래도 힘든 길이 더 힘들어졌지만 불평을 할 수가 없었다. 인간의 생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긴 시간속에서 자연이 만들어 놓은 경이로움과 순간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걸어놓은 수많은 타르초가 어우러져 경건하고 성스러운 광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소원을 비는 바위인지 바위에 지폐들이 붙여져 있었다. 반대쪽에는 사진(대부분 아이들 사진)도 많이 붙여져 있었는데 자식이나 손자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 같았다.

재미있는 것은 붙여져있는 증명사진의 배경이 모두 붉은색이었다. 붉은색을 좋아하는 중국사람들이라 사진 배경도 붉은색으로 하나보다.



경사진 길을 타르초를 해치면서, 숨이 턱까지 차올라 몇 번을 쉬어가며 겨우 신푸에 도착했다. 오기전에 인터넷에서 본대로 신푸는 폭포로서 가치를 둘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불과 십미터도 되지 않는 높이의 절벽 구멍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곳이 티벳인들에게 갖는 종교적인 의미는 대단해서 추운 날씨에도 윗옷을 벗고 몸에 물을 적시는 사람도 있었다. 티벳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곳이라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럴리는 없다. 그건 세상 어떤 곳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신푸 자체가 여행자에게 큰 감흥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볼 수 있는 뛰어난 풍광과 사람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타르초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메이리설산 여행에서 이곳은 반드시 가봐야 할 의미있는 곳이라는 생각이다.







해가 지고 있었다. 내려가는 발걸음은 걷다못해 반쯤은 뛰고 있었다. 그런데도 반대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휴게소로 보이는 곳에서는 느긋하게 식사까지 하고 있었다. 처음 위뻥에 들어왔을 때 여행자보다 순례 온 현지인들이 훨씬 많았는데 이들은 어디서 묵는지 궁금했었다. 상위뻥이든 하위뻥이든 숙소가 몇 안되어서 여행자들조차 맘에 드는 숙소를 선택할 여지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들은 바람만 간신히 막을 수 있게 되어 있는 휴게소처럼 보이는 곳에서 비박을 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급히 내려가야 하는 시간에도 이들은 느긋하게 산을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젖먹이부터 거동이 어려운 노인들까지 이들은 거친 바람과 추위를 감내하면서 그들에게 성스러운 이 산을 찾아오고 있었다.


뛰듯이 걸어서 하위뻥에 도착하니 해는 산뒤로 넘어가 있었다. 그래도 어둡기 전에 도착했다는 생각에 안도하며 마지막으로 신푸쪽 사진을 찍고 상위뻥으로 향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상위뻥으로 가기 위해 계곡을 내려가는 중에 완전히 어두워져버렸다. 핸드폰 플래쉬에 의지해 겨우 길을 짚어 가는데 계곡에서 상위뻥까지 200미터를 오르기가 너무나 힘든 것이다. 이제 체력도 거의 바닥나고, 길은 보이지 않았다. 절벽까지는 아니더라도 발을 잘못 디디면 수미터 아래로 굴러떨어질 길을 손까지 써가며 겨우 기어올랐다. 만약 30분 정도 늦어서 하위뻥에 도착하기 전에 어두워졌다면 큰 낭패를 볼 뻔했다.




다행히 무사히 숙소로 들어오니 한국인 일행이 걱정하고 있었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멋쩍어서 허허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고맙게도 나를 위해 숙소 부엌을 빌려 끓여준 라면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 여행중에는 절대로 모험이나 위험한 일은 하지 않는 편인데 이날은 어째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이때의 경험으로 앞으로의 여행에서는 더욱 몸사리는 여행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날 걸은 거리는 35.5km 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30km 이상은 걷지 않았는데 3000미터대의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태어나서 가장 긴 거기를 걸었다. 나이에 비해 체력이 나쁜 편은 아닌 것 같아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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